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야할 바벨론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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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views[서론] 1. 이단 교회 이야기 2. 그리스도인의 구별됨이란? [본론] 1. 심판의 말씀을 읽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2. 우리가 사는 바벨론 속에서 우리의 마음 3.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1-4절) 4. 바벨론 심판의 이유 -이스라엘에 대한 조롱 -금잔의 교만 5. 백성들의 반응 6. 우리의 반응 [결론] 1. 탈출만이 답이다 2.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Notes
Transcript
제목: 내가 떠나야할 바벨론은 어디인가?
[서론]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는 이단에 있다 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그 이단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단 교회는 성도들을 교회 예배당에만 묶어두려고 합니다.
세상은 사탄이 또아리를 틀고 있어 함부로 나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독한 일들을 말하고 보여줍니다.
그래서 열심히 영적 훈련을 받은후 세상으로 나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거기 교회 성도들은 모두 예배당 근처에 삽니다.
거의 매일 예배가 있기 때문에 멀리 살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던 집을 팔고 산 중턱에 있는 그곳으로 모두 이사갑니다.
거기서 세상과 거의 단절된채 살아갑니다.
문제는 교회의 훈련이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훈련이 끝나야 세상으로 나가는데 훈련이 끝나지 않으니 세상으로 나갈수도 없습니다.
그 속에서 매일 기도하고 성경읽고 예배만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구별됨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세상에서 벗어나 온통 종교생활에만 몰두하는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구별됨의 전제는 구별될 대상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세상을 떠나있다면 세상과 구별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말 완전 분리된 삶을 원하셨다면 황무지에서 시작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들이 드글거리는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나지 않고 그 속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본론]
오늘 말씀은 이방 나라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아시다시피 예레미야 뒷부분은 계속 심판 말씀만 등장합니다.
‘여기도 멸망한다, 저기도 멸망한다’뿐입니다.
비슷한 심판들이 많으니까 우리는 이 장들을 너무 쉽게 넘겨 버립니다.
그러나 과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 지겨워’그랬을까요?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일본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중국에 대한 예언, 러시아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지금 이런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선포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런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시는 것일까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입니다.
그들의 삶을 보십시오.
이미 나라가 망해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에 포로 신분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땅에서 집도 짓고 농사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임장소도 만들어 함께 예배도 드립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인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런 의문들과 함께 그들은 바벨론의 마르둑 신전 앞을 날마다 지나 다닙니다.
엄청나게 거대한 그 신전을 보며 쪼그라든 마음을 어찌할수 없을 것입니다.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온 민족의 비애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여러 민족들의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이 나라도 내가 심판할거야, 저 나라도 내가 심판할거야.’
‘너희를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도 내가 곧 심판할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예언의 말씀을 쉽게 믿을수 있을까요?
이 말씀이 선포될때는 바벨론이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때입니다.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해서 다양한 민족들을 포로로 끌고 왔을 때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성은 마치 각종 포로들의 박람회 같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날마다 바벨론이라는 도시의 번성한 모습을 봅니다.
바벨론은 공중정원이 있을 정도로 화려한 문명과 번영을 자랑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거대한 마르둑 신전을 지나며 자랑을 늘어 놓습니다.
‘이번에도 우리가 한 나라를 작살냈데’
‘올해에도 풍년이래’
‘역시 우리 마르둑 신이 최고야’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십시오.
돈과 지위로 얻은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너무나 쉽게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비싼 변호사 쓰니 수십년형 나올것도 집행유예로 끝나고 맙니다.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는 이제 평범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모의 부와 지위를 세습하며 살아갑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환경이 아닙니다.
뉴스보면 로또 아파트라고 해서 청약붐이 일어납니다.
앉아서 몇억을 벌수 있다보니 편법, 불법까지 총동원합니다.
사람들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인스타그램 보십시오.
해외여행 어디 갔다왔다고 사진 올립니다.
예쁜 옷, 맛있는 음식 사진이 판을 칩니다.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세상속에서 우리가 붙들고 있는 성경을 보면 어떻습니까?
믿기 힘든 이야기들 천지입니다.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수천년 동안 변하지 않는 성경말씀은 오히려 고리타분해 보일 뿐입니다.
이런 거대한 세계관이 주도하는 세상 속에서 성경을 믿고 따를수 있을까요?
바벨론에 사는 유다백성들처럼 우리의 어깨도 괜히 움츠려 듭니다.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게 훨씬 지혜로운 삶처럼 보일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언젠가 이런 세상이 불타 없어질 심판의 날이 온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하시려는 말씀도 그런게 아닐까요?
‘너희가 보기에 거대하고 화려한 바벨론이 안 망할거 같지?’
‘바벨론이 영원할거 같지?’
‘아냐 내가 바벨론을 심판해서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자도 있고 안 믿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에이, 이렇게 강력하고 화려한 제국이 무너진다고?’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1절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치기 위해 그들의 원수를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북방에서 민족들이 일어나 바벨론을 공격할 것입니다.
