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240123 화 [이사야 16장] 높아짐과 낮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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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야 16장

이사야 16장에서는 모압에 대한 심판이 15장에 이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낯선 이름이나 지명들, 표현들이 등장하다 보니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지요. 하지만 예언자에게 주어진 말씀 속에서 몇몇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고, 무엇을 주목하시는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6절에 이렇게 쓰고 있지요.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이 신탁은 모압의 교만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꼐서 모압에게서 보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지요.
히브리어에서 이 ‘교만’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니 ‘가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많은 성경에서 이사야 16:6절에 사용된 ‘가온’을 ‘교만’으로 번역하고 있지요. 그런데 다른 본문들에서는 또 다르게 번역됩니다. 미가서에서는 같은 ‘가온’이지만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이라고 번역되고, 나훔서에서는 야곱과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번역되지요. 출애굽기에서도 홍해를 건넌 후 미리암이 부르는 노래에서 한글 성경은 이 말을 주님의 큰 ‘위엄’이라고 번역합니다. 문맥에 따라서 같은 단어이지만 서로 다르게 번역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나 신실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가온’이라는 말을 쓸 때는 ‘위엄’, ‘영광’, ‘아름다움’ 같은 말로 번역을 하고, 사람, 혹은 다른 나라들, 이방 신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는 ‘교만’, ‘자랑’, ‘오만’과 같은 말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단어가 ‘뛰어남’, ‘높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들의 힘이나 부, 영향력 같은 것들이 뛰어나고 높은 상태를 뜻하는 것이지요. 이는 그저 ‘높다’, ‘뛰어나다’는 상태를 나타낼 뿐 ‘좋고 나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좋은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고 성경을 기록한 신앙공동체는 그것을 교만으로 보기도 하고, 아름다움으로 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모압을 향한 신탁, 예언에서 이것이 잘 드러납니다. 다시 6절과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
모압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의 부, 그들의 능력, 그들의 잘 되는 것을 자랑했지요. 그리고 그것들을 의지했습니다. 7절부터 10절까지, 모압이 받는 심판의 모습들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9-10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요.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모압은 풍성한 포도로 항상 즐거워하고, 기름진 땅에서 나는 소출로 항상 풍요로운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들 자신의 자랑이 되었겠지요.
물론 그들이 스스로 열심히 땀 흘리고 밭을 일구었을 것입니다. 모든 농부들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모압의 농부들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압 왕실의 통치자들, 행정가들, 그리고 상인들, 다 저마다 자기들의 자리에서 애쓰고 힘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그 모든 것들을 모압 사람들은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여겼을 수도 있지요. 모압이 높이 쌓은 부, 성취, 권력과 힘, 이것이 히브리어 ‘가온’이 가리키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손으로 쌓은 것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특히 그 중에서도 13장부터 29장까지, 열방에 대한 심판을 외치는 예언자는 ‘하나님이 온 땅의 주인’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온 땅의 통치자라고 선포하는데, 이런 생각은 고대사회에서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신들은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나라에서만 주인이었습니다. 여호와는 유다 땅에서 신이고, 그모스는 모압 땅에서만 신이고, 다곤은 블레셋 땅에서만 신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는 하나님이 온 열방을 심판하신다는 이 예언을 통해 하나님이 ‘온 땅의 통치자이시다’라는 것을 외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사야에 따르면 모압의 자랑은 교만입니다. 이사야는 온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모압이 땀흘리고 노력하여 얻은 부라고 할지언정, 혹여나 그것을 정직하게 얻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힘으로 얻은 것으로 여기며 자기를 구원할 것으로 여기는 순간, 곧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구원으로 삼는 것이 아니게 된 순간, 그들의 그 모든 ‘가온’ 곧, 부와 명예와 힘은 교만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예언이 모압을 다루고 있지만 유다 사람들을 향해서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사람들의 대적이 되는 모압의, 열방의 심판을 전하면서 유다 사람들의 간지러운 데를 긁어주시려고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압 사람들에게 화가 나셔서, 버르장머리 고쳐주겠다, 내 말 잘 들어라, 싶어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 심판의 말씀을 우리, 곧 하나님의 언약 백성된 사람들, 유다 사람들에게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12장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이 유다 사람들을 향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을 보았지요. 이것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지금 유다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 모압 사람들이나 매한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들으라, 너의 교만함을 보아라, 네 가진 것을 자랑하고 그것에 매달려 자기 구원을 찾으려는 마음 가진 너,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여라, 하나님은 모압을 보여주시며 교만한 언약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겸손은 교만과는 반대이지요. 교만이 높아지는 것이라면, 겸손은 낮아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겸손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우리의 삶의 참된 통치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백하는 감사, 그 감사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표하는 우리의 찬양이 아닐까.
오늘 하루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도 하나님의 통치를 고백하며 감사를 드릴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참된 하나님의 나라 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참된 겸손으로 날마다 주님의 다스림과 돌보심 가운데 우리의 삶이 거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겸손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내려놓는 믿음을 주소서. 우리 자녀, 우리 소유, 우리 지식과 능력,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청지기된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참된 겸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친히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복된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하소서.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날이 갈 수록 겸손한 교회 되게 하소서.
우리 교회에 주어진 것들, 누리는 모든 것들, 하나님의 은혜이자 선물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1월 30일 교역자 수련회를 통해 새 힘을 주시고, 교회를 잘 섬길 힘을 얻게 하소서.
2월 2일부터 이어지는 청년부 수련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살아가는 청년들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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