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청년부 여름 수련회 개회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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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져 있는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신 사건은 사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진 사건입니다.
마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신 사건 이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가에 도착하여서 산에 올라가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는 언급만 하면서 구체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마 15:29-31).
누가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시다” (눅 9:20)로 연결이 되면서 예수님과 서기관들의 논쟁인 장로들의 전통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그리고 이방인 전도와 칠병이어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학적인 특징을 모두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마가는 왜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전도여행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신 두로 지역에서 시작되어서 35 Km (22 miles) 정도 북쪽인 시돈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이방인 지역인 데가볼리 지방(시돈의 동쪽, 갈릴리 호수의 북쪽)을 통과하셔서 갈릴리 호수에 도착하셨습니다.
두로 => 시돈 => 데가볼리 지방 => 갈릴리 호수
본문 32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에 도착한 예수님께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성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막 7: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본문 32절에 기록되어져 있는 헬라어 명사 가운데에서 “모기라로스” (μογιλάλος)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한번 사용이 되어지는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말하기가 어려운”이란 의미의 형용사입니다. 청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마가는 이 단어를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 단어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간청을 들으시고 이 남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이 33-35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33절 상반절에 예수님께서는 이 남자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리고”(κατʼ ἰδίαν)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가복음의 특징 중 하나가 예수님이 이렇게 사역을 비밀스럽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고요, 마 가복음 5장에 야이로의 딸을 고치실 때도 따로 고침받는 자를 부르십니다.
비밀스럽게 누군가를 고치시는 이런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요?
오늘 본문 직후에 나오는 본문이 어떤 내용인지 아시면 마가가 어떤 의도로 본문을 썻ㄴ느지 알게됩니다.
오늘 본문 직후의 본문이 뭐냐면 바로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이 신앙 고백이 우리가 사도신경의 근간이 된 고백이라고도 주일 설교를 통해서도 듣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지금 이 벳세다의 맹인을 고친 직후 성경에서 정말 중요한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의 내용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메시아의 비밀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비밀스럽게 고치셨던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자를 고쳐 주신 사건도 공개되어집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이 복음을 들었을 때에 마음의 문이 열려서 입술로 믿음을 고백하게 된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33절 중반절에서 3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치유 행동은 다섯 단계로 구분이 됩니다.
(막 7:33) …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1) 손가락을 귀에 넣고, 2) 침을 뱉어, 3) 혀에 손을 대시며, 4) 탄식하시며, 5) 에바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침을 뱉었다는 표현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데 1세기 예수님 시대의 기적의 행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상황 가운데에서 침을 뱉는 치료 행위가 있으셨는데, 요한복음 9장 6-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고쳐 주실 때에도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치료 행위의 마지막은 아람어로 “에바다”(εφφαθα)라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아람어를 알지 못하는 헬라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마가는 헬라어 번역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열리라”(διανοίχθητι)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자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졌습니다.
(막 7: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이번 수련회를 통해 청년부 공동체 안에서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제가 이번 주 기도회를 통해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이 마음입니다.
만약에 이번 수련회에 준비된 많은 것들이 객관적으로 좋다고 여겨질지라도, 여러분은 이 수련회를 통해 아주 조금의 은혜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번 수련회에 정말 준비된 것이 적은 것 같고, 열악한 상황, 환경으로 수련회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이전에 받지 못했던 큰 은혜를 받게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수련회 자체가 중요한 것보다, 여러분의 마음이 열려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이 굳게 닫혀있고, 계속해서 수련회 안에서 그 닫힌 마음으로 수련회를 임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임할 수가 없습니다.
굶주린 자는 음식을 먹어야 삽니다.
목 마른 자도 물을 마셔야 삽니다.
그런데 굶주리고 배고픈 자가 입을 꾹 닫고 있는다면, 그 어떤 좋은 음식과 시원한 물이 준비되어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코 굶주림과 목마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수련회 가운데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주시기 위하여 언제나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의 문이 닫혀있다면, 준비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레크레이션, 공동체 프로그램과 또 집회를 통해서, 그리고 내일 저녁집회를 통해서, 토요일은 야외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과 공동체의 사랑의 나눔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을 청종해야합니다.
심지어 여러분 야외 활동을 나가는 것조차도 절대로 그냥 계곡을 놀러가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계곡을 가는 것을 마치 수련회 이후의 뒷풀이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 활동은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제입니다.
내일 설교 때도 얘기하겠지만, 그 자리는 은혜를 입고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잔치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마음 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고 계십니다. “에바다” “열리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