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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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전서 2:1-5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2024. 8. 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컵 안에 물이 들어있습니다. 깨끗한 물이에요. 그런데, 이 물이 너무나 맑고 투명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싱거워 보여요. 보는 맛도 없고, 밍숭맹숭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기 좋으라고, 빨간 잉크도 넣고, 파란 잉크도 넣고, 노란 잉크도 넣고. 자기 소견에 따라서 계속 첨가물을 집어넣어요.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될까요? 깨끗했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온갖 색깔이 뒤섞여서 더러워지겠죠.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 이것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복음에 사람의 말과, 지혜가 들어오고, 수사학이 들어오고, 철학이 들어오고, 정치가 들어오고, 세상풍조가 들어오면, 그것은 더이상 복음이라고 할 수가 없죠. 깨끗했던 복음 본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무언가로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에 다른 것을 첨가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첨가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이든지 간에 집어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 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절 시작,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아멘.
바울이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더하면 더할수록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더러운 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다 배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밑에 2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2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가 없어요. 복음이 복음으로써 전달되도록,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듣는 입장에서는 복음이 재미가 없고, 심심하고, 미련하게 들릴 수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바울은 인간적인 욕심을 다 버리고, 자신이 전해야 할 것만을 전했습니다. 듣는 자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든지, 저들이 듣고 좋아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깨끗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일찌기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서 고린도에 왔습니다.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일행과도 떨어져서 혼자뿐이었고, 수중에 돈도 없었고, 심지어 빌립보에서 많은 매를 맞고 와서 몸도 성치가 않았습니다.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노숙자의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그때 당시에 바울이 심히 두려워하였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3절에 보니까,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이 처한 모든 상황이 그를 두렵게 했습니다. 계속된 실패와, 혼자서 아무것도 없이 사역을 이어가야 한다는, 그런 막막함이 그를 에워쌌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그가 체류하고 있는 고린도라고 하는 도시가 가진 악명이 그를 두렵게 했을 겁니다.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음란하고 타락한 도시, 소돔을 능가한다고 할 정도로, 우상숭배와 동성애와 온갖 음란한 풍습이 가득한 이곳에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복음을 전하다가 여기까지 쫓겨온 내가 여기서 또 복음을 전해봤자, 복음이 제대로 전해질까? 이러한 의구심이 들었을 거예요.
우리가 바울의 입장이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심약한 사람이라면, 고린도를 즉시 떠났겠죠. 고린도보다는 조금 형편이 나은 도시를 찾아서 옮겨갔을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담대한 사람이라면, 까짓것 여기서 한번 해보자고 용기를 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자, 만약에 우리가 담대해가지고, 고린도에서 한번 사역을 하기로 작정했다고 해보죠. 그러면 우리가 뭘 준비해야 될까요? 고린도에서. 일단은 이전의 실패를 돌아보고, 피드백을 하겠죠. ‘왜 실패했지? 아, 이래서 복음이 안 먹혔구나. 이래서 전도가 안 됐구나’ 피드백을 하고, 새롭게 전도전략을 세울 겁니다.
그러면서 혼자서 시뮬레이션을 해요. ‘이런 반응이 오면, 내가 이렇게 말을 해야지. 이것을 물어보면, 이렇게 설명을 해야지’ 모든 논쟁과 공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빈틈이 없이 준비를 할 겁니다. 수사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온갖 미사여구를 첨가하고, 누구라도 듣고 설득될 만한, 그런 전도법을 준비하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일절,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아요.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어요. 그저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만을 손에 들고 갔습니다. 아무런 맛도 없는, 투명한 생수만 들고 가는 겁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우리가 여러 좋은 전도법이나 전도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죠. 배우고, 연구하고, 시대에 맞춰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죠. 다만, 우리가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관심과 열정을 복음에 집중시키라는 거예요. 본질을 놓치고서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바울은 본질에 집중했어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반면에, 고린도 시민들은 손에 화려한 것들을 들고 있죠. 빨간 물, 파란 물, 무지개 물, 뭐 위스키며, 소주며 맥주며, 양주며, 온갖 것을 들고 있어요. 거기서 과연 생수가 경쟁력이 있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두려웠습니다. 사람들이 생수를 거들떠도 안 볼까봐, 여기서도 실패할까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 가운데서, 바울이 작정한 것은, 이 생수 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또 실패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실패하면 뭐 어떻습니까? 또 하면 되죠. 한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빌립보에서 실패해서 데살로니가로, 데살로니가에서 실패해서 베뢰아로, 베뢰아에서 실패해서 아덴으로. 이처럼 실패를 반복했지만,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또다른 선교지로, 또다른 사역의 환경으로 가서 다시 도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비록 나는 실패할지라도, 그러나 복음은 승리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40장 8절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아멘.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들고, 우리가 전도하는 모든 수고가 허무하게 스러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그저 말씀의 씨앗을 심기만 하면 돼요. 우리가 당장 그 결과물을 볼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열매가 맺힐 것을 기대하며, 전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바울이 세웠다고 하지만, 사실은 바울이 세운 게 아니죠. 하나님이 세우신 겁니다. 바울은 복음의 씨앗을 심기만 했어요. 그것을 싹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가운데, 특별히 우리 여수 땅 가운데, 목이 말라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생수보다 좋은 것이 없어요. 우리 같이 찬양했죠?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여러분,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전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전도의 열매를 맺으실 분도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 이름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오늘 아침에 전도를 하러 나갑니다. 어제 한성교회 성도님들이 오셔서 저녁에 전도를 하고 왔어요. 웅천 해변에서 다같이 전도를 하고 왔는데요. 오늘도 전도하러 갑니다. 여러분, 함께하십시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아침에 합니다. 아침 8시 반까지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출발합니다. 이 여수 땅을 살려보겠다고, 저 멀리 서울에서도 달려왔잖아요.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바울이 두려움 가운데서도 고린도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1년 6개월 동안이나 그 타락한 땅에서 영적 싸움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곳에, 목이 말라 죽어가는 갈급한 영혼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들에게 생수를 전달해야 합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그들로 마시게 하고,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내야 합니다. 이 일이 대부분은 실패할 것이지만, 그러나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서, 우리가 달려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전하고, 십자가를 전하여서 이 여수땅을 복음화시키고, 이 한반도 땅을 복음화시키고, 세계 열방을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