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13)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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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0(금) 20240819(월)
3~4장에서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에 합당한 심판을 선포했다면, 5장에서는 심판의 메시지와 더불어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회개하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는 것, 진정한 회개는 무엇인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일까? 성경을 잘 읽으라는 말인가? 기도를 더 많이, 더 간절하게 하라는 뜻인가? 열심히 하나님을 향해 노래를 불러 올리라고 말하는 것일까?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자.
5장의 구조(김근주 소예언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1)
1~17 이스라엘이 엎드러지리니 정의를 세우라
1~3절 애가
4~6절 권면 : 하나님을 찾으라
7~13절 고발 : 정의와 공의를 내던진 자들
14~15절 권면 : 선을 구하고 정의를 세우라
16~17절 심판 선언 : 너희가 슬피 울 것이다
18~27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들이 사로잡혀 가리라
18~20절 심판 선언 : 여호와의 날은 어둠과 캄캄함이다
21~25절 권면 : 제사가 아닌 정의와 공의를 흐르게 하라
26~27절 우상과 더불어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리라
1~3 이스라엘을 향한 애가
1 이스라엘 가문아, 이 말을 들어라. 이것은 너희를 두고, 내가 지은 애가다.
2 "처녀 이스라엘이 쓰러져서, 다시 일어날 수 없구나. 제 땅에서 버려졌어도, 일으켜 줄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3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가문 가운데서 천 명이 싸우러 나간 성읍에는 백 명만이 살아 남고, 백 명이 싸우러 나간 성읍에는 열 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 4장에서 아모스는 회개할 기회를 놓친 이스라엘을 책망하면서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했다. 이어서 5장에서 애가를 통해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노래한다. 애가는 슬픔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장송곡이기도 하다. 아모스가 베델과 길갈의 성소에서 예배하는 사람들 앞에서 애가를 불렀다면 어떤 상황이었을까?
○ 이스라엘을 처녀로 비유하면서 버려진다고 노래한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순결하게 자란 한 처녀가 이방인들에 의해 겁탈당하고 길에 버려진 모습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설 수도 없고, 주변에도 그녀를 일으켜줄 사람이 없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이런 비참하고 처절한 이미지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곧 이와 같이 처절하게 망할 것을 선포한다.
○ 이스라엘의 이런 비참함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날 것임을 전한다. 전쟁에서의 처절한 패배의 모습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미래상을 보여준다.
4~15 나를 찾으라, 그러면 산다. 그 길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법정에서 올바르게 재판하는 것이다.
4~6 하나님을 찾으면 산다는 선포(1)
4 "나 주가 이스라엘 가문에 선고한다.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산다.
5 너희는 베델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고, 브엘세바로 넘어가지 말아라. 길갈 주민들은 반드시 사로잡혀 가고, 베델은 폐허가 될 것이다."
6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요셉의 집에 불같이 달려드시어 베델을 살라버리실 것이니, 그 때에는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 그러나 아모스는 동시에 살아날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4,6절).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베델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베델과 길갈은 북이스라엘의 남단에 위치한 가장 대표적인 예배처소이며 브엘세바는 남 왕국 유다, 예루살렘 남서쪽 80km에 위치한 예배처소이다. 이 곳들은 오래 전부터 매우 중요한 성소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통해 찾는 곳이었다.
성전을 찾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 당시 신앙으로 보면 매우 낯선 일이다. 하나님은 성소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이다. 그런데 성전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니 이 무슨 말인가? 교회를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이다. 교회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교회를 찾지는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 아모스는 이미 4:4~5에서 마음은 없고 형식만 남은 예배,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라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 자기만족적인 예배 행위를 비판하였다.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삶은 엉망인데 성전에 와서 예배 행위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제물을 가지고 오고 율법을 준수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인 만남에는 관심이 없고 의무를 다하는 종교 생활을 그만 두라는 말이다.
