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의 큰 믿음
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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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views예수님의 사역은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번영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닌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조건이나 자격과 무관하게 찾아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예수님의 냉정해 보이는 반응은 실제로 여인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가장 어려운 순간이 믿음이 성장하는 때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여인의 겸손하고 담대한 믿음은 '작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원리를 드러냅니다. 본문에 사용된 작은 단어들(θυγάτριον, κυνάριον, παιδίων, ψιχίων)은 우리의 부족함이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강력하고 단순한 응답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음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겸손하지만 담대하게 나아갈 때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Notes
Transcript
서론
서론
우리는 종종 인생의 중심부, 성공의 정점, 번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 중 가장 번성한 도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은 변방으로, 소외된 이들에게로 향하셨습니다.
앞서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통해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듯하지만, 실상은 자기를 내세우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전혀 다른 곳으로 가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조건이나 자격과는 무관하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의 성공과 번영 속에서? 아니면 우리의 한계와 약점 속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어느 구석에서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실지,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이것이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질문입니다.
1. 이방 땅에서의 역사.
1. 이방 땅에서의 역사.
오늘 본문의 배경은 두로 지방입니다.막 7:24 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기를 원하셨으나 숨길 수 없게 되었더라"
두로는 유대 지역이 아닌, 이방인들의 땅이었습니다. 이곳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당시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풍요와 번영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죠.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들에게 이곳은 '부정한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선택을 봅니다. 그분은 이 번성한 도시의 중심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상인들과 귀족들이 모이는 시장이나 광장을 찾지 않으셨어요. 대신 예수님은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이 큰 도시의 변두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어가신 것과 같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선택을 하셨을까요? 그분은 화려함과 번영 뒤에 숨겨진 진실한 필요를 보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겉으로는 풍요롭게 보이는 이 도시에서, 정작 가장 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26절은 그녀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이 여인은 세 가지 측면에서 당시 사회의 소외 계층이었습니다.
첫째, 그녀는 여성이었습니다.
둘째, 그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셋째, 그녀는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머니였습니다. 번영하는 두로 지방에서 그녀는 아마도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이런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가장 절박한 필요를 가진 이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사회적 지위나 성공과는 무관하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더욱 가까이 계십니다.
여러분, 지금 자신이 인생의 변두리에 있다고 느끼십니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기대합시다. 그곳이 바로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2. 예상 밖의 예수님 반응과 그 속에 담긴 역설
2. 예상 밖의 예수님 반응과 그 속에 담긴 역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소 낯선, 심지어 냉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2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얼핏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비로운 예수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반응 속에는 깊은 역설과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이는 겉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앞서 우리는 율법과 전통을 내세워 자신들의 의로움을 과시하던 바리새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였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과는 정반대로 보이는 이방 여인을 통해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좀 거친 모습을 보이시면서 이 여인이 유대인이 개로 여기는 이방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믿음으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지위, 업적, 봉사의 경력을 내세우며 나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폼나는 모습이 주님께도 폼난다고 착각할 때가 많지만, 예수님의 이 냉정해 보이는 반응은 오히려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의 자세를 보고 계심을 강력하게 일깨워줍니다.
둘째,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놀라운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절하는 듯한 이 반응이 실제로는 여인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예스'를 주시는 대신,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고 깊게 하시기 위해 이러한 방식으로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가 더 큰 경기를 위해 힘든 훈련을 거치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통스럽고 불필요해 보이는 과정이 실제로는 그 선수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 '거절'은 실제로는 여인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설은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장 어렵고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이 가장 크게 성장하는 때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축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상황이 실제로는 우리를 더 큰 축복으로 이끄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이 반응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여전히 믿을 수 있습니까?" 이는 우리의 믿음이 단순히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인지, 아니면 하나님 그 자체를 향한 것인지를 시험하는 질문입니다.
이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은 놀라운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냉정해 보이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말씀 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이와 같은 순간들을 만날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이 역설적인 순간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지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3. 작은 자들의 이야기
3. 작은 자들의 이야기
이제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놀라운 반응과 믿음을 봅니다. 28절에서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대답에는 깊은 겸손과 강한 믿음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그녀는 자신을 '개'에 비유한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비유를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개'일지라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작은 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위나 권리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수님의 은혜 만을 구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앞에 '큰 자'로 나아가려 합니다. 우리의 공로, 우리의 노력, 우리의 헌신을 내세우며 하나님의 은혜를 요구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작은 자'로 나아갈 때 더 큰 은혜를 경험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는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인 원리를 보여줍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오히려 높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 원리를 체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개'에 비유하면서까지 겸손히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믿음이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직 그분의 은혜만을 구하는 자세 말입니다. 이는 결코 자존감을 낮추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가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4. 작은 것들의 의미
4. 작은 것들의 의미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사용된 언어에 주목해 봅시다.
θυγάτριον (thygatrion) - "어린 딸" (25절)
κυνάριον (kynarion) - "작은 개, 강아지" (27절, 28절)
παιδίων (paidion) - "어린 아이들" (28절)
ψιχίων (psichion) - "부스러기" (28절)
이 작은 단어들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전합니다.
첫째, '퀴나리온'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믿음을 통한 전환이 이루어 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개의 새끼에는 두 가지 의미 - 욕(어린 딸이 개의 새끼로 그러면? 너는 개), 그러나 믿음을 더할 때 귀여운 반려견이 된다.
둘째, '프시키온'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받는 것이 아주 작아 보일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충분한 은혜입니다.
이 작은 단어들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우리의 좋지 않은 조건, 우리의 부족함이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작게 여길 때, 오히려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깨닫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보여준 것과 같은 겸손하고도 담대한 믿음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작은 개'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의 은혜가 그 '작은 개'에게도 미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받는 은혜가 '부스러기'처럼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은혜조차 우리를 살리고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의 표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자신의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지십니까? 받은 은혜가 너무 작아 보입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 '작음'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풍성히 임할 수 있는 조건일 수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우리의 작음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마지막 부분을 작성하겠습니다.
5. 응답은 강력하고 단순하다
5. 응답은 강력하고 단순하다
2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이 말 때문에!”
이 응답의 특징은 강력하면서도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긴 설명이나 복잡한 의식 없이 단순히 말씀으로 치유를 선포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부스러기'만을 구했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딸을 완전히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여줍니다.
둘째, 하나님의 응답은 종종 단순하고 직접적입니다. 우리는 때로 복잡한 해결책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단순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과대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입니다.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는 말씀은 현재 완료형으로, 이미 일어난 일을 나타냅니다. 이는 때로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빠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지친 마음에 찾아온 놀라운 은혜'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변두리, 우리가 가장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수 있습니다.
둘째, 때로는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강화시키는 과정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작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할 때 우리는 더 큰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작은 '부스러기'를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강력하고 단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잡한 해결책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이 느끼는 부족함, 연약함, 그리고 '작음'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풍성히 임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겸손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임하는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