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1-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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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1:1-25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누가복음 서론 사도 바울의 2,3차 전도 여행에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동행했던 누가에 의해 기록된 누가복음은 누가복음의 후편에 해당하는 사도행전이 기록된 주후 63년 보다 몇 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가복음이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였다면 누가복음은 인자(人子)로 오신 예수님과 모든 사람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이런 특성은 당시 복음서를 읽게 될 사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마가는 로마인들을 우선 대상자로 삼았다면 누가는 로마제국 내 헬라적 배경을 가진 이방 기독교인들을 우선 대상으로 삼아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세계의 사람들은 정치와 군사적으로는 로마의 영향을 받았지만 문화와 사상적으로는 헬라의 영향을 받았는데 누가는 헬라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누가를 가리켜 수리아 안디옥 출신 헬라사람 이방인 기독교인으로 보았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인자, 즉 완전한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 중에 탁월할 존재이어서가 아니라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임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로 오신 이유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루고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확실성 측면에서 보면, 누가복음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사건의 시대적 배경을 밝힌 곳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호적령이 내려졌을 때 당시 지배했던 황제이름이라든지 세례자 요한이 등장했을 때 팔레스틴 지역의 통치자들의 이름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의 특징 중에 하나가 역사성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 비해 연대기적 순서로 기술하려고 했습니다.
구원의 보편성의 측면에서 보면,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여성, 어린 아이, 가난한 사람, 세리 등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과 사회적 빈곤층과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에 대한 행적을 많이 기록한 편인데 이는 하나님의 구원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출신에 상관없이 보편적인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집필의 분량 측면에서 보면,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예수님의 유대와 베레아 지역 사역의 기록과 예수님의 고난주간과 부활과 승천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부활이후에 대한 사건은 공관복음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서두에 기록자의 집필 배경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1-4절)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1절의 ‘우리’는 1차적으로는 주님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2차적으로는 주님의 제자들로부터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들은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2절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목격자’라 함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두 눈으로 주님의 사역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듣고 배우고 행하였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증언이 되어 주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구전(口傳)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주님의 말씀을 글로 기록하여 전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특히 네 사람을 택하셔서 사복음서를 기록하게 하셨고 누가를 통해 누가복음이 완성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누가는 주님의 12제자는 아니었지만 사도들과 목격자들로부터 전해들은 주님의 말씀을 면밀히 살펴 복음의 근원부터 차례대로 서술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누가는 1차적으로는 데오빌로를 위해 복음서를 집필하였으나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은혜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데오빌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또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각하라는 호칭이 붙은 것으로 보아 사도행전에서 로마 총독 벨릭스나 베스도에게 각하라고 호칭한 것처럼 누가가 동등한 입장에서 대할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은혜에는 빈부귀천에 무관한 보편성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지위가 높고 부한 사람이라고 해서 배제될 수 없기에, 데오빌로는 복음의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셈입니다. 누가의 집필 배경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오늘날까지,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라는 주님의 증인을 세워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된 사람들이 전해준 주님의 말씀을 우리 삶으로 전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절을 보면,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어서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하였듯이 우리가 듣고 본 복음은 완전하지만 우리의 불완전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가복음의 수신자는 복음의 확실함이 필요했던 데오빌로처럼 복음의 본질을 잘 모르거나 주님의 가르침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누가를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지키고 깨닫고 사모하고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즐거움을 누리기를 가르쳐 주십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누가복음의 1차 수신자와 집필동기,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와 출생,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집필동기와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먼저 기록한 마태복음과 달리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먼저 기록하였습니다. 누가가 집필 동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가능한 역사의 순서대로 기술하려고 했기에 예수님의 탄생 전에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자 요한의 출생 배경과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5-7절)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세례자 요한의 부모는 레위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의 24반열 조직 중에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부모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경건의 모양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경건의 능력을 말씀의 행함으로 보여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처럼 하나님 앞에 의롭고 주님의 말씀을 흠 없이 행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경건하게 살아가는 이들 부부에게 고충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없었는데 나이까지 많았습니다. 부부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갖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형편에 처해 있던 사가랴가 24반열의 직무 순서에 따라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8-23절)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이 당시 한 반열에 제사장이 약 천 명 정도가 있었다고 하며, 이들 중에 일정한 인원을 제비뽑아 한 주간 성전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사가랴가 제비 뽑혀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기도하였습니다. 제비뽑기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 유대인들의 삶의 방식이었으며, 그들은 그 결과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가랴가 제비 뽑혀 분향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가랴를 성소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하나님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났기에 사가랴는 놀라며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사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사가랴의 기도 내용은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암울한 시대를 고려해 본다면 메시아가 오셔서 구원의 시대를 열어달라는 기도를 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천사가 사가랴에게 고지한 내용은 네 아내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천사가 요한의 출생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과 요한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요한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세 가지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둘째는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고, 셋째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받을 은혜이지만 태어날 요한에게도 영광이자 은혜입니다. 이외에도 요한이 받을 은혜 중 주목할 만한 것이 더 있습니다.
