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자유롭게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4 views
Notes
Transcript

0. 인삿말

옆사람과 함께 인사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 진짜 자유해집시다~’
제가 우리 인천중앙교회가 첫 사역지 인데요.
첫 사역지로 온 지 벌써 1년하고 5개월 정도가 흘렀더라구요. 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일년에 한 번 주어지는데요. 작년 이 맘 때 쯤, 저는 ‘기도응답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1년이 지난 오늘, 이번에는 어떤 확실한 방법을 나눌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유롭게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에 대해 나눠보려고 합니다.

1. 도입

여러분, 자유롭고 싶으시죠?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우리 모두는 자유롭고 싶어할 겁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다 똑같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더 간절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서 촥- 열심히 살다보니? 딱! 전도사가 되어있네요?
과연 제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이 후에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이 부족한 자의 입술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 메시지가 단순히 저의 생각이나 철학으로 그치지 않고 주님의 음성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들리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1) What is ‘FREEDOM’?

여러분, ‘자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자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언젠가 제가 담당하고 있는 우리 유년부 친구들에게 ‘자유가 뭐라고 생각해?’ 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대다수의 아이들이 ‘자유는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 이라고 대답하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자유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대로 하는거라고 생각했던’ 예전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봅시다. ‘자유’ 라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꿈’ 만 같지 않나요?
만약 그렇게 정의를 내린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 전에도 ‘자유’ 를 누려본 적 없고, 지금도 누리지 못할 확률이 높고요. 앞으로도 그 ‘자유’는 누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에는 분명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보니.. ‘자유’ 라는게.. 존재하긴 하나봅니다.
아무튼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자유’ 를 설명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울타리 사진]
이게 무슨 사진이죠? 맞습니다. 울타리입니다.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얘들아, 우리는 저 울타리 안에 살 수 있는 특권이 있어, 이 풀 밭의 주인으로부터 오는 그 자유와 안전함이 있어.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저게 울타리가 아니라, 그냥 나무면 어떡해요?’
그 질문으로부터 저는 ‘자유의 조건’ 을 알게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저 울타리가 우리를 진짜 보호해주는 진짜 울타리인지, 그저 나무에 불과한지 이.제.는! ’분별’ , ‘구분’ 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죠?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는 뭐죠? 우리의 유일한 진리되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유케 되는겁니다.
다른 것으로는 절대 자유할 수 없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는 다른 것들로도 얼마든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 분별’ 해야합니다.

2) 혼탁하고 교묘한 세상

요즘, 정말로 혼탁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뭐 사실, 인간이 죄를 지은 이후로는 역사적으로 봐도, 이 세상은 혼탁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이 ‘혼탁하다’ 이란 표현에는 ‘깨끗하지 못하고 흐리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그래서 이 혼탁한 세상 안에서는, 깨끗하지 못하고 흐리기 때문에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악하고 독이 되는 것인지. 어떤 것들이 유익하고 우리를 살리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속이고 유혹하는 사단, 마귀의 그 수법은 시대가 거듭해갈 수록, 기술이 발전할 수록 그 방법이 더욱 더 교활해져 가고 있습니다.
정말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매우 교묘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분별력을 한번 테스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잘 구분하시는지, 분별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제가 여기 사진을 하나 준비했는데요,

2-1) AI 사진

[Which Face is Real?]
여러분, 여기 둘 중에 하나만 진짜 얼굴 사진입니다. 하나는 AI 도구로 만들어낸 얼굴입니다. 뭐가 진짜일까요? (3회까지 진행)
AI, AI 해서 지겨우실 수도 있지만, 중요한건 AI 자체가 아니구요. 이렇게 점점 우리는 무언가를 구분하고 분별하기에 점점 더 어려워지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사진을 구분하는건 조금 유치한 수준이지만요,
우리가 잘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올림픽’ 입니다.
[올림픽 사진]

