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0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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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69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은혜의 주님 오늘도 저희가 이자리에 있는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 새벽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 하루도 내 욕심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도답게 살아가 저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임이 선포되는 귀한 한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간절한 기도제목과 함께 예물드린 손길 있습니다. 주님 기뻐받아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완전한 것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18:9–17 (NKRV)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 이야기 입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꼬박꼬박하는 신자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십일조를 빼먹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다른 성도들의 목록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다녀온 권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시선에는 ‘너는 왜 금식기도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질타가 섞여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오래도록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집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리속에는 새벽기도에 빠진 목사와 장로들의 빠진 횟수와 날자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가 무엇이고 기도하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신 후에 연이어 비유로 하시는 말씀인데 그 말씀의 대상자는 바로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입니다.
오늘 비유에 두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명은 바리새인이고 또 다른 사람은 세리 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바리새인을 부정적으로 그리기 때문에 바리새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당시 바리새인들은 철저히 율법을 지켰습니다. 율법 뿐만 아니라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구전 율법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율법을 생활의 모든 부분에 적용하려했고, 율법의 규정을 철저히 따르며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기도 하였고 그래서 당시 유대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바리새인이라하면 말 그대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에 반해 세리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민족보다 자신을 우선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 당시 세리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자칭 경건의 본보기이고, 세리는 율법 밖에 사는 죄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감사의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에 대한 감사나 찬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행한 기도와 금식 그리고 십일조와 같은 행위들을 잘하기에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혹시 바리새인의 기도하는 태도속에 우리의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나를 보아야 하지, 남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내가 아닌 남이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신앙의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혹시 설교를 듣는데 그 말씀이 내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은 아무개 집사가 꼭 들어야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한적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다시말해 나는 이미 설교의 내용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이 말씀은 내게 필요 없는 말씀이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꼭 들어야 하는 말씀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을 가지고 판단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과 마음을 그냥 그렇게 넘어가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어떤 말씀을 들어도, 어떤 찬양을 하여도, 또 어떤 기도를 하여도 내가 주님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 할 필요도 없이 나만 주님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중 그누구도 주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한다해도 주님 앞에서 우리의 의를 주장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는 주님이 판단하시는 것이지 내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시말해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의롭다, 의롭지 않다 판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판단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바리새인은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들을 무시하고 남들보다 나은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자신도 없었으며 하나님께 감히 나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주님께 긍휼만을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앞에 겸손하게 나아갈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벼는 익을 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생활이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 50년 60년이 되면 될 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면 할 수록,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기도를 하면 할 수록 우리는 주님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임이 명확해져 주님 앞에 엎드려 긍휼만을 구해야 합니다. 남이 아니라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탑깝게도 신앙의 년수가 찰 수록 경험이 많아질수록 성경의 지식이 쌓일 수록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많아 집니다. 이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생활을 경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 이하에 주님앞에 나오는 어린아이들을 금하지 말라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때로 분별력이 부족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를 믿고 홀로 서려고 노력하기 보다 철저하게 부모에게 매달리고 의존하려 합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실텐데 운전을 배운지 얼마되지 않아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닐 때 큰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초보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뭐든지 조심조심합니다. 그런데 언제 큰 사고가 나는지 아십니까? 이제 운전한지 1년-2년이 될 때, 이제 자기가 운전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 사고가 납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초보운전 때에는 항상 운전하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 내가 운전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의롭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21 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Matthew 7:21 NKRV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7:22–23 (NKRV)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아무리 사람들이 인정하는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심지어 선지자 노릇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주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 하시며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려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주님의 말씀이 전부인냥 주님의 말씀대로만 살아가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성도를 찾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새벽 주님앞에 겸손하게 또 진실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이 시간을 통해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구하셔서 오늘도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삶의 터전에서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이자리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새벽 주신 말씀 붙잡고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루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허락하신 삶의 터전에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은혜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다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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