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5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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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4:13–5:11 (NKRV)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색을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물건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남아공을 가지 못했던 청년에게 남아공의 사람들의 그루브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희망봉에서 해변까지 내려오며 보았던 그 절경을 어떻게 설명을 하겠는가? 또 1차 국내 아웃리치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순수함과 은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2차 아웃리치에서 만난 어르신들과의 짧은 시간임에도 헤어지며 눈물이 났던 그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완벽히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이 마치 이와 같다. 당시 데달로니가 교인들에게 있어서 궁금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고 재림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가 궁금했다. 그것에 대해 바울이 편지를 쓴 내용이 오늘 본문이다.
먼저 우리가 분명해 해야 할 것이 있는게 그것은 우리의 롤 모델은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이땅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아마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신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축구 감독을 가만히 보면 선수로써 성공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잘 볼 수 있게 사람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제자로 삼으셔서 그들과 3년동안 같이 생활 하셨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 생활 하셨을까?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모여 예수님이 말로 가르쳤어도 되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하셨던 사역이 바로 그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예수님은 무리를 향해 말씀을 전하셨다. 그런데 왜 제자들에게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인가? 예수님이 정말 알려주고 싶으신 것은 삶이기 때문이다. 말씀 몇마디가 아니라 삶 이었다.
부흥회 강사 목사님으로 오셨던 김찬기 목사님 교회 청년들이 스승의 날에 편지를 쓰면서 앞에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목사님의 열매들 입니다.” 말씀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만약에 여러분들이 저에게 저희는 목사님의 열매입니다.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기분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큰일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들은 온전하지 못한 저의 열매이면 안된다.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 나는 여러분의 롤모델이 될 자격도 없다. 그저 여러분의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전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여러분들은 양이고, 나는 양치기 개에 불과하다. 여러분들의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다. 사람이 목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나를 개처럼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양치기 개주제에… 이렇게 하라는게 아니라, 그러기에 우리들의 롤모델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롤모델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느냐 하면 재림이후의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예수님께서 먼저 그 삶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재림에 대해서 궁금함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오시는지, 또 예수님께서 다시오신다면 예수님 오시기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으로는 예수님 재림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한 축복에 참여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이들에게 바울은 오늘 이렇게 이야기 한다. 본문 13절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3 (NKRV)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는 자들은 이미 죽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죽은자를 잔다라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그들이 다시 부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이와 같은 표현을 하였다.
요한복음 11:11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죽은 나사로를 가리켜 잔다고 표현하신다.
마태복음 9:24
Matthew 9:24 NKRV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죽은 소녀에게 아니라는 것이다.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소녀는 자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죽은 사람에게 잔다고 표현하신 것일까? 예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도 이미 죽은자들을 가리켜 ‘자는 자들’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런이들로 하여금 슬퍼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내 가족이고 내가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여서 예수님 재림때 구원에 참여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는가?
그런이들에게 바울이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자는 중이다. 그러니 더이상 슬퍼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우리의 롤 모델이신 예수님을 언급한다.
본문 4:14-18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4–18 (NKRV)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가?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서 자는 자들의 부활 역시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자들은 부활하여 주님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도 그대로 주님을 만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부활 할 것인가? 이다. 내 리즈시절로 부활하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하면 좋겠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때의 모습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린도전서 15:42
1 Corinthians 15:42 NKRV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썩지 아니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쇠하거나 늙거나 어떤 종류의 병이나 질환에고 걸리지 않을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또 바울은 고전 15:43 에 의하면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더 이상 욕되거나 연약한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영고아스러운 것을 주님의 임재의 뜻이 있으므로 우리 몸도 일종의 빛이나 광채에 둘러써야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강한 것’으로 부활한다. 이 말은 몸 자체가 강해져 어떤 질병과 노화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금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이 그의 몸에 지니도록 의도하셨던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말한느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전 15:44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신령한의 원 뜻은 “성령의 성품이나 행동과 조화를 이루는”이라는 뜻을 갖는다. 다시말해 이제 더이상 죄악된 모습이 아니라 성령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반응하는 영적인 몸으로 부활한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재림때 부활하는 우리의 몸은 어떤 외형적인 것보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자녀이자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으로 부활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이다. 우리는 이것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것과 같이 평생 빨간색을 못 본 사람에게 빨간색을 설명하는 것 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 되지 않는다고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호기심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까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까지다. 혹시 성경이 알려주지 않는 것까지 알고 싶으면 이단을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또하나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예수님이 언제 오시냐?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니밍 다시 오시기를 고대하는 마라나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마라나타는 아람어로 ‘주님께서 오신다, 주님 어서 오소서’ 라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오심을 고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많은 핍박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진 핍박과 어려움 속에 그들이 견딜수 있었던 유일한 소망은 ‘주님이 곧 오신다’는 믿음이었다.
사도요한은 계시록에 주님이 곧 다시 오신다고 선포하였다. 요한계시록 22:12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래서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 문제는 주님이 곧 오시기 때문에 모든 경제 활동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마치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누워서 기다리듯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날은 재림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사는 것이 문제인데, 당시에는 너무 극단적으로 재림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3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무슨 말인가? 재림의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매순간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또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여러분 전에도 이야기 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는 선물과 같은 기회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재림을 지금까지 미루고 또 미루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데, 지금오면 저사람이 구원 못받아서 하루를 연장했더니, 또 저 사람이 걸리고… 여러분도 지도자의 자리에 있을 때 이와 같은 것들을 경험해 볼 것이다. 어떤 기준을 정하면 그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있어 참 안타까워 이렇게도 저렇게도 구제해준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기준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늘 강조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오래참으시는 분이시지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니다. 그러기에 언젠가 그 언젠가가 내일이 될 수 있고, 예배 끝나고 동산모임이 될 수 있고, 1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청년은 결혼 할 대상은 없지만 결혼 날짜를 잡아논 청년이 있다. 년도는 정하지 않고 날짜만 잡았다.) 이 말은 언제 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건강한 성도는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관심 갖는것이 아니라 재림때까지 어떤 자세로 살아갈지를 고민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성도이다.
여러분 하루하루를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대충 살아가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하루를 나만을 위해서도 살아가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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