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 십자가에 닿을때

예레미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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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때로는 삶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손해를 볼때도 있습니다.
그럴때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런 기준이나 가치관조차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사는데 잘만 살잖아.’
‘그런데 나는 왜 믿어가지고,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하지?’
‘왜 하나님 눈치보면서 살아야해? 그렇다고 잘사는 것도 아니잖아.’
이처럼 세상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 안 믿어도 잘 사는 것 같습니다.
평생 교회 한번 안가고, 성경 한번 안 읽어도 잘 사는 것 같습니다.
TV에서 연예인들보면 무당 찾아가고, 점 봐도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중에는 세상과 타협한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교회 다니며 스스로는 크리스천이라고 믿지만 세상에 나가면 세상 기준과 가치관에 맞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게 하나 없습니다.
이런 삶이 익숙해지면 별로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고등학교때 학교 마치면 곧바로 교복을 벗어던지고 사복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벗어나 세상에 한 발을 딪기만 하면 곧바로 다른 삶의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본론]
우리가 보는 예레미야서는 유다의 멸망과 회복을 다루고 끝나지 않습니다.
46장부터는 이방 민족들의 심판에 대해 다룹니다.
먼저 46장에서는 이집트에 대한 심판예언을 했습니다.
47장부터 49장까지는 유다 근처 민족들에 대한 심판예언입니다.
그중 오늘 말씀인 49장 1-6절은 암몬에 대한 심판예언입니다.
먼저 암몬이 어떤 민족인지 알아봐야 겠습니다.
성경에서 암몬은 시작부터 좀 문제가 있는 나라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롯이 술에 취하자 그의 둘째딸이 아버지 롯과 동침하여 생겨난 민족이 암몬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원래 그의 후손인 암몬도 하나님을 믿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몰렉신을 섬겼습니다.
몰렉신 사진을 보시죠.
짐승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몰렉신의 특징은 사람들이 제물로 불 속에 자식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의 뿌리만 보면 이스라엘과 암몬은 형제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암몬은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혔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땅으로 가려할때 그들을 방해한게 암몬입니다.
그 후로도 계속 암몬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수차례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그런 암몬은 호시탐탐 이스라엘 땅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때의 일입니다.
앗수르는 요단강 동편 땅을 점령하여 갓지파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그 때를 이용해 암몬은 그 땅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1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 땅에 몰렉신을 숭배하는 암몬이 있느냐고 탄식하십니다.
갓지파의 땅을 차지할 자식도, 상속자도 없는 거냐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니가 아들이 없냐, 딸이 없냐 이런 의미입니다’
‘어떻게 내가 준 땅을 다른 자들이 차지하고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유다가 멸망할 때의 일입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때 암몬은 군사를 파견해서 바벨론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옆에서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고 조롱했습니다.
암몬은 자신들이 얻을 이익만 생각하는 민족입니다.
유다가 멸망한후에도 유다왕족인 이스마엘을 뒤에서 후원한 민족도 암몬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사주하여 바벨론이 세운 유다총독 그달리야를 암살했습니다.
유다를 멸망시킬때는 바벨론을 도왔지만 이처럼 또한편으로는 바벨론을 배신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암몬은 기회주의자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예레미야에는 왜 다른 나라들에 대한 심판예언이 등장할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글을 읽지도 않을텐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분명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이 아니라 유다 사람들 입니다.
그렇다면 유다 사람들이 이 글을 읽어야할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때문에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에게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셨을까요?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상숭배를 더 많이 하는 나라가 유다입니까? 아니면 이방 나라들입니까?
유다는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들도 섬긴 게 문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자기 신들만 섬깁니다.
그런데 왜 심판은 유다만 받습니까?
유다는 억울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 자신이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유다만 심판하신게 아닙니다.
죄를 짓는 이방 민족도 심판하십니다.
이를 보며 유다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난 너희들만 족치는 하나님이 아니야.'
다른 민족들도 예외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억울할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많이 부족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안 믿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힘든 일은 오히려 나한테만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집니다.
'하나님 왜 저만 갖고 그러십니까?'
'제가 저들보다야 낫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따지고 싶을때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졸업반때의 일입니다.
저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취업이 잘 안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학점이 너무 낮은것도 아닙니다.
토익점수가 너무 낮은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최종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제 속마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물론 믿는 애들이 잘되는거야 어떻게든 인정할수 있어’
‘누군가 그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해주신 분이 계시겠지.'
‘그런데 안 믿는 애들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더 좋게 해주셔야 하는거 아닌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했는데~’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지?’
어떻습니까?
나만 했던 고민인가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세계에서만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고,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유다만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이집트도 심판하시고, 죄를 지은 블레셋도 심판하시고,  죄를 지은 모압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암몬도 심판하십니다.
암몬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열한 민족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남의 뒷통수를 칠수 있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이웃의 불행과 고통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유다의 멸망을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2절입니다.
