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오래참으심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하나님의 오래참으심
본문: 롬 2:4
(롬2:4)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Or despisest thou the riches of his goodness and forbearance and longsuffering; not knowing that the goodness of God leadeth thee to repentance?
하나님의 관대하심 forbearance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하셨을 뿐만 아니라 선하심이 풍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시다는 말씀을 잘못 읽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악에 징계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허락하고 계신다는 의미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하기 때문에 너희를 선하게 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심판을 내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관용을 베풀고 있고,
그래서 너희가 회개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오래 참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관대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처음 죄를 지었을 때 멸망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관대하심과 은혜 때문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For all have sinned, and come short of the glory of God;
(롬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救贖)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Being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is in Christ Jesus:
(롬3:25)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Whom God hath set forth to be a propitiation through faith in his blood, to declare his righteousness for the remission of sins that are past, through the forbearance of God;
(롬3:26)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To declare, I say, at this time his righteousness: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him which believeth in Jesus.
만약 당신이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관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의로운 은혜가 당신에게 값없이 베풀어질 때까지
당신을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관대하심이 여러분을 매번 살리셔서
어느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심판을 피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끔찍한 죄를 지어도 지금 당장 벌하지 않으시는 것은
여러분을 벌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벌하지 않으신 것을 앞으로도 벌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잘못입니다.
(느9:28) 그들이 안식을 얻은 뒤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손에 버려두사 그들이 그들을 지배하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부터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에 따라 그들을 건져 내시며
But after they had rest, they did evil again before thee: therefore leftest thou them in the hand of their enemies, so that they had the dominion over them: yet when they returned, and cried unto thee, thou heardest them from heaven; and many times didst thou deliver them according to thy mercies;
(느9:29) 그들을 다시 주의 율법으로 데려오려고 그들에게 증언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행하면 그 가운데서 살게 될) 주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주의 판단의 법도를 범하여 죄를 짓고 어깨를 뒤로 빼며 목을 굳게 하고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And testifiedst against them, that thou mightest bring them again unto thy law: yet they dealt proudly, and hearkened not unto thy commandments, but sinned against thy judgments, (which if a man do, he shall live in them;) and withdrew the shoulder, and hardened their neck, and would not hear.
(느9:30)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그들을 참으시고 또 주의 대언자들 속에 있는 주의 영으로 그들에게 증언하시되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아니하므로 주께서 그 땅들의 백성들 손에 그들을 넘겨주시되
Yet many years didst thou forbear them, and testifiedst against them by thy spirit in thy prophets: yet would they not give ear: therefore gavest thou them into the hand of the people of the lands.
(느9: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크신 긍휼로 인하여 주께서 그들을 진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니이다.
Nevertheless for thy great mercies' sake thou didst not utterly consume them, nor forsake them; for thou art a gracious and merciful God.
성경은 사사 시대가 있고, 왕정 시대가 있고, 대언자들의 경고가 있고,
바벨론 포로 시대가 있고, 이어서 바벨론에서 귀환이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성경의 분량때문에
얼마 안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약 800년가까운 시간 동안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재판관을 보내고, 대언자들을 보내시며 오래 기대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피하고 싶었던 일을
피할 수 없게 만들어 온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이방 군대를 보내 너희를 포로로 삼고,
너희 땅에서 쫓아내고, 성전을 불태우게 했을 때조차도
나는 너희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땅을 다시 세우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다 말라기 이후 하나님은 그들에게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400년 후, 침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침례인 요한은 나라를 깨우는 알람 시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셨고
기록된 말씀대로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이 너희가 기다리던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렸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오늘날 까지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먼저 구원의 복음을 제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대함입니다.
오래 참으심 longsuffering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을 정의하는 또 다른 단어 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래 참지만, 나는 오래 참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며 우쭐대지 아니하며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오래 참는다는 것은 어떤 불편한 상황을 감내해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을 감내해 내면서도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 것은 오랫동안 불편함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받아내면서 그것을 되값아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 가게 된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나의 불편함을
오래 견뎌내셨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잘못을 오래 동안 견뎌내셨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까지 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하늘에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 냅니다.
저는 일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감내해 냅니다.
저는 복수 할 수 없어서 참아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상황을 벗어날 힘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는 몇 번이고 때려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참아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고 무력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많은 것을 참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은 핍박이나 학대는 나를 변화 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한 사람들을 겪어 내면서도
매일 매 순간 우리를 구원해 주고 싶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번이고 때려 치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에
부당함을 참고 그냥 견디고 이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 참고 있지만 정말 오래 참기 힘든 상황에서 모면하며
견디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참으심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신 내용을 알고 계십니까?
(출34:5) 주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주의 이름을 선포하시니라.
And the LORD descended in the cloud, and stood with him there, and proclaimed the name of the LORD.
자 이제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무엇인지 말씀하려고 하십니다.
