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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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와나 개강식
어와나 개강식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오늘의 말씀의 키워드는 ‘복’이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오늘은 ‘형통’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믿는 사람이든 믿음이 없는 사람이든지 모두 복을 받기 원하고, 형통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복을 받는 존재인가? 아니면 복 그 자체인가? 오늘 읽은 시편에 처음에 무슨 단어로 시작하는가? ‘복 있는 사람은’이다. 시편의 기자는 복 받는 사람이 아닌 복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에 시작한다. 그렇다. 우리는 복 그 자체이다. 세상 사람들은 복을 빌며 자신들의 이루고자, 갖고자 하는 것들을 구하며 기도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권세가 되었으며 그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마음의 성전을 세워주심으로 믿는 자의 참 복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복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시편이다. 구약에서는 항상 대조되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의인인지 악인인지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면 의인이고, 불순종하는 자는 악인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어떠한가? 의인은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고, 악인은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임하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첫 번째로 의인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 즉,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묵상하는 삶이 복있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복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 어떻게 되는가? ‘형통’한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어에서 형통은 ‘일이 번영하다, 성공하게 하다.’를 뜻한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가장 핵심 포인트는 ‘형통’이다. 하나님께서 형통함의 복을 넘치도록 준 구약의 대표 인물 두 명을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로 요셉이다. 그는 형들에게 팔려서 구덩이에 빠지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살게 된다. 여기서 창세기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가 지금 상황적으로 형통한 삶을 사는가? 아니다. 그는 야곱의 가장 예쁨을 많이 받고 행복하게 살던 집에서 형들로 인해 대접받던 삶에서 종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보디발의 종으로 살고 있는 요셉에 “넌 형통해서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성경역사를 이미 듣고 알아서 그가 총리가 된 것을 알고 있지만, 종 살이하고 있는 그 순간, 미래를 모르는 시점에 형통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보일 것이다.
두 번째로 다니엘이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이때 시대는 어떠한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해서 바벨론과 페르시아로부터 완전히 포로로 잡힌 시대이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 하나님은 다니엘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나라를 잘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주님께서 주신 것이다.
오늘 여러분과 이 두 인물을 통해 나누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쓰임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셉은 어떠했는가? 보디발의 집에서 총애를 받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다가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유혹을 피했지만, 그는 감옥에 갔다. 감옥에 갔을 때 어땠는가?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지만, 3년 동안 밖에 그들이 나가서 요셉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집트의 왕의 꿈을 해석해주고 그는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두 번째로 다니엘은 나라가 완전히 포로가 된 상황에서 그는 당대의 왕들의 죽인다는 조서에도 굴하지 않고 그가 늘 하던대로 하루에 3번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 실제로 죽음 앞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사자굴에서 경험을 한 것이다. 결국 다니엘은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꼭 필요한 지혜의 인물이 된 것이다.
다니엘과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한 삶이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인정하고, 세상에서도 이들을 놓치지 않고 나라에 꼭 필요한 인재로 꼽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는 드림인 친구들도 하나님과 함께함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 또한 신대원에 오기 전에 병원에서 일했는데, 사직서를 제출하니까 얼마를 주면 더 있겠냐고 어떻게든 보내지 않으려고 붙잡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과 소명이 있기에 돈이 아닌 사명을 선택하여 이 자리에 있었다.
믿음의 사람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불평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확신하고 괴로워보이는 악조건의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한다. 만약 나도 병원에서 어떻게든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고, 힘들다고 불평하며, 일을 대충대충했다면 나를 쓰고 싶어할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요셉도 다니엘도 자신의 개인의 상황, 나라의 상황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악해져만 가고 힘들고 억울한 일들이 다가오지만 그 가운데서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여러분의 상황이 좋아보이지 않을지라도, 남들은 잘되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상황보다 생각보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이유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이 밤에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는 큰 일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올리는 삶이 아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에 훨씬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신다고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작은 일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순종하는 삶이다. 오늘 주어진 하루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에게 형통함을 주신다.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은 이 형통을 누려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