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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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그리스도
1.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해석의 필요성: 예수 그리스도, 성경의 중심 주제
그리스도는 성경 전체의 중심인물이고 성경의 내용을 통합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하나님은 원복음(창 3:15)을 주셨고, 이 복음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구약을 이해하는 열쇠로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복음에 빠지거나, 이방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앙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구약을 읽을 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후 3:14).
2. 바울 서신과 구약 성경 해석의 중요성: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과 멸망에 대한 경고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에서 바울의 편지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말한 후에,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바울의 편지를 다른 성경과 동등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는데, 바울의 편지도 함부로 해석하면 안 되지만, 다른 성경도 억지로 풀면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해야 한다.
3. 구약성경의 현대적 적용과 이해: 믿음의 눈으로 성경 읽기, 시대착오적 말씀에 대한 고찰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이것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나온다. 족보들, 성막에 관한 말씀, 제사장 제도, 제사장 의복 등과 같은 말씀들은 특히나 읽기가 힘들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린 단번에 드린 제사를 통해서 더는 제사드릴 필요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으나(히 10:18), 우리는 여전히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 제도의 기록을 버릴 수 없다.
레위기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에서는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라고 명령하고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도 말라고 말한다. 두 재료로 만든 옷을 입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시대의 옷은 단일 재료로 만들어진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런 말씀은 시대착오적인 말씀이란 생각마저도 들게 만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레 19:19”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4. 성경의 영감과 권위: 믿음 안에서 성경을 통해 얻는 유익, 하나님의 숨결로 기록된 성경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감동으로”로 번역된 표현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이 모든 성경이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이나, 이 말씀이 가르치는 것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버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경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숨을 내쉬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 성경을 귀중히 여기고 듣고, 읽고, 배워야 한다.
또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성경은 너무도 분명하기에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부분에서 대단한 학자들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어서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읽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성경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믿음이 없이는 성경을 통해서 유익을 누리기도 어렵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성경의 복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구약성경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우리는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신다는 복음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구약성경을 읽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과정과 가르침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5. 구약성경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율법주의 극복, 그리스도 없이는 율법주의에 빠질 위험성
구약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구약은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율법주의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스도는 구약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율법주의와 도덕주의라는 늪에 빠져서 구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6. 에디오피아 내시 사건: 그리스도를 통한 구약성경의 이해, 이사야 53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연결
이에 관한 좋은 예가 행 8장에 기록되어 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을 통해서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이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는 말씀임을 깨닫게 된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사 53장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빌립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듣자, 곧장 세례를 받고자 했다. 우리 성경에는 없음으로 되어 있는 행 8:37의 다른 사본에서는 내시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라고 고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고백이 있든 없든, 그가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고자 한 것 자체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사야의 말씀이 깨달아진 것임을 증명한다.
7. 메시아(그리스도)의 의미와 역할: 구약에서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기름부음 받은 자의 의미와 중요성
메시아(그리스도)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단어 메시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를 음역한 것이다. 즉, 메시아와 그리스도는 의미가 같다. 두 단어의 차이는 하나는 히브리어이고 다른 하나는 헬라어라는 것뿐이다.
두 단어는 궁극적으로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마치 예수님의 이름처럼 함께 사용되거나 자주 사용되어서 익숙하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메시아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그 의미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구약 속의 메시아가 예수님으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의 장애가 있다.
메시아(מָשִׁיַח)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로 구약에서는 주로 왕을 언급할 때 나타난다(39번 중에 28번). 구약에서 메시아라는 용어가 사용된 인물들은 선지자, 제사장, 왕인데, 물건에도 기름 부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건들은 주로 예배 의식에서 나타나는데, 출 29:36이나 출 40:9-11처럼 기름을 붓거나,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기름부음을 받은 물건은 뚜렷한 목적과 용도를 위해 따로 떼어 놓는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메시아는 수동적인 개념이 있다. 본인 스스로 머리에 기름을 부을 수는 없고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에게 택함받은 선지자나 인물이 기름을 부어줘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선택된 메시아는 특별한 임무를 위해 성별되었고, 그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다. 그래서 수동적인 기름부음이 주어지지만 적극적인 실천이 있어야 한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메시아는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원자에게 이 직분을 주지 않으셨고, 이 직위를 훔치려는 자는 가혹하게 다루셨다.
또한 메시아는 인정받은 자였다.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직분을 행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메시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은 자이다. 하나님은 택함 받은 메시아의 능력이나 독창성을 믿고 일을 맡기시지 않는다. 그 직분을 수행하기 위한 권세를 공급하셨고, 권세의 근원은 성령님이시다.
메시아에 대한 이러한 내용들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에게서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이런 내용은 구약의 말씀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의 감사 기도에서 궁극적인 메시아의 오심을 기대하는 고백을 볼 수 있다.
한나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마음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삼상 2:1), 여호와께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삼상 2:10)라는 확신에 찬 선언으로 끝낸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해서 슬퍼하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여호와로 인해서 아이를 낳게 된 후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고백한 내용에서 마지막 심판 날 메시아의 일하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어떤 이는 한나가 당시 이스라엘의 왕을 두고 한 고백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한나가 사무엘을 낳았을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자기 소견대로 할 때였다.
즉, 한나가 언급한 왕은 종말에 있을 심판을 행할 메시아를 언급한 것이다.
메시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말씀으로 대표적인 것은 시편 2편일 것이다. 이 시편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특히 2절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 4:25-26은 시편 2편을 인용하고 있고, 행 4:27에서는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예수를 대적하는 구체적인 공모자로 헤롯과 빌라도를 지목하고 있다.
