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장 29-40절 (무지는 무죄가 아닙니다)
Notes
Transcript
사사시대의 특징 참된 회개와 회개의 지속성이 없다. 반복이지만, 암몬족속이 쳐들어오자 금방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묻거나 의지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곧바로 자신들을 대신하여 싸워줄 사사를 찾는다….뭔가 이상하지 않나? 원래 사사는 누가 세우나?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셔야 하는데 이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사사를 찾고 있다. 사사기 11장 5-6절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입다가 어떤 사람인가? 길르앗의 유력한 자와 기생 사이에서 낳은 아들 그런데 본처의 아들들에게 쫓겨남.. 그런데 입다가 어떻다고 하나? 11장 1절에서 큰 용사다.. 라고 함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 받지만 결국 태생의 문제로 좌천된 자 그런 그를 11장 3절에서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패거리를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여기서 잡류 라는 단어는 방탕한 자들 이라는 뜻 이들은 부랑아들, 윤리의식이 부족한 자들을 의미… 이런 자들이 입다에게 몰려 들었다. 이는 이스라엘에 시간이 지날 수록 이런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 사회에서 소외 당하는 자들이 입다에게 몰려 들어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입다를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입다는 무엇을 하는가? 길르앗 장로들과의 흥정을 진행한다. 왜냐하면 11장 7절에서 입다가 집에서 쫓겨 나갈때 길르앗 장로들도 개입 되었던 것 사사기 11장 7절 입니다.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입다는 장로들과 흥정에 성공하고 그리고 바로 여호와를 증인으로 내세우며 이 모든 상황을 선포하면서 못 박아 버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입다는 암몬과의 외교에서도 협상의 빛을 발하고 있다. 암몬이 쳐들어와서 너네가 빼앗은 우리 땅 내놓으라고 함 입다는 암몬에게 사자를 보내어 너네가 옛날에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긴 땅을 우리가 아모리와 싸워 이겨서 빼앗은 건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왜 지금 와서, 그것도 3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달라고 하냐? 이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의 사건 입다는 전투의 능력 뿐만 아니라 길르앗 장로들, 암몬족속에게 한 것처럼 협상의 능력도 뛰어나다. 논리적이고 역사적이고 종교적 지식도 뛰어남을 볼 수 있다. 말로 안되니까 암몬은 어떻게 하나? 한판 붙자고 온 것 이렇게 입다는 다른 사사들에 비해서 집안 배경을 빼고는 능력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집안 배경도 뛰어넘은 능력자다. 스펙도 좋고, 아는 것도 많고, 능력도 좋고, 사람을 모이게 하는 매력도 있고, 무엇보다 협상을 너무 잘한다. 이게 오늘 본문의 배경적 상황이며 입다라는 사람의 능력치 그런데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입다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떤가?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 여러분들에게 묻겠다. 여러분은 세상적 스펙과 능력치와 지위와 하는 일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기 원하나?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
오늘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억하길 원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첫번째, 하나님은 협상의 대상이 아닌 예배의 대상, 의지의 대상임을 기억하세요 압몬과의 전쟁을 눈 앞에서 둔 상황에서 하나님은 비록 길르앗 장로들이 가서 세운 자이지만 그를 인정하신다. 본문 29절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무슨 의미인가? 비록 사람이 마음대로 세우고 일이 진행되어도 하나님이 입다를 인정하시겠다는 의미 그럼 이것으로 충분한 거 아닌가? 물론 입다가 의식을 하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그를 도우시려 하시고, 그의 손에 암몬 자손을 붙이시므로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하시려 함 그런데 30-31절… 입다는 뭐하고 있나?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나에게 승리를 주면 내가 하나님께 나를 영접하는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습니다… 맹세를 통한,,, 협상을 통해 하나님의 호의를 얻으려 한다. 길르앗 장로들과,, 암몬 사람들과의 협상을 하나님과도 하려고 한다. 왜? 상황이 불안하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지도 못한다… 승리를 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협상을 통해 자신의 샬롬과 이스라엘의 샬롬을 사려 하였다.
