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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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인사말-도입]
2박3일동안 하나님이 부어 주신 은혜로 충만 하셨습니까? 우리 이제는 서로 마땅히 이렇게 인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주안에서 사랑합니다” 앞뒤 좌우로 인사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서론]
수련회 주제말씀으로 요한일서 4장11절 말씀을 정했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성경 말씀 중 대표적인 말씀은 고린도전서 13장 입니다. 우리가 모두 사랑하는 말씀이지요! 노래로 만들어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사고로 분반 수업을 한적이 있었는데 5반만 안 걸리기를 다들 바랬는데 여자 담임샘의 별명이 마귀 할멈 이었습니다. 그런데 5반에 걸려서 갔더니 고전13장 노래를 음악 시간에 다 외울 때까지 반복합니다. 그분 별명이 마귀인데요~~^^. 그때 난 교회 안 갈거야! 다짐했습니다.
믿는것과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은 이처럼 다른 것입니다. 믿는 것은 시작입니다. 믿기 시작한 우리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말 믿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는 원래 그 안에 증명하다. 확인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믿음은 그 자체가 증명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1세기 사도들은 믿음이란 단어를 쓸 때 반드시 그 의미를 염두에 두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단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속에 품는 것에 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면 삶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제 설교시간에도 들었듯이 1만달란트와 백데나리온의 비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는 말은 우리의 도덕적 각오와 노력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것을 명확하게 말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볼까요?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이같이 사랑한 것은 무엇입니까? 요일4: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발출하는 사랑이라고 어제 우리가 말씀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 되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우리의 노력과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저 받는 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은혜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댓가를 지불하셨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값싼 복음이라고 조롱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아무것도 우리가 할 것이 없다고 말하니 그런 세상으로부터 그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기독교인조차도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값싼 댓가 지불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의 삶,즉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고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가난한자들을 자들을 위해 그리고 어려운 주변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드리지 않아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론]
우리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 2박3일동안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 말씀으로 찬양으로 성도간 교제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몸부림 쳤을까요?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건이 왜 나를 위한 사건이기를 간절히 간구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가 확인했지만 먼저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지 그 받은 사랑을 흘려 보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본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성이고 하늘에게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없는 그것을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끌어내려고 해도 그것은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차고 넘치지 않으면 결코 우리 주변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겉모양을 비슷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그만 시험에도 쓰러지고 맙니다. 우리는 흔히 자선을 행한 것을 사랑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어떤 사람을 돕기로 결정하고 도왔다고 생각합시다. 그 사람의 필요를 언제까지 채워줄 수 있을까요? 끝까지 도울 수 있을 것 같지요? 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일면식도 없지만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실직을 하고 이혼하고 어린 딸과 어렵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았는데 팔을 다쳐서 일당은 벌지 못해 달방이라고 하지요! 모텔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어떻게 그런 딱한 사정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두가지입니다. 도움을 베풀거나! 못 들은 척 하거나! 저는 하나님이 제게 그분의 재물을 흘려 보내라는 말씀으로 듣고 그분을 도와 드렸습니다. 당장 급한 생활비를 지원하고 병원비를 지원했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처음에는 어리둥절 합니다. 저는 모르게 한다고 했는데 저와 통화를 원한다고 해서 통화를 합니다. 너무 고마운데 왜 자신을 도와주는지 궁금하다고 합니다. 자신의 형편과 주변과 친척들에게 통사정을 해도 누구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이 도와 주시라는 마음을 주셔서 한 일이니 아무 부담 같지 마시고 빨리 회복 되시길 바란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얼마나 제가 마음에 뿌듯 했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후로 그분에게 계속 연락이 옵니다. 아이 학비를 내야 합니다. 핸드폰 요금을 내야 합니다. 집에 갈 차비가 없습니다. 몇 번이나 참고 자선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그 분에게 도움을 베푼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의를 높이는 자선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결국 저는 참지 못하고 그분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당신도 염치도 없습니까?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더 노력하고 죽도록 힘써 손 벌리는 일을 그만 해야지! 이게 무슨 태도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 사람이 저의 도움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을까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실감했을 까요?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사랑은 흉내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다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죄가 없으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먼저 층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왜 2000년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인가요? 그 당시 유대인의 핍박을 받아 죽으셨던 사건 아닌가요? 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전혀 느껴지기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종이에 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구원을 얻는 방편입니다. 하나님이 그 방식을 우리에게 허용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는데 우리의 믿음을 수단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믿음이 구원을 얻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믿음이 크다고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으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냥 우리와 관계없는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은 그렇기에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를 위한 죽음으로 보여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 저는 믿음이 부족해서 어떻 하죠!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 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고 변화산 사건이후 아들의 병을 치료해 달라는 아버지가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믿음을 더해 달라는 간구에 믿음을 주십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 앞에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는 것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주시기를 아끼지 않는 분입니다. 하물며 믿음을 구하는 우리에게 기쁘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믿음을 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 드립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좋은 것,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큰 것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안에 있는 보화를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수련회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와는 같은 삶을 살고 싶어도 살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어제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일을 먼저 오늘 살아 갈수도 없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만 항상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제는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루에 충실하게 살라는 것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나 온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들에 붙잡혀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신앙이든 인간관계이든 그 상처들에 여러분의 오늘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 상처, 실수, 심지어 죄를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롬15:5-7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사도행전에 ‘아나니아’는 두 명이 나옵니다. 5장의 ‘아나니아’와 9장의 ‘아나니아’ 입니다. 5장의 아나니아는 사랑이 아니라 성령을 속인 죄로 그 아내와 함께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분 앞에는 오직 정직한 것만이 우리가 취할 태도입니다. 9장의 아나니아는 어제 설교를 통해서 도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순종한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 9장의 아나니아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찬양입니다. ‘나의 하나님’ 함께 찬양 드리고 기도하겠습니다.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