행 13:33에서 바울은 시편 2:7을 직접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에 직접 적용하고 있다.
메시아가 우리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임을 생각한다면, 구약에서 선지자, 제사장, 왕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거나 악한 선지자, 제사장, 왕을 통해서는 이상적인 메시아를 바라보게 될 것이고, 이상적인 메시아는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8.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메시아: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 죄의 결과와 그리스도의 필요성
선지자, 제사장, 왕은 죄로 인해 필연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스스로 하나님에게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악이 사람을 하나님과 갈라놓았고, 죄가 사람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사 59: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타락했을 때, 사람은 죄에서 구원받기 위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다(골 3:10). 그래서 사람에게 하나님을 계시할 선지자가 필요하다.
사람이 타락했을 때, 사람은 자기들이 창조되었을 때 가졌던 의와 참된 거룩함을 잃어버렸다(엡 4:24). 그래서 하나님과 화해시킬 제사장이 필요하다.
사람이 타락했을 때, 사람은 자기들의 영혼을 속박할 권세를 가진 영혼의 원수에게 먹이가 되었다(히 2:14-15). 사람에게는 자신들의 영혼의 모든 원수를 정복하기 위해 통치할 왕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메시아와 관련된 구약의 말씀을 살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9. 중보자 그리스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다리, 죄로 인한 단절과 중보자의 필요성
중보자
이사야 59:2에서 이사야는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라고 선언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를 측량할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마치 동쪽이 서쪽에서 먼 것처럼 둘은 좁혀질 수 없는 것만 같은 상황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양 당사자와 관계를 맺을 중보자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줄 중보자, 사람의 필요를 위한 중보자, 하나님의 관심을 위한 중보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리스도 없이는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이다(엡 2:12).
욥은 중보자에 대한 표현을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태어나기 훨씬 전에 고백하고 있다.
욥 16:19에서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라고 할 때, 증인과 중보자는 인격체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중보자는 욥의 변호를 맡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욥 16:21에서 욥은 중보자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시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고백은 중보자가 사람에게 필요함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10. 언약과 그리스도: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핵심 주제, 다윗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
언약과 그리스도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그가 메시아의 어머니로 선택되었음을 알렸을 때,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태어날 아이를 통해서 이뤄질 것을 밝혔다.
누가복음 1:32–33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 말씀은 삼하 7:12-16의 약속을 근거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다윗의 보좌와 관련된 구원 약속과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 언약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
누가복음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누가복음 1:72–73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사가랴가 이렇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결국 구약의 언약을 통해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 가운데 언약과 관련된 유명한 구절을 보면 그리스도가 언약의 중심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사야 49: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만약 구약의 언약을 살피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헛된 공부를 한 셈이 되는 것이다. 구약을 통합하고 신약 성경과 연결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언약을 통해서 가능하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모든 언약의 중심에는 더 나은 언약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계셨다.
각각의 언약은 고유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동일한 부분들도 가지고 있다.
언약이란 “양 당사자 사이의 상호 구속력이 있는 계약”이다. 구약에서 언약이라는 단어는 약 300회 사용되는데, 언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지만, 언약이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는 맥락이 있다.
첫째, 맹세가 언약을 맺는 것에 수반된다. 어떤 맹세가 있다면 그 맹세는 언약을 지키겠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둘째, 희생제사가 언약을 맺는 것에 수반된다. 모든 희생제사가 언약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 또는 두 국가 사이에서 희생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언약을 맺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셋째, 언약을 맺는 것에 친교 만찬이 수반된다. 언약 이후에 함께 식사하는 것은 관계와 평화를 확인하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중요하게 나타난다.
넷째, 소금이 언약과 연관되어 사용된다. 대하 13:5, 민 18:19에서 “소금 언약”이란 표현이 사용된다. 여기에서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보다 부패를 막는 방부제로서의 역할로 사용되었다. 즉, 소금 언약이라고 할 때는 언약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면을 가리킨다.
언약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현상이었다. 그래서 언약은 당시 사람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개념이었기에 주님이 자신의 말씀을 계시하시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언약은 지켜져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거나 지킬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에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했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께서 언약에 대한 태도로 나타나는 것은 신실하심이다. 신실하심은 때로 친절, 인애, 자비, 인자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사용되었다. 시편 136편에서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구절에서 “인자하심”이 언약적 신실하심을 의미한다.
시 111:9에서 하나님이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다”라고 확언한다. 시 105:8에서 “그는 그의 언약 곧 천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언약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지신 것과 함께 그리스도가 언약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연결하면, 언약으로 주어진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으로 정한 모든 조건과 약속을 이루기 위한 그리스도의 확실한 오심과 성공적인 사명을 무한한 가치가 있는 선서로 보장하셨다.
미가 7: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히브리서 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히브리서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이 말씀들에서 하나님은 조상에게 약속을 하셨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으며, 그 맹세는 영혼의 닻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언약이 희생제사를 동반한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희생으로 자신의 은혜로운 언약을 승인하셨다.
히브리서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라고 하신 말씀도 희생 제사와 연관이 된다.
언약의 체결이 친교의 식사로 확인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을 평화와 용서의 자리에 두신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성만찬 가운데 교제하는 것은 언약의 약속인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을 상징한다.
구약에서 소금언약이 언급되었던 것처럼, 히브리서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증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은 어떤 부분도 실패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 언약으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에게 나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은혜롭게 주권적으로 체결하셨다.
