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15) 5:18~27

아모스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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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5:18~27
20201121(토) 20240821(수)
3~4장에서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에 합당한 심판을 선포했다면, 5장에서는 심판의 메시지와 더불어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회개하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는 것, 진정한 회개는 무엇인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일까? 성경을 잘 읽으라는 말인가? 기도를 더 많이, 더 간절하게 하라는 뜻인가? 열심히 하나님을 향해 노래를 불러 올리라고 말하는 것일까?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자.
5장의 구조(김근주 소예언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1)
1~17 이스라엘이 엎드러지리니 정의를 세우라
1~3절 애가
4~6절 권면 : 하나님을 찾으라
7~13절 고발 : 정의와 공의를 내던진 자들
14~15절 권면 : 선을 구하고 정의를 세우라
16~17절 심판 선언 : 너희가 슬피 울 것이다
18~27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들이 사로잡혀 가리라
18~20절 심판 선언 : 여호와의 날은 어둠과 캄캄함이다.
21~23절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거부하신다.
24절 권면 : 제사가 아닌 정의와 공의를 흐르게 하라(핵심 메시지)
25절 광야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제사를 거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줌
26~27절 우상과 더불어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리라(18~20절의 구체적인 내용)
18 너희는 망한다! 주님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아, 왜 주님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19 사자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곰을 만나거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과 같다.
20 주님의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캄캄해서, 한 줄기 불빛도 없다.
○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종말은 자기들의 구원이었다.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과 거리가 먼지, 자신들이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공헌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들은 율법의 문자를 지키면서 종교적 의무를 다하면 하나님의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결국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있다. 여호와의 날이 오면 이제 모든 고통이 끝나고 평안하고 완전한 안전이 보장될 것을 기대했지만, 그날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아무 데도 도망갈 데가 없는 재앙의 날이며, 멸망의 날이라고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 말씀이 선포된다. 아모스는 이 잘못된 종말론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이들이 기다리던 날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다. 하나님의 정의(미슈파트)가 세워지는 것이다. 정의로운 하나님이 재판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다. 불의한 삶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제사와 종교의식에만 몰두했지 정작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성문 안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을 포기했던 사람들에게는 결코 빛이 비취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우리가 사모하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 우리에게 구원의 날이 될지 어둠의 날이 될지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느냐, 세상 백성으로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른 믿음이다. 믿음은 살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과 삶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나뉘어질 수 없는 이유다.
○ 그날은 완전한 어둠이다.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아무런 소망이 없다. 재난을 피한다고 피하지만 더 큰 재난을 만나게 된다. 자신들의 그릇된 삶을 돌이켜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도망갈 데가 없다. 도망간다고 도망가도 또 다른 재앙이 닥친다. 한 재앙을 피해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또 다른 재앙이 임한다.
21~24 예배는 집어치우고 공의와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삶을 바쳐라. (비고; 사 1:11~17)
21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22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23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 우리가 드려야 할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로마서 12:1 말씀처럼,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절기 준수, 성회 준수, 제사와 제물, 찬양의 행위를 하나님이 역겨워하고 기뻐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듣지 않을 것이니 다 집어치우라고 하신다. 모든 종교적 행위들이 우리를 구원으로 안내하지 못한다. 종교적 행위가 삶의 예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면, 삶의 예배와 무관한 종교적 행위라면 위선에 불과하다.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예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성품인 공의와 정의의 삶과 연속선상에 예배가 놓여 있는 삶이다.
25~27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마지막
25 이스라엘 가문아, 사십 년을 광야에서 사는 동안에, 너희가 나에게 희생제물과 곡식제물을 바친 일이 있느냐?
26 이제는 너희가 왕으로 떠받드는 식굿의 신상들과 너희의 별 신 기윤의 신상들을 너희가 짊어지고 갈 것이다. 그것들은 너희가 만들어서 섬긴 우상들이다.
27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마스쿠스 저 너머로 사로잡혀 가게 하겠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이시다.
○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희생제물과 곡식 제물이 아니었다. 그분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마음이며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렘 7:22~24을 들어보자.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 식굿과 기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섬기던 우상이다. 이스라엘이 제사가 이런 우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삶에서 드러나는 공의와 정의가 없는 채 이루어지는 종교활동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에게 절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자신들을 위해 별과 연관된 신들을 만들어 섬기지만, 인생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다.
○ 이들은 다메섹 밖으로 잡혀가게 된다. 앗수르로 잡혀가는 모습이다. 18~20절에서 말하는 어둠이 날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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