그런데 입다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이시다. 우리의 순종이 필요하며, 믿음을 필요로 하시지, 협상이나 딜이 아니다. 모든 협상에서 대답을 들은 입다는 이번 하나님과의 협상은 실패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그의 협상에 응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하나님과 때로는 협상하려 한다. 하나님 이렇게 해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할께요~~₩ 이번에 취직 잘되면, 계획이 잘되면, 일이 잘 해결되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께요… 일을 할께요.. 예배 안빠질께요… 반대도 있다. 예배 잘드리니까…열심히 봉사하니까…기도 많이하니까… 하나님 이거 해주세요..잘되게 주세요….
이미 하나님은 입다에게 충분한 승리의 능력을 부여하셨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고 능력있게 살도록 힘과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특히 힘들고 팍팍하고 살기 빡센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이 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뭔가? 하나님과의 협상이 아닌 의지, 의존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전적으로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여러분의 삶의 모든 순간마다 충만하게 역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두번째, 왜 입다는 말도 안되는 서원을 하나님께 하였나? 이유는 단 한가지…
세상적 스킬과 지식에는 능하지만 하나님은 알지 못하기 때문…
즉, 하나님을 향한 무지함은 무죄가 아니다.. 가장 큰 죄악이다.
왜 하나님과 거래 하려하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
민수기 30장에 서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 앞에 서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안된다고 하면 레위기 27장에서는 속전을 올려 드려 서원을 취소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과 상황은 잘 알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물론 율법을 모를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하나님과의 거래에 무엇을 가지고 왔나? 몰렉의 제사를 가지고 왔다.
다시 31절 하반절… 나에게 승리를 주시면 나의 집에서 가장 먼저 나를 영접하는 자를 번제물로 드리겠습니다….
번제물은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고 태우는 것…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쓰라고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몰렉의 제사를 가증히 여기신다.
레위기 18장 21절
21.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인신제사는 가나안의 풍습이다.
이는 사사들도 혼합주의적 신앙에 물들었음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졌고,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싸운다 하지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전쟁이 끝나고 가장 먼저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사람이 누군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딸이다.
입다는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그 딸을 번제물로 드린다…
몇몇 학자들은 진짜 했겠나? 라고 하지만
성경은 입다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였고, 이스라엘의 딸들이 입다의 딸을 위해 애곡하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 한다.
협상으로 샬롬을 얻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의 샬롬은 빼앗겨 버렸다.
하나님은 입다에게 단 한번도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세상적 가치를, 세상적 불의와 불법의 방법들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일이 과연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방법이 맞는가?
결국 입다의 사건도 통곡으로 끝난다…. 사사기의 핵심 주제와 같이… 통곡이 가득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는 결국 통곡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열심히 출석하는 것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너무 게으르고 무지하다.
세상을 살면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 처럼 하나님을 믿고 섬기려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삶과 알아감에 관심이 없이 / 오로지 나의 기준과 나의 방법만 난무한다.
다른 성공을 위해서 공부도 하고, 배우고, 시간을 투자하지만
성공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도 많은 것들을 투자하고 투입하는데
진짜 우리 영혼과 인생에 중요한 하나님을 아는 것에는 왜 그렇게 게으른가?
귀찮고 시간을 내지 않나? 가장 중요한 것의 우선순위가 뒤바뀐채 살고 있지 않나?
하나님은, 신앙은, 믿음은 교회 안에서만 보여진다고 생각하고, 세상에서는 또 거기에 맞춰 적당히 살고 있지 않나?
우리의 삶도 이런 혼합주의적 신앙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평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되기를 소원…
이 목표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 수록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원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는 죄악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죄악을 너무 아무렇지 않고 쉽게 생각하며 살지 않나?
우리의 지식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는 무지하고 지혜 없는자..
때로는 체험과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 하기도 함
하지만 체험과 기적이 전부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기초가 없는 기적과 체험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기초가 없고, 부실한 건물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묵상하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무엇보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알 수록 우리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말씀에 기초한 우리의 중심은 어떤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
물론 바쁘고, 힘들죠… 성경 볼 시간이 없다. 묵상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넷플, 디플 보고, 유튜브 보면서 다른 생각과 다른 삶을 즐길 시간은 있으면서 왜 나를 알아가고, 나와 교제하는 시간은 아깝다고 하니?
라고 한다면 여러분, 하나님께 뭐라하겠습니까?
영원한 하나님과의 기쁘고 즐거운 사귐에 빠져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되도록 기도하며
묵상하며 기쁨으로 나아가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지체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