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240805 월 [에스겔 27] 순간과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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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240805 월 [에스겔 27] 순간과 영원
새벽설교 240805 월 [에스겔 27] 순간과 영원
본문: 에스겔 27장
본문: 에스겔 27장
에스겔 26-28장에서는 두로에 대한 말씀이 계속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앞의 25장에서는 암몬을 두고 예언이 전해졌고, 28장에서는 두로와 늘상 짝을 이루는 시돈에 대해서도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29장부터는 32장까지는 길게 애굽에 관한 말씀이 이어지는데, 이렇게 보면 이사야나 예레미야서에서 보았던 것처럼 ‘열방에 대한 심판 예언’이 에스겔에서도 전해지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스라엘, 혹은 유다의 예언자들이 열방을 두고 심판을 예언하는 것은 독특한 기능과 의미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언자들의 열방 예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본문을 읽으면서 질문해볼 필요가 있지요. 특히 에스겔서에서 지금까지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지에 끌려온 형편에서 예루살렘에 남은 백성들, 그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회개를 강하게 권고하는 예언을 전해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과연 바벨론 포로가 전하는 열방의 예언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물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생명얻을 회개를 요구하시는 중에 왜 갑자기 열방 심판이 전해지는지, 거룩의 회복을 요청하는 중에 왜 두로에 대한 애가, 슬픈 노래가 전해지는 것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본문은 소제목에 ‘두로에 대한 애가’라고 쓰는 것처럼 애곡하는 노래입니다. 2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 오늘 노래는 두로의 몰락, 심판을 노래하면서도, 그것을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면 독특한 특징이 보이지요.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 그리고 그 도시와 짝지어진 많은 물품들이 긴 목록으로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 12절을 살펴보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거래하였음이여, 은과 철과 주석과 납을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여기서 ‘너’는 ‘두로’를 가리키지요. 말하자면 오늘 본문의 긴 도시 목록은 두로가 바닷길을 통해 교역하던 나라와 그 물품의 목록들을 나열한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나라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물품들, 그야말로 두로가 지닌 ‘거상’의 면모가 이 목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지요.
마치 바다의 패자가 되어서 이곳 저곳을 누비면서 은과 금을 끌어 모으는 두로의 위엄과 화려함은, 그 무역을 주도하던 두로의 선단들, 배의 모습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4-8절은 길게 그 선단들의 모습을 묘사하지요. 심지어 8절에서는 이들 선단의 선장들이 ‘지혜자’라고 불릴 정도로 선망받는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에 묘사된 선단의 모습과 위엄, 그리고 수많은 도시와 물품의 목록이 나타내는 것은 무역 중심지로서의 국제도시 두로, 그 화려함과 부요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이런 칭송이 거짓된 것이 아니었겠지요. 3절과 4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아름답다는 것은 누가 봐도 흠모할만한 그런 도시였다는 뜻일 겁니다. 두로 스스로 자랑할 정도로 말이지요. 수많은 나라와 도시가 두로가 끌어모은 부를 찬미하고 부러워했을겁니다. 두로는 자랑하고,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도시. 그런데 오늘 애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흠모할만한 도시는 공포의 대상으로 전복됩니다. 하나님이 두로의 심판과 몰락을 이야기하시며 말이지요. 25절과 26절입니다.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매우 크도다. 네 사공이 너를 인도하여 큰 물에 이르게 함이여, 동풍이 바다 한가운데서 너를 무찔렀도다.’ 마지막절인 36절은 이 몰락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이렇게 묘사합니다. ‘많은 민족의 상인들이 다 너를 비웃음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28장에 가면 두로의 몰락이 ‘교만’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 몰락의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가’를 지어 부르고 있지요. 때문에 섣부르게 그들이 교만해서 망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메시지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대체 이 ‘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 ‘애가’를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이 애가를 전하는 에스겔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까요? 포로 중에 거하는 에스겔, 전에 있던 예언자들이 그 포로됨을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원하기만 한 회개와 갱신, 사람들은 거룩해지는 대신 적응하기를 선택하며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머무는 에스겔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에스겔 자신과 그 백성들에게 ‘두로’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빈 터가 되어버린 예루살렘에서 땅을 차지하고 권력을 남용하려는 남은 사람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서도 알량한 권력을 가지고서 자기 유익을 위해서 착취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꿈이라는 것이 그들도 ‘두로처럼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도, 이제라도 잘 먹고 잘 살아보자,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애가를 통해 두로의 수많은 교역 대상들과 물품들을 길게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그 아름다움을 선망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 사람들의 꿈과 선망을 이 애가는 산산이 깨트립니다. ‘동풍이 바다 한가운데서 너를 무찔렀도다.’ 그 크고 화려하고 자랑이었던 두로의 선단들이, 두로의 모든 부의 원천이었던, 바다를 지배하면서 세상의 모든 금은을 모으던 선단들이, 결코 침몰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되지 않았던, 값비싼 레바논의 백향목과 스닐의 잣나무로, 바산의 상수리 나무로, 깃딤 섬 황양목에 상아로 만들어진 그 배가 동풍에 무너져 세상의 공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로의 자랑이자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아름다움, 또한 그들이 경외하던 두로 선단의 몰락은 어쩌면 역으로 하나님 백성들이 욕망하던 하나님 아닌 것들에 대한 허망함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전도서는 이를 두고 ‘헛되다’라고 이야기하지요. ‘헤벨’이라는 이 말은 ‘새벽의 이슬처럼 사라질 것’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망하고 아름답하다는 그 선단들, 그 선단들이 세계에서 끌어다모은 금과 은도 헛됩니다. 그것을 끌어모으고자 하나님을 뒤로하고 자신을 탐욕에 물들여 죄를 짓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하나님은 영원에 계시지만, 사람들이 선망하는 그것을 새벽 이슬처럼 금방 사라질 헛될 것들에 불과합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딜레마와 싸워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 되고 잘 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그 욕망을 짐짓 거룩한 기도로 주님께 올려드리곤 하지요.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언제나 뜻밖입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신다는 주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시고, 주님을 위해 ‘집과 전토를 버린 자는 주님의 나라에서 배나 더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는 은과 금을 포기할 뿐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참으로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 이 땅에서 잘 되고 누구나 선망할만한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 헤벨, 헛된 것임을 아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고, 오직 주님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영생임을 깨닫게 되는 은헤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기쁨, 은과 금이 줄 수 없는 충만함으로 채워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믿음으로 주님의 성도답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마침기도
기도제목/마침기도
말씀을 생각하며
잠시 잠깐 사라질 것에 우리의 마음을 두지 않고, 영원한 것에 삶을 내어드리는 믿음되게 하소서.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충만한 삶, 충만한 영혼이 되게 하소서.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만족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서, 그것이 참된 영생을 누리는 삶임을 깨닫게 하소서.
교회를 위하여
흩어져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 바라보며 승리하는 믿음 주소서.
청년부 수련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믿음의 뿌리”라는 주제로 수련회 진행하는 중에 참으로 믿음에 뿌리내리는 은혜를 주옵소서.
휴가 중의 임목사 가정을 지키시고 영육이 회복되는 은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