2-2) 올림픽

지난 8월 11일, 2024 파리 하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는데요,
이번 올림픽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수많은 올림픽을 통해서 메달을 목표로 하는 피, 땀, 눈물을 흘려가면서 준비했던
선수들의 도전과 그 성취.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전 국민적인 범세계적인 감동, 그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께서 이미 알고 계시듯이
올림픽이란, 원래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세계를 다스리고 천둥을 다스리는 ‘제우스’ 라는 신을 기리기 위한 ‘제사’ 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올림픽은 ‘우상을 향한 종교행위’ 였다는 겁니다.
시작은 그럴 수 있지, 기원이 그랬던 거 아니냐, 라고 말씀 하실 수도 있지만요.
실제로 성화봉송을 처음 하기 시작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부터 최근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거의 90년 정도 되죠?
그 기간동안 변하지 않고 있는 의식이 있는데요, 바로 채화 의식입니다.
[채화 사진]
오늘 날에도 여전히 그리스에 있는 ‘헤라신전’ 에서 실제 종교적 의식이 진행되고 우리가 다 아는 그 성화 불꽃은, 태양의 신인 아폴론에게 그 성스러운 불을 받는다는 의미로 거울로 처음 성화 불을 붙입니다.
‘올림픽 채화’ 라고 검색해보시면, 아주 예전 올림픽부터 사진들이 쭉 다 있습니다. 원래 올림픽은 이랬습니다.
제가 구분과 분별을 이야기하면서 올림픽을 예시로 든 것은 올림픽은 악하니까 보지도 말고 기념하지도 말자 이런 뜻이 아니라요,
원래 우상을 기리는 ‘제사’ 에서 우상의 선물처럼 받는 이 ‘불’ 에 온갖 좋은 의미들을 섞어서 선전을 했다는 포인트입니다.
그 성화 뿐만 아니라 올림픽정신 이라는 표현 아래에, 평화와 사랑, 평등과 같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한 가치’ 를
우상을 향한 세리머니에 섞기도 하고, 이러한 문화적 움직임을 통해서 구분, 구별이 어렵게 만들어서 그 결과로
현대인들에게 평화, 사랑, 평등과 같은 선한 그 단어들을 표방해서 개인의 성 정체성부터 가족 공동체, 국가적 의식 등 여러가지로
그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이 현실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3) 분별이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내일 우리 퀴어축제 반대집회도 있는데요, 북광장에서 합니다. 많이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분별력’ 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토록 우리는 분별이 어려운걸까요?
사실 그 답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하는데, 혼탁한 세상에서 말하는 혼탁한 방법을 이미 ‘기준’ 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진리가 아닌, 세상의 기준이 우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의 앞 내용들을 살펴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대화가 나오는데요.
바리새인들은 본인들의 지식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도통 이해하지 못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준비했는데요,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3-1) 분별하지 못하는 우리들

