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요 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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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요 5:1-18)
<서론>
할렐루야! 오늘은 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게 된 것은, 구약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주일 아침마다 교회 단톡방에, 주일과 주일예배를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열방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이기 때문에 이런 광고성 멘트를 쓰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이 주일예배에 많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안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저는 진심으로 주일과 예배를 기다림(리)며,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성도의 교제; 성도님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매주일 주님사랑 주일사랑 성도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한 때, 「주일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듣기에도 어색하고 불편한 단어조합니다. 토요일 오후만 되면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주일을 대기(기다리는 것 아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 복무시절, GOP사단 소총중대 기관총수(104)로 자대를 배치 받았으나, 12개월이 지난 어느 날 연대본부 행정병으로 전출 되어 군종행정(980)으로 14개월을 복무했습니다. 말 그대로 행정병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매 주일 예배는 기쁨 보다는 불편함, 은혜보다는 스트레스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배당에 설치된 노후 된 음향시설과 조명시설 때문입니다.
예배 중 음향시설은 수시로 「웅~~ 삑~~~」하는 소리를 내곤했고, 조명시설은 갑자기 나이트 조명처럼 이곳저곳에서 「번쩍번쩍 반짝반짝」 거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는 날이면, 예배 후 연대 주임원사님에게 불려가서 「이 시끼야! 그거하나 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머했어~~」하며, 쪼인뜨 까이고 얼차려를 받아야 했습니다.
노후 된 시설을 교체하거나 개선하기 보다는 저만 닦달하는 상황이 싫었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아이러니하게, 주일은 제게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을 대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예전 제 마음과 비슷하거나 행복하지 못한 주일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주일과 예배에 나오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기대하며 나오십니까?
오늘은 주일성수(主日聖守/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에 대하여 강론합니다.
<본론>
1. 주일의 진정한 정신은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에 집중입니다.
주일성수는; 「주일의 진정한 정신인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에서 두 번째 유월절을 보내시며, 예루살렘의 동북쪽에 있는 양문(양들을 제물로 바치기 전에 깨끗하게 씻는 장소)곁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연못에 신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연못의 물이 동할 때 맨 처음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낳는다」는 신비한 효험 때문에 많은 병자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벧+헤세드)는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의 자비를 소망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38년이나 된 병자를 만나시고, 그 병자를 고쳐주시면서 민감한 논쟁에 휩싸입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하느냐?”(6下)
병자가 답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7)
이에 예수님은 선언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
그런데 주님이 지금 병 고치시는 모습은, 보통 때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과는 다릅니다.
「보통」의 경우, 병자가 먼저 예수님께 병 낫기를 청하지만, 「여기서」는 주님이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예수님은 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대로 되라”(마 9:29)하시며 고치셨지만, 「여기서」는 ‘너 낫고 싶니?’물으시는 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덮어놓고 신세만 한탄합니다.
그러자, 이렇게 분명한 신앙 고백도 믿음도 없어 보이는 38년 된 병자를 주님이 고쳐 주셨습니다.
이상하죠? 네, 이는‘안식일’이라는 논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행한 기적입니다.
먼저, 주일은 오직 하나님 사랑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했습니다.
이 기적이 있은 후의 기록을 보면, 주님의 분명한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유대 지도자(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는 절대로 일삼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미쉬나」 구전 율법(장로들의 유전)에 충실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 판에 새겨진 10계명을 주실 때, 기록하지 않았지만 「미쉬나」도 같이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이 조항은 제4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한 율법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보호하겠다는 그들의 의도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가둬버리고 조상들; 사람이 정한 안식일 수칙만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안식일 규정을 어긴 사람(38년 된 병자)과 그 사람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에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관심 없고, 오직 규율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율법의 정신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성수는 이웃사랑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38년된 병자를 성전에서 만나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맞는가 틀리는가? 상을 들고 가느냐 아니냐? 간다면 얼마까지 가야만 하는가?(200규빗 915m)에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과 육이 온전하게 되는 것에 집중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체적인 온전함을 넘어서, 거룩한 삶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네 병이 죄 때문이다」라는 정죄가 아니라, 이제 성한 몸이 되었으니, 건강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거룩한 삶을 살라!」는 당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일을 성수하는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집중되어야합니다.
「주일에 돈을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와 중심입니다. 당연히 ‘나’를 위해 사용되는 돈이라면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쓸 수 있습니다.
「주일에는 일하면 안 된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서 인가? 하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권사님 집사님들이 주일 아침 일찍부터 식당에서 화장실에서 봉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율법의 참 정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성수는 형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대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일을 지키는 것에서 그 사랑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이 질문에 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8절에서 이렇게 답을 합니다.