15절에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과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큰 자’란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자라는 뜻입니다. 큰 자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 7장 28절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서 큰 자는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 아니며, 오직 주님의 길을 예비하며 주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데 주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 앞에 큰 자입니까? 아니면 사람들 앞에 큰 자입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주님 앞에서 큰 자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고 인정받는 큰 자가 되고 싶습니까? 주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사람은 비록 이 땅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훗날 영원히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면 비록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지라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마치 99세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네 아내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믿지 않았던 것처럼 사가랴도 천사의 말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사가랴는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가랴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천사가 밝히고 있듯이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지만 이외에도 계시의 확실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요한이 태어날 때에는 아버지 사가랴가 말을 하게 될 것이고 사가랴는 그동안 말을 못하게 된 이유를 사람들에게 설명할 것인데 그렇다면 요한이 어떤 아이로 이 땅에 태어났는지가 명확해지고 앞으로 그 누구도 요한의 앞길을 방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모이든 자녀이든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믿음의 가정의 자녀들은 주님을 위해 쓰임을 받을 때에 더욱 더 복되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자녀의 진로를 부모가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주신 길이 있는데 부모가 그 길을 막아서 되겠습니까?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는 자가 복된 부모이고 그렇게 될 때 그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22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성소 밖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이 사가랴가 늦게 나오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막상 제사장 사가랴가 나왔는데 말을 하지 못하자 성전에서 환상을 보고 몸이 굳어 말을 하지 못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백성들은 성소에서 분향 후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듣지 못했습니다. 이 때 참석한 백성들이 나중에 제사장 사가랴가 아들을 낳고 말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이유를 듣게 된다면 결코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사건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성소에서 천사의 나타남과 사가랴의 아들 요한이 앞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계시를 사람들은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사역이 힘을 받도록 하여 구원의 역사를 세밀하게 이끌어 가셨습니다. 사가랴는 성소에서 직무를 보다가 몸에 큰 이상이 생겼지만 직무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흠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면이지 않겠습니까? 사가랴는 자신이 맡은 직무의 날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행하심이라(24-25절) 24 이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사가랴의 아내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부부가 말로써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몸짓 손짓 표정으로 또는 글로 대화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자 무흠했던 부부는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고 5개월을 숨어 지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기에 태아의 안정과 임신부의 건강을 위함이었겠습니까? 임신 5개월까지는 임신 사실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음에도 부부는 주님의 길을 예비할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조용히 숨어 기도의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기도에는 감사와 주님을 위한 아이의 사명완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25절의 그녀의 고백과 당시 문화를 고려해 볼 때에 엘리사벳의 부끄러움은 대를 이을 아들을 출산하지 못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이 말을 하지 못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남편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전달받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이자 기쁨이었겠습니까? 사람들의 비방과 멸시를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의 때를 벗어나는 회복을 주십니다.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살게 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놀라운 것을 발견하고 응답을 받으셔서 삶의 회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루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오심과 구원 사역을 준비하도록 세례자 요한을, 의인이자 하나님 말씀에 무흠한 부부를 통해 출생하게 하신 오묘하신 섭리를 생각해 보며 저희 각자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인도하심이 있음을 숙고하게 하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누가가 복음서를 집필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2. 누가가 목격자들과 말씀의 일꾼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복음서를 저술하고 복음을 전하려고 했듯이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3. 세례자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떻게 하면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4. 사가랴가 성소에서 분향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며, 사가랴가 성소에서 말을 못하게 되었지만 직무의 날을 다 마치고 집에 간 것이 주님을 위해 사역하거나 봉사하는 자로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5. 힘이신 하나님께서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작성: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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