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자들의 완벽한 모임(마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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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8월 14일 수요일
제목 : 완벽하지 않은 자들의 완벽한 모임
본문 : 마태복음 16:18
1. 불완전한 교회
1) 불완전한 교회 : 1.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교회
뉴스를 보며 ‘참 따뜻하다.’ 라는 생각이 드는 기사를, 요근래 본 기억이 없는 듯합니다. 사실 말이 요근래지 꽤나 오래 전부터 사회가 삭막해져 버린 탓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소식들이 줄지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많은 이들의 마음에 넉넉함이 없습니다. 아니, 반대로 넉넉함이 없어 안타까운 소식만 들려오는 것일까요? 뭐 이러나 저러나 오늘날은 남들의 연약함을 품어줄 여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 교회는 어떻습니까? 애석하게도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교회는 아마도 이런 모습인듯 합니다. 조금 더 착해야 하고, 조금 더 봉사해야 하고, 조금 더 성실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곳을 원했나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내고 싶은 마음은 정말 굴뚝같지만, 그런 마음이 결코 없는게 아니지만 우리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에 부족함이 결국 드러나게 된 결과일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왜 기독교인들에게만 그리 높은 기준을 두는가?’ 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심심한 위로를 스스로 해보기도 합니다.
2) 불완전한 교회 : 2. 직분에 노예가 되어 본질을 잃어버린 크리스천
아쉬움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내에도 아쉬울라면 아쉬울 것들이 내심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사랑’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교회를 다니며 ‘악의’를 가지고 발걸음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경우가 절대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간혹 그런 경우가 있음도 아쉬움일 수 있겠죠.
여하튼, 보통 우리가 교회를 올 땐, 위로나 사랑이 필요해 그것을 누리려 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교회에 발걸음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채움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가지고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교회를 버리지 않는데, 내가 어찌 교회를 먼저 버릴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의 자리를 지킵니다.
참으로 귀한 마음입니다. 사실 이런 마음이 지금까지 한국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지금 이곳에 모여 신앙생활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런 귀한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갑니다. 오히려 당연히 있어야 할 마음이지만 오늘날엔 너무 많이 사라져 당연함이 특별해져 버렸습니다. 주를 향한 사랑보다, 직분을 향한 자랑이 더 커져버렸고, 집사가 된 것이 자랑이 되었고, 권사, 장로가 된 것은 자랑할 수 있는 명예가 되어버렸습니다.
3) 부족하다는 말 뒤에 숨어 합리화 하는 교회?!
결과적으로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아쉬움을 숨길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 아쉬움에 우리는 “그래.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쉬울 수 있지. 우린 다 부족하거든. 교회도 결국 그런 자들이 모이는데, 어떻게 완벽한 모습만 늘 보일 수 있겠어?” 라는 말로 위로하는거죠.
물론 그런 말로나마 위로가 된다면, 그런 위로가 도움이 된다면 ‘그런 생각 쯤이야’ 라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부족하다’는 표현 뒤에 숨어 우리의 잘못을 합리화 하려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는데, “이 땅의 교회는 끝내 불완전하다.” 라는 겁니다.
2. 교회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1) 교회의 본질 :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정말 불완전한 곳으로만 남는 곳이 교회입니까? 아니면 완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곳일까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는 ‘교회’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공간? 칼빈대학교 내 위치한 은천당 건물? 여러가지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를 교회의 본질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가진 역할이나 기능 정도이지, 본질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보면 ‘교회’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미 전부터 교회의 개념은 존재했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며 처음으로 이 개념이 ‘교회’라는 단어로 정리가 된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존재했던 교회의 개념, 그 본질이 무엇일까요? 에베소서 3장 10절을 우리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곳입니다. 선함을 실천하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땅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 가운데 예수님을 보내셨으며, 우리는 그 분을 메시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임을 고백하고 시인하는데 있다는 겁니다.
2) 막을 수 없는 하나님 나라 복음 :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에게 이르다!
교회는 그런 믿음 위에 첫 발을 뗐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었고 또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서 승천 후 다시 오시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는 약속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두번째 걸음을 떼게 됩니다.
그러나 이 걸음은 얼마가지 않아 멈추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소식이 자신들과 같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멈춰진 걸음을 다시 떼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복음을 쥐고 살던 이들에게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뿔뿔이 흩으시면서 말입니다. 그 결과 흩어진 곳에서도 복음이 선포되는 그 다음 걸음을 걷게 됩니다.
그렇게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됨으로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 결과 이방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어지며 그 유명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이 말이 등장하는데, 사도행전 11장 26절입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의 것’ 바로 그리스도인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이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었다’는 사실입니다. 불리었다는 것은 결국 이들 스스로가 규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고백하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 이방인들 눈에 특이해 보였고, 이들을 구분짓기 위해 ‘그리스도인’이라 불러 주기 시작한 것이죠.
