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갈망하는 예배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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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내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를 간절하게 찾습니다. 물이 없어 메마르고 지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목말라하며 내 육체가 주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주를 성소에서 보았듯이 주의 능력과 주의 영광을 보려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기에 내 입술이 주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찬양하고 주의 이름 때문에 내 손을 들어 올릴 것입니다.
내 영혼이 진수성찬으로 배부른 것 같고 기뻐하는 입술로 내 입이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인트로: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여러분 ‘갈망의 예배자’라 하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다윗이 떠오릅니다.
그의 시편을 보고 있노라면..
다윗은 정말 주님을 갈망하는 예배자였구나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자였구나
그의 정체성은.. 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에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은 ‘예배자’입니다.
맞습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의 정체성은 그분을 찬양하게 위해 지음 받은 ‘예배자’ 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때 쓴 시입니다.
주석에는 이 시가 사울을 피해서 써 있던 때인지, 압살롬을 피해있던 광야때 있었던 시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2절의 말씀을 볼때 성소에서 주를 보았듯이, 주의 능력과 영광을 보기를 원하다고 말하는 것을 볼때
여기에서 주의 성소는 바로 예루살렘에서의 다윗의 장막의 예배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가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이후에
압살롬으로부터 도망칠때 쓴 시라고 보는게 적절해보입니다.
여러분이 다 아는 유명한 시편 27 편의 말씀도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부터 도망치던 때에
쓰였죠. 한번 읽어볼까요?
한 가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것이 있으니 내가 찾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평생 여호와의 집에 있어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주의 성전에서 여쭙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할렐루야!
오늘 이 다윗의 갈망을 보십시요.
다윗은 고난의 때에도, 광야에 있을때에도 간절하게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의 본문 말씀 1-2절을 다시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내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를 간절하게 찾습니다. 물이 없어 메마르고 지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목말라하며 내 육체가 주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주를 성소에서 보았듯이 주의 능력과 주의 영광을 보려는 것입니다.
시편 27 도 그렇고, 오늘 본문도 그렇고 다윗의 갈망과 목마름이 느껴지십니까?
다윗은 지금 광야한복판에서 주님의 임재를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부터 도망쳐 유대 광야에 있을때에..
성소에서, 여호와의 집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했던 시간
다윗의 장막에 임재하셨던 그분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능력,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갈망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임재, 그분의 영광, 그분의 아름다움이
다윗에게는 가장 큰 갈망이요 그의 전부였다는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은 바닥끝 고난에서 무엇을 찾으십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등지며 그분을 멀리하지는 않습니까?
그분을 향한 믿음과 신앙이 흔들리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다윗은요. 더 간절히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더 그분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의 때에 더 간절히 그분의 임재를 갈망하십시요!
어떤 상황에도 주님의 임재를 구하십시요
다윗처럼 주님을 더욱 갈망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할렐루야!
어떤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을 구하는 예배자.
*여러분 갈망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적 정의로 갈망은 ‘간절히 바람’입니다.
다른말로 간절히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오늘 내 안에는 어떤 갈망이 있습니까?
좋은 스펙입니까? 좋은 직장입니까? 돈입니까? 결혼입니까?가족입니까? 행복입니까?
다 중요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다 ‘갈망’이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그 무엇이 있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가입니다.
점점 우리 시대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자리에
세상을 향한 갈망과 욕망으로 채워가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목말라야 할 분은 ‘우리 주님’ 그분 자체입니다.
아멘?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을지라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할렐루야!?
다른 것 다 없을지라도 그분이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기에 내 입술이 주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찬양하고 주의 이름 때문에 내 손을 들어 올릴 것입니다.
내 영혼이 진수성찬으로 배부른 것 같고 기뻐하는 입술로 내 입이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의 인자하심이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다른말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없이 사느니 죽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 없이 못 산다 이겁니다..
4절 그렇기 때문에 내 평생 살아있는 동안 두손을 들고 그분을 늘 예배하겠다고 합니다.
