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구원자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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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50:33-46
“그들의 구원자”
2024. 5. 1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그들의 구원자”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서 학대를 받는 유다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바벨론을 쳐서 멸망시키리라는 내용의 단락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셨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요.
오늘 본문 33절을 보면, 마치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이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던 모습과 흡사한데요. 3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아니하리라.”
바벨론이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을 붙잡아놓고 학대를 하고, 놓아 주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과거에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면서 놓아 주지 않은 모습과 똑같아요. 이스라엘 자손이 숫자가 불어나니까 힘든 일을 시키고 학대를 했죠. 나중에 모세가 아론과 같이 바로에게 가서 풀어달라고 해도 바로가 풀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학대하며 힘든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재앙이 내렸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바로가 마음이 완악해서 보내주지를 않았습니다. 마치 이때의 모습과 같이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이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 겁니다. 백성들을 학대하며 힘든 노역을 시키고, 보내주지를 않았어요.
애굽에서는 백성들에게 벽돌 만드는 일을 시켰다면, 바벨론에서는 강가에서 제방을 쌓는 일을 시켰습니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시킨 거죠. 제방을 높이 쌓아서 강물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한 겁니다.
이 당시에 뭐 근로기준법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주5일제가 있겠습니까? 인권도 없는 시대이고, 또 전쟁 포로로 끌려왔다 보니까, 가축 부리듯이 일을 시키는 거예요. 죽든지 말든지 가혹하게 일을 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것처럼, 바벨론에서도 이끌어내십니다. 오늘 본문 3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반드시 그들 때문에 싸우시리니 그 땅에 평안함을 주고 바벨론 주민은 불안하게 하리라.” 아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그가 그들을 위해서 대신 싸우셔요. 그들의 구원자. 그런데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 여기서 우리가 “강하니” 라는 말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 말은 히브리어로 “하자크” 라는 말입니다. 하자크. 이 말은 “강력한, 튼튼한” 이런 뜻이에요. 말 그대로 하나님이 무엇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 말이 중요한가 하면, 위에 33절에 나온 단어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3절 끝에 “붙들고” 라는 말이 바로 그거예요. “붙들고” 이 말은 히브리어로 “헤지크” 라는 말입니다. 헤헤지크. 이 말은 “강하게 붙잡다, 압도하다” 이런 뜻입니다.
하자크와 헤지크, 발음이 비슷하죠. 발음도 비슷한데, 사용된 자음도 같습니다. 모음만 다르고 자음이 같아요. 바로 이것을 가지고 언어유희를 통해 두 단어를 연결시키는 겁니다. 같은 자음과 비슷한 발음, 이것을 이용한 언어유희가 성경에 굉장히 많아요.
자,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 두 단어를 다시 살펴보면요. 바벨론이 백성들을 헤지크, 붙들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구원자는 하자크, 강하십니다. 바벨론이 붙들지만, 구원자는 강하시다. 이것을 두 개의 단어로써 연결을 시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바벨론이 유다 백성들을 붙들고 있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시기 때문에, 능히 백성들을 이끌어내실 수 있다는 말씀으로 연결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밑에 35절부터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바벨론에 내리게 되는데요. 특별히 그 심판을 “칼”이라는 말로써 표현을 합니다. 35절부터 37절까지 “칼”이 총 다섯 번 나와요. 그런데 그 칼이 다 어떻게 합니까? 바벨론 위로 떨어지죠. 35절에는 “칼이 갈대아인의 위에와 바벨론 주민의 위에와 그 고관들과 지혜로운 자의 위에 떨어지리라” 36절에서는요,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지고, 용사의 위에 떨어져요. 또 37절에서는요.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과 그들 중에 있는 여러 민족의 위에 떨어지고, 또 보물 위에 떨어집니다.
이처럼 바벨론의 주민이며, 고관들이며, 지혜로운 자들이며, 용사들이며, 보물이며 할 것 없이, 바벨론 전체에 칼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심판이 일어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에요.
그리고 또 뿐만 아니라, 38절에서는 가뭄이 내립니다. 가뭄이 물 위에 내려서 물이 다 말라버려요. 그런데 여기서도 또 언어유희가 나옵니다. 칼과 가뭄. 칼은 히브리어로 “헤레브”입니다. 그리고 가뭄은 “호레브”입니다. 헤레브, 호레브. 같은 자음과 비슷한 발음. 이것을 가지고 두 단어를 연결하는 거예요.
칼이 바벨론 위에 떨어지고요, 또 가뭄이 물 위에 떨어져요. 그러니까 바벨론 사람도 칼에 죽고, 물도 가뭄에 죽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바벨론 땅에 사람도 사라지고, 물도 사라져요. 그러다보니까 밑에 39절에 보면, 사막의 들짐승과 승냥이와 타조가 그 땅에 들어와서 살게 되리라고 말씀해요. 물이 다 말라버리니까 사막처럼 돼버리는 거죠. 그래서 본래 사막에 살던 짐승들이 와서 사는 겁니다.
완전히 땅이 망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40절에 가서 보면, 그 땅이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리라고 말씀해요. 4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을 뒤엎었듯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게 하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시리라.” 아멘.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타서 흔적이 없이 사라진 것처럼, 바벨론도 칼과 가뭄에 의해서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더이상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황폐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한때는 그들이 열방을 떨게 만드는 강력한 나라였어요. 하자크,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그보다 더 강력하십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붙잡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바벨론 위에 칼을 내리고, 가뭄을 내려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 멸망밖에는 없습니다.
반대로 비록 우리가 바베론 강가에서 학대를 당하고 힘든 노역을 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져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강하신 구원자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도, 강하신 하나님의 팔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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