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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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겉모습에 현혹됩니까? TV, SNS,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시선을 외적인 것에 고정시키려 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습관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스며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단 0.1초 만에 상대방의 첫인상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눈 깜빡할 시간에 우리는 이미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의 판단이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장기적인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다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누가복음 18장 9절에서 14절의 말씀은 바로 이 진리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바리새인과, 누가 봐도 죄인인 세리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 겉모습인가, 아니면 마음인가? 그러면 나는 무엇을 보겠니?”
이제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 말씀을 바라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모습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1. 인간의 조건과 하나님의 사랑
1. 인간의 조건과 하나님의 사랑
여러분, 우리는 종종 우리의 조건이나 업적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을 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누가복음 18:11-12)
바리새인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정말 자랑할 만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어떨까요?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의 세상적 성취나 종교적 열심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열심히 봉사하니까",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실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의 사랑을 살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 기준 자체도 내 나름대로 정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엡 2장 8-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조건이나 업적과 무관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의로울 때나 죄를 지었을 때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자랑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먼저 오늘 본문의 세리와 같은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2. 타인을 향한 우리의 태도
2. 타인을 향한 우리의 태도
본문의 바리새인은 어떻습니까?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 특히 세리와 비교하며 우월감에 빠져있습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교만과 자기 의로 가득 찬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종종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까? 특히 신앙생활에서 말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교회에 더 오래 다녔어." "나는 저 사람보다 헌금을 더 많이 해." "난 적어도 저 사람처럼 큰 죄는 짓지 않아." 이런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동시에 다른 이들을 판단의 저울에 올려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태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이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우리의 행위에 기반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러한 태도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어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해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편견과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법칙에서는 우리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도 잘 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비웃거나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그분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1-13절을 보면,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판단하기보다는 사랑으로 돌보며,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
3.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
이제 본문의 세리를 봅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13)
세리는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이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봅니까? 세상의 기준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습니까? 성공, 부, 명예...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세리처럼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보기
4.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보기
이제 본문의 세리를 봅시다. 그의 모습은 바리새인과는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13)
세리는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세리는 '멀리 서서' 기도합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둘째, 그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겸손과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편 130:3)
셋째, 그는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이는 깊은 후회와 통회의 표현입니다. 구약에서 이러한 행위는 종종 깊은 슬픔과 회개의 표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도는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봅니까? 세상의 기준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습니까? 성공, 부, 명예...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더 높은 학위, 더 좋은 직장, 더 큰 집, 더 비싼 차...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게 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종종 이런 세상적인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세리처럼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취나 실패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태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전서 5:5)
우리 모두 세리의 기도를 본받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5. 겸손의 중요성
5. 겸손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평가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깊은 영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약점, 실수, 한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고린도전서 15:9)
바울은 자신의 과거와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린도전서 15:10)
우리가 이렇게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우리는 세리처럼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절망의 고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첫걸음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약점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우리의 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태도입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야고보서 4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이는 세상적인 의미의 '높임'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 더 큰 영적 성숙,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는 영광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세리의 겸손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기도가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