맹세, 희생제사, 친교의 식사, 소금언약으로 상징되는 확실성에 관한 구약의 가르침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11. 구약의 언약들: 아담부터 다윗까지 이어지는 그리스도 중심의 약속, 각 언약의 의미와 그리스도와의 연결
이러한 언약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선지자(예레미야)와 맺은 언약으로 점차 발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언약은 점점 더 많이 계시해주셨고, 모든 언약은 그리스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을 멸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3:15) 아담과 하와는 곧장 자신들에게서 죄의 저주를 해결할 구원자가 올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형편은 더 나빠졌고, 죄는 더욱 거세졌다. 결국 하나님은 홍수를 보내 사람과 땅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는 중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약속된 구원자는 오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노아와 약속을 맺으면서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통해 아직 오지 않은 구원자가 오실 때까지 사람이 땅에서 멸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 약속되었다.
하나님은 노아의 자손 중에서 셈의 후손의 장막에 친히 거하시면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알려주셨다(창 9:27)
하지만 이런 약속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을 반역했고, 바벨에서 하나님께 도전했다. 결국 하나님은 민족을 흩으셨고, 그러는 중에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약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백성에게 복을 줄 후손이 그의 혈통으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창 12, 15, 17) 이런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되었고,(창 17:19, 26:3-4) 야곱은 죽기 전에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구원자가 유다지파에서 나오실 것이고, 그분이 왕이 되실 것임을 드러내셨다. (창 49:8-12)
이때 하신 약속이 더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약 천 년이 지난 다윗 때에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시면서 언급된다.(삼하 7:12-16)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잊지 않으셨다. 약속이 지연되어 잊혀진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길을 예비하시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철저히 준비하셨다.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와 누가가 기록한 족보는 모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증거가 된다. 언약의 약속은 때때로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진행되었다. 언약은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된 언약이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구약의 언약에 대한 설명에서 모세언약과 새언약은 언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언약들은 메시아의 정체성을 가리키기보다 메시아의 사역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1-1. 다윗 언약: 영원한 왕국의 약속과 메시아의 친밀한 관계
아담, 노아,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생략하고 다윗과의 언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윗언약은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시고, 더 큰 계획을 말씀해주신다.
하나님은 성전건축보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아를 통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계획과 목적을 세우신다.
사무엘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여기에서 다윗의 씨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은 앞의 모든 후손이 언급된 약속과 연결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다. 이전의 약속에서는 없었던 친밀함까지 말씀하시는데, 삼하7:14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러한 다윗언약은 이사야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이사야는 고난당하는 종에 대한 위대한 예언에 이은 위대한 복음 초대에서 “영원한 언약”, 심지어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사 55:3)에 대해 말한다. 이 구절에서 이사야는 “확실한 은혜”를 인격체로 해석한다. 이사야는 확실한 은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노라”(사 55:4).
이사야의 말씀을 따라가 보면, 고난당하는 종과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가 하나이고 똑같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무엘하 7장의 언약에 대한 주석과 같은 노래가 시편 89편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윗에게 하신 언약에 대해서 확실히 지키실 것임을 시편 89:34–35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이 다윗에게 있다. 그렇기에 89편을 노래한 사람은 감사가 넘치는 찬양과 예배를 하나님께 올리는 시를 쓸 수 있었다.
12.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율법주의: 모세 언약의 오해, 율법의 목적과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
하나님께서는 약속한 구원자를 보내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만, 이스라엘은 독특한 위치에서 특권을 누렸다. 그들의 특권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로마서 9:4–5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하지만 이스라엘은 구원자가 오셨지만 영접하지 않았다. 요한복음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렇다고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 은혜입은 자들은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었는데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일까?
12-1. 이스라엘의 불순종: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원인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죄는 불순종과 율법주의다. 이스라엘은 모세와 여호수아라는 위대한 지도자 아래에서는 순종하는듯했다. 물론 이 두 사람 아래에서도 불순종의 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위대한 지도자 아래에서도 불순종은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지도자들로 인해서 극악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무엘과 엘리야 같은 선지자들이 등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줬어도 잠깐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결국 다시 불순종으로 돌아갔다.
계속되는 불순종으로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하게 된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던 이유를 열왕기하 17:7–12에서 다루는데, 다른 신들을 경외한 것(7절), 이방 사람의 규례를 행한 것(8절), 산당을 세운 것(9절), 모든 곳에서 우상을 숭배한 것(10-12절) 등이 있다. 이것을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 이유가 되어서 그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남유다가 멸망하게 된 이유는 일단 므낫세가 지은 죄 때문에 시작된 일이다(왕하 24:3).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했기에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않으셨다(왕하 24:4). 그래서 바벨론 왕이 쳐들어와 남유다의 왕을 마음대로 세우는 사건이 벌어진다(왕하 24:17). 그렇게 세워진 시드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해서 언약을 파기했음을 기록한다. 그리고 시드기야가 언약을 깨뜨린 사건을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기록했다(겔 17:16).
에스겔 17:19–20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을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것으로 보고 반역을 저질러 심판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율법을 어기고 언약을 파기함으로 멸망하게 된 것이다.
12-2. 형식적인 율법주의: 회개 이후에도 반복되는 불순종과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의 퇴색
이러한 일이 벌어진 후에 이스라엘은 회개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어겨서 멸망하게 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게 된다(느 10).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언약했고, 그 이후 잠깐 순종하는듯했다. 하지만 곧장 불순종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스라엘은 형식적인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참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기계적으로 지키거나 자기들에게 편리한대로 해석해서 지키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약속된 구원자를 기다리는 신앙은 점점 퇴색되게 된다.