○ 오늘날 교회에 와서 예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많다. 일상의 삶은 어찌되었든, 예배 출석 잘 하고, 헌금 많이 내고, 교회에서 봉사 열심히 하면 하나님을 만난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많다. 이 얼마나 거짓된 말인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할 곳은 일상의 삶 속에서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삶의 영역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펼쳐가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깊어지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을 어떻게 다스리려고 하는지 깨닫게 되고, 그 다스림의 원리를 따라서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거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리와 무관하게 자기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예배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는 것 밖에 관심이 없다.
○ 이런 이스라엘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성전을 찾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성전들을 다 불살라 없앨 것이라고 경고한다. 건물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형식은 모두 사라질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본질은 하나님 그 분 자신이다.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산다.
○ 이 말씀은 7~13절을 건너뛰고 다시 14절과 15절에서 반복된다. 즉, 이제부터 살펴보게 될 가운데 토막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과 깊은 연관이 되는 핵심 내용이라는 말이다.
7~13 불의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7 너희는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다.
8 묘성과 삼성을 만드신 분, 어둠을 여명으로 바꾸시며, 낮을 캄캄한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올려서 땅 위에 쏟으시는 그분을 찾아라. 그분의 이름 '주님'이시다.
9 그분은 강한 자도 갑자기 망하게 하시고, 견고한 산성도 폐허가 되게 하신다.
10 사람들은 법정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11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
12 너희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였다.
13 그러므로 신중한 사람들이 이런 때에 입을 다문다.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 앞 뒤로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둘러쌓인 가운데 토막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 이 단락은 네 번에 걸친 반복된 표현과 그 중간에 있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표현에 주목하면서 보아야 한다. 네 번에 걸친 반복된 표현은 이스라엘의 불의함이다. 그 불의함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의를 싫어하며 공의를 버렸다(7절). 성문(법정)에서 바른말 하는(책망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10절). 힘 없는 자를 짓밟고 부당하게 곡물(가난한 자들의 재산)에서 세금을 거두었다(11절). 의인을 학대하고 재판에서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12절).
○ 정의(공의)를 싫어하며 공의(정의)를 버렸다(7절)
justice(미슈파트)를 싫어하며 righteousness(쩨다카)를 버렸다. 24절과 6:12절에도 반복되는 표현. 미슈파트는 구약성경에 421회 등장, 쩨다카는 157회 등장. 미슈파트는 재판하다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 법적 소송이 정당하게 판결되어 가해자는 심판을 받고 피해자는 억울함이 풀어지는 것을 말한다. 쩨다카는 진실되게 말하다라는 동사에 파생된 명사로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 10절에서 법정에서 바른 말을 하는 것이 공법이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다.
- 11절의 힘 없는 자를 짓밟고 부당하게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것은 진실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 즉 쩨다카를 어긴 것이다.
- 12절의 의인을 학대하고 재판에서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미슈ㅌ파트를 어긴 것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사람에 대하여 인격적이고 진실하게 대하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것을 깨뜨리는 모든 행위들이 불의한 일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그런 것처럼 쓰디쓴 고난을 당하며 버려질 것이다.
○ 8~9절.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므로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산다.
○ 13절 세월이 악한 때에 많은 사람들이 침묵한다. 이것은 아모스가 풍자적으로 표현하면서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악함과 깨어짐에 침묵하고 방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렇게 하다가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20240819(월) 아모스 5:1~13
○ 상황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지만, 동시에 살길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벧엘과 길갈, 브엘세바와 같은 성소(교회)를 찾지 말고 약자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삶을 멈추고 무너진 정의를 세우라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길, 이스라엘이 살 길이다.
○ 도전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면 교회에 나와서 더 많이 기도하고 예배하고 더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모스서를 통해 세상 속에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정직하게 장사하고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 바르게 재판하는 것 등 정의를 세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살 길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첫 번째 간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와 상통하는 말씀이다.
○ 변화
거짓과 속임수를 사용하라는 끝없는 유혹에 맞서 싸우기
주님의 기도 첫 번째 간구‘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로 기도하기
○ 기도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동시에 심판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예배와 종교적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일상의 삶에서 정의를 세우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닮아 우리도 거룩하고 사랑이 충만하며 공의를 세우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도록 돕겠습니다. 우리 석교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는 성도들로 가득 찬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