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성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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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들어가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는 이 새벽, 주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깨어 주님을 사모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 내용에서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향한 사랑의 당부를 남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를 향한 사랑의 권면은 오늘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합니다. 더욱이 오늘 말씀에서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새벽, 말씀을 함께 나눌 때 다시 한 번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먼저 오늘 본문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2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할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흠 없는 모습인데 이 모습을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을 말합니다.
1. 평강의 하나님
사도 바울은 그동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여러 당부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 내용에서는 거룩한 성도, 온전한 교회에 대한 내용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보았던 23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표현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바울의 의도가 분명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온전하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며, 성도를 거룩하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라고 말합니다.
본문에 나온 “평강”이라는 말의 원어적인 의미를 보면, “평안”, “화해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평안의 하나님, 화해 시키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해질 수 있고, 그러한 성도들이 모여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보았을 때도 그러한 평강의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사람들을 회복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교회가 온전하기 위해서, 성도가 거룩하기 위해서 이러한 평강의 하나님이 그들을 이끄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의 당부의 메시지처럼 오늘날도 교회가 온전하기 위해서, 성도가 거룩하기 위해서는 평강의 하나님이 필요하고, 그 평강의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를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에는 교회 안에서도 바라볼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떠한 갖추어진 환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는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세상의 기준에 따라 나아가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성도와 교회가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도들 또한 눈 앞에 보이는 다른 것들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옳은 길로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참된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2. 모든 것이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
다시 말씀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 영과 혼과 몸은 사람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곧, 성도들은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든 것 가운데 흠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의 예를 들어서 말하면 초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영지주의자들, 이러한 이단들이 하는 말과 같이 영은 거룩하고, 몸은 부정하니 육체는 정욕에 따라 살아도 괜찮다는 것과 같은 말은 틀린 말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어느 하나 빠짐 없이 거룩하게 흠이 없을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보전”이라는 말은 군사적인 의미로서의 지킴, 보전을 말합니다. 곧 철통과 같은 지킴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새벽에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보았지만 이 당시에 그들이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았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방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으로 하여금 그들의 땅과 민족들로부터 박해와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 거룩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흠 없게 보전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며 나아간다는 것은 참 버겁고 어려운 일이지만, 사도 바울이 “보전 되기를 원한다.”라는 말 속에서는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 것을 바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율법과 같이 거룩한 삶을 살 건지, 아닐 건지에 대한 양자택일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 소망을 잃지 말라는 바울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가운데서 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라는 말입니다.
앞서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것, 성도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평강의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당시의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거룩하고, 흠 없게 살기 위해서는 평강의 하나님의 이끄심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신앙이었습니다. 수 많는 고난과 박해 속에서 그들이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림에 대한 소망이 있음으로 하여금 그들은 수 많은 고난을 감내하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성도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삶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리고 신앙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럼에도 묵묵히 감내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문제가 있을 때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앙을 흔들게 하는 유혹과 시련이 있을 때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성도가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이 땅에 다시 오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 편지 속 마지막의 메시지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말하며 성도들이 그때까지 흠 없게 보전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3. 재림의 소망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성도된 자들이 돌아보고 다시금 마음에 깊이 새기며 바라보아야 할 것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알고 있을 뿐, ‘내가 살아있을 때는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떠한 일들을 마주했을 때 그리스도인다운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번 주일 예배 때도 보았지만 노아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한 모습처럼 안일하게 생각하는 모습,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림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어떠하겠습니까?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재림의 소망이 없음으로 하여금 안일하게 생각하여 자기 마음 대로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이번 한 번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주님을 등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삶에서는 믿음의 결단도 없고, 신앙의 몸부림도 없고,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뿐이지, 그 모습에서 내주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재림의 소망이 있는 성도들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의 배경에 나오는 성도들과 같이 수 많은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감내하며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내주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곧 오늘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 것과 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우리 정관온누리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이러한 재림에 대한 소망을 늘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의 종교생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사는 삶으로 하여금 주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한 주, 예전 사역했던 교회를 바라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가슴 아픈 교회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소망의 삶입니다. 성도가 이 소망을 잃어버리고 산다고 한다면 반 쪽 짜리 신앙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과 더불어 정말 중요한 것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삶입니다. 이 소망이 있어야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성도가 성도 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리

마지막으로 그 이후의 말씀들을 보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마음을 다시금 알 수 있습니다. 25절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라는 것은 서로 동역을 한다는 겸손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6절 말씀에서도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것, 그 당시 우정을 표현하는 관습, 또 끈끈한 연대를 의미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의 권면과 이러한 모습으로 하여금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고 성도들은 아름답게 세워져 나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관온누리교회도 이와 같이 아름답게 세워져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되고,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 평강의 하나님이 이끄시는 귀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시간,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며 나아갈 때 그러한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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