(출34:6)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
And the LORD passed by before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출34:7)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법과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Keeping mercy for thousand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and that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visiting the iniquity of the fathers upon the children, and upon the children's children, unto the third and to the fourth generation.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생각하면서
'오래 참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분을 만난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긍휼과 은혜와 선함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분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돌판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
지금 출애굽기 34장에서는 두 번째 돌판을 새겨주시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라고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계명을 써주셨는데
그때 산 아래에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산 아래 산기슭에서 사람들이 금송아지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이것이 네 신이 되라.” 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모세야 우리 다시 해보자.
하지만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 수천 개의 율법을 기록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먼저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 이름이 오래 참으심 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모든 율법과 계명을 주고자 하는데,
그것을 받아든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이라는 겁니다.
나 하나님은 이것을 주면서 많은 것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이 이 모든 명령을 지키기를 원하시지만,
너희들이 지키기 못할때 나는 오랫동안 참으실 것이며,
너희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내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겁니다.
우리는 지쳐도 하나님은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들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가 오래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줬는데
왜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지 않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나를 지치게 했을 뿐
하나님을 지치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여러분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지만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넘치시며 오래 참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때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감사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질 렀을때는
왜 하나님이 빨리 진노하지 않는지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좌절하고 있다면,
우리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지옥에서 건시진 하나님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잘 참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향해서는 잘 참지 않습니다.
(시86:13) 나를 향하신 주의 긍휼이 크사 주께서 내 혼을 가장 낮은 지옥에서 건지셨나이다.
For great is thy mercy toward me: and thou hast delivered my soul from the lowest hell.
(시86:14) 오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나를 치려고 일어났고 폭력배들이 모여 내 혼을 찾으며 자기들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O God, the proud are risen against me, and the assemblies of violent men have sought after my soul; and have not set thee before them.
14절에 저 교만한 자들이 나를 대적하는 게 보이시죠?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는 긍휼을 베풀기 원하지만,
교만한 자들에 대해서는 긍휼를 베풀길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의 반응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나는 너를 가장 낮은 지옥에서 구해냈어.
나는 그들도 가장 낮은 지옥에서 구하고 싶단다.”
(시86:15) 그러나, 오 주여, 주는 동정심이 많으시며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긍휼과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But thou, O Lord, art a God full of compassion,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plenteous in mercy and truth.
다윗은 억울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골리앗을 죽이고 양을 돌보던 사람입니다.
이런 다윗을 죽이고자 쫓아녔던 사울을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셨나요?
40년 동안 왕좌에 앉아있게 그대로 두셨다는 겁니다.
왜 그랬는지 아시겠습니까?
사울을 가장 낮은 지옥에 놔두기 싫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자신은 도망다니고 동굴에서 지내야 하는 동안
사울을 왕실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되면,
가슴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하소연에 하나님이 어떻게 답변하셨는지 모르지만,
다윗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한번 사울이 자신을 잡으러 동굴에 들어왔을때,
사울을 옷자락을 잘라서 내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 다윗의 마음을 치셨습니다.(삼상24:5)
왜냐하면 하나님이 죽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을 처형할 뻔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개인 해결사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가족이나 교회에 해를 끼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로 가져 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에 아무 응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것은 저나 여러분을 힘들게 한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힘을 좀 쓰시라고 해서
그분의 오래 참으심을 멈추실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개인적인 해결사가 아닙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분 본래의 모습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창6:5) ¶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And GOD saw that the wickedness of man was great in the earth, and that every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continually.
오늘날 우리 세상이 악하다고 하지만 아직은 노아의 때 만큼은 아닙니다.
(창6:6)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it repented the LORD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창6:7)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을 만든 것으로 인해 슬퍼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And the LORD said, I will destroy man whom I have created from the face of the earth; both man, and beast, and the creeping thing, and the fowls of the air; for it repenteth me that I have made them.
주님은 정말로 슬퍼하셨습니다.
(벧전3:20) 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 되니 곧 여덟 혼이라.
Which sometime were disobedient, when once the longsuffering of God waited in the days of Noah, while the ark was a preparing, wherein few, that is, eight souls were saved by water.
지금 주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류가 너무 나빠져서 하나님께서 공의로써 멸망시키실 수밖에 없었지만,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탈 수 있을 만큼
큰 방주를 지을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그 멸망을 미루셨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간통하고,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훔치면서,
여러분이 구원과 죄, 지옥, 예수님께로의 회개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너무나 경멸하여,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는 단지 오래 참고 있었을 뿐이며,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혼동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들을 대신하여
경고해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이 하시겠다고 하는 일들을 다 하실 것입니다.
자녀를 기를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큼 귀여운 자녀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할때마다
그 아이가 벽으로 날라가 부딪힌다면,
여러분이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역시 멋지신 분이야 하고 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여러분을 욕하고 하나님을 욕할때 마다
그들을 땅바닥에 쓰러뜨린다면 모든 일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군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때 예수님이 그들을 바닥에 넘어뜨렸습니다.
(요18:4-6)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는 얼굴에 주먹질을 합니다.
