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안으로, 아둘람 너머로(삼상22:1-5)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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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일시 : 2024년 8월 11일 주일 성인예배
1. 등단(28분에)
2. 입례송(15초)
영광스러운 주일 아침입니다. 이 시간 우리 다함께 자리에 일어나셔서 언제나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그 주님의 이름을 높여 함께 찬양합시다. 날 부르신.
새 힘을 허락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성령의 새바람.
3. 합심기도 견인
예배자로 합당치 못한 우리의 삶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 앞에 예배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주여, 이 시간 우리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시옵소서.
간절한 마음 담아,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4. 봉헌안내
다함께 자리에 앉으셔서,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절과 4절, 다함께 찬양하시며 봉헌하시겠습니다.
5. 봉헌기도
우리를 언제나 보호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정성으로 예물을 준비해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근심 걱정 어려움에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모든 것이 사용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님 품 가운데 머물도록 오늘도 품어주실 것을 소망하며 이 모든 것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광고
할렐루야. 하나님의 열심이 이곳에 모인 이들 가운데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1) 오늘 담임목사님께서는 주일학교를 방문하며 둘러볼 예정에 있습니다. 다음세대가 말씀 위에 커갈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2) 청소년부 수련회가 오늘로 끝이 납니다. 남은 순서와 돌아오는 시간까지 은혜와 안전 가운데 마무리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3) 청년부 수련회가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2박3일간 홍천 한옥예향에서 진행됩니다. 이를 위해서도 마음모아 기도 부탁드립니다.
4) 불편액션 시즌2가 시작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주보 큐알코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 끼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5) 더운 날씨에도 주차안내에 너무나 잘 협조해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주차부에서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예배 후 나가시며 자유롭게 가져가시면 됩니다.
7. 성경봉독
이 시간 우리 함께 말씀 찾아보길 원합니다. 사무엘상 22장 1절에서 5절입니다. 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저와 함께 교독하시겠습니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제목 : 아둘람 안으로, 아둘람 너머로
본문 : 사무엘상 22장 1-5절
1. 문제가 생겼다 : 신뢰가 무너졌다!
1)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오늘날!
어느 한 여성이 이런 글을 작성했습니다. “늘 나만 바라봐준다. 또 내가 어떤 음식을 해줘도 불평없이 잘 먹는다. 뿐만 아니라 생일과 기념일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기념일처럼 보낸다. 무엇보다 귀찮은 시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남편보다 개가 좋다.”
‘남편보다 개가 나은 15가지 이유’ 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 중 일부입니다. 이 글에 달린 반응들도 재밌었습니다. “맞아요. 우리집 개는 남편처럼 양말을 아무대나 벗어 던지지 않아요.” “저희집 개는 남편처럼 술 먹고 늦게 들어와 술주정을 부리지 않아요.” 등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 하나가 있는데, “요즘엔 사람 빼곤 다 나아보여요.” 라는 댓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며 어느덧 이 시대의 흐름이 사람보다 동물이 더 위로를 주고, 사람보다 AI가 더 믿을만한 존재가 되어, 사람과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버린 오늘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사람들 간에 ‘신뢰’라는 영역이 무너져 내렸을까? 생각해보면 신뢰라는 영역에 금이가기 시작한건 결국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시작이구나 결론짓게 합니다.
2) 사람을 믿을 수 없어 교회를 떠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교회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3년 전, CGN에서는 ‘안녕히 계세요 하나님’ 이라는 다큐를 제작했는데, 핵심은 교회 안에서 받은 상처가 있어 교회를 떠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그 받은 상처가 전부 사람으로부터 라는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요. “여전히 예수님은 믿고있고 다시 교회를 가고 싶지만, 사람이 두려워 갈 수가 없어요.”
제 주변에도 이런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에 상처 받아 교회를 떠난 친구들. 걷잡을 수 없는 소문에 의하여 상처 받아 떠난 성도들. 결국 이들도 사람으로부터 상처 받아 떠난겁니다. 누군가는 저와 같은 목회자로부터, 누군가는 리더들로부터, 누군가는 날 전도했었던 그 당사자로부터.