12-3. 모세 언약의 본질: 아브라함 언약의 갱신과 확장, 그리스도 중심적 이해의 필요성
이스라엘이 범한 잘못은 모세의 율법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은 출애굽기 19장에서부터 기록되어 있다.
많은 이가 이것을 단지 율법이라는 이름으로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을 행위언약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언약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오히려 모세가 받은 언약은 이전 언약의 갱신과 확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모세 언약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2-4. 모세 언약과 메시아의 사역: 율법과 성막, 희생제사를 통한 그리스도 예표
그렇지만 이전 언약과는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담, 노아, 아브라함, 다윗과의 언약은 메시아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인데, 모세 언약은 메시아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즉, 모세 언약을 이해할 때, 메시아를 빼고 이해하면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율법주의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고, 이미 많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그러한 잘못된 해석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 언약은 오실 메시아가 죄의 저주를 뒤집고 온 세계의 복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십계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율법과 성막, 희생제사, 예식들은 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묘사해주시는 것이다. 모세 언약에 그리스도가 가득 차 있어서 우리가 그분을 찾아야 하는 핵심 장소이기도 하다.
12-5. 언약을 지키는 것: 믿음과 순종의 관계,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복종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의 말씀을 가지고 언약을 지키라고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묻는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살후 1:8)라고 말한 바울의 표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언약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을 받는 개념이 아니라, 언약을 기억하고 믿고 그리스도를 소망함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을 믿는다면, 그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모세가 출애굽기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창세기도 기록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는데(창 15:6),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면 이것보다 더한 모순이 있을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어서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처럼 모세 언약도 믿어서 의로 여김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에는 순종이라는 열매가 따라오기에 모세 언약은 순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13. 새 언약: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언약, 마음의 변화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모세 언약과 함께 예레미야가 기록한 새 언약도 마찬가지다.
예레미야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은 언약 갱신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을 선포한다. “새”라는 단어가 이전에 없었던 새로움이 아니라 “새롭게 된”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새 언약은 이전의 언약보다 더 많은 지식과 약속에 대한 설명이 담겨져 있지만, 이전 언약과 연속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13-1. 새 언약과 복음의 연결: 히브리서의 인용과 구약 백성에게 주신 약속
게다가 새 언약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서 주어졌다. 그러면 구약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히브리서 8:8-12, 10:16-18에서 인용된다. 즉, 새 언약은 복음과 직접적인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은 마음의 변화(중생), 하나님과의 관계(화해), 신분의 변화(용서, 칭의)라는 혜택을 가져온다. 이 모든 것은 약속된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다.
14.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언약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 언약적 표현과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
그리스도는 모든 언약의 중심에 계시다. 우리는 모든 언약의 문맥에서 그리스도를 찾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언약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뿐만 아니라, 언약과 관련된 표현이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렘 7:23, 겔 36:28, 호 1:9, 욜 2:26-27, 출 6:7, 레 26:12, 렘 11:4, 삼하 7:24, 대상 17:22, 렘 24:7, 렘 31:33, 렘 32:38, 겔 11:20, 겔 14:11, 겔 34:30, 겔 37:23, 겔 37:27, 슥 8:8, 신 29:13, 시 50:7, 고후 6:16
이 말씀들은 모두 같은 언약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에 걸쳐 이 말씀을 사용하신 것을 보라. 언약의 신실함을 친히 말씀 가운데 증명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신실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표현되며, 요한계시록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라는 말씀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다.
15. 성육신 이전 그리스도의 현현: 여호와의 사자로서 나타난 그리스도, 미가 5장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영원성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의 현현
일단 주의할 점이 있는데,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현현은 사람의 형체를 취하셔서 나타나셨지만, 사람의 본성을 취하신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신 것과 구별된다.
형체는 외형을 의미하고 본성은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구약에서 기록된 그리스도의 현현을 살피기 전에 미가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아의 탄생과 관련된 말씀을 살피겠다.
미가 5:2–3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우리는 이 말씀에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다른 진리도 담고 있다. 먼저 통치자가 올 것을 예언하고 있다. 왕의 직분은 메시아의 요건 중 하나이다.
둘째로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그의 나오심은 옛적부터 있었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통치자가 오신 일은 첫 번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말씀은 성자 하나님의 영원성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성자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이전의 경우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즉, 앞으로 베들레헴에 오실 왕은 이전부터 나타나셨던 분이시다.
셋째, 메시아가 오심은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라는 과정을 통해 오신다. 메시아가 이전부터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지만,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오심은 여자를 통해 태어나셔야 한다. 그러니 이전에 오셨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여자의 몸을 통해서 오시기 이전의 나타나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5-1. 가시적인 의인화: 여호와의 사자를 통한 하나님의 인격성 드러냄
성자의 현현은 하나님께서 인격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님을 단순히 능력이나 추상적인 영의 개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영이라고 말할 때, 이에 대한 정확한 의미나 개념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인화해서 설명한다. 이런 의인화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적 도움을 주시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성자의 현현은 언어적이 아니라 가시적인 의인화로 하나님이 인격체이심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15-2. 여호와의 사자: 그리스도의 현현, 야곱, 호세아, 히브리서의 증거
이렇게 가시적인 의인화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것이 여호와의 사자(使者)다. 거의 여호와의 사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어떤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한 후에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창 32:30)라고 고백한다. 약 천년 후의 선지자 호세아는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야곱의 상대가 주님의 사자(천사)라고 밝혔다(호 12:4).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들과 성자이신 사자(천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피조물인 천사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들이지만, 성자이신 사자는 하나님 그 자체이신 분이시다.