“이 안식일은 먼저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잘 준비하고 그들의 일상의 요구를 미리 정돈한 후에 그들의 세속적 직업과 오락에 대한 자신의 일과 말과 생각으로부터 떠나서 종일 거룩한 휴식을 지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사적인 행사에 참여하며 부득이한 의무 수행과 자선 행위에만 시간을 바쳐야 한다.”
이 고백대로 우리는 주일에 예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이 아닌 주님을 위한 섬김으로 보내야합니다.
주5일 근무와 다양한 직업(3교대 등)을 가지고 현대를 살아가고, 코로나19 이후 신앙습관에도 변화가 오기도 했지만, 결코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것은,
주일에는 예배하고 찬양하며 전도하며 이웃을 위한 봉사로 온전히 헌신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불과 수십여 년 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일성수를 위해 토요일부터 주일을 준비했습니다. 단정하게 이발을 하고, 제일 좋은 옷을 다림질을 하고, 깨끗한 돈으로 헌금을 준비하고, 주일날 먹을 양식도 미리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은 온종일 주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며 심방과 낙심한 영혼들을 돌보는데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현대 교인들은 주일날 온 종일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주일 오전예배를 드린 후에는 취미생활을 하는 등 자기만의 시간을 가집니다. 주일오전 예배를 드렸으니 주일성수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많은 교회들이 주일 오후 모임을 갖가지 친교를 위한 모임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지만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의 모임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없는데, 사람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로 챈다면 이것은 분명 잘못된 예배요, 모임입니다.
그러고 보니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오히려 궁색하게 주일을 보내고,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주일에 대한 중심을 바로잡지 않으면 주일 「성수했다」(거룩하게 지켰다)고 할 수 없고, 주일성수 하지 않으면 예배를 바르게 드릴 수 없습니다.
재밌는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토요일 늦게까지 바둑을 두었으나 내리 3판을 지자, 승부욕에 주일오전배후 다시 둘 것을 약속하고 주일예배에 왔답니다.
주일 오전예배에 왔는데 때마침, 그분의 대표기도순서였습니다. 그는 유창하게 기도를 하고 이렇게 마무했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아디리요」...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주일에 주님 아닌 다른 것에 심취한 사람이 예배를 바르게 드릴 수 없습니다.
주일은 오전예배로만 때우며, 주일 하루도 사람과 세상염려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예배를 바르게 드릴 수 없습니다.
청교도들은 주일을 ‘영혼의 장날’(market day of soul)이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장날이며, 모든 날 중에서도 가장 복된 날이다. 이날은 영혼의 축제일이다. 이날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 발견한다. 평일에는 대부분 생업과 관련된 이 땅의 일을 하지만 주일에는 온전히 하늘의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일에는 짚을 주울 뿐이지만 주일에는 진주를 얻게 된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가 싸워야 할 것은 동성애 낙태만이 아니라, 주일성수입니다.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은 주일(안식일)을 반드시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중요한 원칙을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너 자신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주일 성수하는 원칙」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 반드시 지킨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31:15)
주일을 어기는 것, 다시 말해 안식일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둘째, 반드시 거룩하게 지키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출 31:14)
‘거룩’은 ‘구별’이란 뜻입니다. 주일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날입니다. 구별된 예배가 있어야 하고, 구별된 봉사가 있어야 하며, 성도와 가족간의 구별된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반드시 예배당에 나와야 한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3–24)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해석하면,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예배라면, 누가 어디에서 드리든 분명한 예배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배 목적의 예배당 아닌 다른 목적의 그 밖의 장소에서 하는 예배가 온전하기 쉽습니까?
<결론>
성도 여러분, 주일은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은 다음이라고 말한 제가, 율법 비슷한 원칙을 얘기하니 혼동이 오시죠?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주일정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에 집중하라고 당부합니다.
주일정신을 상실하면 문자의 노예가 되어, 알맹이를 잃어버린 종교인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성수하라(온전히 지키라)는 명령은 우리를 올무매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온전히 하루 동안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쁨(성령)으로 충만하게 섬기면, 나머지 6일도 더욱 거룩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의무감이나 억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완전히 감동하여 자발적인 순종으로 주일을 성수한다면, 새하늘과 새땅에서 누리게 될 안식을 맛보게 될 것이고, 이 은혜는 나머지 6일의 우리 일상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안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에 집중하는, 주일성수하여, 참 안식과 은혜를 이 땅에서 누리고, 삶의 모든 자리가 거룩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