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송을 받으시더라

누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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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4:14-15
“칭송을 받으시더라”
2024. 6. 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칭송을 받으시더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후에,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단락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뒤에 누가복음 4장 42절부터 44절까지 말씀과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이 예수께서 갈릴리에 돌아가 사역을 하셨다는 내용이듯이, 4장 42절부터 44절까지 내용도,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동일한 지역에서 동일한 사역을 하셨다는 말씀이 앞과 뒤에서 반복되고 있어요. 이것을 우리가 수미쌍관구조라고 부릅니다.
똑같은 단어나, 똑같은 문장, 또는 똑같은 단락을 앞 뒤에 위치시킴으로서, 그 사이에 담겨 있는 내용을 강조하는 문학기법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러한 수미쌍관 구조에 기반한 단락이에요.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고, 동일하게 반복적으로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어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도 동일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가르치실 때 칭송을 받으셨죠. 그리고 저 뒤에 42절에 가서 보면,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예수님께 열광을 해요. 42절로 가서 한 번 봐 볼까요? 누가복음 4장 42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했다는 거예요. 수미쌍관.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고, 사역을 하는 그 때에 예수님은 동일하게 칭송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수미쌍관 구조가 그 사이에 들어가 있는 사건을 강력하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자, 이 사이에 들어있는 사건, 이것이 무슨 사건입니까? 우리가 다음 시간에 이 사건을 살펴볼 텐데요.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사건이죠.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다가 배척을 받아 죽을 위기에 처했던 사건이에요. 누가는 이러한 배척의 사건을 갈릴리 사역과 갈릴리 사역 사이에, 칭송과 칭송 사이에 배치시킴으로써, 예수님이 앞으로 가야하는 길이 어떠한 길인가를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복음서를 보면, 실제적으로 예수님 사역의 75% 가량이 갈릴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갈릴리를 사랑하셨어요. 갈릴리는 이스라엘에서도 척박하고, 가난한 지역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예수님이 그토록이나 돌보셨건만,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배신과 배척이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다시 심도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고요. 오늘은 수미쌍관 구조 가운데서도 머리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겠는데요. 먼저 오늘 본문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아멘.
우리가 방금 읽은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후에, 곧바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도, 성령에 이끌리심을 받으셨고, 갈릴리에 돌아가실 때도 성령의 능력으로 돌아가셨다는 동일한 맥락의 말씀이 연결됨으로써,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후에 곧바로 갈릴리에 가셨으리라고 생각을 하게 돼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동일합니다. 마귀의 시험 이후에, 예수님은 갈릴리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자세히 보면, 누가복음에는 없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먼저 마태복음 4장 11절과 12절을 봐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 11절, 12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아멘.
지금 이 말씀에 보면, 마귀의 시험 이후에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신 것은 맞아요. 그런데 언제 가셨는지, 그 시간적 배경을 기록해 놨습니다. 언제 가셨습니까?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가셨다는 거예요.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나서야 갈릴리로 가신 겁니다.
마가복음도 마찬가지예요. 마가복음 1장 13절,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여기도 동일하게,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여기서 요한은 세례 요한이죠. 세례 요한이 분봉 왕 헤롯의 부정한 일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가 잡혀서 감옥에 갇힌 사건을 말하고 있는데요. 이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서 사역을 하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 이후에 곧바로 갈릴리에 가신 게 아니에요. 세례 요한이 잡힌 뒤에야 갈릴리로 가신 겁니다. 자, 그렇다고 한다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때와 갈릴리로 가신 때 사이에는 어느 정도 시간적 텀이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요. 이 텀이 얼마나 될까요?
복음서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대략 1년의 텀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귀의 시험 이후에 갈릴리로 가시기까지 1년이나 되는 시간적인 공백이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과연 이 시간 동안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갈릴리 가시기 전에 휴가 가셨을까요? 40일 금식했더니 몸이 허해서 보양식도 좀 하고, 휴식을 하셨을까요?
