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기야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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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52:1-11
“시드기야의 최후”
2024. 7. 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시드기야의 최후”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전체에 있어서 굉장히 독특한 본문인데요. 그 이유는, 오늘 본문을 예레미야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52장 자체가, 예레미야의 기록이 아니에요. 예레미야는 51장까지만 기록을 했어요. 오늘 본문 바로 위에 64절을 보면, 64절 끝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끝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끝났어요. 그래서 이 뒤에 내용은 예레미야가 쓴 게 아닙니다.
주석가들은 그래서 예레미야 52장을 “역사적 부록”이라고 불러요. 예레미야 본내용이 아니라, 부록으로 다른 누군가가 덧붙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바룩”이었을 거예요. 예레미야의 동역자이자, 가장 친밀했던 친구였던 바룩이, 예레미야의 예언이 진정으로 성취되었음을 확실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뒤에다 덧붙인 겁니다.
비록 이 내용이 예레미야 본인이 쓴 것은 아니지만,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고, 또 하나님의 뜻과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성경으로서 인정을 받아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바룩은 자신의 글을 덧붙이면서 먼저 시드기야의 최후가 어떠했는가를 기록했는데요. 남유다의 제20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가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였는가?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역사서의 형식을 따서 시드기야를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아멘.
일반적으로 남유다의 왕조를 기록한 역사서를 보면, 왕을 소개할 때 대체적으로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몇 살 때 왕이 되었는가? 둘째, 몇 년 동안 다스렸는가? 셋째,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가?
이 전통에 입각해서, 시드기야를 소개하고 있어요. 시드기야는 이십일 세에 왕이 되었고, 11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하무달이었어요. 그런데 하무달이 누구의 딸입니까?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죠. 지금 이 예레미야는 선지자 예레미야하고 동명이인입니다. 다른 사람이에요. 유다 서부국경지대에 립나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 출신 예레미야가 하무달의 아버지였습니다. 참고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이죠.
어쨌거나, 시드기야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를 했어요. 역사서에서는 또 왕에 대해서 무엇을 소개하는가 하면, 그의 행실에 대해서 소개를 합니다. 그가 정직한 왕이었는가, 악한 왕이었는가. 오늘 본문 2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절 시작,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아멘.
시드기야가 어떤 왕이었습니까? 악한 왕이었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안타깝게도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이 악한 왕이었어요. 무엇이든지 끝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끝이 너무나 지저분하게 끝났어요. 그래서 그 결말도 그 끝을 따라 너무나 처참합니다.
밑에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셨다고 말씀해요. 이는 왕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 전체가 동일하게 악을 행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왕만 악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민족 전체가 악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지른 악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이미 앞에서 수도 없이 저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 기록을 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는 다루지 않아요. 그저 시드기야가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였는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자, 3절 끝에 보니까,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본래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운 것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었죠. 본래는 시드기야가 왕이 아니라 그의 조카인 여호야긴이 왕이었어요.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쳐들어와서 여호야긴을 사로잡아가고, 그 자리에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시드기야는 무늬만 왕이고,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그 역할에 충실하게 느부갓네살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다가 슬금슬금 다른 나라들과 비밀동맹도 맺고 하면서 반역을 일으킬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바벨론 왕을 배반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정적으로 시드기야가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가장 큰 악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무엇을 명령하셨는가 하면,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을 하라고 하셨거든요. 바벨론에 항복을 하고, 바벨론 왕을 섬겨라. 그러면 네가 죽지 않고 생명을 보존하리라, 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명령을 거역하고, 끝내 바벨론에 배반을 한 겁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겠죠. 다른 나라들과 동맹도 맺었고, 국력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멸망이에요. 오늘 본문 4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바벨론 군대가 유다에 쳐들어와서 파죽지세로 예루살렘까지 진격을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빙 둘러서 포위를 했어요. 그것도 그냥 군대만 포위를 한 게 아니라. 아예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까지 쌓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냐면, 한번에 쳐서 성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포위를 한 상태로 말려죽이겠다는 거예요. 식량이 떨어지고 물이 떨어져서 굶어죽고, 말라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한 번에 쳐서 뭉개버릴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서서히 고통 속에서 죽으라는 것이죠.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벨론이 너무나 국력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군대를 움직인다는 것은 다 돈이거든요. 군대가 하루에 먹는 양만 해도 어마어마해요. 그래서 최대한 돈을 아끼려면, 전쟁을 빨리 끝내야 됩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돈이 넘쳐나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세월아 네월아, 그냥 포위해놓고 기다리는 거예요.
