240807 수요강론: 룻기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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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수요강론 자리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의 때론 저희의 삶은 풍파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성난 파도와 같이 저희를 위협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희는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왕이 되시오니 저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이 사실 하나만 굳게 잡으며 삶의 어떠한 순간 속에도 하나님으로 인해 안심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그런 하나님임을 깨닫기 위해 이 말씀의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저희에게 말씀을 들려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룻기 1:6-1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수요강론에 잘 오셨습니다. 이번 8월 한 달동안 여름 말씀사경회가 있는데요. 지난 주일을 시작으로 세 분을 모셔서 은혜의 방편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번 달 수요강론은 특별히 제가 맡게 되었는데요.
올해 초까지 수요강론 때에는 제가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새순교회 상황에 맞게 잘 조리해서 전해드렸다면, 이번 수요강론은 3주 간 룻기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저와 함께 이 룻기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경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흘러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 전체가 남성이 중심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성을 통하여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준 성경도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룻기와 에스더가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바탕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1장 1-5절에 나오는 나오미를 비롯한 두 며느리가 맞이한 상황입니다.
나오미의 남편은 엘리멜렉으로 두 아들과 함께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는데, 이 베들레헴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베들레헴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빵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빵의 집인데 기근이 찾아오다니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근을 피하고자 모압 지방으로 피난을 갑니다. 엘리멜렉 가족은 모압 지방에서 기근을 피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가장이던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이 오르바와 룻이라는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모압에서 산 지 10년이 되던 해에 두 아들이 그만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이제 이 엘리멜렉의 가족은 누가 남게 됩니까? 바로 모든 남자들은 죽고 세 여인만이 남게 됩니다.
이 당시 여인들, 더구나 남편을 여읜 과부가 삶을 굉장히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자주 마주하는 약자들 가운데 고아가 있고, 또 다른 약자로 항상 과부가 등장합니다. 이처럼 이 당시 사회에서 과부는 약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세 명의 여인, 심지어 세 명씩이나 되는 과부가 살아간다는 것은 살 소망이 끊기는 너무나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시어미니인 나오미의 입장에서는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은 상황입니다. 남편이 죽은 것만으로도 힘들텐데, 두 아들 마저도 잃게 되니 그 힘듦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만큼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오미에게는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만큼 나오미의 삶은 가장 밑바닥으로 곤두박칠쳤습니다. 이대로 그녀의 삶은 마감되는 것만 같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이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자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6절을 보시면 나오미에게 희망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나오미는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나오미가 자신의 남편이 소속된 지파인 유다 지파의 땅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일어난 것을 넘어 절망의 상황에서 포기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일어났음을 뜻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보신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녀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기 위해 일어납니다. 이 나오미의 일어섬에 그녀의 며느리들도 “함께 일어났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힘을 보태줍니다.
삶의 밑바닥에 있던 나오미가 이렇게 과감하게 돌아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즉 이스라엘을 돌보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이처럼 용기를 준 것은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소식, 다른 말로 복음입니다.
예전에 기근이 들었던 그 “빵의 집”에서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이 그녀에게 들려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녀와 두 며느리는 함께 모압에서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녀가 모압을 떠난 것은 단순히 모압 지방에서 떠난 것을 넘어서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나온 것을 뜻합니다. 5절에서 그녀가 “일어났다.”는 것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말입니다. 이 나오미의 귀향 길에 동행한 두 며느리에게 이 여정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들은 원래 모압 사람들이며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자신의 남편의 고향인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아브라함을 마주할 때 별게 아닌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연고지입니다. 그의 모든 삶이 갈대아 우르에 있습니다. 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것은 그가 이뤄놓은 모든 삶의 터전들을 버려야 하는 결정입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 가나안으로 떠난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 한 분만 믿고 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이스라엘 족속도 아니라 이방 여인들입니다. 이들이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은 남편과의 신의를 지키고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여정은 이미 죽었지만 남편들을 믿고 시어머니 하나만 믿고 가는 결정입니다.
이런 나오미는 이런 며느리들에게 참 고마움을 느꼈을 겁니다.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이들에게는 낯선 땅임에도 자신과 함께하려는 이 며느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오미의 마음에는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은 무엇이냐면 8-9절에서 나옵니다.