우리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통해서는 이 기간 동안에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까 잠깐 언급을 한 것처럼, 예수님의 사역의 75%가 갈릴리에 집중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마태, 마가, 누가는 1년의 공백기에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별로 관심이 없어요. 마태, 마가, 누가. 이 세 복음서를 하나로 묶어서 ‘공관복음’이라고 우리가 부르는데요. 공관, 같은 관점에서 기록한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대체적으로 내용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갈릴리에 집중을 하고 있어요.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는 예수님의 행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외에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한 겁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입장이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같은 복음서이긴 하지만, 공관복음과 차별됩니다. 전혀 다른 관점으로 기록을 했어요. 요한복음에는 갈릴리 사역이 50%의 비중만을 차지합니다. 나머지 50%는 유대 땅에서 하신 사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공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1년간의 공백기가 바로 유대 땅에서 사역을 하신 기간입니다. 이것을 유일하게 요한복음에만 기록을 했어요. 요한은 갈릴리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유대 본토 땅의 사역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특별히 공백기 1년 동안에 있었던 사건들이 너무나도 중요한데요. 성경으로 보자면, 요한복음 1장 29절부터 4장 42절까지의 내용이 바로 이 기간 동안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부터 4장 42절. 제법 많은 분량이에요. 이 내용이 예수님 사역의 공백기간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이것을 오늘 누가복음 본문말씀에 적용해본다면, 오늘 본문 14절 말씀과 그 위에 13절 말씀 사이에 이 내용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를 한번 봐 볼까요?
자, 13절과 14절 사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나서, 1년 동안 유대 땅에서 사역을 하신 뒤에, 갈릴리로 돌아가신 겁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시죠?
자, 그렇다면, 과연 이 1년이라고 하는 기간 동안에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가 궁금해지죠.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을까?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아멘.
이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나서, 곧바로 다시 요단강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요단강. 그런데 그때 세례 요한이 아직도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어요. 요한이 사역이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요한이 한창 세례를 베풀다가 보니까, 예수님이 돌아오신 거예요. 그때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요한이 요단강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또 요단강에 오셨어요. 이때 다시 한번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고백을 해요. 그런데 그때 요한 옆에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장 35절부터 37절까지 내용이에요.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고백한 말을 듣고, 갑자기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해요. 기록에 의하면, 이 둘 중에 한 명은 안드레였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아마도 사도 요한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안드레와 요한. 본래 갈릴리 어부였던 두 사람이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 지내고 있다가 예수님께로 편입을 한 거죠.
한편, 안드레는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면서, 시몬을 데리고 예수께로 찾아갔어요. 그 때 예수님이 시몬에게 “게바”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그리고 또 이 다음날에는 예수님이 빌립을 만나셨고, 빌립은 또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가요. 그리고 또 이 다음날에는요,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들이 가나 혼인잔치에 참석합니다.
또 그 뒤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장사꾼들을 내쫓으셨고, 또 그 뒤에는 밤에 니고데모를 만나셨어요. 그리고 유대 땅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러고나서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는데요. 아마도 이때쯤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셨겠죠. 그래서 갈릴리로 가시는데, 예수님이 놀랍게도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남쪽 유대 땅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 땅을 보통은 피해서 빙 돌아서 가는데, 예수님은 그냥 사마리아 땅을 가로질러서 가셔요.
이때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내용까지가 요한복음 4장 42절까지 내용입니다. 여기까지가 1년동안 일어난 사건들이에요. 이 모든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습니다. 오직 요한복음에만 있는 내용이에요.
만약에 요한복음에도 이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진리의 일부분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겁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역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사람이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말씀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도 알지 못했을 거예요. 요한복음 3장 16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예수님의 1년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말씀구절도 알 수가 없었을 겁니다. 2022년에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성경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그래요. 210만 건이나 검색을 했습니다.
2등은 뭐였을까요? 2등은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은 몇 건을 검색했을까요? 이 구절은 8만 2천 건을 검색했습니다. 1등하고 거의 25배 이상 차이가 나요.
다른 모든 성경구절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그만큼 전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죠. 바로 이 사랑스러운 말씀을 예수님이 갈릴리에 가시기 전에 하셨다는 거예요.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1년 동안 예수께서 부지런히, 유대 땅을 돌아다니시면서 열심히 사역을 하셨습니다. 비록 이 내용이 오늘 누가복음 본문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행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공백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빠짐없이 다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 먼 길을 돌아왔는데요. 우리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아멘.
