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서 자녀로 2024 0814 레25: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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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레위기 25:35–55 (NKRV)
35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38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9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41 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42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44 네 종은 남녀를 막론하고 네 사방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사올 것이며
45 또 너희 중에 거류하는 동거인들의 자녀 중에서도 너희가 사올 수 있고 또 그들이 너희와 함께 있어서 너희 땅에서 가정을 이룬 자들 중에서도 그리 할 수 있은즉 그들이 너희의 소유가 될지니라 46 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가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47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48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49 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그가 부유하게 되면 스스로 속량하되 50 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
51 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로 팔린 값에서 속량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 52 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대로 속량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
53 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꾼과 같이 여기고 네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54 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
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자녀가 갖는 권세는 자유함입니다.
자녀가 갖는 권세는 자유함입니다.
레위기 25 장을 구분해보자면 1-34절은 땅을 돌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35-55절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음. 특별히 형제가 가난해진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음.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현재 광야에 멈춰서서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를 이야기 함. 왜냐하면,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가난해도 광야생활에서는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매일의 만나, 메추라기를 통해 광야생활에서 주리지 않아도 되었고,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들의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신명기 29:5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다시 말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진짜 생명을 위협하는 가난이 찾아오게 될 것이고, 그 상황에서 가난해진 이웃, 형제들을 상대적으로 부요한 자들이 꼭 돌봐줘야 한다고 하나님께서는 이야기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섬세하심.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지시는 가나안에서 농사를 짓게 될 백성들에게 매우 실용적인 것이었습니다. 생계형 농경 경제에서는 사람들이 가난해지기 쉬웠습니다. 게다가 가난해지는 것은 단순히 실직이나 월급 감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농작물에 비가 너무 적게 내리거나 소나 염소 몇 마리가 죽어서도 가난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비극이 몇 년 연속으로 발생하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이는 곧 식량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가나안에서는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35절에서 "네 형제가 궁핍해지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절망적이고 생명을 위협하는 가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lting Jesus in Leviticus God Tells His People to Give to the Poor, so We Give
God’s directions to His people about taking care of the poor were very practical, since they were about to become farmers in Canaan. In such a subsistence, agrarian economy it was easy for people to become poor. Furthermore, becoming poor was not just tied to a job loss or a salary reduction. It came about by crops having too little rain or the death of an ox or a few goats. When tragedies like that happened to people a few years in a row, they would lose the ability to support themselves. That meant having no food. In Canaan virtually all the Israelites were poor farmers by our standards. So when God said in verse 35, “If your brother becomes destitute,” He was referring to desperate, life-threatening poverty.
본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35-38절은 이자 탕감에 관한 부분. 39-55절은 노예 해방에 관한 내용. 현재 레위기는 안식일, 그리고 희년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계속 율법이 전개되고 있음. 즉, 해방, 자유 등과 같은 키워드가 전제로 깔리고 있다는 것. 안식이 쉼이 아니라 멈춤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돈을 빌려주고 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자나, 형제가 가난해져서 몸이 팔려 노예가 되는 것에 대해 속량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 멈춤이라는 사상에 전제를 두고 있다. 이것을 쉽게 표현하자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이자를 물리는 것은 재물에 대한 우리의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몸이 팔려 속량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종이 되는 것 역시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벗어나 행하는 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레위기에서 말하는 정신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이 땅도 쉬게 하고, 형제에게 이자를 부과하여 사람이 사람을 소유물로 괴롭게 하지 말며, 나아가 사람을 내 소유로 이야기하게 되는 종으로 부리는 일 역시 그만 멈추라는 것이다.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주께 속해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본문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35-38절 이자 탕감
35-38절 이자 탕감
[레위기의 신학과 해석] 책에서 이부분을 이렇게 해석.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자를 위해 돈 빌려주는 것이 금지되었음. 이유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라는 논리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고대 근동 지역에서 법전들을 살펴보면, 이처럼 이자를 받지 말라는 금지 조항이 없음. 당시 이자율은 20%. 곡식 이자율은 33.3%였다는 연구가 있다. 돈을 빌려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다시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기에, 돈을 빌려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자비심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자나 담보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사람의 인권, 생명이라는 것. 압제당하는 곳에서 이끌어냈는데, 너희들 서로끼리 또 압제하고 그러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엿보임.
