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8 수요강론: 룻기 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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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수요강론으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무더위가 많이 꺾인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 동안 무더위 가운데서 저희를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지난 여름을 저희가 무사히 보낸 것은 저희가 더위를 잘 피했기 때문보다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늘도 말씀을 통해 알아가고자 나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릅니다. 이 시간도 그 복을 누리는 귀한 시간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룻기 3:6-15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룻기 3:6–15 NKRV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할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오늘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초월하신 하나님이심에도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에 감사하며 오늘도 함께 말씀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지난 8월 3주 동안 저와 함께 룻기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까지는 2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와 룻을 보호하셨다는 것, 그리고 2장에서는 룻과 보아스의 시점에서는 우연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 룻에게 호의를 베푸셨다는 것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4장까지 살펴보면 참 좋겠지만, 때가 되면 4장을 해야 할 것 같고 오늘은 3장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서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이 말을 보통 언제 사용하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마치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격려하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데도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식업계에서 유명한 백종원씨와 배우 소유진씨는 나이 차이가 무려 15살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가 사랑으로 결혼하고 3명의 자녀까지 낳았다는 모습을 볼 때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이 숫자일 뿐만 아니라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나이가 말해주는 것이 있는데요. 잠언 20:29 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잠언 20:29 NKRV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젊은이다움과 노인다움이 있다고 잠언은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힘이 젊은이의 것이라면, 백발, 즉 연륜이 주는 지혜는 노인의 것이라는 겁니다. 노인은 날이 갈수록 젊은이에 비해 힘이 없어지고, 시력은 쇠퇴합니다. 하지만 어떤 한 사물을 보는 관점은 오히려 젊은이보다 예리해집니다. 음식을 씹고 소화하는 힘은 약해질지언정 어떤 한 사건의 의미를 곱씹는 힘은 강해집니다.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힘은 줄어들지만, 인생길을 찾아가는 능력은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회와 공동체에는 청년과 노인이 모두 필요합니다. 지혜 없이 힘만 있으면 그 힘을 허투루 쓸 수밖에 없고, 지혜만 있으면 그 지혜를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나오미와 룻입니다. 나오미의 지혜로운 조언과 그 조언을 따른 룻의 실천의 결과로 두 사람이 회복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것의 중심에는 룻과 보아스의 사랑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은 이 둘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이 둘의 사랑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요. 바로 “구속”, 다른 말로 “대속”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이 본문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 본론
오늘 읽은 본문의 시작인 5절은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는 룻을 가리키고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룻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앞 본문인 1-5절인데요. 1-5절을 요약하자면, 룻에게 호의를 베푼 자가 친척인 보아스인 것을 안 나오미는 이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룻을 밭으로 보내는 것 그 이상으로 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룻의 “안식처”를 만들어주기로 합니다. 그 안식처는 보아스였고,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와 결혼할 수 있도록 일종의 전략을 세워서 룻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이것이 1-5절의 내용이고, 룻은 순종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룻은 나오미의 명령에 따라 보아스가 있는 타작 마당으로 가는데요. 그때 보아스는 나오미의 예상대로 하루 일을 마친 후에 먹고 술을 마시면서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아마 추수한 것에 대한 기쁨을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함께 누렸을 겁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곡식단 끝에 가서 눕는데요. 이것은 모든 것을 추수한 곡식단을 도둑들이 약탈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그러자 나오미의 말대로 보아스가 누운 자리를 확인한 룻은 나오미가 명령한 대로 보아스가 누운 후에 그의 발들을 들고 거기에 눕습니다.
7절을 보시면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웠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기가 힘듭니다. 이것은 이불에 감춰져있던 보아스의 발을 이불 밖으로 드러내고 그 발 앞에 누운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주로 발은 “권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발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그 권위를 존중하며 복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룻의 행위는 보아스의 권위에 순종하며 그에게 간청하는 모습입니다.
