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8)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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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네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부활 - 승천 - 우좌정 - 재림(심판)
오늘 우리는 승천과 우좌정(하늘로 올라가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의 의미를 살펴보며,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살펴보려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이 또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죠.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본론
1. 승천의 의미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무엇이 예수님을 가리나요?
구름이 예수님을 가립니다.
구름은 항상 성경 안에서 항상 어떤 의미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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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하죠.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주님이 임재하시면, 영광이 드러납니다.
임재와 영광은 언제나 함께 합니다.
임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영광은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그 빛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 구름으로 나타났고,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필히 뒤따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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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수님이 구름으로 가리워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높아지심(승귀)의 양상을 따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직접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어진 사건은 예수님께서 높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높아지셨습니까? 그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따르는 구름에 가리워지는 것, 이것은 우리의 시야로 바라볼 수 없는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왕이시고, 하늘로 올리시어 이 세상의 왕으로서의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름에 가리우면서 천사들이 뭐라고 말하나요?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이 말은 그 권능과 영광이 너무 충만해서 마치 경고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마치 더 이상 승천에 대하여 알고싶어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은 것이죠.
그 권능과 영광이 너무 넘쳐나서 인간으로서 범접할 수 없는 것 같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태양을 보면 그 태양빛이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필요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태양을 맨 눈으로 계속해서 바라보면 어떻게 됩니까?
망막이 손상되고 시력을 잃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승천하신 권능과 영광은 구약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보기 두려워서 보지 못했던 것과 같은 권능과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높아지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높으신 영광 가운데 거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영광의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온 우주에는 크게 두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첫번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으로 온 우주의 왕권을 예수님이 쥐게 되십니다.
두번째는 승천 이후 땅에서는 이제 성령님께서 임재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래서 하늘에 오르사 이후 신앙 고백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나서 성령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2. 우편에 앉으심(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시작)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승천 이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고백에 접근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우편’의 의미
먼저 한번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육체라는 물리적인 성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죠?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육체가 없으시죠.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신데 오른편, 왼편의 의미가 있나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은 단지 오른쪽에 앉아계신다는 물리적 위치를 나타내는 표현이 아닙니다.
내 오른쪽에 보면대가 있어요! 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거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영이신데도 불구하고 항상 앉으신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영이신데 어딘가 정말 물리적으로 앉는다는 것을 의미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앉으실 때 항상 어디엔가 앉으십니다.
보좌에 앉으시는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신다는 의미는 정말 우리가 어떤 의자에 앉듯이 앉는 것이 아니라, 온 땅의 왕으로서 왕의 좌석, 그 보좌에 앉는다는 의미이죠.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신다는 표현은 곧 온 땅의 왕이시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을 염두하고 그러면 오른편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봅시다.
동양에서도 그러한 사고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윗 세대만 하더라도 왼손잡이는 멸시를 받아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통 사람들이 오른손잡이가 훨씬 많아서 그렇죠.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오른쪽이 무언가 바른 편, 옳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의 사고 방식만은 아닙니다. 서양과 심지어 유대인들에게도 오른쪽은 단순히 오른쪽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바른 편, 옳은 편, 더 좋은 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 자신의 어머니인 밧세바가 자신에게 나아오자 우편을 내어줍니다.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또한 시편 110 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나오죠.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편 110:1 (NKRV)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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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의 오른 편에 예수님이 앉는다는 것은 곧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자께서 승천하신 이후 온 우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직분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동일하게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권을 가지신 분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표현이 바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라는 고백을 할 때 우리는 아무런 감흥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그러한 무감각한 고백이 아닌 것이죠.
이 고백은 예수님이 지금 당장 내가 이 신앙 고백을 하는 이 순간에도 나와 우리와 이 세계를 통치하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은 전능하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며, 통치권도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편에 앉아계신 것을 고백할 때 우리의 삶은 예수님이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기쁨의 고백이 됩니다.
(2)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 통치하심 (이승구 259~, 이상원 81)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의 왕국을 통치하십니다.
이 모든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면서 자신의 권능과 영광을 모두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왕국을 주님의 은혜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지혜로 통치했을 때,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이루고, 그 나라가 평안했습니다.
예수님이 은혜의 왕국을 통치하실 때, 그 왕국은 태평성대와 평안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는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 땅을 통치하시는가 의문이 남습니다.
우리가 말로는 예수님이 우편에 앉아 통치하신다라고 고백하더라도, 마치 승천하신 예수님은 멀리 떨어져계신 분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꼭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 멀리 계셨던 분이었던 것처럼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통치하시는가를 살펴보면, 이것이 우리에게 또 아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어떻게 통치하실까요?
바로 교회를 통해 통치하십니다.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죠. 우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디 위에 있습니까? 만물 위에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두고 예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공동체죠.
그런데 그 교회가 만물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그를 믿는 백성들을 통해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성도들을 통해 세워져갑니다.
여기서 교회는 단순히 지역교회를 의미하느 ㄴ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적 교회, 비가시적 교회라고도 하는 온 성도들의 연합체를 의미합니다.
즉 구원받고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모시는 모든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이 건설되고 통치되는 것입니다.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연구하면서 우주의 광활함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되면서 허무함을 느낀다는 그런 얘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비록 작을지라도, 그들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리시는 주님이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에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우주 가운데 작을지라도 허무함이 아닌 기쁨과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이 땅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주 다룰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이 고백이 성취되기 전까지 이 세상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죄와 악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 이 세상은 예수님의 왕권과 죄의 권세가 공존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때는 죄의 권세가 가득한 것 같아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무력함을 느끼게 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예수님께서 왕권을 행사하시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우리 눈이 죄의 권세로 가려지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당장 신문 기사, 인터넷 뉴스를 보시면 가득한 죄의 권세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왜 그런지 이제는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는 여전히 죄의 권세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우리가 허무함, 두려움, 무력함을 느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예견된 일이며,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바입니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죄의 잔존 세력이 이 땅 가운에 있을 것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은 이미 승리하셔서 이 세상을 우릴 통해 다시리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이 세상 가운데 쓰러져도 계속해서 쓰러진 상태로 좌절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 영광과 권능으로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통해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저는 이 신앙고백에서 한 가지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 뭐냐면, 가장 처음 사도신경의 고백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 홀로 남겨두시는 분이 아니시구나.
혹은 하나님은 정말 교회만 이 땅에 남겨두시는 분이 아니시구나.
하나님은 정말 죽도록 우리와 함께하고 싶으셨구나.
이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전능하신데, 전능하시기만 하면 우리와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죽도록 우리와 함께 하고 싶으셔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에서도 마찬기지인거에요.
예수님이 승귀, 높아지십니다. 그래서 승천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이제 몸으로는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그 영광과 권능의 자리로 가시고, 그 순간 우리는 마치 계속해서 바라볼 수 없는 태양처럼 먼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또 그게 죽도록 싫으셨나봅니다.
우편에 앉으셔서 만물을 통치하시는데, 우리를 통해, 우리와 함께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 곳에 존재하시는 분이십니까? 아니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통치마저도 그분 단독 사역으로 두시지 않으시고, 교회와 함게 교회를 통해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여러분의 직분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올바르게 통치하는 직분입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통해 세상이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결코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좌절을 느끼지 않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갈 분들입니다.
여러분의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저희 딸 이름을 하나로 지으려고 합니다.
왜 하나로 지으려고 하냐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자 그래서 하나에요.
제가 기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가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서, 하나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을 예수님이 통치하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통해 여러분의 삶의 영역이 예수님의 통치를 받길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예쑤님이 함께 하심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을 통치하시고, 이 만물을 통치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