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만 바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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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라(1-3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1-3계명)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영화 마블에서 아이언맨의 최고 명대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언코 “I am Iron Man”일 것이다. 아이언맨1에서 악당이었던 아이언 몽거와 전투가 끝난 후에 토니 스타크가 공식 석상에서 올라가 전투 상황에 대해 아이언맨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에 올라갔다. 쉴드라는 단체가 아이언맨의 정체를 감추기로 대본을 짰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아이언맨이 누군지 날카로운 질문에 횡설수설하던 토니 스타크는 마지막 순간 대본은 집어치우고 “제가 바로 아이언맨입니다”라고 폭탄발언을 하며 영화는 끝이난다. 그리고 이 대사가 마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언맨 1, 2, 3의 시리즈를 걸쳐서 어벤져스 1, 2, 3까지 시리즈를 달리다가 마지막 어벤져스 4인 엔드게임에서 타노스의 건틀렛을 가까스로 뺏은 후에 핑거스냅 하기 전 대사가 무엇이었는가? “I am Iron Man”이라고 외치며 그의 이야기는 끝난다. 왜 사람들은 그 대사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았을까? 마블에서 아이언맨은 그동안 무엇을 구했기 때문인가? 수많은 시리즈에서 시민들을 구하고 지구를 지켜냈다. 그가 죽기 전에 말했던 자신이 무엇을 한 사람이고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이 ‘Iron Man’이라는 이름에 그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기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오늘 읽은 신명기 말씀을 보게 되면 마치 아이언맨 1과 같이 멋있는 등장으로 말씀이 시작되게 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이전에는 유대 공동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족장의 조그만한 가족 공동체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에는 여호와로 알리지 않고 단지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내셨다. 그러나 이제 족장들에게 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세를 불러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낼 것임을 강조하면서 “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실제로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경험하면서 이제 이스라엘 최초로 국가가 되어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만든 분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십계명이 시작한다. 그러니 여호와라는 이름이 다른 말로 무엇인가? 이집트에서 종살이 했던 백성들이었던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다른 말로 말한다면 무엇인가? ‘구원자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단순히 인간들을 구원해 내는 구원자가 아니다. 놀랍게도 여호와는 이집트에서 ‘종노릇하는 노예들’을 구원해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고대 근동의 신들은 자기에게 거대한 신전을 지어주고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왕과 귀족들의 신’이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노예들’을 선택하고 ‘노예들의 신’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는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신이 아니다. 사회에서 가장 천한 자들을 택해 세상의 권세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신을 과연 인간들이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그 하나님은 약한 자들 들어쓰셔서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실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건국신화와 달리 이스라엘은 대단한 조상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조상들이 애굽에서 종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유대인의 가장 큰 절기인 유월절마다 각 가정에서 자녀에게 ‘우리는 과거에 노예였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오랜 히브리 사람의 전통이었다. 이렇게 히브리 사람들이 ‘우리는 노예였다’는 것을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에 노예였으나 하나님께서 해방시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언제든지 다시 노예가 될 위협 앞에서 비굴하게 살지 말고 용감하게 하나님만을 믿고 이겨낼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과거에 이집트에서 노예였던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시고 온갖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셨으니, 오직 여호와만을 평생 섬기고 영원토록 경배하며 살아야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노예였다’는 사실을 히브리 사람들은 반복해서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그렇게 6절에서 ‘종이 되었던 집’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경험할 새로운 상황을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았던 시절과 비교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풍요를 즐기며, 노예 생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풍요를 경험하게 되면 자칫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길 가능성이 많은 것이 문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너희가 이집트에서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 안에 들어가서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구약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 그들이 과거에 이집트에서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끝내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하면서 1,000년 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돌아왔으나 신약 시대에 또다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애굽에서 종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자, 결국은 로마에 멸망을 당하고 전 세계로 흩어져 2,000년 가까이 떠돌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집트에서 출애굽한 사건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향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구원 사건이다. 노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자유의 신분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 위대한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여호와께서는 직접 이스라엘 역사에 들어오셔서 노동과 괴로움으로 지친 이스라엘에게 쉼과 자유를 주셨다. 출애굽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특별하게 맺어진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백성이 된 것이다. 우리를 백성으로 부르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말씀 1계명을 함께 읽어보자.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한 마디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에 보이는 제우스 신상이나 황금송아지와 같은 겉으로는 숭배하며 섬기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상 숭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팀 켈러 목사님은 우상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우상이란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러분의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 한 마디로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라고 생각하게 하는 무엇이든 어떤 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이다. 구체적으로는 로맨틱한 사랑과 가정, 돈, 권력, 성취, 속한 분야의 인맥, 다른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존하기를 기대하는 것, 건강, 몸매, 매력적인 외모 등이 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희망과 의미와 만족을 이런데서 얻으려고 한다.
