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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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1:9~12
20201116(월) 20240807(수)
○ 내용과 구조
1:1~2 역사적 배경, 예언자의 이름 소개, 아모스의 선포의 모토
1:1 아모스 전체의 머리말이자 제목
1:2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선포, 아모스서 전체의 성격, 즉 고발과 심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3부터 구체적인 내용 전개, 이스라엘과 주변 열방에 대해서 고발하고 심판을 선언한다.
다른 예언서들은 멀리 있지만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 강대국에 대한 말씀이지만, 아모스는 이스라엘과 인접한 나라들만 다룬다. 이 시기에 강대국의 영향이 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1:1에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고 되어 있으나, 먼저 주변 나라들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청중은 주변국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방 나라들에 대한 고발과 심판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범죄한 이방 백성과 하나님 나라 백성 모두 심판의 대상임을 기억하라. 차이가 있다면 죄의 내용일 뿐이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죄에 대한 고발이나 심판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길고 상세하게 나온다. 이방 나라들에 대한 말씀은 결국 이스라엘을 위한,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다. 그들을 압박하고 경고하고 고발하기 위한 과정이다.
1:3~2:16 이스라엘과 이웃한 일곱 이방 민족들에 대한 고발과 심판의 말씀
동일한 도입 어구 :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의 서너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1:3, 6, 9, 11, 13; 2:1, 4, 6)
이스라엘과 차이 : 다른 나라에 비해 분량이 길고 ‘하나님이 불을 보낼 것이며 궁궐들을 사르리라’는 표현이 없다. 앞의 일곱 나라와 이스라엘(7+1) 패턴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 아모스가 전하는 말씀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을 일인칭으로 묘사,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직접적으로 표현. 예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을 가진 자. 하나님은 땅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 백성만이 아니라 이방 나라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다스리신다. 일상의 문제가 하나님과 연결된다. 이스라엘과 유다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다. 그들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그들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성별하신 하나님이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특별한 존재가 된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너 가지 죄 : 하나님이 나라를 심판하는 이유를 설명, 문자적인 서너 가지가 아니라, 죄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죄로 번역한 단어는 ‘권위에 거역하고 연합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정치적인 용어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거역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 나라들도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드러낸다. “온 세상의 하나님” 사상이다.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않으리니 :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을 뒤집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하나님의 의지를 표현
③ 1:9~10 두로에 대한 고발과 심판 : 언약 위반과 인신 매매
두로는 시돈과 더불어 페니키아 도시를 대표.
두로에 대한 심판 이야기는 이사야 23:1~18; 에스겔 26~28장에도 나온다.
9절: 두로의 죄 : 가사처럼 모든 사로잡은 사람들을 에돔에 팔아 넘긴 것. 여기서는 그런 행동이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형제의 계약을 맺은 언약(두로의 히람과 솔로몬이 맺은 동맹, 왕상 5:12)을 파기한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어떤 조약이 맺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어기고 전쟁 포로에 대해 노예로 팔아 넘긴 것을 문제 삼고 있다.
10절: 심판 선고
④ 1:11~12 에돔에 대한 고발과 심판 : 형제에 대한 분노와 잔인함
에돔에 대한 심판 : 예레미야 49:7~22; 에스겔 25:12~14; 35:1~15; 오바댜; 이사야 34:1~7
에돔은 에서의 후예, 즉 이스라엘(야곱의 후예)과 형제 국가이다.
11절. 에돔의 죄: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맹렬한 노와 끝없는 분을 품었다
-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 형제 관계에 대한 배신
- 긍휼을 버리며 : ‘버리다’는 ‘파괴하다’, ‘죽이다’에 쓰이는 동사. ‘긍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유래, 긍휼은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를 향한 사랑, 그 태에 품은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다.
- 맹렬히 화를 내며 : 그의 분노가 영원토록 있다.
긍휼이 풍성하시고 노를 한 없이 품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반대다. 이 본문은 에돔의 잔혹함을 부각시킨다.
에돔은 칼로 형제를 위협하며 뒤쫓았고 형제에게 마땅히 품어야 할 긍휼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는 자동차 같았다. 한번 품은 분노가 영원히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자신에게 끼친 작은 피해를 몇 배로 갚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가인의 자손 라멕을 떠올린다(창 4: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심판을 기록한 예언서다. 오바댜는 이렇게 기록한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1:10)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1:12)
바벨론 포로 시대를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의 시편에서도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시 137:7)
에돔은 자신보다 훨씬 약한 형제 나라가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향한 긍휼을 버리고 포학으로 대한 것, 약한 자들을 짓밟은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12절. 에돔에 대한 심판
데만과 보스라 : 에돔의 북쪽과 남쪽의 경계, 에돔 전역을 의미
⑤ 1:13~15 암몬에 대한 고발과 심판 : 비인간적인 야만 행위
얍복강 남쪽 지역에 있는 자신들의 주거지를 확장시킬 목적으로 요단강 동쪽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킴
13절 : 암몬의 죄 : 길르앗 사람의 아이 벤 여인의 배를 갈랐다. - 보복의 씨를 제거
14절 : 하나님의 심판
⑥ 2:1~3 모압에 대한 고발과 심판 : 시체의 능욕
⑦ 2:4~5 유다에 대한 고발과 심판 : 율법의 멸시
⑧ 2:6~16 이스라엘에 대한 고발과 심판 : 네 가지 죄악에 대해서 열거
인신매매(6), 가난한 자 압제(7a), 성적 타락(7b), 채무자 착취(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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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 이스라엘에 대한 고발과 심판의 말씀 :
폭력행위, 사마리아 탄압과 같은 사회적 비판, 제의 및 법의 왜곡에 대한 비판
① 4:4~5 변질된 예배
② 5:21~24 공법과 정의가 결여된 예배
7:1~9:10 아모스가 본 다섯 가지 환상
① 7:1~3 메뚜기 환상
② 7:4~6 불 환상
③ 7:7~9 다림줄 환상
7:10~17 아모스와 아마샤의 대결
④ 8:1~3 여름실과 환상
⑤ 9:1~4 제단 파괴 환상
9:11~15 구원의 말
20240807(수) 아모스 1:9~12
○ 상황
두로와 에돔에 대한 고발과 심판의 말씀이다. 두 나라에게 공통점은 형제 나라에 대해서조차 잔인한 폭력성을 휘두루고 있다는 점이다. 긍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포학과 잔인함으로 형제 나라를 대하는 두로와 에돔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 도전
하나님은 전쟁 상황이라도 지나친 폭력성에 대해서,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동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분노가 생길 때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조절하는가의 문제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한 지점임을 깨닫는다.
○ 변화
원수 된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고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긍휼을 묵상하기
화가 나는 상황에서 내가 주인 행세하지 않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기
○ 기도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폭력성, 잔인함을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었지만,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가는 실제적인 변화가 따라오지 못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지 못할 때가 있음을 시인합니다. 다시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결단하고 연습합니다. 하나님을 닮아 사랑과 긍휼이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선포합니다. 오늘도 저를 다스려 주소서. 우리 석교교회가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와 긍휼을 경험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