3) 예수를 믿어서 교회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기에 교회가 일어난 것!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데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저 예수님을 믿었기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메시아로 오시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삼으셨다는 의식이 생겼을 때 비로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예수를 전했기 때문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기 시작하며 세워졌고 부흥케 된 것입니다.
3.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기!
1) 건강한 교회 세우기 : 1.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가 되게 하라!
교회는 단순 공간의 개념을 벗어나 우리의 빛이요 소망이신 구원자 예수를 믿음에 본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본질 위에 교회를 세워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앞서 보았던 마태복음 16장 18절을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가 믿어 고백한대로 나아가 교회를 세우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자칫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뭘 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우신다는 사실이 참 위로가 됩니다. 물론 가만히 앉아 구경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로 인해 영광받으사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교회는 예수님이 다스려가는 공동체가 되어가야 합니다. 완벽하지 않았던 우리가 모였지만 완벽한 예수님께서 다스려가기에 이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는 말로 합리화 할 것이 아니라 세우고 고쳐가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드러내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나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어 고백하며, 주 앞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네 주님. 주가 세우신 교회에 순종하며 거하는 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원합니다.
2) 건강한 교회 세우기 :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라!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는 두 번째는,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라는 겁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점검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만큼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40절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냈으면 하는가를 잘 축약해놓은 메세지 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하라는 메세지는 끊임없이 우리 안에 선포되었기에 모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이 들어 ‘사랑 강박관념’이 생기기까지 한다고 하니 그 동안 교회가 얼마나 사랑을 선포했는지 짐작가게 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사랑을 듣고도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정답이 있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헤메는 우릴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사랑이 무엇입니까? 외로운 자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 연약한 자를 위로하시고 보호하는 것, 절망과 고통에 빠진 자들에게 소망이 되어주시는 것, 어리석은 자들을 깨닫게 하시는 것.
단순히 품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바른 길로 걸을 수 있도록 깨닫게 하는 것까지가 사랑이라는 겁니다.
끝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기 위해 행할 모습은 감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결국 이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겁니다.
3) 건강한 교회 세우기 : 예수님을 전하는 교회가 되라!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을 전하는 교회’가 되라는 겁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내 삶을 통해 다른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어쩌면 가장 단순한 메세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강력한 핵심이지요. 건강한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 보내고 있다면 예수님 전하는 것을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좋은 대학에 붙어도 플랜카드가 붙고, 심지어 학교에서 시험 100점을 맞아도 플랜카드를 달아 자랑하는데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사실 저는 목회자라는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목회자라는 사실을 밝힐 때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엄격해지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회자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전할 것이 아니라 감추는 제 모습을 보며 ‘얼마나 이 세상을 겁쟁이’로 살았는가 되돌아 보게 하셨습니다.
몇년 전 접하고 잊지 못한 영상 하나가 있습니다. 분당우리교회 청소년 친구들이 이른 새벽을 깨워 특새에 나아와 이렇게 외치는 겁니다. “나는야 예수쟁이.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 해도 상관없어. 나는 신경안써. 이것이 바로 내 정체성.”
저는 이 고백이 이 청소년들에게 평생의 고백이 되길 기도하기도 했지만, 저는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길 소망합니다. 예수를 감추는 겁쟁이가 아니라 세상의 손가락질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수쟁이가 되기를 말입니다.
4. 정리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더욱 붙들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어진교회는 그런 교회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자들이 모여 완벽한 예수님과 함께 아름다운 모임을 만들어내는 교회.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며,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바로 잡아주는 선한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
또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는, 신경쓰지 않는 예수를 자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 삶이 세상의 풍랑 속에 갇힌 삶일지라도 예수를 우리의 구주 삼아 구속의 은혜를 누리며 그것을 입술로 간증하며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구주 되시는 주님 말씀 위에 세워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림없는 믿음으로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는 그런 우리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그 어느 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고난도 역경도 조롱도 비판도 세상 무엇도 우리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한 어떤 것도 넘어트릴 수 없음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우리 이 시간 진심을 담아 함께 찬양합시다.
2. 그 사랑 + 아름다우신
-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합리화 하는 교회가 아니라 그저 예수만 높이는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그저 예수만 자랑하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내가 되길 소망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마음에 기쁨이 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내가 되게 하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고 넘치게 하소서.
- 복음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잠시 복음이 필요한 이들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을 위해 기도했으면 합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게 하소서. 우리가 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게 하는 순간이 되게 하소서. 복음이 필요한 자들의 마음을 주께서 헤아려 울림이 있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