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11) 4:4~11

아모스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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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9(목) 20240816(금)
4:4~11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4~5 이스라엘의 죄(2) 자신을 기쁘게 하는 예배
4 "너희는 베델로 몰려가서 죄를 지어라. 길갈로 들어가서 더욱더 죄를 지어라.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고, 사흘마다 십일조를 바쳐 보아라.
5 또 누룩 넣은 빵을 감사제물로 불살라 바치고, 큰소리로 알리면서 자원예물을 드려 보아라. 이스라엘 자손아, 바로 이런 것들이 너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벧엘과 길갈은 이스라엘 최 남단에 위치한 대표적인 성소이고 여기에 많은 백성들이 와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것은 삶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종교적 행위들에 대한 풍자를 통해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오늘 본문은 베델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한다고 말합니다. 제사를 드리면 드릴 수록 죄가 쌓여간다는 표현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시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고(새벽 예배, 매일 묵상),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수은제(酬恩祭, thank offering, 감사제: 은혜를 갚는 제사)로 불살라 드리고, 낙헌제(樂獻祭, freewill offering: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를 드리는 것은 종교활동에 매우 열심이었음을 말한다. 정성을 다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온갖 제사와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
희생 제물은 일년에 한 번이나 세 번 이하로 드리도록 요구되는 것인데, 이것을 매일 드리고는 열심을 가져보아도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십일조는 일 년에 한 번 드리고 삼 년에 한 번씩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을 사흘마다 바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수은제와 낙헌제 :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것을 감사하여 드리는 수은제( 감사제)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낙헌제를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와 번영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인정한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신들의 잘못과 죄악을 덮은 수단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5절. 이런 행위들은 자신들만 기쁘게 하는 일이지 정작 하나님은 기쁘게 할 수 없다.
형식적인 예배 행위는 실수로 범하는 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반항하며 거역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이 단어는 1~2장에서 이방 나라들의 죄악을 열거할 때 사용했던 단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벧엘과 길갈은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하게 사용하던 성소이다. 당시에 가장 거룩하다고 여겨지는 곳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담겨있지 않은 예배는 무의미하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은제, 낙헌제와 같은 화목제는 함께 살아가는 노비와 분깃이 엇는 가난한 레위인과 함께 나누는 기쁨과 축제가 되어야 한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로 제사장과 레위인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희생제사, 십일조, 수은제, 낙헌제를 풍성하게, 정성을 다하여 드리며 감사하고 있지만,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억압하고 압제하면서 얻은 제물로 누리는 풍요를 감사할 따름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삶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결합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1~3절과 4~5절을 연결시켜보면, 물질적인 풍요 속에 향락과 즐거움을 추구하며 사치에 빠져 살다가 주님의 날이 되었다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가서 온갖 명목으로 제물을 바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안 가난한 자들, 궁핍한 자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히려 그런 것을 공고히 하면서 배불리 먹고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이 정해진 때, 정해진 헌금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아님을 경고한다. 우리는 삶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 사람들을 대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예배이다.
바울의 권면이 바로 정확하게 이것이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1~2)
6~11절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 이스라엘의 죄(3) 회개할 줄 모르는 죄
6 "내가, 너희가 사는 모든 성읍에서 끼닛거리를 남기지 않고,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먹거리가 떨어지게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7 "그래서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았다. 또 내가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지 않았다. 어떤 들녘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들녘에는 비를 내리지 않아서 가뭄이 들었다.
8 두세 성읍의 주민들이 물을 마시려고, 비틀거리며 다른 성읍으로 몰려갔지만, 거기에서도 물을 실컷 마시지는 못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9 "내가 잎마름병과 깜부기병을 내려서 너희를 치고, 너희의 정원과 포도원을 황폐하게 하였다. 너희의 무화과나무와 올리브 나무는, 메뚜기가 삼켜 버렸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10 "내가 옛날 이집트에 전염병을 내린 것처럼, 너희에게도 내렸다. 내가 너희의 젊은이들을 칼로 죽였으며, 너희의 말들을 약탈당하게 하였다. 또 너희 진에서 시체 썩는 악취가 올라와서, 너희의 코를 찌르게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11 "나 하나님이 옛날에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의 성읍들을 뒤엎었다. 그 때에 너희는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뭇조각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다섯 번이나 반복되는 하나님의 경고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무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회개할 줄 모르는 굳어진 마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입하셨다. 기근(6절), 가뭄(7~8절), 풍해와 병충해(9절), 염병과 전쟁(10절), 지진(11절) 등이 하나님의 개입 방법이다. 그들의 삶에 찾아온 위기와 역경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였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위기들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지 듣고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며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경 속에서 역경이 빨리 끝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역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는 지 들을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순종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더욱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12~13 이스라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다시 그렇게 하겠다. 바로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스라엘아, 너는 너의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여라."
13 산을 만드시고, 바람을 창조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것을 사람에게 알리시고, 여명을 어둠으로 바꾸시고, 땅의 높은 곳을 밟고서 걸어다니시는 분, 그분의 이름은 '주 만군의 하나님'이시다.
○ 12절 “그러므로”는 인내의 한계를 말한다. 반복되는 죄악과 깨닫지 못하는 우둔함에 지쳐버린 하나님이 이제 행동하신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사랑으로 인내하고 참아오셨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니의 정의로운 심판이 곧 오게 될 것을 경고한다.
○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말은 그분의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그분의 심판을 경험하는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초청이기도 하다.
○ 13절에서 하나님이 창조주시며(산들을 지으시고 바람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시며(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시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온 세상에 편재하신(땅의 높은데를 밟는) 분이라고 소개함으로써 죄악된 그의 백성들을 심판하실 자격과 능력이 있는 분임을 밝힌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신 분이고 섭리하고 통치하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 앞에 사는 우리들은 그분의 다스림의 원칙을 기억하고 그 원칙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을 경영하는 원칙이 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백성답게 정의와 사랑으로 인생을 경영하자.
20201119(목) 말씀묵상 / 아모스 4:1~13
○ 상황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으로 정작 나 자신은 예배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무수히 많은 예배를 인도하지만, 그 모든 예배에서 나는 진정한 예배자인가? 나는 삶으로 예배하는 자인가 돌아보니 부끄러운 부분이 보인다.
○ 도전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고, 사흘마다 십일조를 바쳐 보아라. 또 누룩 넣은 빵을 감사제물로 불살라 바치고, 큰소리로 알리면서 자원예물을 드려 보아라. 이스라엘 자손아, 바로 이런 것들이 너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비판하는 아모스의 말씀에 도전이 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 모든 예배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들린다.
○ 변화
예배 인도자가 아니라 예배자가 되기.
“삶의 막막함 가운데”(내게 봄과 같아서)로 예배하기
아모스 묵상 / 연구
○ 기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 되기 원합니다. 내게 생명이 되시고 새로운 삶을 꾸게 하소서.
20240816(금) 아모스 4:4~11
○ 상황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고발하는 아모스는 그들의 종교 의식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삶은 죄악으로 가득한 채 종교의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수 없이 많이 돌아오라는 경고를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 도전
정성을 다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아낌없이 드리는 헌금, 주신 것에 대한 충분한 감사에도 불구하고 그 예배의 초점이 ‘나’에게 있다면 , 그리고 일상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삶이 변하지 않은 채, 자기 만족을 위해 드리는 모든 예배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라고 도전한다.
○ 변화
나 자신과 회중에게 관심을 두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주목하는 예배를 드리기
오늘 하루 만나고 스쳐가는 이웃들을 선하게 대하고 구체적으로 사랑하기
○ 기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며 종교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 석교교회가 진정한 예배자들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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