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 (오후설교)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8:1-3,
Judges 8:1–3 NKRV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Judges 12:1–6 NKRV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에브라임”라는 제목으로 나눕니다.
=========================
이스라엘 역사는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약속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청산하시고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이들을 가나안의 여정으로 가게 하십니다.
한 마디로, 가나안 정복은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확립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하여 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자체가 ‘하나님 나라’였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국가였던 것이다.
-> 하나님 나라는 이상적인 나라가 아님임을 알아야 한다.
-> 우리 삶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인생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가, 치유가, 회복이, 채우심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먹여주심, 고쳐주심, 구원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
하나님 나라의 목적은 한 분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 지파 간 서로 섬기고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연합해서 이방 나라로부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지파가 아니라 12지파가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이렇게 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 연합하고 화합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전쟁을 해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화합과 융합이 깨지는 일들이 발생을 하게 된다.
오늘은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의 백성들 간에 화합과 융합을 깨뜨리게 했던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을 해야 되는데 이 가나안 전쟁은 전술이나 무기 싸움이 아니라
‘믿음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믿음은 당연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기도 하지만, 지파간의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함께 지파 모두가 세워야 할 나라이기때문이다.
문제는 지파간의 믿음의 균열이 일어나게 되어집니다.
한 분인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섬기다)은 한 공동체로 부르신 한 국가인 각 지파를 신뢰하고 믿어야 하는데
동족끼리의 비극적인 ‘피’를 보게 된다.
** 에브라임과 사사입다가 지휘하는 길르앗 군대와의 충돌이 발생한다.

입다(Jephthah) יִפְתָה(이프타) ‘그는 연다’는 뜻. 길르앗 지방에서 아버지 길르앗과 기생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로서 큰 용사였으며(삿 11:1)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이스라엘의 제9대 사사가 된 사람(삿 11:29; 삼상 12:11). 그는 서자(庶子)라는 이유로 이복형제들에 의해 쫓겨나 돕 땅에 살면서 잡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삿 11:2–3). 그러다가 암몬과의 전쟁이 임박하자 길르앗 장로들의 요청에 의해 이스라엘의 부름을 받고 돌아와 이스라엘의 통수권을 부여받고서 적군을 물리치게 된다(삿 11:5–33). 하지만 그 와중에 입다는 경솔한 서원을 하나님께 했고(삿 11:30–31), 그 약속 때문에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삿 11:34–40). 그뒤 그는 에브라임과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6년 간을 다스린 후 죽어 길르앗에 묻히게 된다(삿 12:1–7). 히브리서 기자는 그를 믿음의 영웅 대열에 함께 기록하고 있다(히 11:32).

이 동족간의 싸움의 근본적 원인은 ‘우월성’이다.
=========================
[에브라임지파] - 우월성
요셉의 아들의 두 아들 장자 므낫세, 차자 에브라임이다.
할아버지 야곱에 의해 양자로 받아들여져 아들 취급을 받았고 12지파 안에 포함되었다.
요셉의 두 아들(므낫세, 에브라임)이 각각 독립된 지파로 인정받아 13지파가 되었으나
레위 지파가 제사장지파로 빠지고 성막 봉사자들로서 영토를 분배받지 않음으로써, 12지파의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
에브라임은 형인 므낫세를 제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야곱과 에서처럼)
그래서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형제 지파 간의 갈등과 적대감이 존재했었다.
므낫세 지파가 더 큰 집단이었는데,
에브라임 지파가 더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ex : 여호수아, 사사 드보라, 여로보암왕)
가나안 정복에 핵심 인물이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 여호수아였다.
모세의 수종자였다가 후계자가 되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10지파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여 북이스라엘의 대명사가 되었다.
에브라임 하면 북이스라엘이라고 말한다. 곧 이스라엘은 에브라임과 같은 말로 여겼다.
에브라임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거였다.
=========================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이스라엘을 지도하고
어느 정도 주도했던 지파였음을 알 수 있다.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 ‘우월성’이 자손들에게도 생기게 되었다.
우리 조상이 ‘여호수아’야~~~~~! 우리 조상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중심이었어.
좀 더 가면 우리 조상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했어~~~~
우리 아빠가 목사야, 장로야, 우리가 이 교회를 세웠어...돈 많아..좋은 차 타..
강남 아파트에서는 ‘단지별로’ 나누어서 살기도 한다.
=========================
- 우월성은 하나님 앞에 정말 추악한 죄악이다.
- 우월성을 가지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
- 그분은 복을 내리셔도 되고 저주를 내리셔도 됩니다. 그럴 권한을 가지신 분입니다.
=========================
- 하나님만이 가지셔야 하는 우월성이 에브라임지파에게는존재했다.
이런 내면에 있는 우월성은 지파간의 갈등을 만들어 주었다.
우월성을 가지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주도적이어야 합니다.(에브라임은 지도력이 뛰어났다)
1) 인정받아야 하고 2) 자기 주도적이어야 했다.
=========================
이 두가지가 본문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 8장에 보면,
미디안 전쟁 중에서 가만히 있다가 기드온이 미디안을 잡으니깐 그때야 와서 하는 말이 “왜 우리 안 불렀어?”
아무것도 안하고 와서 말만 하는 거였다.
-> 이런 모습은 1)인정받고 2) 자기주도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 에브라임과 기드온
– 기드온의 대처로 “...내가(기드온) 이 한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높여 주고 있다.
-> 기드온의 이런 대처가 다른 이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룰수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전을 잠재움 -> 주 원인은 ‘대우받는 것’이었다.
에브라임 지파는 우월성이 존재했던 지파라서
“1) 대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2) 에브라임 지파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내 중심대로)이다. - 지파주도적이어야 했다.