간혹 이런 경우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보며 하는거지. 왜 사람보고 다녀서 상처 받아 교회를 떠나~” 물론 우리 신앙의 주체가 하나님께 있기에 틀린 말은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신앙생활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할래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이미 사람에 대한 상처로 신뢰를 잃어가고, 교회 역시 사람으로부터 상처가 점점 쌓여져 가지만, 그런 세상 속에 이어진교회는 한 줄기의 빛이고 소망이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교회, 그런 크리스천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결단해야 할까요?
2. 아둘람 굴 : 상처입은 자들이 모여 회복을 맛보다!
1) 무너진 신뢰, 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 : 1. 아둘람 안에 거하라!
우리가 그런 교회, 그런 성도 되기 위해 먼저는 ‘아둘람 굴 안에 거해야’ 합니다. 본문 속 다윗은 아둘람 굴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둘람 굴에 오게 된 과정을 보면, 사실 애당초 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다윗이 왜 아둘람 굴에 오게 되었는가? 어린 소년 다윗이 물맷돌 하나로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쓰러트린 이야기는 꽤나 짜릿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 자신보다 큰 상대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던 용기. 그리고 지금껏 이스라엘을 조롱한 골리앗을 쓰러트리는 아주 완벽한 결말. 이러니 백성들이 결코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외칩니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모두가 사랑할 국민 영웅 아닙니까?
국민 영웅의 이야기가 이렇게 감동으로 마무리 되면 참 좋을텐데, 애석하게도 사울이 이를 시셈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기로 마음 먹죠. 한 순간에 국민 영웅에서 반역자 신세로 전략해 버립니다.
그렇게 다윗이 도망간 곳이 어딥니까? 하필 블레셋이에요. 가드 땅으로 도망갑니다. 블레셋이 어디냐면 방금 다윗이 쓰러트린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그러니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반겨줄리가 없어요. 모국으로부터는 협박이 오고, 블레셋으로부터는 진노로 뒤쫓고. 그렇게 비참하고 처참해진 다윗이 그들을 피해 달아난 곳이 바로 오늘 본문 속 아둘람 굴입니다.
곱씹어 봐도 다윗은 아둘람에 올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 억하심정을 누르고 도망간 아둘람. 차라리 자기를 반겨주고 따뜻하게 대해 줄 땅으로 도망갔다면 좋았으려만, 그가 도망간 아둘람 역시 외롭고 어둡고 삭막하기 그지 없는 곳이었어요.
그렇게 다윗이 아둘람 굴에 머물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다윗을 찾아오더니 무려 400명의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아둘람 굴에 머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사람들, 상태가 심상치 않아요. 본문 2절이 그들의 상태를 알게 하는데, 우리 함께 2절 읽어보겠습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빚진 모든 자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
다윗과 함께 한 400여명의 사람들은 결국 사회에서 내려쳐지고 버려진 자들입니다. 다윗은 커녕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자들만 이곳에 모인거예요.
다윗 입장에서 보면 정말 최악 아닙니까? 힘이 있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모여든게 아니라, ‘나도 힘든데, 쟤들도 챙겨야 하는’ 그런 상황이 지금 다윗에게 펼쳐진거죠.
그런데 최악의 상황인 줄로만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위로와 회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떤 회복이죠? 이들이 사울을 향한 아주 완벽한 복수 계획이라도 세웠을까요? 아니면 블레셋이 자기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아주 그럴싸한 계획이라도 도모했을까요?
아니요. 이들에게 일어난 회복은 이런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회복, 다시 일어날 힘이 이들에게 주어진 겁니다. 사람으로부터 상처 받아 이곳에 왔지만,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아 마음에 감동이 실리는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회복이 이들에게 일어난 겁니다.
그럼 도대체 왜요? 어떻게 이들이 회복을 맛보게 됩니까? 이들은 도대체 반역자 다윗으로부터 무엇을 보았기에 위로와 회복이 기적처럼 일어난겁니까?