우상숭배를 금지하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와 연애를 하다가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좋아지만 그 관계가 유지되는가? 그런 관계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맺는 여러 관계 중에서 하나의 관계로 만족하시지 않는다. 마치 어떤 여자가 자신이 남자친구가 여러 명인데, 그 중에 너가 제일 좋다고 말하면 어떻겠는가?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분 좋다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관심의 초점이기를 원하시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오직 자신에게만 충성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첫 계명이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서 말씀을 보게 되면 십계명의 2계명이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처럼 우상을 만들거나 만들어서 절하고 섬기는 모습은 없어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돌’이 딱 그 형상이다. TV나 유튜브에서 보이는 아이돌 댄스가수나 연예인들을 따라하려고 하는 모습이 이러한 모습이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부자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동경하고, 닮아가고 싶어하는 것이 형상화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아이돌 노래를 유심이 잘 들어보면 요즘 나오는 가사들은 “네가 원하는대로 살아”라는 생각을 가사에 심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제일 빠지기 쉬운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성경에 전혀 없는 내가 상상하는 주님은 ‘실제로 없는 신’이다. 그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소망한다. 그것 또한 2계명을 어기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교회를 보면 하나님을 형상화하거나 심지어 예수님을 형상화한 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교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형상조차도 만들지 않는다. 여러 고대 근동에 종교 중에서 유일하게 기독교만 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신의 형상을 만드는 이유는 인간이 신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신의 형상을 만들어 가까운 곳에 세워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형상을 금지하는 이유는 함부로 조종할 수 없는 분이다. 모세 앞에 나타난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말씀하셨기에 여호와의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했다. 또 모세가 시내산에서 보았던 하나님은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엄청나게 하늘을 덮는 듯한 불길이 있었지만 동시에 구름과 시커먼 까만 어두움이 덮인 것을 본 것이다. 불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환히 보아도 또 까만 어두움 속에 계시는 분이기에 인간이 감히 통제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의 형상이 아닌 오직 말씀을 통해서 임재하시고 성경 말씀으로 함께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열정을 품고 계신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향해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온 마음을 다해 온 힘을 다해 온 뜻을 다해 열정을 가지고 사랑하기는커녕 다른 데 눈을 돌리고 있으니 하나님의 질투심이 불이 붙은 것이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은 삼사 대에 걸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아버지의 죄 때문에 삼사 대에 걸쳐 불행을 당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집안에 흐르는 저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집안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신명기에서 24장 16절에 아버지의 죄로 말미암아 자식이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은 개인전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대가족으로 구성되었기에 가족 중 한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벌을 받아 쓰러지게 되면, 할아버지-본인-자녀-손자까지 3-4대의 가족 전체가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가족 전체에게 벌을 주겠다는 것이 아님을 오해 없이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의 죄는 삼사 대까지만 묻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는 점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장 많이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인가? 그렇다.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라도 벌은 될 수 있는대로 적게 주시는 반면에 자신을 사랑한 자에게는 한량없이 복을 많이 베푸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섬겨서는 안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땅에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이 필요하셨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우리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우리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우리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죄를 짓고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를 다시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킨 것이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오늘의 마지막 3계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헛되게, 거짓되게, 무익하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는 “거짓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수련회에서 마피아 게임을 했는데, 목사님이 그 자리에 계셔서 마피아냐고 물어봤을 때 “하나님을 걸고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진짜 마피아는 목사님이었다. 장난 같은 이야기지만, 게임으로도 이런 장난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모습으로 장난하는 사람보고 절대 이런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또 하나님의 이름을 욕으로 사용하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Oh My God”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대표예시이다. 우리는 감히 이 말을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미국 크리스천들은 “Oh my Godness”로 바꾸어 표현하기도 한다. 또 욕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 “God Damm”이나 “Jesus” 예수님의 이름을 욕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미국에서는 흔하다. 우리는 이렇게 사용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드림인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힘있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입술로 하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고백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정말 큰 문제이다. 의외로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서도 너무 쉽게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길 원한다면, 우리가 과거에 죄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죄인인 우리를 예수님이 영원한 죽음에서 자유롭게 하셨고, 이제 그 자유를 지키고 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세주이신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주님의 뜻이 담긴 10계명을 선물로 우리에게 하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