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5 고등부 설교 2계명 '올바른 사랑방식’

십계명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사회

인사

본문

출애굽기 20:1–17 (NKRV)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Exodus 20:4–6 NKRV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설교

서론: 올바른 사랑방식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서로에게 잘 맞춰서 대해야 합니다. 한쪽은 마라탕을 안좋아 하는데 맨날 마라탕 먹자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죠. 마라탕을 싫어하니까 다른 것을 먹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과 마라탕이 싫더라도 상대방이 마라탕을 너무 좋아하니까 도전해보는 함께 먹어볼 용기를 가지는 것.
이것이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킵니다. 사랑은 그 사람이 바라는 방식을 이해하고 함께 지켜나가고 맞춰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성경 캠프 때도 서로에 대해 모의고사를 풀며 알아갔죠. 나는 이런걸 좋아해, 나는 이런 걸 싫어해 그걸 알게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싫어하는 걸 막 합니까? 그러면 결국 싸움이 나겠죠. 배려해주며 그것을 피해보려고 하는것. 또 그 당사자는 좀더 너그러이 그 부분을 받아들이려고 인내해보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특별히 사랑하는 관계라면 서로의 사랑을 더욱 키워나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본론1. 본문의 내용: 질투하시는 분

오늘 본문에서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에 모든 것들을 토대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5절에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질투라는 단어를 쓰시다니 좀 이상하지 않나요? 왜 질투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 말씀하시는 걸까요?
질투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질투란 관계를 기초로 하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갑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아무런 마음이 안들죠. 오히려 아 참 아름답네, 잘 어울리네 이런 마음이 들겠죠.
그런데 만약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저 사람이 무슨 짓이야 이런 마음이들겠죠? 이게 질투입니다. 질투란,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만 생겨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요약하시며 한 단어로 사랑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여호와께서 단순히 그냥 우상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게 아니에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하늘 아버지를 예배하고 섬기는 것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것임을 알수있어요.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계명을 통해 너와 나는 사랑하는 관계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관계이다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너와 나 사이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죠.
2계명을 통해서는 이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말씀해주시는 거에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바로 우상을 만드는 것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론2: 보이는 것에 민감한 우리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셨어요. 구약을 보시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선지자들이 주로 그 말씀을 듣고 전달하는 역할을 했죠.
사람은 죄로인해 여호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본다면 무한한 거룩함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통해서만 나타나시는 자비로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제하고 올바르게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알려주신 유일한 길이었죠.
그러나 우리가 구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구약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입니다.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믿지 않고 보이는 우상들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지만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여호와 하늘 아버지의 역사입니다.

구약의 예시

1)황금 송아지 출32

실패의 사건들을 몇가지 살펴보면 먼저 황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십계명을 받은지 얼마 안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이 극도로 가득 차 있었겠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섬기는게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400년이라는 세월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그들의 뼛속 깊이 새겨진 의식은 보이는 신들을 섬기는 것이었죠. 태양의 신, 강물의 신, 바람의 신, 천둥의 신등 그것들을 새와 개구리, 메뚜기, 악어 등으로 형상화 눈으로 보이게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여호와 신을 섬긴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40일간 시내산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올라갔을 때 그들은 산 아래에서 그들을 인도하신 신, 여호와를 황금 송아지로 만들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송아지를 보며 안정감을 얻고, 영적인 기운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송아지의 형상을 한 여호와께 감사하며, 이후의 그들의 삶이 잘 되길 안전하길 빌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보이지 않은 여호와를 보이는 형상으로 낮추어서 그분의 능력을 자기의 행동으로 주무르려는 태도였습니다.

