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을 선포하라 2024 0811 레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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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레위기 25:8–12 (NKRV)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안식일 이야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것은, 단순한 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음. 분주한 내 삶을 멈추는 것, 하나님을 충만히 누려야 하는 시간.
이 개념을 조금 더 복음적으로 확장해보자. 세상사에 매여있는 내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안식으로 해방되는 것이다. 안식은 내 힘과 노력으로 살았던 분주한 내 일상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회복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가는 시간은 안식하는 시간이다. 세상일을 멈추고 주 안에서 회복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오늘 주일의 예배가 그런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냥 왔다가 돌아가는 시간이 아닌, 예수 만나고 돌아가는 시간.

안식년 이야기

오늘 우리 본문은 안식년을 일곱번 계수하고 오십년 째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안식년도 안식일의 규정 목적과 마찬가지로 쉼인데, 멈춤을 의미한다. 창세기 3장을 생각해보라. 최초의 인간이 뱀의 속임에 넘어가서 죄를 짓게 된다. 이 땅에 죄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가 들어왔다. 그 관계가 깨졌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짐만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아름다운 이 세상에 또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죄가 왜 창조질서를 무너뜨렸는가? 왜냐하면 땅은 사람(남자)의 수고를 통해 그 소산을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땅이 저주받았다는 표현이다.
창세기 3:17 (NKRV)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 이후로 사람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모든 수고를 겪어야만 한다. 그 수고는, 땅의 저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올바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쉼이 필요하다. 안식년 역시 안식일처럼, 창조질서가 무너진 세상이 6년 동안 저주로, 수고로 소산을 내는 일을 하다가 쉼을 통해, 멈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희년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안식년이 일곱번 지나고 오십년 째에 희년을 선포한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오늘 본문에 희년이, 기쁠 희 해 년, 기쁜 한 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자유가 선포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레위기 25:10 (NKRV)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았다. 각 가문별로 받은 유산이 있었다. 그런데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본인들의 땅이 다른이에게 넘어가고, 땅 뿐 아니라 자신 혹은 자녀들까지 다른 사람들의 종으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에게 영원히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희년을 맞이하면, 다시 그들의 소유지인 땅을 돌려받고, 종이 되었던 몸이 풀려나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창조질서의 회복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중요한 키워드는 자유-해방이다.

풀려남이 기쁨이 되는 이유는, 갇혀있기 때문이다.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선포함이 복음이 되는 이유는, 그 억눌림의 고통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가 자유의 몸이 아니라 죄의 종노릇하던 신분이었던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 인식에서부터 복음이 복음되고, 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교회에 왜 나오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의 선포 때문일 것이다. 그 복음의 선포 때문일 것이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 이르러서 자신이 희년의 선포자이심을 이야기한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누가복음 4:16–21 (NKRV)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가난한 자나 부자나 탐욕이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탐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자만 탐욕이 많은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도 탐욕을 꿈꾼다. 모든 인간은 불순종으로 탐욕의 죄에 빠져있다.
그런 의미에서 희년은 가난한 자나 부자에게나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지는 기쁜 소식. 복음이다. 왜냐하면, 탐욕으로 벌어지는 죄, 재물에 대한 우상숭배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선포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는 죄의 종노릇했던 우리의 신분이 이제 종의 모습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그러한 희년의 선포, 자유의 선포가 있기를 원한다.
오늘 드려지는 예배가 자유의 선포, 해방의 선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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