구약에 기록된 여호와의 사자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히브리서 3:1에 기록된 말씀도 거부해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사도와 사자는 같은 의미로 보내심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 스스로가 12사도에 포함되는 것이 아님에도 이렇게 표현된 것은 구약에 기록된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15-3. 말라기 3장의 예언: 준비하는 사자와 언약의 사자,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
게다가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에서 여호와가 자신의 사자를 보내서 준비하실 것인데, 이 사자가 준비하는 것은 “언약의 사자”가 임하심이다. 준비하는 사자는 세례 요한이고 언약의 사자는 그리스도이시다. 구약도 메시아를 사자로 표현함에 거부감이 없다.
15-4.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사람들: 하갈, 마노아의 고백, 여호와의 사자 = 하나님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이심을 영적으로 특출난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었을까? 구약의 말씀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하갈이 사라에게 쫓겨난 후 여호와의 사자를 광야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하갈은 이렇게 고백한다.
창세기 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는데, 하나님을 뵈었다고 고백한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도 자신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을 알린 자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게 되었을 때, 이렇게 고백한다.
사사기 13:21–22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처음에는 마노아가 만난 존재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몰랐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게 되었을 때, 그도 하나님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는 자신을 “벧엘의 하나님”(창 31:13)이라고 표현한다. 모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도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을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출 3:6)라고 표현했다.
15-5. 죄 사하는 권세: 하나님께 속한 권세를 가진 여호와의 사자, 출애굽기 23장의 증거
죄를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에게 속한 일임이 성경 곳곳에서 언급된다. 심지어 바리새인도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음을 알고 있다(막 2:7). 그런데 출애굽기에서 여호와의 사자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 표현된 말씀이 있다.
출애굽기 23:21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여호와의 사자에게 죄를 용서하지 않을 권세가 있다는 것은 여기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갇히지 않았다면, 죄사함을 선언하시는 모습을 통해서(막 2:5, 10)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을 것이다.
15-6.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의 사자: 삼위일체의 관계를 암시하는 구분
그런데 출애굽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의 사자는 구별된다. 이러한 구별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사건에서도 여호와의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세기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말하는 존재는 여호와의 사자인데, 그가 자신과 하나님을 구분해서(인칭의 차이) 표현하고 있다. 출애굽기 23장에서도 민족보다 앞서 가는 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는 분은 여호와이시고, 이스라엘보다 앞서 가는 사자를 “내 사자”(출 23:23)라고 표현함으로 확연히 구분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분명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위격 사이의 관계를 구분함으로 우리에게 삼위일체의 진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6. 그리스도 현현의 목적: 성육신 예표 및 메시아적 역할 계시, 구약 성도들에게 주신 확실한 보장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피조물인 천사를 보냈어도 될 일에 직접 나타나셔서 일을 하셨을까? 성자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 일을 하지 않으셨다면, 구약의 사자가 성자인지 피조물인 천사인지를 두고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두고 그리스도의 현현을 미리 보이셨다.
먼저, 그리스도의 현현은 앞으로 성육신하실 일을 미리 알게 한다. 사람의 형태를 취해서 오신 분께서 본성까지 취하고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구원의 모든 공로를 세워주실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또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의 역할을 보여주심으로 메시아의 존재를 엿볼 수 있도록 만드신다.
17.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현현: 구약에서 드러난 삼중 직분, 하나님의 말씀 선포, 보호, 죄 용서
그리스도께서 사자로 등장하실 때, 가장 많이 강조되는 모습은 선지자적 사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서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격려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셨다.
범죄한 아담에게 친히 나타나 말씀하시며 저주와 여자의 후손을 알려주신 하나님에게서 선지자적 역할이 보인다. 영이신 하나님만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아담과 대화를 나누며 말씀을 주실 수 있겠는가? 이 사건에 기록된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의 현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 있을 때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 이때 사람 셋이 아브라함의 눈에 보였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영접하게 된다(창 18:1-15). 그런데 이 사건에서 말하던 사람의 정체를 13절에서 “여호와”라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 아브라함이 만난 사람 중에서 한 분은 분명 성자 하나님의 현현이다. 그리고 그분은 이삭을 낳을 것과 소돔에 심판을 내리실 일을 알리시며 선지자적 역할을 보이셨다.
이러한 방문은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사자에서도 찾을 수 있고(출 3), 여리고 성 앞에서 여호수아가 만난 여호와의 군대 대장에게서도 찾을 수 있고(수 5), 삼손의 탄생과 삼손을 통해 올 구원을 가르치신 여호와의 사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삿 13).
성육신 이전에 이러한 방문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말씀 없이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확실한 보장이 된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첫 말씀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미리 기대하도록 알려주신 사건이기도 하다.
17-1. 제사장적 사역 예표: 스가랴 3장의 여호수아와 더러운 옷, 죄 씻음과 용서의 상징
그리스도께서 사자로 등장하실 때 때로 제사장적 사명을 미리 알리시기 위해서 오시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개념을 담은 말씀은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스가랴 3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가랴는 환상 가운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고, 사탄은 여호수아의 오른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사탄의 고발에 대해 어떠한 방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탄을 책망하시면서 여호수아를 보호해주신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게 하고 왕의 옷을 입히도록 명령하시는데, 이러한 모습은 죄(더러운 옷)를 씻기고 용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5절에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을 단순히 여호수아의 곁에 서 있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죄를 벗기고 아름다운 왕을 입힌 것이 천사였고, 그 천사가 여호수아의 곁에 서서 그를 계속해서 보호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보장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렇게 제사장적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요한일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요한1서 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고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다. 우리의 곁에 서서 우리를 돌보시며 하나님께 계속 용납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17-2. 왕적 역할의 표현: 아브라함, 다윗, 출애굽 사건에서 드러난 심판과 보호
그리스도께서 사자로 오실 때 왕의 역할을 보이실 때도 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소돔의 심판을 알리실 때,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중보 기도를 한다.