왜 룻은 이렇게 보아스에게 간청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살펴보지 못했지만, 2장에서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 유산을 이어받을 자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자인 이 보아스에게 자신을 의탁하여 자신이 이 보아스의 가족이 되기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기업 무를 자가 히브리어로는 “고엘”입니다. 이 고엘은 “친척”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대속”, “구속”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룻은 지금 보아스를 향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대속자가 되어달라는 것을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아스 발 앞에 룻이 눕습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자는 도중에 몸을 뒤척이다가 자신의 발 앞에 무엇인가가 걸리게 되고 그것이 여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너는 누구냐”라고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하자 룻은 “당신의 여종 룻이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에서 룻이 자신을 여종이라고 말하는데요. 2장 13절에서 룻이 보아스에게 자신을 당신의 여종 또는 하녀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글로는 똑같지만 원어로는 두 개가 다른 단어입니다. 지금 여기 9절에서 룻이 자신을 “여종”이라고 표현하는 이 단어는 창세기 30장에서 야곱의 두 아내인 라헬과 레아가 아이를 임신하지 못하자 자신의 여종인 빌하와 실바를 통해 아이를 가지게 되는 그 내용에서 빌하와 실바를 가리키는 “여종”과 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2장 13절에서 말한 여종 또는 여자 하인이라는 뜻보다는 “여종 부인”이라고 룻이 자신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단어를 사용하여 지금 룻은 보아스에게 간청하고자 찾아온 것일 뿐만 아니라 보아스와 결혼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아스에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 더 정확하게는 당신의 날개로 자신을 덮어달라고 하면서 보아스를 자신의 피난처로 삼아달라고 간청합니다. 단지 보호자로서의 피난처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로서의 피난처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룻은 보아스가 자신의 기업 무를 자, 고엘, 다시 말해 “구속자”라고 말합니다. 이 “고엘”에 대한 레위기의 율법을 보면 형제가 타인에게 판 땅의 값을 지불하고 그 땅을 되찾아오는 것이 구속자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혼 관계로 들어오면 집안에 남편을 여읜 과부가 있을 경우 그 과부와 결혼하여 과부를 어려운 처지 가운데서 구하는 역할을 뜻합니다.
우리가 저번에 1장을 통해 살펴보았지만, 이 당시 여성은 지금보다 훨씬 약자였습니다. 그것도 남편을 여읜 과부면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구속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있는 과부의 어려운 형편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룻도 나오미와 친척 관계로 있는 보아스를 향해 이러한 자신의 구속자가 되어줄 것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마치 보아스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점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발라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게 하고 의복을 입고 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밤에 몰래 보아스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와 룻이 보아스를 성적으로 유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시선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먼저 룻이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은 행위는 상대를 성적인 매력으로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정결하고 단정하게 만드는 행위였습니다. 사무엘하 12:20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12:20 NKRV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바로 다윗이 지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고 단정하게 만들기 위해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룻의 이러한 행동은 유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혼을 위해 당연히 해야될 행위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룻의 행위를 받아들이는 보아스의 반응을 통해 유혹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주 경건하게 믿는 보아스는 절대로 간음하지 말라는 7계명을 범하지 않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만일 룻이 유혹하기 위해서 왔다면 그녀를 당장 내쫓아냈을 겁니다. 하지만 10-11절을 보면 보아스는 오히려 룻이 자신보다 훨씬 젊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인 자신을 향해 청혼하는 룻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그녀가 유능한 여인, 다시 말해 잠언에서 말하는 현숙한 여인이라고 칭찬합니다.
따라서 룻의 이러한 행동은 절대로 성적으로 유혹하기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이러한 룻의 행위 앞에 보아스는 감사를 표시하며 그녀를 칭찬합니다. 보아스도 룻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심지어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바닥에 버려 그녀가 왕창 주워서 갈 수 있게까지 하겠습니까? 보아스도 그녀를 향해 사랑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그녀의 청혼을 냉큼 받아들이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질서가 있기에 그 질서를 지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12절에서 자신이 룻이 말한 것처럼 고엘, 구속자인 것은 맞지만 자신보다 나오미에게 더 가까운 친척이 있음을 말하면서 구속의 우선권이 더 가까운 친척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13절에서 오늘 밤에는 여기에서 자고 아침에 그 가까운 친척이 고엘의 역할을 룻에게 사용할 것인지 먼저 알아보고자 합니다. 보아스가 지금 얼마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법과 관습에 매우 충실한 지혜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다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결혼했다면 보아스는 자신의 공동체로부터 비난받고 심지어 쫓겨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룻의 피난처도 되어주지 못했을 겁니다. 젊은이는 힘과 열정이 가득하지만 노인인 보아스는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지혜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가까운 친척에게 먼저 구속자를 찾길 원했고, 만일 그 친척이 룻에게 구속자의 역할을 행하지 않으면 자신이 룻을 구속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때 보아스는 그냥 구속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라는 이스라엘의 공식 서약과 같은 말을 사용함으로 반드시 그것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룻에게 쥐어줍니다. 사실 이것 또한 보아스의 호의입니다. 구속은 어디까지나 구속자의 마음에 있는거지 절대로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구하는 사람의 판단과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절대로 구속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권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룻을 반드시 구속하겠다고 약속하는 보아스의 이러한 모습은 보아스의 호의이자 사랑입니다.
