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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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립보서 강해 12강
푯대를 행하여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저는 현재 신대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전도사 사역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이이야기 하더라구요. 시작 3분동안 성도들을 집중시키지 못하면, 이후 시간에도 집중시킬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ㅎㅎ
그만큼 도입부가 중요하다는건데요. ㅎㅎ
그래서 오늘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먼저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주로해서 파리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다들 아시죠? 저는 이번에 다 챙겨보지는 못했는데 폐막식을 조금 봤는데, 톰 크루즈 나오고, 빌리 아일리쉬, 스눕독 나오더라구요 ㅎㅎ
근데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에게 금메달을 안겨다준, 안세영 선수에 대해서 잠깐 나눠보려 합니다. 안세영 선수는 02년생으로 한국나이로 23세 입니다.
여튼 이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인터뷰에서 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수를 위해야 할 협회가 자기들끼리 뭉쳐서 이득을 취하고 선수는 돌보지 않는다고 인터뷰에서 말헸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따면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거란 생각에, 최선을 다했다고 했는데요. 이는 협회의 개혁을 시도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이버에 선수들을 응원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거기에 양세영 선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응원을 받고 있더라구요. 이 만큼 우리는 개혁에 대해서, 어떠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고, 바르게 바꾸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슈였습니다. (오늘 제가 키포인트로 잡은 것은 개혁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말씀은 빌립보서 3:12-16절입니다. 지지난주 제가 했던 설교에 이어서, 오늘 설교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키 포인트는 “푯대를 향하여” 입니다. ㅎㅎ 너무 직관적이고 너무 단순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목적에 대해서 잘 말해주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단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아니라 입니다. ㅎㅎ
지난주 설교의 마지막에 이 12절을 마무리로 설교를 마무리했는데요. ㅎㅎ 다들 기억이 잘 나시겠지만 다시 한 번 집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얻은것과 얻지 않은 것에 대해 바울은 목적어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불친절 하죠? ㅎㅎㅎ
그런데 고대 사본에서는 이 부분에서 목적어를 “이미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도 아니요”를 첨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바울이 직접 이 부분을 고백하지 않았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글은 “의롭다 칭함받는 칭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설교 처음부터 칭의를 이야기 하면서 진지하게 설명을 해버렸습니다. ㅎㅎ 그래도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진지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바울은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함도아니고,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잡은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경주를 떠울리게 합니다. 달리기를 이야기 하듯이 바울은 칭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뒤에 있는 것은 바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의 능력과 자질, 출신을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그가 자랑할만한 과거의 내용들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교회를 핍박했던 부끄러운 과거들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새롭게 바뀐사람이 된 후에 세운 업적들 뭐 예를 들면 선교를 돌아다면서 많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들, 도움을 주었던 것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현재 이 글을 쓰는 바울은 감옥에서 자신의 사역의 마지막을 보내는 상황에 이 글을 쓴 것인데, 이런 문맥을 통해서 글을 본다면, 자신이 행한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고 혹은 낙담하지 않고 과거에 얽메이는 것을 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 “그리스도에 대한 것”만을 향해서 나아간다고 달려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칭의와 연결 하면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구원에 있어서 우리 스스로가 열심히 해서 얻은 것도 아니지만, 또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얻은 것도 아니며, 구원을 얻은 후의 삶도 열심히 살아내는 것 중요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해낸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수 도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어렵게 말을 쓰고 표현하였는데요.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삶을 자혁해보자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개혁이란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았습니다. 네이버 사전이 말하길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 고침’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뭐 알겠는데 좀 와닿지는 않는 설명인거 같습니다. ㅎㅎ
제가 이번주에 좋은 리더쉽과 공동체에 관한 책을 읽다가 “개혁”에 대해서 설명한 글을 보았는데요.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잘 들어주세요!! “개혁하려면, ==무엇에 반대할지 알아야== 한다.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려면 ==무엇을 지지할지 알아야== 한다.” 이 글귀를 보는데 딱…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이었어요.