얼마 동안 기다리는가 하면, 1년 6개월 동안 기다립니다. 밑에 5절에 보니까,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고 기록을 했죠. 시드기야 구년 열째 달부터 십일년까지. 이것을 지금 날짜로 따져보면, 시드기야 9년 12월 말부터 11년 7월 초까지입니다. 대략 1년 반, 약 18개월이죠. 이 긴 시간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어요.
이로 인해서, 예루살렘 안에는 식량이 다 떨어져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오게 됩니다. 6절에 봐 볼까요? 6절에 보니까,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성에 기근이 심해서 양식이 다 떨어졌어요. 그러면 밖에서 양식을 사와야 되는데, 적군이 포위하고 있어서 나갈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점점 굶어죽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굶주림을 참다 못해서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람들까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예레미야애가에 기록을 해놨어요. 예레미야애가 2장 20절 말씀인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예레미야애가 2장 20절,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여인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자기 자식을 먹을 정도였겠어요? 그러니까 이때 당시에 예루살렘 안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아시겠죠?
백성들이 굶어서 죽어가는 그런 끔찍한 상황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왕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죽음을 각오하고, 한번 마지막 힘을 짜내서 싸워보든지, 아니면 항복을 하든지. 결단을 해야죠. 그런데 시드기야는 어떻게 합니까? 밤에 몰래 도망을 갑니다.
자, 오늘 본문 7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예루살렘 백성들이 오랫동안 굶어서 기력이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벨론 군대가 대대적인 공세를 펼칩니다. 그래서 성벽이 파괴됐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군사들이 맞서싸우지를 않고 밤중에 도망을 갑니다. 왕도 이때 같이 도망을 갔어요. 성벽이 파괴되고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나 살려라 하고 군사들도 도망가고, 왕도 도망을 가요. 백성들이야 굶어죽든, 칼에 죽든 알 바 아니고, 자기 한 목숨 살겠다고 무책임하게 도망치는 겁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를 못해요. 도망도 제대로 못칩니다. 가다가 잡혀요. 8절에 보니까,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여리고 평지에서 왕이 잡힙니다. 그리고 왕과 같이 도망치던 군대는 왕을 버리고 흩어지죠. 백성들도 버리고 도망치는 판에, 왕이라고 지킬 의리가 있겠어요? 왕도 버리는 거죠. 군대가 다 흩어지고, 왕은 사로잡혀 갑니다. 이때 왕의 아들들도 같이 잡혔어요.
그래서 왕과 아들들이 바벨론 왕 앞으로 끌려가게 되고, 거기서 왕의 아들들이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10절 말씀에 보니까,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다 죽였어요. 백성들을 다 버리면서도 아들들은 챙겨서 같이 도망을 쳤는데, 허망하게도 그 아들들이 다 죽고 만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들들이 죽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 뒤에는 두 눈이 뽑히고 말아요. 가장 끔찍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고, 더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 11절, 마지막으로 같이 읽어볼까요? 11절 시작,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두 눈이 빠졌어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자기 아들들이 죽는 장면이지 않았을까요? 머릿속에 계속해서 그 장면이 떠올랐을 거예요. 나라를 버리고, 백성들을 다 버려도, 포기할 수 없던 아들들이 죽는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무한반복됐을 겁니다. 언제까지요? 죽을 때까지.
11절 끝에 보면,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다고 기록이 돼 있어요. 역사적으로 시드기야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만 기록되어 있어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악을 행한 결과로, 아들들도 죽고, 백성들도 죽고, 나라도 멸망하고, 자기 자신도 어둠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고통 당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내 가족이, 직장이, 교회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일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을 때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참았더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용서했더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나를 먼저 돌아보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때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는 나에게 돌아올뿐만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도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막아야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말씀을 기억하고, 내가 진정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주의하여서, 나와 내 가정과 내 공동체에 오히려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