(마26:67)
여러분의 생각에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군사들을 쓰러뜨렸을때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지 않고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맞서서 쓰러지게 되면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해 놓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게 한 거냐고 따지려 할 것입니다.
사고를 당하면 회개할 것 같지만
우리는 누군가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이 생겨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이제 구원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아직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내와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착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오래 참으시고 계신 것입니다.
사울의 핍박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다소 사람 사울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핍박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딤전1:15)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This is a faithful saying, and worthy of all acceptation, that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of whom I am chief.
(딤전1:1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내 안에서 모든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이후에 자신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으니 이런 까닭으로 내가 긍휼을 얻었느니라.
Howbeit for this cause I obtained mercy, that in me first Jesus Christ might shew forth all longsuffering, for a pattern to them which should hereafter believe on him to life everlasting.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게 된것은 내가 예수님께 저지를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멈추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될 모든 사람의
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런 사람 만큼은 하나님이 가만 놔두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우선 순위가 있습니까?
히틀러, 빈라데, 윤석렬, 이재명
나는 저런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이 더이상 이 땅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초대 교회 당시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숨어서 작은 비밀 지하 교회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10km 떨어진 마을에서 소식이 들여 옵니다.
그곳의 목사가 살해당했고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 살해당했으며
그 교회의 남자들은 감옥으로 끌려갔고 그 교회의 여자들은 과부가 되었고,
그 교회의 아이들은 고아로 남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일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다소 출신의 사울입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당신의 마을로 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하나님, 그 사람을 막아주세요.
제발 그 사람이 이곳에 오기 전에 죽여 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울의 길를 가로막으시며
내가 너를 내 일에 사용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 일을 하기 위해서 먼저 네가 회개하고
지금 나와 맞서 싸우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남자의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발 네가 하는 일을 멈추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를 구원자로 받아들일 기회를 준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내가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너에게 보내서
너를 돕도록 하겠다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네가 사울에게 가서 그를 도우라고 할 때
아나니아는 깜짝 놀라서 주님께 반문을 합니다.
사울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셔서 그러시는 겁니까?
그때 하나님이 “아 내가 깜빡 했구나 알려줘서 고맙다”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했던 사울을 구원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도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은 히틀러를 구하셨을 것입니다.
빈라덴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은 빈라덴을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동의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오래 참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에는 오래 참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우리를 설명할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매일 죽어 마땅하지만
여러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 만큼 오래 살게 하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해서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관대해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오래 참으시고 심판을 늦추시는 하나님
(벧후3:5)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For this they willingly are ignorant of, that by the word of God the heavens were of old, and the earth standing out of the water and in the water:
(벧후3:6)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Whereby the world that then was, being overflowed with water, perished:
(벧후3: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But the heavens and the earth, which are now, by the same word are kept in store, reserved unto fire against the day of judgment and perdition of ungodly men.
심판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불경건한 자들에게 멸망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벧후3:8)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But, beloved, be not ignorant of this one thing, that one day is with the Lord as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s one day.
이 말씀을 문맥에 맞춰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네가 하루 만에 지치는 것을 내가 천 년 동안 참을 수 있다.”
내가 너희와 같이 참을성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벌써 멸망당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할 힘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벧후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The Lord is not slack concerning his promise, as some men count slackness; but is longsuffering to us-ward, not willing that any should perish, but that all should come to repentance.
이 말씀은 오늘 본문 로마서 2장 4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완전히 일치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고, 또 멸망시킬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했을 일을
하나님은 수천년 동안 하지 않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어서가 아니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도 아니라
그분은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지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았던 것입니다.
(벧후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인 줄로 여기라.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자기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And account that the longsuffering of our Lord is salvation; even as our beloved brother Paul also according to the wisdom given unto him hath written unto you;
바울이 쓴 서신서의 수신자나 베드로가 쓴 서신서의 수신자가 동일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바울이 쓴 이후에 이 글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구원받은 모든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성령의 오래 참으심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음은 내가 아니고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한 구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전8:11)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신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 그런 까닭에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악을 행하려고 그들의 속에서 완전히 고정되었도다.
Because sentence against an evil work is not executed speedily, therefore the heart of the sons of men is fully set in them to do evil.
악한 일에 대한 형벌이 신속히 집행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용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데 사용합니다.
꽤 슬픈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본다면
왜 하나님이 저런 사람들을 그대로 두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대로 멸망시키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가졌던 마음과 동일한 마음을
그들에게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들이 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시는 걸까요?
그것도 여러분이 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던 마음과
동일한 마음을 그들에게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오래 살게 하셔서 예수님께 올 수 있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께 오길 바라며 오래 살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인내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기쁩니다.
저는 그분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이 기쁩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있는 분들 중에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의 잘못을 징계하고 있지 않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잘못 이해해서 여러분이 죄를 지어도 지옥에 들어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으면
반드시 불 호수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가길 원하지 않고 계십니다.
예수님께로 오시기 바랍니다. -끝-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