5절을 보십시요. 주님의 임재가 그의 영혼을 진수성찬으로 배부르게하고 또
계속해서 그분의 이름을 높이며 예배하기로 결정하겠다고 하는 다윗의 고백에 도전이 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갖기를 도전드립니다.
그 갈망으로 예배하는 예배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내 안에 그 갈급함이 없다면, 그 갈망이 없다면…
오늘 이 밤 그 갈망이 부어지기를 바랍니다.아멘!?
우리의 영혼은 항상 주님을 갈급해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내면깊은 곳에서부터 영혼의 목마름이 터져나오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저는 신학교시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로 결단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제 신앙에 새로운 터닝포인트, 영적 도약, 기름부음이 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저를 더욱 순결한 예배자가 되도록 다루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요.
주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그분의 손에 달려진 선물들과, 기도제목을 간구하는 것이 아닌,
주님 자체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기를 결단하십시요. 그분 자체를 갈망하십시요! 할렐루야.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로 결정했을때 하나님의 다루심이 있었습니다.
그부분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때 우리 ’마음의 동기’를 새롭게 하십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갈망하는 가’에 대한 마음의 동기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갈망하며 찾기 시작한 첫 여정의 시간들은.. 굉장한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예배를 하는데요. 내 마음의 다른 의도와 동기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면서, ‘내가 바라는 부흥, 내가 바라는 영광, 내가 바라는 선물’들에 대한
끊임 없는 욕구가 있음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와.. 내가 하나님을 진짜 갈망하는게 맞나? 아닌거 같은데..
‘내가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면서, 다른 것들을 원하고 있구나’
제 자신에 대해서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제가 주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라고 말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요? 내 안에 다른 것들을 바라는 ‘선물들과 영광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의 동기들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갈망하는 예배자가 될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마음의 동기들이 다루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예배자가 되도록 만들어가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양날 선 어떤 칼보다도 더 예리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냅니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은 우리에게서 진술을 받으실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 그 어떤 것도 감출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빛앞에, 여러분들의 벌거벗음이 들어날때 당혹스러워하지 마십시요.
회피하지 마십시요!. 그것들을 마주하십시요!
이 빛 앞에 연약함이 드러났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내 안에 낯 뜨거운 ‘숨은 동기들’이 드러났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왜요?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영적 재조준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그 연약함을 놓고 주님앞에 기도로 씨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만을 간절히 갈망한다고 고백하며 예배하며 나아갈때
아이러니하게도 주님께서 제안에 드러내신 것은 바로 ‘제 안에 숨은 동기들’이었습니다.
다른 것을 예배하는 ‘숨은 동기들’을 비춰내셨습니다.
마치 ‘네가 진짜 나를 갈망하는게 맞니?라고 물으시는 것처럼 숨은 동기의 마음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내안에 있는.. ‘불순물’들 을 드러내신 것이죠
세월이 흐른 후 가인은 땅에서 난 것을 여호와께 제물로 가져오고
아벨은 자기 양 떼의 첫 새끼들과 양 떼의 기름을 제물로 가져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화가 났느냐? 왜 고개를 떨구었느냐?
만약 네가 옳다면 어째서 얼굴을 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옳지 않다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하니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여러분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아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자, 가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고개를 떨궜다’ 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원어로
‘얼굴을 강타하다'는 말로 극심한 분노나 불만에 의해서 안면 근육이 경직된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드러난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면의 ‘동기’가 드러난 것입니다.
당혹스럽죠. 화가나서 얼굴의 안면 근육이 경직됩니다.
그 안에 ‘불순물’이 있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드러내신 것입니다.
지금 가인의 마음안에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의 동기와 불순물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순간 여러분 당혹스러워하지 마십시요.
내 안에 잘못된 동기와 불순물들이 드러났다면
하나님 앞에 돌이켜 회개하고, 그 마음을 바로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연약함을 놓고 기도로 씨름하면 주님이 만져주십니다.
그러나 지금 가인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전혀 되돌아보지 않고,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에 사로잡혀 자신의 동생을 죽이기에 이릅니다.
