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누린 복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 views
Notes
Transcript
예레미야 50:17–20 NKRV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뼈를 꺾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앗수르의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새학기를 맞이 하고 있으십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새학기를 준비하고 맞이하다보면
주어진 업무와 수업에 대해서, 동료교사와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참 강하고 능력있고 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자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제 자신을 직면 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들도 맞이하게 되더라구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하고 힘이 있는 것, 능력있은 것들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 생각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강함과 부유함과 힘이 있는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요?
우리가 오늘 살펴본 말씀에서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강함 자체가 마냥 복일 수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복이 될 수 없는 ‘강함’

바벨론은 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강함 때문에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지는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벨론이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이 그 나라를 심판하시려는 정도만
정복하고 다스렸어야 했습니다.
적당한 시점에서 정복 전쟁을 멈추어야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강함이 가진 특징 중에 한가지 였습니다.
바로 “멈출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전쟁과 폭력과 싸움과 노략과 정복을
계속 즐기게 만들었고,
그 결과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는 패턴을 역사상 많은 강대국들이 경험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 볼 때에 강한 것이 무조건 복이 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복은?

그렇다면 복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약한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참된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임을
하나님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어떤 복일까요?
참된 복은 두가지로 오늘 말씀에서 이야기합니다.
목장, 초장
예레미야 50:19 NKRV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예레미야 50:19 NKSV
그러나 이스라엘은, 내가 그의 초장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니, 그들이 갈멜과 바산에서 풀을 뜯고, 에브라임 산지와 길르앗에서 마음껏 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참된 복을 주신답니다.
비록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어서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그들을 돌이켜서
목장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스스로 힘으로 노력해서 얻게 되는 것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베풀어 주시는 것들을 누리는 것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내가 주인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것이니까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복될 것 같지만,
참으로 복된 삶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겁니다.
나의 힘으로 얻는 목장, 초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복된 인생이라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목장이 크든 작든 상관 없이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곳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고
그 목장애 거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복인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2)용서
예레미야 50:20 NKRV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가장 근본적인 복은 늘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 어떤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한들, 온전히 그것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가 아무리 좋은 것을 소유한다 해도
그 죄로 인해서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우리에겐 ‘죄 용서’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벨론처럼 강한 나라는 강함 때문에
죄 용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처절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약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을 오늘 말씀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생과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다 할지라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용서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면
그 사람은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적용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끝없는 어려움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한고비가 지났나 싶으면 또 다른 한 고비가 찾아옵니다.
삶이라는게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도무지 알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으면
그 정도로 강하고 능력이 있고 부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이러한 마음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벨론처럼 되는 것이고,
결국 바벨론처럼 망하게 되는 운명을 자처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의탁하는것,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목장(초장)에 거하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죄 용서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더라구요.
그 삶이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삶인줄 우리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나의 목장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이 세워주신 덕인학원 공동체가 나의 목장이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우리의 학교가, 행정실이, 교무실이, 학급이 나의 목장이 되겠죠.
덕인학원의 가족들이 함께 예배하고
말씀과 삶을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풍성한 꼴을 먹는 생명의 시간이고,
동료들과 학생들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고
서로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누려가는 그곳이 우리 삶의 목장이 되는 것이겠죠.
우리는 여전히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각박하고 삭막한 현실 속에서
푸른 목장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하겠죠.
내가 강하지 않아서 감사하고
내가 약함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약함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게 나를 도우시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죄 용서의 감격을 놓치지 않고 누려가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온 맘다해 감사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은혜가
제 삶 위에
그리고 우리 덕인학원 공동체 위에 넘쳐 흐르기를 이 시간 마음다해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