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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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장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강준희 집사님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대적과 싸우려고 할 때, 먼저 어떤 순서로, 그리고 어떠한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대적과 싸우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1절에 나와 있듯이 아무리 자신들보다 많은 숫자와, 군사적 강함을 본다 하더라도 결코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신 여호와께서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전쟁은 여호와께 달려 있으니 온전히 여호와만을 신뢰하고 전쟁에 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2절이하를 보시면, 싸울 곳에 가까이 임하였을 때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합니다. 그 말의 내용은 1절의 내용과 일맥상통 합니다.
제사장은 대적과 이제 싸우려고 할텐데, 3절에 나온 바와 같이 절대로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는 비슷한 어휘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강조함과 동시에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밝혀야 하는데, 4절에 나온 바와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 중에 함께 하실 것이며, 친히 싸우시며 구원하시기 때문임을 밝혀야 합니다.
특히, 4절에서 이유를 밝힐 때에도 ‘너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관계가 얼마나 특별한지, 그리고 그 분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어떤 마음과 열심을 가지고 역사하고 계신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대적들 앞에서 결코 두려움을 갖지 않아야 하는 당위성을 갖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데, 그걸 알고 있는 자들이 왜 믿음없는 자처럼 두려워하는지, 애타는 마음으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제사장의 선포를 듣고 난 후, 각 책임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 내용은 바로, 전쟁에 참여하지 말고 돌아가야 할 자들이 누구인지 밝히고, 그들에게 실제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5절~8절에 걸쳐 나와 있는데, 5절에서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 6절에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 7절에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8절에서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 라고 나와 있습니다.
책임자들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위해 이렇게 친히 일하시는데, 너희는 그 역사하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 입니다.
먼저 5절에서 7절에 걸쳐 나와 있는 대상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대적과의 전쟁을 목전에 앞두고 있음에도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돌려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신의 유익과 욕심을 성취하기 위해서인 자들입니다. 이들은 애초에 그들의 대적을 멸절해야 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신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고, 어디까지나 자신이 누릴 구원의 유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 받은 이유와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굳이 전쟁에 참여할 이유가 없기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억지로 참여하지 말고 돌아가기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8절에 나와 있는 대상들은, 모세를 통해, 그리고 제사장을 통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에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만일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두려움 속에서 소극적으로 전쟁에 임하게 될 것이며, 결국 다른 지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 덕이 되지 못하기에, 이 거룩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데 있어 한계를 갖게 됩니다.
구원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그리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 민족을 더 두려워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은, 이러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자들의 이러한 권면을 통해 돌아갈 자들을 다 돌려보낸 후에, 그때서야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전쟁을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리도록 하게 합니다.
이렇게 남은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지 않는 자들로써 아버지의 역사에 동참할 자격을 갖춘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내용인데,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앙적 교훈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 아래 택함 받은 자들을 부르시고, 다시 세상을 향하여 보내어지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공동체원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보내심을 받은 세상 속에서 영적 전쟁을 통해, 그곳에 아버지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도록 통로로서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교회 공동체로는 쉽게 모이나, 교회를 벗어난 후로는 그러한 공동체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또는 망각한 채 살아가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 5절~7절에 나온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족속과의 전쟁을 통해 그곳을 정복하여 거룩한 땅으로 세워가는 것이 여호와의 기쁘신 뜻인 것을 알면서도,
그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전심을 다할 것인지를 생각하기보단, 개인의 삶 속에서의 문제와 유익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겉으로는 아버지의 자녀라는 신분으로는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계획과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아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특권의 은혜마저도,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자신이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사실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을 단순히 개인이 얻고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유익으로만 여기기에, 신앙생활도 위로 받기 위해서, 은혜 받기 위해서,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서 불안함을 해소하려고 등의 이유로, 아버지의 뜻보단 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아버지 자녀라는 그 특권을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아버지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사명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백성으로 부르시고 자녀로 삼으신 것은, 개인적인 구원의 유익을 누리게 함에만 국한되지 않고, 동시에 이곳에 임한 아버지의 나라와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분명함에도 여전히 개인적인 유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자녀로 부르신 그 부르심을 무시한 것이며, 더 나아가 아버지를 망령되이 여기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살아가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아버지의 자녀라고 자부하며 안일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 또한,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은 물론 가증스러운 것이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분명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자녀로 부르셨지만, 정말 아버지의 뜻대로 자녀답게 살아갔는지는 마지막 때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았다고 말씀해주셔야 알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아버지의 자녀라고 한들 진정한 의미로서 아버지의 자녀가 아닐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두 번째 이유는, 8절에 나온 이스라엘의 민족처럼 아버지를 신뢰하기보단, 여전히 세상이 거대해보이고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허락하신 은혜와 역사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부터 받을 고난이 두려워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계산하는 모습이 오늘날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분명 마태복음의 5장 11절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러 박해와 고난을 기꺼이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믿는 자라면,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부어주신 은혜의 깊이를 절감하며, 그 갚을 수 없는 은혜 앞에서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며 감격속에서 담대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어떠한 질타를 받는다 할지라도, 이 땅의 삶이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 비하면 잠깐 지나갈 것에 불과하기에, 하늘에 소망을 두고 결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상황을 담담히 이겨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버지를 모르는 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미 이곳에 임한 아버지의 거룩한 나라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온전히 세워지도록, 날마다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적인 유익만을 구하면서도 아버지의 자녀라고 뻔뻔스럽게 자부하고 있는 자가 바로 나 자신이 아닌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 1절과 4절에 나온바와 같이 우리 아버지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여기에 모인 모든 성도님들은, 분명 아버지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대로 이스라엘 민족처럼 돌려보내지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통로로서 귀하게 쓰임받는 은혜가 늘 함께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아버지를 신뢰하며, 내 개인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고, 거룩한 사명을 담대히 감당해내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서,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해 달라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동역하는 부교역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새음교회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주신 은혜에 따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아픈 환우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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