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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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50:29-32
“사면으로”
2024. 5. 10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사면으로”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바벨론에 대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이 정도 했으면 더 말씀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계속 말씀을 덧붙이셔요. 그만큼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크시다는 것이죠.
자, 오늘 본문 29절을 다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가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라.” 아멘.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또다른 방식이 오늘 본문에 등장을 하는데요. 활 쏘는 자를 소집해서 바벨론의 사면으로 진을 치라고 하십니다. 특별히 여기서 “사면으로” 라는 말이 중요해요.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으로 삼았는데요.
이 “사면으로”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사비브”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면, 사방, 주변”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왜 이 말이 중요한가 하면, 이 말이 32절에 다시 한 번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32절 한번 읽어볼까요? 32절 시작,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리니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키리라.” 아멘.
이 말씀에 “사비브”가 나와요. 32절 끝에 “주위에” 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이 “사비브”입니다. 히브리어 문법에는 그 구조형식 중에서 “인클루지오 구조” 라는 것이 있어요. 인클루지오. 우리 말로 하면 “수미쌍관”이라는 말입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샌드위치 구조예요. 똑같은 단어나 문장을 위아래에 배치함으로써 그 사이에 있는 내용을 강조하는 겁니다. 오늘 이 “사비브”라는 단어로서 수미쌍관을 이루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볼 때, 32절의 번역이 조금 아쉽습니다. 29절에서 사면이라고 했으면, 32절도 동일하게 사면이라고 해야 수미쌍관 구조라는 것이 잘 드러나거든요. 그런데 32절에서는 “주위”라고 번역을 했어요. 똑같은 히브리어를 왜 각각 다르게 번역을 했을까? 옛날 성경에는 32절도 사면이라고 돼있거든요. 그런데 개역개정으로 바뀌면서 사면을 주위라는 말로 바꿨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판단이 아쉬워요.
어쨌거나, 오늘 본문은 수미쌍관, 인클루지오 구조의 단락입니다. 위아래에서 똑같은 “사비브”라는 단어로 안에 있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비브의 뜻을 다시 보면, “사면” 바벨론의 사면이죠. 바벨론을 사면으로 진을 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위에서도 사면으로 진을 치고, 밑에서도 사면으로 에워싸서 다 삼킨다고 하고 있어요. 그야말로 물 샐 틈 없이, 철저하게 바벨론을 에워싸서 죽이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자, 29절을 다시 보면요. 활 쏘는 자를 소집해서 바벨론을 사면으로 진을 칩니다. 그리고 피하는 자가 없게 빈틈없이 에워싸게 해요. 그리고 바벨론이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이 다른 나라를 에워싸고 공격한 것처럼, 그것과 똑같이 바벨론에게 돌려주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밑에 30절에 보면, 그 공격의 결과를 말씀하는데요. 30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그 날에 장정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군사들이 멸절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사면을 에워싸서 공격을 하니까 장정들과 군사들이 멸절되어 버립니다. 싸울 수 있는 병력이 다 전멸을 한 거죠. 특별히 지금 이 30절 말씀은 앞에 49장 26절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성경을 앞으로 넘겨서 49장 26절을 찾아 볼까요? 49장 26절을 찾아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찾으셨으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아멘.
똑같은 말씀이에요. 그 날에 장정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군사들이 멸절되리라. 49장 26절은 다메섹에 일어나는 멸망입니다. 바벨론이 멸망시킨 거예요. 바벨론이 다메섹을 쳐서 장정들과 군사들을 멸절시켰어요.
그리고 이제는 바벨론이 자기가 한 그대로 똑같이 당하는 겁니다. 장정들과 군사들이 멸절되는 거예요.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 행한 대로 당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밑에 31절에 보면요. 또 하나의 수미쌍관이 나와요. 31절 같이 읽어볼까요? 31절 시작,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저가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아멘.
이 말씀에 보면 “교만”이라는 말이 있죠. 그리고 29절로 올라가서 보면, 끝에 교만이라는 말이 또 있어요. 이 말은 히브리어로 “지드”라는 말입니다. 지드, “교만하다” 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을 29절에서 하고 또 31절에서 반복함으로써 이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바벨론이 왜 멸망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지드, 교만하고 또 교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면으로, 사면으로 에워싸여서 멸절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단락의 핵심이에요.
다시 말해서, 위 아래가 사면으로 에워싸이는데, 그 안에 보니까 그들이 에워싸이는 이유가 있더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교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면으로 에워싸인 그 안에, 그들의 교만이 너무나도 심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철저하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교만하게 되면 사면이 에워싸여서 피할 길이 없어요. 교만이라는 것은 곧 나를 높이는 것이죠. 29절에 보면, 교만은 여호와를 향하는 것입니다. 나를 높여서 하나님보다 그 위에 놓는 겁니다. 이것이 교만의 본질이에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옳다는 여기는 것. 바벨론은 본래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지만, 그 역할에서 벗어나 자기 생각대로 힘을 휘둘렀어요.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이 바벨론을 잡고 휘두르셔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휘둘렀어요. 천지분간을 못하고 난리를 친 겁니다. 이것이 교만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곧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내가 왕이 되겠다고 봉기를 일으키는 겁니다. 그러나 그 반역은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죠. 하나님을 상대로 반역을 성공할 수가 있겠습니까? 볼 것도 없이 실팹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대가는 멸망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의 명령을 따르는 백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겸손하게 나를 낮추시기를 바랍니다. 시작과 끝이 겸손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 인생이 오직 주의 은혜와 평강으로 사면과 사면이 감싸여 충만하여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