2)언약궤 부적사건 삼상4

이보다더 분명하게 나타난 이스라엘의 불신앙적 태도는 사무엘상에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블레셋이라는 이웃 나라가 처들어왔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보다 강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블레셋을 이기기 위해 한 행동은 바로 성막에 있던 언약궤를 꺼내어 전쟁터로 가져온 것입니다.
언약궤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물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올 당시 언약궤가 앞장 서고 그들이 뒤 따라갔을 때 그들 앞을 가로막았던 강물이 열렸고, 언약궤와 함께 걸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일들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터로 언약궤를 가져왔어요.
어때요? 굉장히 신실한 믿음의 행동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보이지 않는 여호와께서 언약궤에 있다고 생각한 행동이며, 또한 그 여호와를 자기들의 힘으로 어떻게 이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 그분을 마치 다른 우상들 처럼, 지니처럼, 부적처럼 사용하려 했던 모습입니다. 그 결과 블레셋 사람들에게 언약궤를 7개월이나 빼앗겨버리는 수치를 당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민감했습니다. 구약시대만 그런가요?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보는것을 더 믿고 의지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지하며 안정감을 얻는 사람은 잘 없죠.
그래서 자기들의 마음에 안정감을 얻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듭니다. 이 우상을 통해서 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안정감과 쾌락을 위해서입니다. 4절의 앞부분을 보시면 우상을 만드는데 왜 만드냐, 나를 위해서 나의 만족을 위해서 만든다라고 기록하죠.
우상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자기의 힘으로 상황을 주무르고 싶은 마음에서 우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쾌락때문에 우상을 만드는 거에요.
이것을 여호와께 적용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늘 아버지를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분을 마치 나의 힘으로 주무르려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 신을 존경하는 행위가 아닌 낮추어 다른 우상들처럼 자기의 입맛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의도와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를 올바른 경배의 대상으로 사랑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지 않고 오히려 그분을 낮추고 예배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이런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십자가를 보면 마음이 평안해 지지 않습니까? 목이나 귀에 십자가 목걸이 귀걸이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을 잡고 있으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거나, 그것을 붙잡고 기도하면 뭔가 기도빨이 쎼진다거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면 일이 풀릴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진 않으십니까? 이것들이 오늘 우리의 우상이죠. 하늘 아버지를 우리의 능력으로 제어하려는 뭔가 부적처럼 대하려는 이런 마음이 바로 우상을 만드는 행동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를 막고자 형상을 만들지 말고 내가 명령한 대로 나를 예배하라, 섬겨라 말씀하셨습니다. 2계명이 그 시대 백성들과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하늘 아버지를 바르게 예배하라’ 는 것입니다. 바르게 예배한다는 것은 가르쳐 주신 대로 예배하라는 것이지요.
로마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이 들음에서 나기에 우리는 말씀을 들으므로,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라는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습니다.

적용. 보이지 않는 분을 예배하라

보이지 않는 분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님 빌267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분을 예배한다는 것, 그분을 믿고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런 실패와 불순종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런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들에게 아버지를 알 수 있고 그분을 예배할 수 있는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보이지 않는 여호와 신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Philippians 2:6–7 NKRV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 나아갈 수있는 길이시요, 진리, 생명으로서 그 참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사도 요한이 증언하는 것처럼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John 4:24 NKRV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이신 분을 예배하기 위해서 요424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장소를 물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늘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장소에 갇혀서 성전에만 하늘 아버지가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는 영으로서 어디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물론 장소가 중요합니다. 제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예배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막과 성전을 짓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늘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한 장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 있든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영이시고 우리가 그분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 Corinthians 6:19 NKRV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영과 진리로 아버지를 예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늘 우리의 의식 속에 하늘 아버지는 영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여호와 하늘 아버지는 영이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장소와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예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과 진리로, 영이신 분을 영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따라 대하는 것이지요.
이는 아버지께서 우상들처럼 장소에 제약을 받아 그곳에만 계신 분이 아니며 그곳에 가야지만 기도빨이 세져서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거나 십자가에 계속 달려계셔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지만 십자가를 움켜져야지만 능력이 나타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늘 함께 임마누엘로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 기억하고 말씀따라 살려고 힘쓰는 것, 말씀을 적용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영이신 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어디에나 계신다고 해서 이것이 우리에게 구속이나 감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기고 우리가 예배하는 분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감히 피조물인 우리를 향해 질투까지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께서 우리와 늘 함께 동행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스러운 그분을 늘 기억하며 그분과 삶 속에서 늘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올바른 사랑의 방식입니다.

결론: 하늘 아버지의 형상으로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자 롬12

결론입니다. 영이신 하늘 아버지를 영적으로 말씀에 기록된 대로 사랑합시다. 그것은 우상을 만들어 우리가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영광받으실 분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장소나 물건에 제약받지 않고 또 그런 수준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영이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 말씀을 기억하며 삶의 자리에서 그 말씀을 실천해보고자 힘쓰는 것, 영이신 분과 늘 대화하며 나의 삶의 방향을 묻는 것, 어려움을 고백하는 것, 도움을 구하는 것, 말씀을 지키고자 힘쓰는 것, 감사를 고백하는 것 이것이 영이신분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될 때 우리는 바르지 못한 예배를 드리는, 하늘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맺지못하는 지체들에게 좋은 본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하늘 아버지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아버지의 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회복된 우리가 아버지와 늘 교제하며 바르게 예배하는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하늘 아버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아 저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 하늘 아버지를 예배하며 사랑하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려줄 것이고, 이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보여질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늘 아버지를 드러내 주는 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영이신 하늘 아버지를 공경하며 늘 예배하시는 교제하시는 사랑을 나누시는 새음 고등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KK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