‘랍바’는 암몬의 수도입니다.
현재 이름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입니다.
암몬과 이름이 비슷하죠.
하나님은 암몬을 심판하십니다.
암몬의 수도 랍바를 폐허로 만들고 성읍들을 불태워 멸망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잃었던 갓지파의 땅을 되찾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자신의 땅을 잃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3절입니다.
암몬의 주요 성읍중 헤스본과 아이성이 있습니다.
그곳이 멸망하여 통곡소리가 넘쳐나게 됩니다.
이제 그들의 조롱은 통곡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들이 섬기던 신 몰렉은 이제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고대 세계에서 승리한 나라는 패망한 나라의 신상들을 전리품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행동은 패망한 나라의 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연약한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암몬은 그들이 유다에게 했던 무시와 조롱을 되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것은 참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혼낼수 있습니다.
자식을 위한 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내 자식을 때리고 욕하는 것은 못 참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가 끝나면 결국 이스라엘이 그 땅을 다시 회복할수 있게 하십니다.
그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실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당하지 않는 고난이나 고통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망하게 하시려는게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회복이고 구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으면 친자식이 아니라 사생아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이런 암몬의 죄악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4절입니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비옥한 골짜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큰 자랑거리입니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는 농사짓는 물을 댈수 있습니다.
그래서 풍요를 보장해줍니다.
또한 골짜기가 있으면 군사적으로 보호받을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 나라가 절대 멸망하지 않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들은 재물도 풍부했습니다.
요단 동편땅이 너무나 풀이 잘 자라서 농사와 목축에 매우 유리한 땅입니다.
물을 대주는 골짜기까지 있으니 경제적으로 부유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부유함도 자랑거리입니다.
그들의 뻐기는 말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누가 나를 치러 올수가 있느냐?’
한마디로 ‘내가 제일 잘나가’입니다.
이건 자신감일까요? 아니면 교만일까요?
자신감은 내 존재 자체로 인해 갖는 긍정적인 자기확신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줄 아는 마음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소유와는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반면 교만은 다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외적인 것에 의존해 자기 가치를 측정합니다.
자기 능력이나 소유를 실재보다 부풀려서 자랑합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남을 조롱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자신감은 죄가 아니지만 교만은 죄입니다.
암몬의 죄는 교만입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아무도 자신들을 칠수 없다고 자신하지만 아닙니다.
5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방에서 무서운 적들을 불러오셔서 그들을 치게 하십니다.
그들이 근거없는 자신감, 즉 근자감을 가진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실제로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암몬은 무너졌습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소유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것의 힘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돈과 권력, 과학기술같은 것들을 의지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제할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끝 역시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단지 지금 당장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교만해질 뿐입니다.
이것이 암몬과 같은 교만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더욱 위험한 사람들은 우리 믿는 자들입니다.
종교적 가면으로 위장하여 스스로를 속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자신들을 지켜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종교적 의식이나 형식이 자신들을 지켜줄거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믿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위장된 형태의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럴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겉모습으로 자신의 신앙이 우월하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나는 새벽예배도 나오고 주일성수도 해”
“나는 기도도 교회봉사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
이런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도 쉽게 판단합니다.
분명 이 사람은 영적 교만의 덫에 걸려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수 있습니다.
종교적 가면에 도취되어 스스로 자기 욕망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당화할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도구화할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우상숭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분명 이 사람도 영적 교만의 덫에 걸려든 것입니다.
성경은 교묘하게 숨겨둔 영적 교만에 대해 많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복음서 세편에 모두 등장하는 젊은 부자관원의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19장, 마가복음 10장, 누가복음 18장 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숨겨진 교만을 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얻는 법을 물었습니다.
영적인 관심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자신이 십계명도 잘 지키는 사람이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듯 하지만 재산을 의지하는 그의 교만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뒤에 곧바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부자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의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내 안전과 평안을 내가 내 힘으로 이룰수 있다면 왜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이처럼 내가 가진 능력, 내가 가진 소유들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수 있습니다.
나를 교만하게 만들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덫이 될수 있습니다.
나는 그 덫에 걸리지 않을거라고 자신할수 없습니다.
자신할때 그 덫은 더욱 나를 조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나의 뒤에서 언제나 내가 넘어지도록 쉬지 않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교만의 결과가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안에 숨겨진 영적 교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을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더 크고 더 좋은 것이라면 더욱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내 영혼의 덫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을 주신 목적이 나를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기 위한 것임을 깨달으면 됩니다.
내게 주신 것들이 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흘려보내야만 합니다.
복이 되기 위해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흘려보내지 않는 물이 썩듯, 흘려보내지 않는 복도 썩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법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그 분은 이 땅에 연약한 인간의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리인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분의 삶과 십자가에는 교만이라고는 단 한방울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 분의 십자가를 손에 대면 우리의 교만은 죽고 맙니다.
십자가는 교만의 유일한 치료제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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