예수님이 1년 동안 사역을 하시고 갈릴리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갈릴리는 예수님의 고향이었고, 그곳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셨어요. 누가도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공백기를 삭제하고, 예수님이 곧바로 갈릴리로 가신 것으로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관심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에 가셨더니, 소문이 사방에 퍼졌어요. 어떤 소문이 퍼졌을까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예수님이 행하시는 사역에 대한 소문이겠죠. 예수님이 1년 동안 유대 땅에서 사역을 하고 오셨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라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고나서야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 소문은 헬라어로 “페메”라고 하는 말인데요. 이 말은 “짧은 진술 혹은 짤막한 보고” 이런 뜻을 가진 말이에요. 그러니까 처음에 예수님에 대해서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예수님에 대해서 짧고 간단하게 수군거리는 정도의 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NIV 영어성경에는 이 말을 “뉴스”라고 번역을 했어요. 뉴스. 예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뉴스가 퍼졌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뉴스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을 하십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 동네에 누가 왔는데. 그 사람이 말을 재밌게 잘 한다더라. 요새 보면은 김창옥씨가 여수에 온다고 플래카드가 많이 붙어있던데요. 그 사람이 여수로, 우리 동네로 온다더라. 이런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칭송을 하지는 않죠.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기는 하지만, 시간이 되면 가고, 안 되면 안 가고. 그냥 그 정도의 반응일 겁니다.
지금 예수님에 대해서 퍼지고 있는 소문이 그런 거예요. 예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말씀도 잘 가르치고, 뭔가 다르다더라. 이 정도의 소문인 거죠.
그런데 바로 밑에 15절에 보면, 그 여론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15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아멘.
예수님이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더니, 그 말씀을 듣고 백성들이 예수님을 칭송하기 시작해요. “칭송을 받으시더라” 소문만 들었을 때는 사람들이 칭송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친히 가르치시는 말씀을 직접 듣고 나니까, 사람들이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예수님을 칭송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이미 열두 살 시절부터 듣는 자가 다 놀랄 정도로 뛰어난 말씀을 하셨거든요.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서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셨더니, 그 말씀을 듣고 모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어요.
열두 살 때도 그러셨는데, 지금은 서른 살이 넘었으니 그 지혜가 얼마나 무르익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지금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요. 그러니 그 말씀 한 마디에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갈릴리 땅이 그래서 뒤집어지는 거예요.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여기서 칭송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독사조” 라는 말이에요. 독사조. 이 말은 “영광을 돌리다, 찬양하다” 이런 뜻입니다. 본래 우리가 영광을 돌릴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죠. 그런데 갈릴리 사람들이 마치 하나님께 하듯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해서 정말로 하나님을 대하듯이 예수님을 대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의 보다 정확한 뜻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서 인정을 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선지자로 예수님을 인정하고 칭송을 했다는 것입니다.
‘야, 소문은 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말씀을 들어보니, 오히려 소문이 과소평가 됐구나. 이 분이 가르치시는 말씀은 정말로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가 있으시구나! 이 분은 하나님의 사람이 분명해!’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칭송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때를 기점으로 점점 더 크고 웅장하게 변해가게 됩니다. 누가복음 4장 37절에 가서 보면, 여기서도 소문이 퍼지는데요. 4장 37절 봐 볼까요?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여기서 소문은 헬라어로 “에코스”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큰 소리” 라는 뜻이에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수군수군하는 차원에서 발전을 해서 큰 소리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5장 15절에 가서 보면요. 여기서도 소문이 퍼져요. 누가복음 5장 15절도 봐 볼까요?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여기서 소문은 헬라어로 “로고스”라는 말입니다. 로고스. “말씀”이라는 뜻인데요. 대체적으로 성경에서 로고스는 두 종류이 말씀으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사람의 말이에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했을 때 이 말씀이 바로 “로고스”인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죠.
반면에 누가복음 5장 15절의 로고스는 사람의 말입니다. 예수님에 관하여 사람들이 하는 말이에요. 그것이 더욱 퍼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제는 단순히 큰 소리의 차원을 넘어서, 자세하고 세밀하게 예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하여 증언하는 형태로 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소문을 퍼트리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말씀과 그 행보에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다보니까, 필연적으로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누구든지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한 번이라도 그 말씀을 듣게 된다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칭송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소문을 퍼트리게 돼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더 교제하고 싶고,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제가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1년간의 공백기를 먼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예수님에 대해서, 상실되는 부분이 없이, 빠짐없이 우리가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 예수님이 하신 행적들, 그 모든 것들을 빠트리는 것 없이. 우리가 온전히 세세하게 살피고 배워서 확실하게 알아야 돼요. 누가복음 1장 4절에, 누가가 무슨 말을 합니까?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사랑하는 여러분, 더 확실하게 알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단지 소문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예배 현장에서 그 말씀을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읽어서 확실하게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칭송하며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넘어트리기 위하여 틈을 노리는 마귀에게 틈을 내보이지 않고, 정확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이 땅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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