그런데 재밌는 것은, 신명기 23:20 “20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외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고리대금업을 할 수 있었다는 뜻. 그래서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로 살아갈 때, 외국 땅에서 수전노 취급을 받았던 이유, 돈만 밝히는 족속이라는 오해를 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하나의 생계수단이었겠지만, 동포들에게 이자를 받지 못해서, 외국인들에게 그렇게 악착같이 이자를 모으다보니, 갖은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근거없는 증오로까지 이어져, 안티-세미티즘. 반 유대주의->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게 됨.
유대인 스스로에게 그 악한 일의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 단지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큰 뜻을 바라보지 못했던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임.
하나님의 사랑은 온 인류를 향해있다. 선민의식이 있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택받았고, 그래서 자신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그들이 받았던 율법이 그와 같은 내용들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그 선민이 대표가 되어 온 인류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에 있었다. 제사장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장자 나라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 땅에 전해야하는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율법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다.
39-55절 노예 해방
39-55절 노예 해방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종과 관련한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잘못 읽으면, 구약성경이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있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이 자기 민족 형제들을 종으로 엄하게 다루지 말라고 하고, 이방인, 비이스라엘인의 노예제도를 허용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본문과 성경 전체 맥락을 함께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해이다.
우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들. 나아가 예수 복음으로 동일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인 외에 이방인들이 지옥의 불쏘시개이니, 존재 자체가 부정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율법에 사로잡힌 바리새파적인 사상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노예제도가 발생하는 시점과 그 상황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구제적인 제한 사항들을 두셨음.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엄하게 다루지 말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음. 사람의 가치를 벗어나 비인권적인 행위를 종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임. 사람이 사람의 종으로 부려지다보면, 비인격적인 처사가 쉽게 일어난다. 대부분 인간의 악함이 거기서 드러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종으로 사람을 잡아서, 귀족들의 유흥거리로 전락시킴. 콜로세움. 검투사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동족끼리의 노예 제도는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빚 탕감의 목적의 일시적인 제도라고 봐야 한다. 속량할 수 있는 가축, 땅 등의 재산이 모두 없어, 자신의 몸으로 그것을 속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거기에는 종을 해방하는 희년의 법이 포함되어 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자비로운 법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법은, 즉 율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했다. 율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이 현대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이것을 악용하는 권력자들을 볼 수 있다. 사람 간의 계급화, 서열을 나누고 권력을 통해 사람들을 정복하려는 충동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거기에 하나님은 멈춤!이라는 희년제도, 안식을 이야기 하신 것이다. 그것이 절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종에서 자녀로
종에서 자녀로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마지막에 명확하게 선포하신다.
레위기 25:55 “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종이다. 내가 바로 너희의 하나님이다.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으셨던 하나님. 너희는 내 것이다!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것이 신약에서 자녀 사상으로 넘어감.
요한복음 1:12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8:16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요한1서 3:1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죄의 종 되었던 이전 신분에서 벗어나! 희년을 맞아! 해방되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요한복음 8:32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무엇이라 반응했는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오늘 레위기 본문을 통해 보면 서로 간의 종될 수 없음을 이야기함.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 반응이 나온 것. 그러나 예수님은 이어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우리가 다 죄의 종이라고 선언하셨음.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종된 우리를 자유케 해주실 분이 필요함. 예수님께서 본인을 희년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신 그 선언이 우리에게 유효하다.
누가복음 4:18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레위기의 모든 말씀, 그 하나님의 법은 복음으로 가득 차 있다. 법으로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신 율법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레위기를 보면서 복음을 발견해야 한다. 이 희년의 선포가, 해방의 선포가, 자유의 선포가, 영적으로 눌려 있던 내 삶에 자유를 해방을 선포할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