아주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교회의 역사 이야기인데,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핵심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루터는 1517년 95개조의 반박만을 비텐베르크성 교회에 붙임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요. 이를 좀 쉽게 표현하자면, 루터라는 성직자가 교회가 너무 타락했던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교회의 오류 95개를 하나 하나적어서 잘못되었다고 꼬집는 글을 교회에 붙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시 1500년대는 교회가 게시판 역할도 했었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고, 루터는 “난 종교개혁을 해야겠어”라는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95개의 반박문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면죄부를 돈을 주고 판 것에 대해서 꼬집고 있었는데요. 면제부는 구원을 받는 행운티켓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믿음으로 하나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면제부를 사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있다고 했던 교황청과 그 아래 교회들의 만행을 루터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뭐 요즘 말로 치면 인스타 혹은 유트브에 어떤 글을 적었는데 이게 떡상해서, 유명해졌고 그 것이 트리거가 되어서 개혁이 일어났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ㅎㅎ
제가 개혁에 대해서 본 글귀가 루터의 종교개혁까지 왔습니다. ㅎㅎ
진정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루터가 했던 행동에서 아까 언급한 “무엇에 반대해야할지 알아야 한다”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한 교회의 말씀, 신학에 정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걸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진리인 성경말씀에 맞지않고 잘못된 것에 정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려면 무엇을 지지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루터는 정확하게 성경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루터의 이 종교개혁이 아까 제가 언급한 개혁의 조건을 다 만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개혁이후에 이제 500년이 지났습니다. 이런 종교개혁의 수혜자로 우리는 개혁신교 개신교를 믿고 있습니다. 위대한 일이죠 !! 그리고 우리는 한국교회만의 개혁을 역사적으로 경험했습니다. 바로 신사참베라는 것 입니다.
우리교회는 신사참베를 반대한 선배들이 세운 교회라고 70년 기념 예배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요. 신사참베반대를 잠깐 설명하자면, 한국의 많은 기독교가 일제강점기에 신사에 들러서 인사는 것을 거부한 것이 신사참베 반대운동입니다. 이 신사는 일본의 귀신들을 모시는 곳으로 말 그대로 신사(신을 모시는 곳)에서 인사를 하는 것은 그들의 신을 인정하고, 예의를 갖춤으로서 우상숭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피지배국으로 이 인사를 거부하면,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서, 신사참베를 반대하는 자들은 감옥에 투옥시키거나,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었습니다.
뭐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거 뭐 인사하는 건데 뭐 까짓거 좀 하면 되지 왜 그거 거부하고 목숨까지 걸어?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도 많았기에 거부하지 않고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일본 신사에 가서 인사하고 오는 경우가 매우 잦았습니다.
여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우리의 선배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까지 하라는 것을 하지 않았느냐? 입니다. 마틴 루터도 아까 종교개혁을 했다고 했는데, 마틴 루터는 이미 성직자였고, 그런 것 안해도 이미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내부고발을 해서라도 95개조 반박문을 걸었고, 이후에 타락한 교회로 부터 핍박과 협박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루터도 한국의 역사속 신사참베를 반대했던 선배들도 가진 공통점이 있는데요. 그 것은 바로 “개혁”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그들은 그 어떤 우월감으로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위해서 반박문을 붙이고, 너희는 잘못되었다며 고소했던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따라가야 할 것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신사참베도 너무나 시대에 신앙의 선배들은 자신들은 신사참베 할 수 없다라며, 신사참베를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은 목숨을 걸어가며 신앙을 지켰다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사참베를 하는 이들로 부터 무시받고, 거절받아 쫒겨난 이들이 모인 그룹이었으며, 그들이 어떠한 자신들의 의를 위해서, 위상 혹은 신앙의 순수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거부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서 애쓴 것이지요.