바로 나오미는 이 두 며느리만큼은 자신과 같은 과부의 처지가 되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한편으로 나오미는 이 며느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지만, 이들이 자신과 같은 과부의 처지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자신과 다르게 아직 젊어 재혼할 수 있는 이 며느리들은 친정집 고향으로 돌아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 안정적인 생활을 살 것을 권합니다. 나오미에게는 이것이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고 여겼을 겁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두 며느리는 두 아들이 살아있을 때와 심지어 죽었을 때조차 자신에게 잘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가 행한 것 같이 선을 베푸시기를 축복하면서 친정집으로 돌아가 다른 가정을 꾸릴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이들을 축복하면서 작별 인사로 입을 맞춥니다. 그러자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함께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합니다. 비록 각기 다른 민족임에도 너무나도 애틋한 고부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나오미의 권유는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나오미를 따라가는 것은 이 두 며느리에게는 도박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최소한 이들이 원래 속해있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나오미의 권유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여기서 이 말의 뉘앙스가 잘 나타나지 않는데, 여기서 생략된 단어는 “반드시”라는 단어입니다. 이들은 반드시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나오미의 권유를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은 이들이 어쩔 수 없이 그저 고부관계이기 때문에 순종하기 위해서 갔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것으로서 진심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며느리의 진심 앞에 돌아가라는 나오미의 말도 진심이었습니다. 11-12절을 보시면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거절했지만 다시 한번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나오미는 자신에게서는 이제 이 며느리들과 결혼할 수 있는 남편들을 낳을 수 없음을 통하여 설득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 당시는 남편이 있어야 사회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는데, 나오미에게는 이제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8절에서 말한 “돌아가라”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나오미는 이 두 며느리들을 향해 “딸들아”라고 말하면서 친딸처럼 여길 정도로 너무나 애틋했지만, 자신의 현실을 보았을 때 이 두 며느리를 놓아주는 것이 도리였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13절에서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라며 현실을 바라보고 결정할 것을 통해 두 며느리를 설득시키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에게 나오미가 남편을 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여호와의 손이” 나오미를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자신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에게 더욱 강력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룻기를 읽어나갈 때 이런 나오미의 언행이 믿음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가족인 이 며느리들을 다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모압 남자와 결혼하라고 하니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둘을 어떻게 해서든지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15절에서 모압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압이 섬기는 신에게 돌아가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장면을 멀리 떨어져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오미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오미는 지금 보장된 행복과 안전을 권유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봐도 나오미의 말은 아주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나오미의 제안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나오미는 이 두 며느리를 며느리라는 의무에서 해방시켜주고 있습니다. 어찌됐든지 이 두 며느리는 며느리로서의 도리와 의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오미는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주어 순전히 이들의 선택에 맡기게 합니다. 이들이 모압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 할 사람도 없습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조차 이들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어쩌면 베들레헴으로 갔을 때 모압인이라는 차별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걱정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가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이런 선택 앞에 누구든지 나오미의 말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나오미를 따라가는 것은 도박이고, 친정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보장된 길입니다. 우리는 안전이 보장된 길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런 나오미의 강권 앞에 이제 이 두 며느리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이 두 며느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일까요? 처음에는 한 마음이었지만, 나오미가 두 번 권유하자 이제 이 둘의 선택은 갈리게 됩니다. 먼저 오르바를 살펴봅시다. 14절을 보시면 이 셋이 아까처럼 같이 소리 높여 운 후에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면서 작별을 고합니다. 바로 오르바는 나오미의 말대로 친정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오르바와는 반대로 룻은 시어머니를 붙잡고 안습니다. 이것은 옷을 꽉 쥐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그런 모습을 연상시키게 만듭니다.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작별을 고하는 뜻으로 입을 맞췄지만, 룻은 나오미를 꽉 붙잡고 결코 나오미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룻의 강한 의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안타까운 마음이 큰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오미는 15절에서 다시 한번 룻에게 동서인 오르바와 같이 친정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자신에게 이렇게 강권하는 나오미에게 룻이 이야기합니다. 16절입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지금까지 나오미와 함께하고 싶고 시어머니가 너무 좋으신 분이라 같이 있고 싶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룻이 나오미와 같이 가고자 하는 것에는 그 이상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룻은 단지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만 하지 않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라는 일종의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룻은 비록 모압이라는 이방 여인임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집안으로 시집 와서 모압의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참 신으로 믿게 된 겁니다.
이것은 15절의 오르바의 행동과 대조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15절에서 오르바가 친정집으로 돌아간 것은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간 행동입니다. 바로 모압의 신인 그모스 신을 섬기기 위해 간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 오르바와 대조적으로 룻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오미와 동행하려고 했던 겁니다.
