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14-21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기도]
기도하시겠습니다.
[찬송가1]
찬송가 23장 만입이 내게 있으면
[통성기도]
우리 이시간 예배를 위해서
선포될 말씀을 위해서
우리 마음 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코로나 전염병과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 속히 종식시켜달라고 기도하시고
몸이 불편한 우리 산성 식구들과 장기 결석하는 식구들 위해서 우리 나라를 위해서
주여 한번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고린도전서 4:14–21 NKRV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전도 여행 동안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긴 기간 동안 고린도에서 복음을 가르쳤습니다(행18:11-18).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기간 중 약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세운 교회였으며 당시 로마제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서 거대한 상업도시였기에 인구도 많았고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내포한 교회여씁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난 시점에 여러 문제들이 생겼음을 고린도전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여러 문제들 중 하나로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분열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각각의 인물들을 지지 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사역했던 아볼로는 탁월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아볼로를 따랐고, 아볼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린도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습니다. 나아가서 고린도 교인들은 아볼로와 바울을 비교했고, 이는 바울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을 판단했음을 4장 전반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헬라 문화의 영향으로, 몇몇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수사학적 기교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비판적이었습니다. 복음 전도자이자 사도인 바울은 철학자와 수사학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판단하는 것에, 심각성을 느끼고 강한 어조로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과 복음 전도자인 자신의 관계를 상기시키고, 그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또한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4:14–15 NKRV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은 4장 전반에서 강한 어조로 고린도 교인들을 비판하며 그들의 잘못을 책망했습니다. 그의 책망은 교인들을 향한 인신공격으로 오해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어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명예를 깎아내려 치욕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의 어조가 강하고 신랄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을 비방하기 위해 편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같이 권하려는 것임을 밝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군중으로 여기지 않았고, 복음으로 맺어진 아비와 자녀와 같은 관계임을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과의 갈등을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므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신랄하게 책망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 안에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한 믿음 안에서 어떤 책망과 비판이 오가더라도, 한 몸된 가족의 관계 안에 있음을 상기 시킵니다.           즉,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았다고 하며, 그 관계가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복음으로 하나된 영적인 가족의 관계임을 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버지라고 한 것은 바울의 복음 전파 없이는 그들에게 믿음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통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십니다(벧전1:23). 복음을 듣지 않고는 믿을 수 없으며 전하는 이 없이는 복음을 들을 수 없기에(롬10:14-17) 바울과 고린도 교인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 같이 필연적인 관계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아버지와 일만 스승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복음에 대해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아비는 적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든 복음에 대해 가르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아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유기체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한 교회가 되는 것은 각 사람이 각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고전12:14-22).
고린도전서 4:16–17 NKRV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말은, 자신을 더 인정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이 옳기 때문에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영광을 쫓지 말고,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더 뛰어나고 탁월한 언변과 지식을 좇아가며 세상의 영광을 좇아갔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나타난 십자가의 고난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을 멸시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인을 회복시키기 위해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로 하여금 사도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생각나게 했습니다. 무엇인가 신앙생활에서 어긋난 것 같을 때, 다시 돌이키고 회복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의 언변과 외모 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고 구식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이 말들은 철학자나 수사학자들이 하는 논쟁이나 변론과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능력은 말의 실력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4:19 NKRV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가르치는 말과, 수사학자나 철학자들의 말, 바울을 비판하는 말 등 서로 말로 실력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이들에게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사람들의 말이 가져온 결과로 성도들이 교만해져 사도를 비난하고 공동체가 분열되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말에는 어떤 복음의 능력도 없었습니다. 설사 그들이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행동을 변하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능력은, 기적이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능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20 NKRV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 교회에 있는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사도 바울의 복음이 무색할 정도의 지적인 가르침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적인 가르침들이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구원하는 것은 복음 그 자체이지, 언변이나 지식에 있지 않습니다. 언변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동요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거듭남과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복음의 능력이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움직이는데 있다면, 우리는 복음을 사람을 감동시키는 언변이나 지식으로 혼돈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가 능력에 있다고 하는 말은, 복음만이 사람을 거듭나게 한다는 확신입니다. 그것이 설사 당장 지금 눈에 보이는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지라도, 복음만이 구원을 이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21 NKRV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사도 바울이 매를 가지고 나가랴는 말은, 자녀를 매로써 경책하여서라도 잘못된 행동에서 돌이키게 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말입니다. 그 만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현재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대하며 권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누구나 자녀에게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유하게 대하고 싶지만 엄하게 꾸짖고 경책해야 할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후 마침 기도]
[찬송가2]
찬송가 369장 통 487
[기도제목] 후
“오늘은 특별히 오성훈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이시간 주여 한번 더 부르짖고 각자 주신 은혜 붙잡고 기도하시다 돌아갑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