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240201 목 [이사야 23장] 비를 따라 밭을 갈아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찬송가 361

본문: 이사야 23장

이사야서는 13장부터 27장까지 ‘열방’에 대한 심판을 전합니다. 그 중에서 24-27장은 또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열방 심판은 크게보면 13-23장과 24-27장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23장은 열방 심판 첫번째 단락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사야서의 열방심판은 13장의 바벨론에서 시작해 23장 두로에 대한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사이에 다른 나라들, 유다 예루살렘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심판 예언이 있었지요. 유다 예루살렘의 입장에서 보면 온 세계를 향한 심판 선포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오늘 23장에서 예언자가 이야기하듯 두로는 부요한 나라였습니다. 2-4절을 보면 두로는 항해하는 국가, 상인들의 나라입니다.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두로가 얼마나 부요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했는지, 그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6-8절에 잘 나타납니다. 8절에 ‘면류관을 씌우던 자’라는 표현은 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식민지를 세우던 나라라는 것이지요. 상인들과 무역상들은 그들의 부로 치장하면서 존귀한 자들이라고 불리었고, 6절의 ‘다시스’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보면 아주 먼 곳에 있는, 신약성경에서 ‘땅끝’이라고 불렀던 오늘날 스페인의 한 도시였습니다. 아름다운 지중해와 따뜻한 기후를 품은 이 먼 도시에까지 두로의 영향력이 미쳤던 것인데, 7절에서 ‘희락의 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두로 사람들의 ‘겨울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그런 두로에 대하여 예언자는 묻습니다.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두로의 고통, 두로의 수치, 두로의 황무하게 된 일이 말입니다. 그가 참으로 쓸쓸한 예언을 전합니다. 1절에서 두로가 자랑하는 겨울별장, 다시스 항구에서 떠나온 배가 돌아갈 곳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두로가 멸망하게 되었으니 모국과 모항 없이 배는 망망대해를 떠다니게 됩니다. 이 일을 누가 정하였는가, 예언자는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하려 하심이라.”
구약성경의 예언에서는 언제나 심판과 함께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선포하지요. 하지만 이방 나라에게도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을 선포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오늘 두로에 대한 예언은 독특하게도 지금까지 줄곧 열방에 대한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과 달리 두로를 ‘돌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이사야 13-23장에서 예언자는 열방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지만, 일차적으로 듣는 이들은 열방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지요.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역시 유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있다면, 하나님의 메시지를 두 가지 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사람들이 갖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그 어떤 부나 소유도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9절에서 이야기하듯 두로는 영화로웠고, 그들의 소유는 넘쳤으며, 온 열방의 선망이 되어 그들의 자랑과 자신감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이 되었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신 것에서 도망할 수 없는 두로는 돌아갈 곳 없이 표류하는 바다위의 선박과 같은 신세가 됩니다.
소유를 통해서 자신을 확장시키고, 소비를 통해서 즐거움을 누리고 자기를 표현하는 오늘날에 이 예언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또 한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17절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이 사이에 접속사를 새로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실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두로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은혜도 동시에 받았지요. 하나님이 두로를 돌보실 것이며,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심판은 갱신을 이끌고, 회개는 이전의 삶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로의 행동이 바뀌질 않습니다. 옛날 방식에서 돌아서기는 커녕,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섭니다. 은혜를 받았지만 변함이 없습니다. 열방과 음란을 행한다는 온 열방과 무역을 하면서 수많은 소유와 부를 축적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영화와 교만을 자랑했던 그 삶, 그 모습과 방식 그대로 돌아가리라는 비유입니다.
예언자는 이 이야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지요. ‘너희는 그렇게 되지 말아라.’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앞에서 수많은 예언자들이 선포했습니다. 심판을 전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외쳤지요. 잠시 잠깐 회개하고 돌아서는 듯 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바울의 말처럼 인간은 철저히 무력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바울은 고백하지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선을 행하는 능력은 내 안에 텅 비어 있음을 발견한 바울은 인간이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다,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은혜가 없어 망한 것 아닙니다. 오늘 두로의 예언이 보여주듯 성경은 은혜에 응답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은혜의 비를 힘입어 우리 손에 쟁기를 들오 밭을 갈고, 땅을 기경하며 구슬땀 흘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내린 비 힘입어 기경한 밭 위에 뿌려진 씨앗이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익명의 저자는 이렇게 성도를 권면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합시다. 우리가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대항합시다.”
아주 겸손하고 겸허하게, 매일매일 하루 분량의 은혜를 주님께 구하며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힘써 그 은혜에 응답하며 우리의 믿음과 삶의 밭을 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마음의 판에 주님의 말씀을 새기고, 하루를 걸어가는 동안 문득문득 멈추어 서서 다시 그 판에 새겨진 말씀 바라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세우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선하신 힘과 능력을 힘입어서, 끊임없이 소유하고 부요하고 더 커지기를 원하는 죄된 마음, 교만한 힘과 싸워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이들이 주님의 제자로서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루를 온전하게 지나가는 우리의 걸음이 말씀을 힘입어서 싸워 이겨나가는 삶이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마침기도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 우리 안에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나를 위하여, 나의 만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창고를 크게 하고, 자기 소유를 늘리려는 궁리만 하다 부름받은 부자처럼 어리석은 자 되지 않도록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믿음 주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 없이는 옛모습으로, 옛사람으로, 옛방식으로 금새 돌아서버립니다. 우리 안에 선하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주님 말씀을 시시 때때로 떠올리며, 묵상하며, 주님을 힘입어 승리하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전과는 다른,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소서. 구별되고 거룩한 삶이 우리가 바라는 것, 소망하는 것, 열망하는 기도의 제목들이 되게 하소서.
교회와 하나님의 세계를 위하여
내일부터 이어지는 청년부 수련회 위에 은혜를 주옵소서.
남북한의 관계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갑니다. 서로 주적으로서 선언하면서 적대감과 갈등이 커져갑니다. 하나님, 우리가 먼저 선한 이웃이 되게 하시고, 둘로 나뉘어진 것을 하나로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철조망 위에, 불신과 갈등으로 담지어진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 위에 임하여 허물어지고 평화가 세워지는 은혜 주소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위에, 전기와 식수, 의료 등 일상자원이 끊어져 고립된채 병들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땅 위에 하나님, 위로와 살리는 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