이제 룻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신앙만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오미는 시어머니와 고부라는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며 지극히 현실적인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룻이 나오미와 함께하고자 하는 동기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만이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만으로도 자신은 나오미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룻이 남기로 한 결정을 하게 된 주된 이유이며 나머지는 부차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니 이런 결연한 의지까지 보여줍니다. 17절입니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바로 자신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는 더욱 강한 의지를 표현합니다. 만일 자신이 죽는 것 외에 어머니를 떠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에게 징계를 내려주실 것을 간청하면서까지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룻과 나오미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너무나도 강한 의지를 가진 룻에게 나오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제 나오미는 더 이상 돌아가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이제 룻에게 권유하는 것을 멈춥니다. 룻에게 8절과 11절, 그리고 15절 세 차례 돌아갈 것을 강권한 나오미가 룻의 의지를 꺾지 못하였습니다. 이 룻이 이런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룻의 입장이 되어 봅시다. 룻은 이방 여인에다가 지금 자신이 가는 베들레헴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입니다. 또한 가서 이방인이라는 차별 대우를 받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시어머니인 나오미 또한 자신을 억지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고 며느리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고려하여 친정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친정집에 돌아가는 것은 보장된 안전입니다. 그리고 보장된 행복이 있습니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가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입니다.
룻은 자신에게 가장 좋고 아주 현실적인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를 따라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나오미를 따라가게 될 때에 펼쳐질 불확실한 미래보다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6절을 보십시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동기였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그 소식을 두 며느리도 같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룻은 “아 역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돌보시는구나”라는 것을 이 소식을 통하여 더욱 확신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에 룻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일지라도 하나님을 믿기로, 하나님을 따르기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룻이 보여준 믿음입니다. 룻에게 하나님은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에, 다시 결혼해도 될 정도로 젊은 나이임에도 자신의 전 생애를 투신하여도 믿음직한 분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삶이 가장 밑바닥까지 곤두박칠쳤던 나오미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 큰 절망 가운데에 있던 나오미에게 두 며느리를 통하여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과부로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살아갈 소망이 없어지는 것임에도 하나님은 두 며느리를 붙여주셔서 서로를 향한 배려와 사랑을 통해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결코 놓아주지 않으려는 룻을 통하여 더 큰 위로를 받게 하셨습니다. 비록 룻은 시어머니의 말에 불순종하였지만, 그 불순종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었고 그 신앙이 나오미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으려는 의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비록 그녀가 오르바를 불신앙의 길로 가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보호하시고 언제나 지키고 계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룻을 통하여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당신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한 룻의 믿음을 통해 받은 위로입니다. 이 룻의 신앙과 믿음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사랑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룻은 비록 모압 여인이었음에도 그녀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당시는 사사시대로 이스라엘 백성조차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는 불신앙적인 모습을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한 이방 여인이며 심지어 사회적 약자인 한 과부에게서 신앙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이 여인의 신앙을 통하여 삶의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한 나오미의 가정에게 위로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룻을 통하여 말입니다.
아니 이미 룻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는 모압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또한 룻이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확증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6절입니다.
7절을 보시면 “두 며느리도 그와 함게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라고 합니다. 두 며느리에게 “돌아간다.”라는 말을 쓰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엄밀하게 말해서 이 며느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생전에 단 한번도 베들레헴에 간 적이 없으며 심지어 이방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이들에게도 “돌아간다.”라는 표현을 함께 썼을까요? 그것은 바로 나오미의 가정에 속한 자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이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은 유다 지파 사람이기에 이 두 며느리도 이미 유다 지파 가정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즉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 룻이 보여준 믿음은 불확실한 미래임에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라는 이 위대한 신앙고백은 룻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다윗의 증조부가 되어 유다 지파의 족보에 올라가게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다윗을 넘어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기 위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룻은 불확실한 미래임에도 하나님을 믿은 신앙을 보여주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가 십자가라는 엄청난 고통이라는 것을 아심에도 하나님을 믿은 신앙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불확실한 미래를 넘어서서 고통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믿는 완전한 신앙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가 완전한 룻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우리에게 펼쳐질 놀라운 능력은 바로 이 룻처럼 우리에게 불확실한 미래가 찾아오고 안전히 보장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합니다. 항상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보장하는 안전이라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룻이 믿은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룻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오미처럼 삶의 아주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꽉 붙잡고 절대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으신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왕이십니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로부터 위로를 받았듯이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있는 동료로부터 위로를 주십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왕이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결코 잃지 않고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 새순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잠깐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우리의 삶은 참으로 치열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은 나오미처럼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먹이십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본 이 룻의 신앙고백처럼 삶의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결정하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룻의 믿음과 같이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