=========================
우월성을 가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1) 대우받고 싶고 인정받고 2) 자기중심적(주도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자기 의견이나 주장에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평가기준은,
얼마나 주도적이었는가?가 아니다.
헌금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형제자매를 얼마나 많이 높여주고 살아가느냐가 평가기준이 된다.
곧,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주느냐? 내어 놓았느냐?
평가기준이다.
(사마리아인에 비유를 생각해보라)
율법학자의 질문을 통해서 1) 제사장 2) 레위인 은 강도만난 사람을 피해 지나간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주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피했고, 개라고 취급하는 ‘사마리아인’만 소히 털털 털어서 도와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라고 질문하시면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하시면서 결론을 내리신다.
-> 하나님의 평가기준은 무엇인가요?
주도하면서 피하는 사람입니까? 털털 털어서 도와주는 사람입니까?
=========================
-> 이런 우월성 가진 에브라임 지파가 이스라엘 전체의 결속력을 흐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이런 우월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의 결속력을 흐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
에브라임은 ‘기드온’에 했던 것처럼, ‘입다’에게 똑같이 한다.
결국, 에브라임은 입다(길르앗)과 내전을 벌이게 된다.
=========================
2) 에브라임과 입다(12장)
-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했던 방식대로 입다 에게 얘기를 하자,
암몬 자손과 싸우러 갈 때 에 왜 우릴 안 불렀느냐? 너희와 집을 불사르겠다.
입다가 말합니다. 내가 암몬과 싸우러 갈 때 너희를 불렀는데 도와주지 아니한 것을 보고
내가 가서 암몬과 싸워서 승리했더니 이제와서?
***** 이스라엘 역사상 안타까운 끔찍한 내전이 일어남
쉽볼렛(Shibboleth) ‘쉽볼렛’(שִׁבֹּלֶת, 쉽볼레트)은 문자적으로 ‘이삭’ 또는 ‘강의 흐름’이란 뜻으로, 요단 강 나루턱을 건너는 사람들 중에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구별해 내기 위해 발음해 보도록 요구했던 단어이다(삿 12:5–6). 사사 입다는 동족들을 괴롭히는 요단 동편 암몬 족속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바 있었다. 그러자 에브라임 지파가 시기하여 에브라임 지파와 입다가 지휘하는 길르앗 군사 간에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고, 패배한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 강을 건너 요단 서편으로 도주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입다는 요단 강 나루턱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을 식별하기 위해 ‘쉽볼렛’이란 발음을 하도록 시험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이유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히브리어 ‘쉰’(שׁ, 영어의 sh)을 ‘사멕’(ס, 영어의 s)으로 발음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쉽볼렛’을 ‘십볼렛’으로 발음한 에브라임 군사 42,000명이 요단 나루턱에서 입다의 군대에 체포되어 죽임당하게 되었다(삿 12:5–6).
참고로, 영어 ‘shibboleth’은 ① 특정한 집단의 말씨나 발음, 행동, 복장, ② ‘암호’, ‘시험해 보는 말’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 단어는 입다가 에브라임 사람을 식별할 때 사용한 히브리어 ‘쉽볼렛’(שִׁבֹּלֶת, 쉽볼레트)이란 단어에서 차용되었다.
=========================
-> 에브라임지파는 우월성을 가지고 기드온에게 했던 것처럼 입다 에게도 그런 식으로 다가가서 결국 내전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 내전으로 에브라임 지파는 사만 이천명을 잃게 되었다.
이것이 우월성의 위험성이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의 백성들이 축소가 되게 하는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 우월성과 시기심은 결국 자기동족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 결국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 내 몸이 10만이라면, 우월성은 내 몸에 4만2천을 없애기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상체 5만 하체 5만이라면, 상체나 하체 반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월성의 위험성입니다.
=========================
[에브라임의 역사] - 우월성이 불러오는 역사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남과 북
여로보암 통치이후,
-> 에브라임의 면류관이라는 단어는 것은,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명사가 된다.
북왕국의 수도인 번창한 사마리아를 가리킨다. 북 왕국은 ‘역모’의 역사이다.
반역하고 쿠데파를 일으키고...우상 숭배를 하게 되는 나라인 북왕국으로....
-> 악한 왕들에게 늘상 평가되는 꼬리표는
여로보암의 길을 갔더라....(실제로...죄의 대명사가 된다)
=========================
-> 에브라임 지파는 북왕국의 실세지파였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명사인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대명사가 아니라, 죄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의 우월성, 자기중심적(주도적), 대우받기 원하는 지파로 몰락하면서 아쉬운 결말을 보게 된다.
**** 우월성에 결말은,
1) 내 동족을 죽이는 결과이고
2) 죄의 대명사가 되는 결말을 가지고 왔다.
=========================
이 우월성은 ‘영적인’ 것에도 적용됩니다.
영적으로 우월함을 가지면서 자꾸 가르치고 지도할려고 한다. (에브라임처럼)
=========================
이런 지도력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대표한다.
그런데 그들은 지도하기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정말 사랑했고 헌신했고 포기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포기하고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민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영적인 지도력’입니다.
=========================
**에브라임이라는 뜻은 “두 배로 열매를 맺는’, ‘풍성한’, ‘이중의 풍작’이라는 뜻으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우월성을 두 배로 열매 맺었고 우월성이 풍성했다.
우리가 가져야할 것은 ‘우월성’이 아니라 ‘유연성’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우리는 우월성의 에브라임이 아니라 유연성의 에브라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한 분 하나님을 섬기고 한 몸인 공동체를 서로 서로 섬기고 믿어주고 신뢰하는 관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헌신은 ‘우월성’이 아니라 ‘유연성’을 표출하는 것임을 잊미 마시고
살아가시는 한 사람 한 사람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