창세기 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기에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는 분명 왕의 권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 앞에 계신 현현하신 여호와께 이 말씀을 드리고 있다.
다윗이 백성의 숫자를 계수하면서 죄를 범한 일이 사무엘하(24)와 역대상(21)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전염병의 심판을 내린 분은 여호와의 사자였다. 심판이라는 왕의 권세를 여호와의 사자가 사용한다는 것은 왕의 역할을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출애굽 사건에서는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진 뒤로 옮겨 간 일을 기록하고 있다(출 14:19). 이렇게 보호하는 일도 왕의 역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구약의 성도들은 우리보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눈으로 직접 보는 영광을 누렸다. 여호와의 사자로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완전하신 선지자, 제사장, 왕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변할 수 없는 목적을 증언한다.
18. 구약에서 예수님을 부르는 다양한 이름들: 메시아의 성품과 사역을 드러내는 명칭들, 이사야 9장의 다섯 가지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를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러한 이름은 메시아의 성품과 하실 사역을 우리에게 다양하게 보여준다.
마태는 그리스도께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신 일을 이사야의 예언과 연결해서 설명한다(마 4:12-16). 마태가 인용한 이사야의 말씀은 곧장 오실 메시아의 이름을 우리에게 다양하게 알려준다.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서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영원한 중보자로 임명하고 기름부으셨음을 언급한다.
한 아기, 한 아들의 이름을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네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18-1. 기묘자, 모사: 놀라우신 조언자, 메시아의 신성과 신적 지혜
먼저, 메시아는 기묘자이고 모사이시다. 그는 놀라운 분이며 조언자이시다. 이 두 단어를 각각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놀라우신 조언자”로 합쳐서 이해할 수도 있다.
놀랍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동과 관련된 단어이기에 메시아의 신성을 가리킨다. 또한, 조언자라는 단어는 조언을 하는 존재라는 의미도 있고, 지혜자라는 의미도 있다. 즉, 메시아는 신적 지혜를 가지신 분이시다.
18-2. 전능하신 하나님: 메시아의 능력과 초월성
둘째로, 메시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메시아가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용어로 모든 피조물보다 초월적이신 분이심을 알려준다.
18-3. 영존하시는 아버지: 시간 위에 계신 메시아, 영원의 아버지
셋째로, 메시아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접근하면, 성자와 성부의 관계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발생하게 된다. 이 표현은 “영원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아버지라는 단어는 성자와의 관계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영원이라는 시간과의 관계에서 아버지를 의미한다. 즉, 메시아는 시간의 아버지가 되셔서 시간 위에 계시는 분이시다.
18-4. 평강의 왕: 절대적인 왕권과 참된 평화를 가져오시는 메시아
넷째로, 메시아는 평강의 왕이시다. 그는 절대적인 왕권을 가지신 분이신데, 특히 평화를 위해 왕의 권세를 활용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화평과 교제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시고 참된 평강을 가져오실 분이시다.
18-5. 스가랴 10장의 메시아: 모퉁잇돌, 말뚝, 싸우는 활, 권세 잡은 자
이번에는 스가랴의 말씀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스가랴 10:4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은 그렇게 유명한 구절은 아니지만, 이 구절에서도 메시아가 확실히 가르쳐진다.
앞뒤 문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괴롭힌 악한 목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4절을 말씀하신다. 모퉁잇돌, 말뚝, 활, 권세잡은 자가 언급되는데, 이 단어들 뒤로 “그에게서”라는 말이 언급된다. 이것은 유다 족속을 의미한다. 즉, 유다 족속에서 메시아를 의미하는 모퉁잇돌, 말뚝, 활, 권세잡은 자가 나온다.
18-5-1. 모퉁잇돌: 견고하고 안정한 기초, 이사야 28장, 시편 118편의 증거
먼저, 메시아는 모퉁잇돌이 되신다. 메시아가 견고하고 안정한 기초가 되시기 때문이다. 똑같은 단어를 이사야는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시편도 언급한다.
이사야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8-5-2. 말뚝(못): 짐을 짊어질 능력, 이사야 22장의 엘리아김과의 비교
두번째로, 메시아는 말뚝(못)이 되신다. 이것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짐을 짊어질 능력이 있음을 알려준다. 못은 물건을 걸기 위해 사용하는 벽걸이용 못을 의미한다.
못이라는 단어를 이사야도 사용하는데, 엘리아김을 못에 비유해서 말한다(사22:20-24). 하지만 25절에서는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결국, 이스라엘을 위한 확실한 못이 필요하고 그것을 스가랴의 입을 통해서 예언으로 메시아라는 못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18-5-3. 싸우는 활: 백성을 위한 용사, 시편 45편의 화살 비유
세번째로, 메시아는 싸우는 활이시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한 적극적인 용사이고 전사이심을 증언한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씀으로 시편이 있다.
시편 45:5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악한 목자들과 숫염소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고 벌하시는 것이 싸우는 활이다. 메시아가 자기 백성을 대신해서 싸우시고 원수를 벌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가!
