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240815 목 [에스겔 35장] 회복된 정의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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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겔 35장

오늘 새벽에도 함께 말씀을 나누는 모든 분들께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32장까지 길게 예언자 에스겔을 통해 선포된 바로와 애굽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33장부터 이어지는 에스겔의 예언은 이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어, 39장까지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합니다. 33장 21절에서는 이 예언의 시기가 ‘사로잡힌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이라고 밝히는데, 그 때에 비로소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요.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는 일이 몇 차례 나누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날짜는 첫번째로 바벨론에 옮겨진 에스겔이 바벨론에 열두째 해를 보낼 때가 되어서야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었던 것임을 알려줍니다.
사실 유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에스겔만 전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도 회복에 대해서 예언했을 뿐 아니라, 그 예레미야와 대립하던 하나니를 비롯해서 ‘평안’만을 외치던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했지요.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밀려들어오는 바벨론 군대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선포했던 하나니와 궁중의 예언자들과 제사장 출신인 에스겔의 회복 선포는 조금 다릅니다. 지금까지 죄 고발과 심판, 회개를 이야기하던 에스겔은 예루살렘과 성전의 완전한 파괴 후에야 비로소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에스겔은 잿더미 속에서, 더 이상 사람이 세울 수 없는 황폐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새롭게 하실 정결하고 거룩한 회복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회복의 선포가 33-39장, 나아가서 40장에서 마지막 48장까지 에스겔이 바라보는 하나님의 비전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35장의 예언은 이런 회복의 비전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예언은 다시 이방인 ‘에돔’의 심판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이 말씀을 자신이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1절과 2절에서 이렇게 전하지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세일 산은 에돔의 영토에 위치한 산입니다. 12절에서 ‘이스라엘의 산들’과 함께 36장에서 ‘이스라엘 산들’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이 전해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산’들은 각기 에돔과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지요. 5절은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시는 직접적인 이유가 드러나는데, 그 까닭이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라고 쓰고있지요. 이는 아마 야곱과 에서에서 시작된 오랜 불화와, 유다가 바벨론에 침략을 당할 때 에돔이 바벨론 편을 들었던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조금 더 본문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 과정 중에 에돔을 심판하시는 이유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0-13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땅이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네가 그들을 미워하고 노하며 질투한 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네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우리에게 넘겨진 바 되었다, 욕하는 모든 말을 내가 들은줄 알리로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여러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에돔은 미워하였고, 탐욕을 부리고, 불의하게 빼앗는 자였다, 이런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는 가운데 에돔의 심판의 이야기를 하는 까닭,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멸망의 소식을 들은 후에야 하나님의 회복을 예언하는 까닭,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참된 회복은 온전한 정의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입니다. 참된 용서와 구원은 회복된 공의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이지요. 회복을 이야기하면서 에돔의 시기와 질투와 탐욕과 불의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 후에야 비로소 회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회복과 용서가 참된 정의와 공의 위에서 이루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한없이 용서하시지요. 그러나 회복된 정의없이는 참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회개’가 돌이키는 것,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며, 회개가 용서에 선행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푸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곤 합니다. 그러나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침 없이 베풀어지는 용서는 또 다른 죄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회개 없는 용서는 또 다른 죄악의 씨앗이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은 정의의 회복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어그러진 하나님의 정의를 회복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하나님의 나라는 회복된 정의와 함께 찾아옵니다. 그 나라,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 속에 회복될 하나님의 정의를 품고 살아가겠지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바라보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구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 우리가 또한 하나님의 참된 정의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삶에서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정의,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복해야 할 정의, 우리의 삶의 걸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주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참된 회개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회복,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마침기도

말씀을 생각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들 되게 하소서.
이 땅이 온전히 회개하고, 정의를 회복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도 공허하고 텅빈 말뿐인 회개가 아니라, 참으로 우리 삶에 고치고 회복해야 할 것으로 주님앞에 나아가는 믿음되게 하소서.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의 정의는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정의와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 일제 치하에 억압받던 우리 나라에 정의의 회복을 베푸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정의가 회복되게 하소서.
기후정의가 세워지도록. 인간의 탐욕으로 인간 역시 고통받지만, 말하지 못하는 피조세계가 고통받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된 세계에 기후 정의가 실현되도록
청년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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