시편 57편과 142편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을 때 쓴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다윗이 아둘람 굴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는데, 우리 함께 시편 142편 5절에서 7절을 쉬운 성경 버전으로 함께 읽어봤으면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습니다. 내가 말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주는 살아있는 자의 땅에 있는 나의 몫입니다.” / 나의 울부짖음을 들으십시오. 내가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나를 뒤쫓는 자들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이는 그들이 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 나를 나의 감옥에서 풀어 주소서.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 의로운 자들이 내 주위에 모일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나를 선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아둘람 굴은 몸 하나 숨기는 동굴 정도가 아닌, 하나님의 보호함 아래 거하는 피난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멈추지 않았는데, 시편을 잘 살펴보면 주로 이런 상황에서 쓴 시들이 많아요.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등 고난 중에, 정말 다윗이 어려움 중에 쓴 시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삶의 어떤 고난에도, 어떤 어려움에도 하나님을 놓칠 수 없었고, 찾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찬송가 중에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뒤에 나오는 가사가 이렇습니다. “내 주는 자비 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두려움 중에 기도하는 것, 심란한 중에도 주님을 찬송하는 것. 내 삶이 막막할지라도 주님만 의지하는 것. 이는 자비로우신 주님이 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내 필요를 먼저 아시고 채워주실 분이시기에 나는 오늘도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만 따라갑니다. 고백할 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그런 심정으로 두려움 중에도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400명이 봐요. 그리고 회복이 일어납니다. 한 사람의 예배였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회복시키셨어요. 다윗은 이들을 거둬줄 여력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었기에 안받아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이들은 시편 57편 1절에 기록된 것처럼,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며 함께 거하게 됩니다.
저는 이어진교회가 이런 공동체로 성장하길 소망합니다. 상처가 있는 자도, 아픔이 있는 자도, 슬픔이 있는 자도, 역경 속에 거닐고 있는 자도 서로를 바라볼 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공동체. 위로와 회복이 있는 공동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을 나는 느끼고 있는가? 내 모습을 통해 내 옆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열심을 발견하고 있는가? 간절히 바라옵기로는, 예배의 감격과 감동이 있는 이 아둘람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채움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 무너진 신뢰, 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 : 2. 아둘람 너머로 나아가라!
신뢰가 무너진 세상, 상처가 많은 교회를 변화시키는 크리스천이 되려면, 두번째, ‘아둘람 너머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이 위로를 얻었다 해서 상황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예요. 그가 400명의 우두머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형편은 여전히 비참하고 초라하죠.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아둘람 굴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문을 열고 나오는데, 본문 5절 함께 보겠습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어쩌면 다윗은 아둘람 굴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이 가장 안전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의 종이 그에게 ‘요새에 있지 말고 나와라’ 말씀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는 그 즉시 아둘람 너머로 나아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어요. 이 소식을 들을 때 누가 가장 반기겠습니까? 제자들 아닙니까? 내가 따르던 예수가 죽었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죽이려 할 때 이들의 두려움은 엄청났겠죠.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그들 곁에 돌아오셨고, 이들은 극한으로 치솟은 그 두려움이 모두 내려앉았을 거예요. 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아둘람 굴 안에 머무는 것 같았을지 모릅니다. 다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간절함이 있을때, 그런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다윗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둘람 굴에서 위로와 회복을 맛보지만 이들은 나가야 했어요. 또 우리도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이예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 가운데 부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크리스천들이 두려움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좇는 이들도 말라리아에 걸리고, 세상 떠난 어린 자녀를 땅에 묻어야 하며, 온갖 중독 증세와 싸워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크리스천은 여느 사람들과 구별짓는 특징은 ‘폭풍우가 완전히 사라진 순적한 삶’이 아닙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광풍을 겪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를 발견한다는데 있습니다.”
다윗은 두려움에 아둘람을 찾았지만, 그가 아둘람을 나설 땐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사명의 길을 걸어가요.