18-5-4. 권세 잡은 자: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통치자
네번째로, 메시아는 권세 잡은 자이시다. 메시아는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다. 유다 족속 가운데 절대적인 통치자가 나온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적용할 수 없다.
문맥상 유다 족속은 악한 목자들의 폭정을 경험했다.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메시아가 왕이심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또한, 메시아가 절대적인 통치자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순종함이 마땅하다.
18-6. 다양한 메시아적 용어: "하나님",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이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단어를 조금 살펴보려고 한다. 이 부분을 빠짐없이 살핀다면 시간과 분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기에 다음에서 살피는 것 중에는 빠진 부분들도 상당히 있음을 미리 알린다.
가장 먼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구약의 표현 중에서 단연 첫째로 뽑힐 것은 “하나님”이다. 히브리서 1:8은 시편 45:6을 인용한 것인데, 히브리서는 분명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시편은 “하나님”(엘로힘)을 부르고 있다. 물론 구약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엘로힘)이란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약에서 인용한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해서 사용할 때가 많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는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증거한다. 이러한 점들을 기억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18-7.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하갈의 고백과 여호와의 사자, 창세기 16장의 예
창세기 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앞에서 하갈을 찾아온 여호와의 사자가 그리스도이심을 살폈다.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지만, 그에 대한 고백으로 “내가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다”고 말한다. 즉, 여기에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를 가리키는 표현이고, 여호와의 사자가 그리스도이시니 하갈이 고백한 표현은 결국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 된다.
18-8.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사야 7장, 8장, 요한복음 1장의 증거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8:10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더욱 잘 알 수 있는 표현이 임마누엘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의미인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성육신으로 더욱 분명하게 의미가 발생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약속도 숨겨진 것처럼 보여서 쉽게 찾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자녀들에게 하신 예언의 말씀에서 임마누엘을 찾지 못하는 해석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한결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창세기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말씀은 여러 번역에서 착각을 가져오도록 이해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야벳을 창대하게 하시고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벳을 창대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는 것이다.
이 약속이 이후 어떻게 이어지는지 생각해보라. 셈의 후손에서 아브라함이 나온다. 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을 통해 셈의 후손들을 돌보셨다. 모세를 통해, 다윗을 통해 이 약속은 계속 이뤄졌고, 성육신을 통해서도 이어진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에서 “거하시매”로 번역된 단어는 “장막을 치다”라는 의미다. 즉, 우리 가운데에서 장막을 치며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보이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사야는 임마누엘이라는 표현과 함께 예언을 한 것이고,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임마누엘의 약속이 어떻게 주어져서 그리스도가 약속되었는지를 찾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8-9. "싹"(가지): 연약함 속에 담긴 희망, 메시아의 낮아지심과 겸손
이번에는 “싹”(가지)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 단어는 이사야 4:2, 예레미야 23:5, 33:15, 슥 3:8, 6:12의 다섯 구절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메시아 칭호 중 하나다. 우리 성경에서는 싹으로 번역하거나 가지로 번역을 했는데, “가지”로 번역했을 경우에는 큰 나무에서 힘있게 뻗은 가지 또는 작은 나무여도 뿌리가 내려서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상황의 가지를 머리에 그릴지도 모른다. 제시한 성경에서 말하는 “싹”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장소에 있는 연약하지만 희망적인 삶으로 가득 찬 상태의 “싹”을 의미한다.
전능하신 메시아가 연약한 싹으로 불린다는 것이 이상할 수 있으나, 이것은 메시아의 낮아지심과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겸손을 보여준다. 위에서 제시한 본문에 나온 단어와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만 “싹”의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사야 말씀이 있다.
이사야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리스도는 화려함과 권세를 가진 모습으로 오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들 눈에 용납될 무엇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사 53:3). 그래서 자기 소유의 땅에 오셨어도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다(요 1:11). 높고 웅장한 산 정상에 우뚝 솟은 나무의 가지가 아니라, 볼품없어 사람들의 시선이 끌리지 않는 싹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영광과 칭송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겸손 가운데 오신 것이다.
18-9-1. 다윗 왕조의 멸망과 메시아의 등장: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싹
또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약속을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다렸다. 다윗의 자손들이 계속 왕위에 앉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는 왕은 오질 않았고, 결국 다윗 왕조는 멸망하게 되었다.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루터기는 남아 있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싹이 나타났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이는 예언의 말씀이다.
18-9-2. 예레미야 23장의 "의로운 싹": 왕적 통치와 여호와 하나님으로서의 신성
“싹”이라는 것이 아름드리나무의 가지와는 시각적 차이가 분명히 있겠지만, 성경은 메시아적 권세와 신성과 구원의 일을 연결해서 명확하게 설명한다. 위의 구절 가운데 하나만 살펴보자.
예레미야 2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 가운데 의로운 싹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통치하고,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킬 의를 행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6절에서 “의로운 싹”의 이름이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밝힌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일으키실 “의로운 싹”은 여호와이시며,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시기에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불리게 된다.
18-10. "지혜": 하나님의 속성이자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 잠언 1장, 8장, 9장의 인격화된 지혜
다음은 잠언에서 주로 나타나는 “지혜”를 살펴보자. 잠언이 메시아를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독특한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혜는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라 불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지혜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물론 지혜를 항상 하나님 또는 메시아와 연결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 또는 메시아는 지혜라는 호칭으로 불릴 수 있음을 기억하며 접근해야 한다.
