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이 아니라면 무엇이 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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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유를 노략하는 자여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타작하는 송아지 같이 발굽을 구르며 군마 같이 우는도다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 보라 그가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과 광야와 마른 땅과 거친 계곡이 될 것이며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주민이 없어 완전히 황무지가 될 것이라 바벨론을 지나가는 자마다 그 모든 재난에 놀라며 탄식하리로다
바벨론을 둘러 대열을 벌이고 활을 당기는 모든 자여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쏘라 그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그 주위에서 고함을 지르리로다 그가 항복하였고 그 요새는 무너졌고 그 성벽은 허물어졌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내리시는 보복이라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는도다
파종하는 자와 추수 때에 낫을 잡은 자를 바벨론에서 끊어 버리라 사람들이 그 압박하는 칼을 두려워하여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고향으로 도망하리라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뼈를 꺾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앗수르의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사람들은 강함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정말 강함과 부유함과 권력을 갖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강함 자체가 복일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계십니다.
복이 될 수 없는 ‘강함’
복이 될 수 없는 ‘강함’
바벨론은 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강함 때문에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지는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벨론이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이 그 나라를 심판하시는 정도만
정복하고 다스렸어야 했습니다.
적당한 시점에서 정복 전쟁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강함이 가진 속성중에 하나가 바로
멈출 줄 모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이 전쟁과 폭력과 싸움과 노략과 정복을
계속 즐기게 만들었고,
그 결과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소유, 나의 백성을 노략한 바빌로니아야, 너희는 그저 즐거워하고 기뻐서 뛰는구나. 너희는 그저 초원의 송아지처럼 뛰어다니고, 힘센 말처럼 소리를 지르는구나.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 바빌론 도성이 크게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를 낳은 여인이 치욕을 당할 것이다. 보아라, 이제 바빌로니아는 온 세상에서 가장 뒤떨어진 나라,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이 될 것이다.
정복을 기뻐하고 노략을 기뻐하면서
강함이 지닌 속성을 마음껏 누리기만 했던 바볼론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강함 자체가 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강하다라는 것이 악을 향할 가능성이 높고
약한 자를 짓밟으면서
그것을 즐기고 기뻐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악함이라는 것이 그 악을 멈추게 할 능력이 없어서
강함을 소유한 사람은 그 강함의 속성 때문에
결국 타락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약한자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는 패턴을 역사상 많은 강대국들이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 볼 때에 강함은 결코 복이 될 수 없다고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복은?
그럼 복은?
그렇다면 복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약한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참된 복을 결국 받아 누리게 될 것임을
하나님이 말씀 하십니다.
어떤 복일까요?
참된 복은 두가지로 오늘 말씀에서 이야기합니다.
목장, 초장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은, 내가 그의 초장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니, 그들이 갈멜과 바산에서 풀을 뜯고, 에브라임 산지와 길르앗에서 마음껏 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참된 복을 주신답니다.
비록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어서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그들을 돌이켜서
목장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스스로 얻는 목장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목장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복될 것 같지만,
참으로 복된 삶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겁니다.
나의 힘으로 얻는 목장, 초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목장을 얻어야 참된 복을 누리는 삶이 되는 겁니다.
그 목장이 크든 작든 상관 없이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목장이
가장 아름다운 목장이고
그 목장애 거하는 것이 최고의 복인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2)용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가장 근본적인 복은 늘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 어떤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한들, 온전히 그것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어서
죄를 해결하지 못한채로
아무리 좋은 것을 소유한다 해도
죄로 인해서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우리에겐 ‘죄 용서’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벨론처럼 강한 나라는 강함 때문에
죄 용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처절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약함으로 어려움은 당하지만
궁극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고생과 고난을 겪는다 할지라도
자신이 죄임임을 깨닫고
그 죄를 용서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면
그 사람은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겠죠.
적용
적용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끝없는 어려움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한고비가 지났나 싶으면 또 다른 한 고비가 찾아옵니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으면
그 정도로 강하고 부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이러한 마음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벨론처럼 되는 것이고,
결국 바벨론처럼 망하게 되는 운명을 자처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목장(초장)을 누리고
하나님이 주신 죄 용서를 누리며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삶이 가장 복된 삶이라고,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나의 목장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이 세워주신 교회 공동체가 나의 목장이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우리의 가정이 나의 목장이겠죠.
청년들이 함께 예배하고
말씀과 삶을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풍성한 꼴을 먹는 생명의 시간이고,
가족들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서로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누려가는 것 또한 우리 삶의 목장이 되는 것이겠죠.
우리는 여전히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 각박하고 삭막한 현실 속에서
푸른 목장으로 이끄시는 목자되신
하나님의 손길을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더 큰 복은 없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강하지 않아서 감사하고
내가 약해서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며 살게 되어서 감사하며
약함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도우셔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죄 용서의 감격을 놓치지 않고 누려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온 맘다해 감사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우리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이 시간 마음다해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