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전서 3:-9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
2024. 8. 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오셔서 구원의 비밀을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을 함께 나눴는데요. 구원의 비밀은 세상의 지혜로는 깨닫지 못하고,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예수를 믿은 바로 그 순간에,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거듭나게 하시고, 내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가 다 성령을 받고, 구원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다 성령을 받았고, 구원의 비밀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답답하게도, 성도들이 여전히 예수 믿기 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처럼,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 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옛 본성을 잊지 못하고, 육신에 속한 자로 살고 있어요.
그것이 얼마나 답답했던지,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어린 아이”라고 핀잔을 주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1절 시작,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바울이 하는 말이에요. 내가 너희들을 신령한 자들을 대하듯이 말을 하고 싶은데, 지금 너희 수준이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는 거예요. 너희가 딱 어린 아이 수준이다. 너희가 신령한 자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육신에 속한 자, 아직까지도 어린 아이에서 자라지 않은, 딱 그 정도 수준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어린 아이가 헬라어로 “네피오이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젖먹이”라는 뜻입니다. 젖을 먹는 아주 어린 아이를 뜻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고린도교회가 유치원생 정도의 수준도 아니고, 아직 돌도 안 지난, 갓난아기 수준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밑에 2절에 이렇게 덧붙여요.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갓난아기 수준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밥을 안 먹이고 젖을 먹였다.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그만큼 고린도교회가 영적으로 너무나 수준이 낮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수준이 높았으면 교회가 분열이 됐겠습니까? 애초에 파당을 짓지도 않았겠죠. 수준이 높았다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갓난아기 수준에서 자라지를 않았어요. 여전히 젖먹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면서 처음에 복음을 가르칠 때, 그때는 당연히 사람들이 예수가 누군지도 몰랐기 때문에, 젖을 먹이듯이, 아주 기초적인 분유 수준의 복음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이제 그때로부터 못해도 최소 3년의 시간이 지났어요. 바울이 주후 50년에 처음 고린도에 도착했고, 4년 뒤, 54년에 고린도전서를 기록했거든요. 그러면 최소 3년에서 4년의 시간이 지난 겁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에, 고린도교회가 전혀 자라지 않았다는 거예요. 갓난아기도 3년이 지나면 이미 분유를 졸업해서 이유식을 먹고, 이유식도 졸업해서, 밥을 먹거든요. 제 딸이 지금 세 살인데, 어른들 먹는 밥을 같이 먹어요. 그만큼 3년이라는 시간이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여전히 젖을 먹는다는 겁니다. 2절 끝에 뭐라고 합니까? “지금도 못하리라” 지금도 밥을 못 먹는다는 거예요. 여전히 젖먹이 수준에 있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서 3절에, 바울이 다시 한번 더 고린도교회를 “육신에 속한 자”라고 책망하는데요. 3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교회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이 모두 하나님의 뜻과 반대 되는 삶을 살아요. 시기가 있고, 분쟁이 있고, 또 사람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고 있더라는 겁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 자, 이것이 바로 육신에 속한 잡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교회를 분열시켜요. 밑에 4절에 보니까,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지금 교회가 어떻게 분열되어 있습니까?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이렇게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파당을 만들어서 분열이 됐죠. 분명히 복음은 하나고,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분도 예수님 한 분인데, 희한하게 서로 편이 나눠진다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사람을 따라 행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의 팬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팬덤을 깨야 겠다고 생각을 해요. 저들이 열광하는 리더들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겠다는 거예요. 자,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 6절 7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아멘.
나는 씨앗을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하지만, 나나 아볼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심으면 뭐합니까? 아무리 물을 주면 뭐합니까?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바울도 사람인데, 왜 자기가 고생한 것을 생색내고 싶지 않았겠어요? 내가 이 더러운 도시에서 1년 6개월이나 죽을똥 살똥 온갖 고생을 해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었겠죠. 바울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모든 공로를 미련없이 버려버립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성도들이 나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바울을 따르는 바울파는 바울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어요. 바울의 그 위대한 능력, 그의 놀라운 인생 스토리, 그의 카리스마, 리더십, 이러한 환상에 빠져서 주님을 보지 않고, 바울만 바라보고 있어요. 이 환상을 깨야 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한 것은 주님 명령 따라서 그냥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만 했다. 너희가 보기에는 이것도 대단하게 보이겠지만, 그러나 내가 대단해봤자 사람에 불과하지 않냐. 왜 진정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느냐?’
바로 이것이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을 보면, 우리는 실망을 해요. 바울도 사람들이 실망하는 걸 보세요. 저 위대한 바울도 사람들이 평가를 하고, 비판을 하는 판국에, 지금 세상에 비판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람을 보면, 우리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찬양도 있잖아요.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뵐 때, 나는 만족하였네.’ 아멘.
사람을 봐서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뵐 때에만이, 만족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어느 공동체에서도. 사람을 따르고, 편을 가르고, 과도한 경쟁을 하고, 이 모든 것은 육신에 속한 일입니다. 아직도 젖을 떼지 못하고 옹알이나 하는 갓난 아기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우리는 그 수준을 넘어야 돼요. 내가 예수 믿은지,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나도록 자라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성령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내 수고, 내 헌신, 내 공로, 이 모든 것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이 다 알고 계셔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상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8절에,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아멘.
남이 좀 안 알아주면 어떻습니까? 우리의 모든 수고는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생의 자랑에 연연하지 말고, 내 눈에 보이는 저 사람의 환상 속에 갇혀있지 말고, 하루하루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날마다 영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여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