하나님은 제가 아둘람 굴에 머무는 것이 썩 맘에 들지 않으셨나봅니다. 그래서 늘 고민하게 하셨고, 늘 시련을 겪게 하셨나 싶어요. 저는 제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별 볼일 없는지 잘압니다. 제 스스로도 생각할 때 ‘나는 어떻게 목회를 하는거지?’ 생각이 들때가 참 많습니다. 설교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찬양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훈련에 탁월한 것도 아니고. 무엇하나 강점이라 생각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2년간 찬양사역을 했지만, 사실 저는 지금도 악보를 볼 줄 모릅니다. 15분에 찬양을 시작해서 30분에 딱 마쳐야 하는데,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고, 악보도 못보는 까막눈이니 매주 시간 맞추는 것이 지난 2년간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해왔습니다. “주님, 제발 성도들의 눈과 귀를 가리워주사 제 부족함을 가리워 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이 제 기도를 안들어주시는거같은거예요. 여전히 평가받는 것 같고 알 수 없는 시선 속에 내심 걱정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기도하던 중 이런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너가 행하는 모든 것은 곧 내가 행함이다.”
정말 웃긴게 뭔지 아십니까? 그 마음이 제게 울림처럼 다가오니까 여전히 악보를 못보는데 재밌는 겁니다. 물론 제 즐거움 때문에 밴드팀은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는 찬양하는 그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비록 나는 걱정을 멈출 수 없지만,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둘람은 우리가 힘들 때, 또 새 힘이 필요할 때 찾아가 머물러야 하는 공동체가 맞지만, 그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그곳을 일어나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걱정과 두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회복이 이루어졌다면 ‘변치않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3. 정리하며
말씀을 마무리하며, 서두에 인용했던 그 글을 이렇게 재인용하여 소망을 담아보고 싶습니다. “늘 하나님만 바라본다. 또 내가 어떤 나눔을 해도 불평없이 기다려준다. 뿐만 아니라 주일과 절기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365일 모든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보낸다. 무엇보다 귀찮게 하는 나를 사랑으로 품어준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회가, 내 옆에 이 동역자가 좋다.” 이러한 고백이 평생의 고백되어 아둘람 안에서, 아둘람 너머로서의 은혜로 펼쳐나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우리 이 시간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내 삶이 비록 버겁고 두렵더라도 주님의 선하심 나 믿으며 주님께 속한 삶을 살아내길 소망합니다. 그런 마음 담아 함께 찬양합시다.
8. 결단찬양 : 나는 주님께 속한 자
9. 합심기도
세상은 고난과 두려움 속에 더 자기 자신을 지키라 말합니다. 그래서 더 나를 돌이켜보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상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살아가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아둘람 굴의 다윗처럼 위로와 회복이 있는 공동체가 우리 공동체 되게 하시고, 아둘람 너머로 나아가는 다윗처럼 모든 여정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 손 붙들고 나아가는 우리 되게 하소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 지키게 하소서. 그런 마음 담아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누리는 교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 되게 해달라고 주님의 이름 세 번 부르짖고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10. 마무리기도
폭풍 속에서도 우리를 안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주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변치 않도록 날마다 우리에게 성령의 임재를 경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바라옵기로는 이어진교회가 또 우리가 아둘람 굴의 위로와 회복을 누리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말씀 위에 세워질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 붙들고 위로와 회복의 기쁨을 나누며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남기는 우리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 또 살아갑니다. 이 한 주 말씀 붙들고 새 힘과 새 능력 공급받아 허락하신 사명 붙들고 살아가게 하실 줄 믿사오며 이 모든 것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1.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두려움 속에서도 위로케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사명붙들고 일어나 나가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버거운 삶 가운데 낙심하는 자들과 삶의 위기 속 고군분투하는 자들과
홀로 서 있는 것 같아 외롭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과 또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
그리고 온 땅 곳곳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주를 믿는 백성들, 그 가정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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