잠언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능력이다. 잠언 안에는 지혜가 자주 등장하는데, 1장, 8장, 9장에서는 지혜를 능력이나 경험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나타낸다.
이러한 표현을 단지 지혜를 의인화한 것으로만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성자 하나님을 지혜로 표현하고 있는지로 해석이 갈리지만, 전통적인 개혁파 신학에서 의인화된 지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본다. 잠언의 말씀을 살피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지 보겠다.
18-10-1. 잠언 8장: 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지혜, "세움 받음"과 메시아적 임명
잠언 8:27–30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8장은 전체적으로 지혜를 의인화해서 사용한다. 위의 본문은 창조 때의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시고, “나”(내)는 지혜를 가리킨다. 분명 둘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기에 하나님과 지혜는 구분된다. 그런데 22-26절에서는 창조 전에 지혜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창조가 있기 전이라면 시간의 존재 이전을 말한다. 즉, 지혜는 영원한 존재라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23절에서는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 “세움을 받았나니”라는 말은 “높아지다, 기름부음을 받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시편 2:6에서 “그러나 내가 나의 왕을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나이다”라고 선언하실 때 나오는 것과 같은 단어다.
지혜가 창조 전인 영원에서부터 세움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메시아로 택함을 받으시고 임명되신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24-25절에 “내가 이미 났으니”라는 표현을 가지고 출생이 표현되었고, 그러니 시작한 시점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지혜는 성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아리우스).
그러나 이 표현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존재함을 강조하는 표현이지, 출생한 시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18-10-2. 지혜의 창조자 되심: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요한복음 1장의 연결
결정적으로 지혜가 성자이심은 30절에서 확인된다. 지혜는 하나님 곁에서 창조자의 일을 하셨다. 창조는 삼위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지혜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분이시다. 잠언의 이러한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창조하신 일을 기록한 것과 비슷하다(요 1:1, 3).
즉, 잠언 8:22 이후의 말씀은 지혜가 성자 하나님이심을 가리킨다. 또한, 1-21절까지에서는 지혜가 메시아의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선지자의 역할로서 지혜가 일함을 말하고(6-8절), 왕의 역할로서 지혜가 일한다(15-16절).
18-10-3. 지혜를 통한 생명: 구원자로서의 지혜, 잠언 8장과 요한일서 5장의 비교
게다가 지혜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친다면, 지혜가 구원자라고 가르치는 것과 동일하다.
잠언 8:35–36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이 말씀은 요한의 선언을 생각나게 한다.
요한1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8-11. "별"과 "규": 발람의 예언과 메시아, 민수기 24장의 예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용어는 사실 매우 다양하다. 거짓 선지자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을 막으시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도록 하셨다. 이때 발람은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민 24:17)라고 말하면서 별과 규가 나타날 것을 예언한다. 여기에서 별과 규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18-12. "실로": 야곱의 예언과 백성의 복종, 창세기 49장의 예
야곱이 유다에게 예언의 말을 남길 때, “실로”를 언급하는데, 이 실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실로가 오면 모든 백성이 복종한다는 예언을 통해서 실로가 메시아를 가리킴을 알게 된다(창 49:10).
18-13. 고엘(기업 무를 자): 룻기의 예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친족, 의지, 능력을 갖춘 구원자
또한, 우리는 고엘(기업 무를 자)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 용어가 잘 나타나는 것은 룻기를 통해서인데, 고엘은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가까운 친족이어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해결의 능력도 있어야 한다. 모든 고엘이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는 않지만, 모든 고엘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보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고엘이 항상 “기업 무를 자”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여호수아 20:9에서는 “피의 보복자”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고엘이 빚을 갚고, 노예 상태를 해방시켜주고, 상속을 위한 재산을 되찾거나, 가문을 이어가도록 해주는 역할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복수까지 함으로 친척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어떤 역할까지도 담당함을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의 고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원수인 마귀에게 심판까지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욥의 고백처럼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구속자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18-14. "목자": 야곱과 에스겔의 예언, 선하신 목자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목자라고 부르는 것에 우리는 거부감이 없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창 49:24)를 예언했고, 에스겔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목자를 일으키실 것을 예언했다(겔 34:23-24). 이상적인 목자를 예언하기 전에는 악한 목자에 대한 언급이 있다(겔 34 앞부분). 이러한 대조를 통해서 우리는 선하신 목자를 갈망하게 되고, 그러한 목자에 대한 약속은 위로와 소망이 된다.
18-15. "종":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자, 이사야의 예언과 고난받는 종
구약에서 주님의 종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나온다. 아브라함(창 26:24), 여호수아(수 24:29), 삼손(삿 15:18), 갈렙(민 14:24), 다윗(삼하 7:19-20), 엘리야(왕상 18:36), 욥(욥 1:8), 느헤미야(느 1:6, 10). 때로는 이스라엘 전체를 종으로 부르기도 한다(렘 30:10, 46:27-28). 게다가 이방인의 왕인 느부갓네살에게도 이 칭호가 사용된다(렘 27:6, 43:10).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특권과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었다. 물론 이들은 완벽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상적인 주님의 종인 그리스도를 가리키게 된다. 이들의 부족함이나 실패는 완전하고 실패하지 않는 주님의 종이 필요함을 가리킨다.
특별히 이사야는 주님의 종을 메시아와 연결해서 예언한다. 이사야에서는 주님의 종에 관한 말씀이 30번 이상 등장하며, 특히 사 42:1-9, 49:1-12, 50:4-11, 52:13-53:12에 중점적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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