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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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전서 1:1-9
“하나님의 은혜”
2024. 7. 1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첫 설교를 시작하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들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었는데요.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를 총 몇 통 보냈다고 했습니까? 총 네 통을 보냈다고 했어요. 그것을 고린도A서, 고린도B서, 고린도C서, 고린도D서로 분류한다고 했는데요. 먼저 고린도A서와 고린도C서는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실되어서 지금은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고린도B서와 고린도D서만 남았는데, 고린도B서가 고린도전서고, 고린도D서가 고린도후서라고 제가 설명을 드렸었습니다.
바울이 한 교회에 이처럼 네 번이나 편지를 써서 보낸 경우는 없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유일해요. 그만큼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고린도교회가 문제가 많은 교회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에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수많은 배가 오고가는 물류의 중심지였고, 그래서 수많은 인종이 모여 있는 인종의 도가니였어요. 그러다보니까 당연히 온갖 우상들이 가득하죠. 신전도 많고, 이상한 풍습도 많아요.
바울 시대에 고린도는 그야말로 타락과 방종의 도시였어요. 도시의 인구는 약 80만명 정도 됐는데, 그 중에 절반 이상이 노예였습니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극심했고, 부유한 자들은 쾌락을 쫓아서 술을 마시고,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고린도에서 유명한 게 아프로디테 신전이에요. 아프로디테가 헬라어로 하면 아프로디테고, 라틴어로 하면 ‘비너스’로 불립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하면 ‘아스다롯’. 성경에 ‘아스다롯’이 나오죠. 이게 아프로디테를 가리키는 겁니다. 똑같은 신인데 문화권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달라요.
어쨌거나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항상 1,000명의 여자 사제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이 여자 사제들이 주로 하는 일이 매춘이었어요.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신전에서 천 명이나 되는 매춘부들이 날마다 영업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도시가 꼴이 어떻겠어요? 정상이 아니죠. 더군다나 고린도는 또 동성애의 중심지였습니다. 도시에 아폴론 신전이 있었는데, 아폴론은 남자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숭배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육체미에 빠지다못해 남자를 사랑하게 돼버렸어요. 고린도전서에서 심각하게 다루는 문제 중에 하나가 동생애 문제인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린도가 온갖 타락과 방종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에 고린도가 타락과 방종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누가 고린도인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음탕한 사람, 하고 자동적으로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때 당시에 “코린티아제스타이”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코린티아제스타이. 이 말은 “고린도인 행세한다” 이런 말입니다. 누가 음탕한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 사람 보고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어, 저 사람 고린도인 행세하네”, “고린도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네”
그만큼 고린도가 타락과 방종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타락한 땅에 어느날 바울이 들어가게 된 겁니다.
바울이 사실 고린도에 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에요. 어쩌면 다른 데는 다 가도, 고린도만큼은 안 가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악명이 자자한 도시다 보니까, 어차피 가봤자 복음이 전해지지 않을 것을 알거든요.
고린도에 오기 전에 바울은 계속 도시에서 도시로 쫓겨나는 처지였습니다. 본래 바울은 환상 중에 누군가가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왔거든요. 그런데 가는 도시마다 문제가 일어나요. 분명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왔는데, 이상하게 순탄치가 않습니다.
빌립보에서는 감옥에 갇혔다가 쫓겨났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밤에 도망을 쳤고, 베뢰아에서도 또 유대인들이 난리를 쳐서 도망을 쳐야 했습니다. 심지어 베뢰아에서 도망을 칠 때는 상황이 하도 급박해서 실라와 디모데와 헤어져서 혼자서만 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아덴에 갔어요. 아덴에서 혼자 열심히 복음을 전해봤지만, 큰 수확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고린도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고린도에 들어가는 바울의 모습이 어땠을까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제대로 된 열매도 없고, 또 일행도 없이 혼자 왔어요.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옷은 거지꼴이 됐고, 빌립보에서 매를 많이 맞아서 온 삭신이 쑤십니다. 거기다가 개뿔 가진 돈도 없어요.
이것이 고린도에 처음 도착한 바울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을 누가 거들떠나 보겠습니까? 돈이 없다보니까 바울이 고린도에 오자마자 일을 해야 돼요.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자마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거든요? 이 두 사람이 바울과 생업이 같았어요. 텐트를 만드는 일을 하는 부부였는데, 아무래도 바울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자리를 찾다가 두 부부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바울이 아주 처량한 신세로 고린도에 왔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이 고린도에 별로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다른 도시에서 이미 쓴맛을 보고 왔는데, 고린도는 그 도시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바울의 마음이 떨렸겠어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3절에 보면, 자기가 고린도에 있을 때 마음상태가 어떠했는지를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이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고린도에 있을 때 너무나도 두려웠다는 겁니다. 동역자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또 고린도라는 도시 자체도 너무나 타락한 도시라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나 놀랍게도, 그 두려움 가운데서 바울이 무려 1년 6개월이나 되는 시간을 머물게 됩니다. 이것은 나중에 3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에서 2년을 머물게 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 머문 기간이에요. 지금까지는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물렀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도시도 아니고, 고린도에서 이토록이나 오래 머물게 되었다는 것은, 이 도시가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 만약에 고린도에서 교회가 세워진다고 한다면, 세상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을 곳이 없을 거예요. 고린도에도 교회가 세워지는데, 어딘들 안 세워지겠습니까?
바울이 바로 이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비록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두렵지만, 도망치지 않고, 1년 6개월 동안 인내하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맺혔어요. 마침내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돼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타락의 대명사로 불리던 도시에 거룩한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고린도교회는 바울과 닮았어요. 바울도 본래는 절대로 복음이 심어질 만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다른 사람은 다 예수를 믿어도, 바울만큼은 안 믿을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복음이 들어가고, 사람이 변화되고, 그가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바울은 고린도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나 같은 것도 이렇게 변화되는데, 고린도도 변화될 수 있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불가능한 일이 가능케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앞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처럼,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오늘 본문에는 고린도교회에 언변과 지식과 은사가 풍족한 것을 감사하고 있는데요. 가장 문제가 많은 교회에 가장 풍족하게 은사가 부어졌다는 것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죠.
이처럼, 고린도교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써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같이 읽고 마치겠습니다. 3절 시작,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