그럼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럼 그런 것과 우리는 어떤 상관이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주 실질적인 질문이죠!! 우리는 현재 신사참베를 강요받지도 않고, 타락한 교회의 행태를 보면서 반박문을 작서하여 개혁을 말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며, 상대적으로 큰 이슈가 아니라, 비교적 작은 삶의 이슈들이 많은 상황인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대답은 동일하게 “개혁”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종교개혁만이 개혁이 아니라, 신사참베 거부하며 목숨을 내놓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마어마 한 것을 해내야만, 이목을 끌거나, 시대를 바꾸거나, 신앙의 힘을 보여주는 것 만이 개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에서도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무수히 많은 유혹, 시험을 받으며 삽니다. 정말 무수히 많은 곳에서 유혹과 시험을 받습니다. 음란뿐 아니라, 돈의 유혹, 성공의 유혹, 신앙보다는 안정적인 내 삶,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유혹, 혹은 시험, 술문화 담배문화(그리스도인이라 술을 못마신다고 하면 찍힐 것 같아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유혹, 남자들이 담배피는 시간을 가지면서 가지는 정보력에 대한 유혹?등 정말 사소한 거짓말에서 부터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거짓말 등등 우리는 수많은 유혹가운데 살아갑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지 못한 유혹들 시험들, 도전들 모든 것을 포함해서 우리 인생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야 하기에 찾아오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개혁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당연히 그리스도인이 아니였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했을 것들에서 우리는 고민해보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가도 그리스도인이 맞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으로 점점 그런 모든 것에서 부터 유혹 시험을 끊어내 보기도 하고, 함께 씨름해보기도 하는 것이 개혁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바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본문은 바울의 사역이 마무리되고, 감옥에서 보내는 서신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향하여 달려 간다고 합니다.
바울이 잊어버리는 과거는 찬란했던 자신의 영광스런 경력, 출신 등만이 아니라, 추악했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박해했던 과거들 선교를 하면서 좋은 일을 했지만, 그 안에서 생긴 잡음들 그런 모든 과거에 좋았던 것, 나빠던 것 모두를 잊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푯대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받으면, 열심히 하다가 점점 은혜를 잃어버리고, 점점 행위만 남아서,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고 우월함을 과시하는 쪽으로, 잘 못하는 사람은 아예 포기해버리는 쪽으로 기울어 버립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 본문은 그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오직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 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성도이신 여러분 넘어지셨습니까? 혹은 시험에 빠지셨습니까? 아님 이렇게 개혁하는 것이 두려우십니까? 아니면 꼭 그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드십니까?
우리는 달려가야할 방향, 달려가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히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는 달려가는 것이며,
여러분이 스스로를 포기해도 주님은 여러분을 포기 못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게 맞지만, 사실은 그 분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기에 달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의 능력이 그 분이 참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달려갈 수 있고 넘어져도 일어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은 우리의 행실은 끝임없이 개혁되어야 할 것 입니다. 죄 앞에서의 뉘으침 회개가 어떠한 이벤트로 끝나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오늘도 함께 나아가는 성산의 청년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은 함께 푯대를 향하여라는 찬양을 함께 할 것 입니다. 개혁은 참 멋있는 말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개혁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낭만적인 일 이며, 눈물이 나는 일 입니다. 세상에서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야하기에, 가치 없는 일이 아니냐고 질문하는 하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시간을 돈으로 여깁니다. 이 시간에 자신의 것을 해서 자신을 더욱 가꾸고 더욱 빛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가꾸는 것도 자신의 능력을 기르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잠시 멈춰서서 주어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이렇게 함께 나아와서 예배드림으로 진정 우리를 빛나게 하시는 분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할 것 같아 이 땅이 요구하는 대로 살기 보다, 진정으로 영원한 곳을 바라보며 미련하지만, 바보같지만, 푯대를 향하여 걸어가며, 우리의 삶을 개혁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이런 발버둥을 주님께서는 함께하시고 진정으로 선으로 인도하실 것 입니다.
태국 깐짜나부리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는 선교팀을 위해서 함께 기도합시다.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온전히 쓰임받기를, 오고 가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안전히 다녀오기를, 덥고 짜증나는 순간이 생기고, 마음에 맞지 않는 순간이 상황이 생길지라도, 한 마음으로 온전히 다녀올 수 있기를 바라며 선교팀을 위해서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