1절에 등장하는 ‘레브 카마이’는 그 당시 암호입니다.
바벨론을 뜻하는 ‘갈대아’를 알파벳 역순으로 쓴 것입니다.
‘갈대아’는 바벨론이 위치한 지역 이름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사람’을 ‘갈대아 사람’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왜 이런 암호를 썼는지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분명 좋은 의도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을 조롱하시는 것입니다.
너희의 자랑거리를 수치거리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신속하고 철저합니다.
2절입니다.
마치 키질하듯 완전히 바벨론을 밀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키질은 농사 용어인데 곡식의 쭉정이와 알곡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쭉정이 날리듯 날려버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3절입니다.
적들의 공격이 너무 빨라 바벨론의 젊은 군인들은 활도 당기지 못합니다.
갑옷도 제대로 입지 못합니다.
군대는 전멸하고 죽은 백성들이 길거리에 널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바벨론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5절입니다.
바벨론은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을 조롱합니다.
‘너희 하나님은 결국 마르둑 신에게 진거야’
‘너희 신은 너희를 구원하지 못해’
‘너희는 너희가 믿던 신에게 버림받은 거야’
때로는 안 믿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면 잘 믿는 너가 나보다 더 잘됐겠지’
‘이 모양 이꼴로 살진 않겠지’
‘너의 하나님은 너를 구원하실수 없는거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론입니다.
5절 후반절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힘이 없어서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두신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버리신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을 통해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죄가 유다 땅에 너무 가득했기 때문에 강력한 매를 드신 것입니다.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징계이지, 유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징계의 때가 지나면 자기 백성을 다시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신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7절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금잔입니다.
금잔이 얼마나 화려합니까?
바벨론이 가진 강력한 힘과 화려한 번영을 상징합니다.
많은 민족들은 바벨론의 힘과 번영을 보며 그것에 취해 버립니다.
바벨론은 금잔에 담긴 포도주로 온 세상을 취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방민족들이 죄와 타락에 빠지게 한 주범이 바로 바벨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중 바벨론을 마지막에 다루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죄악과 타락의 끝판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바벨론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타락한 세상을 상징합니다.
바벨론은 자신이 가진 힘과 번영으로 교만해진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심판하는 하나님 손에 들린 도구였던 바벨론이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도 취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도 취해버린 것입니다.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이런 바벨론의 심판 예언을 들은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6절 앞부분입니다.
이게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바벨론을 탈출해야 합니다.
그곳을 과감히 떠나야 합니다.
그곳에 계속 있으면 바벨론과 함께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언제 바벨론이 멸망할지 알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를 정확히 알면 그때 잘 챙겨서 떠나면 되는데 그게 아닙니다.
그들의 멸망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순종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은 수십년동안 바벨론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유대인 이름이 아니라 바벨론 사람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 집도 있고, 땅도 있고, 자식들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리잡은 이 곳을 떠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또한 바벨론은 겉으로 보기에 여전히 끄덕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신다는 징조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바벨론이 떠나가는 유다 백성들을 가만 내버려 둘거 같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언제든지 바벨론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들은 지금 당장 바벨론의 타락한 죄악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벨론의 힘과 번영에 움츠려든 어깨를 펴야 합니다.
바벨론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힘과 번영을 얻기 위해 성공의 유혹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그들의 죄악에 물들어 우상숭배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결국 사라질 것들입니다.
당시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과 친구들을 보십시오.
포로로 끌려온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동화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신들을 숭배하며 마치 바벨론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게 포로로 살아남기 위해 지혜로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몸은 바벨론이라는 땅에 있지만 영혼은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타락한 문화가 그들의 마음에 침투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요구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하고 화려한 세상이 바로 바벨론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성공주의, 약육강식의 세계관에 사로잡힌 이 세상이 바로 바벨론입니다.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이 바로 바벨론입니다.
우상이 넘쳐나는 이 세상이 바로 바벨론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하나님은 사람을 두 갈래로 나눠 심판하실 것입니다.
기준은 이렇습니다.
너는 바벨론 제국에 속한 사람이냐?
아니면 너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냐?
과연 우리의 마음에 침투하여 우리를 포로로 삼고 있는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하여 우리가 숭배하는 세계관과 삶의 양식은 무엇입니까?
거기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천로역정에 나온 크리스천처럼 과감히 멸망의 도시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 있습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현대판 바벨론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나를 포로 삼은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도망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타락한 세상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돈과 권력을 우상숭배하는 바벨론으로부터,
쾌락과 성공을 우상숭배하는 바벨론으로부터,
교만에 취해버려 자기를 숭배하는 바벨론으로부터,
탈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구해줘라는 드라마를 본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나쁜놈이 집이 타서 다 죽게 생겼는데도 돈가방을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가방과 함께 타죽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을 탈출해 그리스도께 나아갑시다.
바벨론에는 포로와 죽음 그리고 멸망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자유와 생명 그리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제국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천국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