요한복음 8:21–22 NKSV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가고,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그가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지금 바리새인들은 저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분별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8:23–24 NKSV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곧 나’ 임을 너희가 믿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요한복음 8:25 NKSV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내가 어느정도로 탁하여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설명하십니다.
26-27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또 다시 설명해주십니다.
요한복음 8:28–29 NKSV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질 때에야, ‘내가 곧 나’ 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분은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셨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요한복음 8:30 (NKSV)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 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내용이 펼쳐집니다.
요한복음 8:31–32 NKSV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믿는 것 하나로 바로 자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 한번 더 질문합니다. 여기서 또 우리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33 NKSV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이 대화가요, 8장이 59절까지 있는데 8장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반복됩니다.
저는 요한복음 8장 을 쭉 읽으면서 우리들의 모습, 이 세대의 모습 같았습니다.
8장이 마지막에 어떻게 끝나냐면요, 이 바리새인들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존재는 근본 그 자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말하니까, 이들이 절대로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본인의 신성을 그대로 드러내셨던 것인데 본인들의 지식 안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겁니다.
지금 저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딱 봐도 나이도 어린데, 뭔소리야 지금?
딱 그렇게 적혀있습니다.
요한복음 8:57–59 (NKSV)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들어서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앞서서 나누었지만, 우리가 얼마나 혼탁해져 있냐면요, 말 그대로 우리가 얼마나 혼탁하지도 모를 만큼 혼탁합니다.
귀가 먹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데도, 못 듣습니다.
심지어는 ‘신자’ 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였다는 이 교회 안에서도 영적 분별이 잘 되지 않아서 무언가에 얶매인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 이야기]
지금 바리새인들은요, 그들이 역사적으로 품고 있는 나름대로의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는 기준을 가진 채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5.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가?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야합니다.
“진리 안에서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가?”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가?”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할 때, 제가 가장 많이 기도했어야 했던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냐면, 이 메시지가 전해질 때
‘혹시나 불편하게 들리시면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가운데에 지금 이 자리에 계시거나, 영상으로 함께하고 계신 모든 이들에게 분명히 필요한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정말로 사랑하는 인천중앙교회 우리 모든 신자 여러분,
그냥 전통적으로 행해오던 것, 그냥 다들 그게 좋다고 하니까 그게 있다가 없으면 좀 이상하니까. 그래서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본질과 정말 멀리 떨어져있는 그 비본질들을 붙잡느냐고 우리가 진짜 바라 보아야 할 것들, 진짜 집중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그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진 않는지 정말로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습과 우리의 정의, 우리의 체면, 우리가 만든 기준들을 넘어서 ‘분.별’ 하십시오.
‘정말로 무엇이 중요합니까?’ , 이제는 분별 해야할 때입니다.
저는 우리 유년부 아이들에게 이러한 분별력을 가르치고 싶어서 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교재를 통해서 교리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에 이 문장 하나를 심으려고 했습니다.
[유년부 아이들에게]
얘들아, 우리 성경을 통해서 배우는게 교리라고 했지? 근데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집단을 두 글자로 뭐라고 했더라?
맞아 이단이야.
이단을 보면 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
[저건 가짜야]
6. 자유를 향한 첫 걸음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이건 진짜고, 저건 가짜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별력을 가지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자유. 우리의 생각과 행동 곧, 그 죄로부터의 자유를 바라보면서 이제 한 걸음씩 내딛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생각 안에 머무르는 것도, 우리가 편하려고 합리화 하는 것도, 해야 할 것 앞에서 몸을 사리는 것도, 나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게으른 것도,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로 정죄하는 것도, 모든 것이 익숙해져서 고여버리고 썩어져가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은 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유해야하는 것은 카드값도 아니고, 대출상환도 아니고, 답답한 집안도 아니고, 속터지는 직장이 아니라
우리의 죄, 그 죄로부터 자유해야합니다.
7. 자유케 되는 방법
마지막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유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생명을 억압하는 죄의 사슬을 깨뜨리시는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께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자요? ‘속한 자’ 입니다.
요한복음 8:47 NKRV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근본이 잘 서있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우리의 근본,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어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에 속한 자들입니까?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있습니까?
내가 왜 그토록 걱정과 염려 안에 얽매여 살고, 이기주의와 탐심, 질투, 거짓, 분노 안에 머물러 있는지!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죄의 종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오늘 날 우리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종교적 행위에 의존하는 신앙생활, ‘자기애’ 로 가득한 신앙생활, 습관으로 물든 고여있는 신앙생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규칙들에 얽매인 생활.
이 모든 문제들의 근원은 ‘죄’ 입니다. 체면치레, 허례의식 이 모든 것들이 ‘죄’ 입니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자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 여야합니다. 참 된 진리와 자유는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랬을 때에, 우리가 누리는 ‘자유’ 라는 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하게 해줄 자유가 아니라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께 속한 자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말합니다.
8.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안에서 예수님과 긴 대화를 나누었던 바리새인들은요, 그 본인들은 의식하진 못했지만 그들이 행하는 것들, 말하는 것들을 보면
진리에 대한 반감과 거짓말, 눈 가리어짐, 귀 먹음, 그리고 마지막엔 살해 시도까지.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닌 사단의 도구였습니다.
사랑하는 인천중앙교회 모든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분별하고, 이 시대를 분별하고, 참 된 진리를 향하고 있습니까?
죄로부터 나오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 내 나름대로의 판단, 내 나름대로의 신앙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참 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시선이 나의 시선이 되는
그런 ‘참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이 시간 주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9.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동안 죄의 종으로 살면서 무엇이 진리인지, 본질인지 놓치며 살았던 저희의 모습을 용서 하시옵소서.
이해하지 못하던 바리새인들에게 두번 세번 계속하여 말씀하셨던 것 처럼
우리에게도 그 긍휼하심으로 계속해서 말씀해주시고 참 자유를 향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속해있다고 하면서 나의 생각대로, 나의 편함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들려주시는 말씀도 제대로 듣지 못하여서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신앙의 비본질을 위해서만 열심이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참 자유를 갈망합니다.
죄의 종이 아닌 주님의 자녀로써 온전히 그 참 된 진리와 빛 위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부터, 하나님께 속한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써
정말로 나의 아버지가 누구이신지 잊지 않고!
참 자유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 된 진리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