참으로 안타깝죠..
여러분 불순물이 드러났을때,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은 다른 동기들이 드러났을때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마십시요!
반드시 주님앞에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의 동기를 순결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 동기들과 불순물들은 단번에 제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거해도 계속 나옵니다.
그 잘못된 동기들을 계속해서 잘라내고, 바르게 하고
불순물들을 계속 제거하며 나아갈때
예수그리스도만을 갈망하는 정결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진짜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동기와 불순물들을 드러내십니다.
그때가 때론 당혹스럽고,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 영역을 주님 앞에 씨름함으로 내려놓고
계속 주님의 얼굴을 추구하며 구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하나님의 얼굴을 구할때 목마름을(갈망) 더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때, 우리의 목마름은 채워집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더 주님의 임재에 목마르게 됩니다.
왜일까요?
주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할 수록 그것이 가장 큰 영혼의 만족이요 기쁨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 임재 없이는 예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주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주님의 깊은 임재를 맛보면 채워짐과 동시에 더 갈망하게 됩니다.
주님을 더 사모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님. 우리 예배위에 당신의 임재를 더 부어주십시요.
OverFlow 넘치도록 부어주소서
다윗의 장막에 임재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가 당신의 임재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이 일 후에 내가 돌아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을 것이다. 폐허가 된 것을 내가 다시 짓고 내가 회복시킬 것이다.
그러면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받는 모든 이방 사람들이 주를 찾을 것이다.
신약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의 성막도 아니요,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의 회복도 아닌, 초라한 다윗의 장막을 회복시키겠다고 하는것입니까?
그쵸?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이 더멋지지 않습니까? 왜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다윗의 장막은 ‘다윗의 갈망’이 담겨있습니다.
주님의 임재와 영광을 갈망하는 다윗의 하트가 담겨있습니다.
그 다윗의 장막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합니다.!
오늘본문 시편 63 편 2절을 보십시요!
성소에 보았던 주님의 영광과 권능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그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비록 언약궤가 있던 다윗의 장막은 초라했지만, 그 안에서는 주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었다.
화려한 예배당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임재가 중요합니다.
예배의 본질은 ‘주님의 임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도 아니요, 이 산도 아니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진리되신 예수그리스도가 높아지는 예배입니다 아멘?
우리가 다윗의 장막과 같은 예배를 회복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7절을 다시 보십시요. 남은 사람들과 내이름으로 일컬음받는 모든 이방사람들이 주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방인들이 교회에 와서 무엇을 보아야겠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때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주님의 임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이 예배 가운데 알수 없는 눈물이 흐르게 되고,
알 수 없는 성령의 터치를 경험하고… 할렐루야?
그래야 이방인들이 그 임재를 경험함으로 주를 찾게 되기 때문에.. 아멘?!
우리의 예배 가운데 주님의 임재가 흘러넘치기를 바랍니다!
에스겔 47 장에서 성전에 흐르는 물이 밖으로 나아가 바다를 이루듯이..
하나님의 임재가 OverFlow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들의 시작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갈망’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요.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십시요. 할렐루야
저는 우리 시카고 온누리교회 모든 분들이 다윗처럼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자가 됩시다!
주님을 갈망하는 예배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우리 함께 찬양하십시다.
1)이 시간 오로지 주님의 얼굴만 구하기 원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원합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 주님 한분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의 얼굴 빛을 비춰주소서,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주님만 갈망하게 하소서
2)주님 우리가 더 순결한 예배자가 되기 원합니다
정말 예수만을 간절히 원하는 예배자 되기 원합니다.
우리 내면의 동기를 바르게 다뤄주시고, 모든 우상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것들을 버리게 하옵소서
3)주님 우리 교회의 예배가 다윗의 장막처럼 당신의 임재로 넘쳐나게 하소서
주님의 임재를 사모합니다. 다윗이 다윗의 장막에 있던 주님의 임재를 갈망했듯이
주님의 임재를 갈망합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