룻을 향한 보아스의 이런 마음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보아스는 정말 가까운 친척에게서라도 룻이 구속받기를 원했고, 그녀와 관계를 가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어디에도 보아스와 룻이 동침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합법적인 결혼을 위해 거쳐야 할 절차를 말한 후에 룻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우 어두운 밤 중으로 어렵기 때문에 룻에게 아침까지 누워서 쉬고 있으라고 말하면서 배려합니다.
또한 14절에서 룻은 보아스의 배려대로 아침까지 누워있다가 매우 이른 새벽, 즉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알아보기 어려운 때에 일어나는데요. 이렇게 한 이유는 보아스는 룻에게 여인이 타작 마당에 왔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룻이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 왔다는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에게 구설수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 남자를 유혹하러 왔냐”느니, “보아스가 한밤 중에 자신의 침소에서 과부와 동침했냐”느니하는 구설수 말입니다. 이러한 물론 이것이 사실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가 있으니 만약 구설수가 퍼지게 된다면 보아스가 공동체의 법에 따라 절차를 밟아 룻과 겨혼함으로 룻을 구속하는 것에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아스가 룻에게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돌아갈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보아스는 자신이 수치를 당할 것보다 자신이 맹세한 대로 정말 룻을 자신이 구속할 수도 있으니 그것의 장애물을 만들지 않고자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당부하면서 그냥 룻을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15절에서 추수한 보리를 챙겨서 보냅니다. 우리는 제일 처음에 보아스가 누워있는 곳이 타작 마당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 보아스가 지금 룻에게 준 보리는 그냥 날 것 그대로의 보리가 아니라 키질한 아주 구별된 알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키질한 보리를 보아스가 룻에게 준 것은 그녀를 향한 호의이며, 그리고 혹여나 그녀가 사람들의 눈에 발각될 시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 일하러 왔다는 것을 알려주어 혹시나 생길 오해를 막고자 함입니다. 보아스의 배려가 너무나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보아스로부터 배려를 받고, 상당한 양의 보리를 가진 채 룻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보아스를 안식처로 삼고자 한 룻의 노력과 그녀를 구속하려는 보아스의 호의와 사랑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진정으로 현숙한 여인이 무엇인지, 지혜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룻이 오늘 본문에서 시도한 행동은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말 보아스를 성적으로 유혹하려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는 행동입니다. 자칫 잘못해서 정말 보아스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과감하게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대단한 행동입니다. 그녀가 오히려 수치를 받을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의 명령대로 보아스에게 가서 보아스의 발을 드러내어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고, 자신의 발치에 누워있는 룻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보아스는 놀랍니다. 보아스가 누구냐고 물었고 룻은 자신을 보아스의 여종, 여자 하인이라고 말하며 보아스의 옷자락으로 자신을 덮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표현은 결혼을 요청하는 표현입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과 결혼해야 하는 이유로 보아스가 자신과 결혼함으로 자신을 구속할 수 있는 친척임을 상기시킵니다. 룻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보아스는 젊은 룻의 청혼에 자신과 같이 나이가 많은 노인에게 청혼한 것에 감사하며 룻을 축복합니다. 그는 룻을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공동체의 법에 신실했던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아 구속하는 데 있어 자신보다 나오미의 가정에 더 가까워 구속의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친척을 기억하고 그 친척에게 룻을 구속할 권한을 사용할지 알아보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룻을 반드시 자신이 구속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약속 후에 보아스는 룻에게 자신의 침소에 누워서 쉬다가 정말 자신이 구속할 수 있게 된다면 오해받지 않도록 이른 새벽에 돌아가라고 당부하고 룻이 돌아갈 때 그냥 보내지 않고 추수해서 키질한 보리를 챙겨주어 보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유력한 남자”와 “현숙한 여인”이 만나 결혼을 약속하는 역사적인 일이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이 그저 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독특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보입니다. 사적인 이야기로 보이는 이 약속은 단순히 부유한 남자와 유능한 여자가 행복한 가정을 위해 결혼을 약속한 정도가 아닙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조상이 되는 너무나 위대한 약속입니다.
이후에 4장에서 보아스와 룻이 결혼합니다. 결국 보아스가 룻의 고엘, 구속자가 되는데요. 보아스가 룻의 구속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방 여인이며 과부라는 사회적 약자라는 위치에서 기업 무를 자의 아내가 되었다는 놀라운 신분 변화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보아스가 룻을 구속자가 됨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유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들의 약속으로 인해 다윗을 낳게 되었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복을 가져다주는 참된 왕이 되었습니다. 이 둘의 사랑 이야기가 이스라엘 전체에게 약속을 가져다주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고, 보아스라는 구속자를 룻에게 주셨습니다. 사실 룻에게 유일한 구속자는 보아스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엄청난 호의를 베푼 것은 오로지 보아스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던 시대인 사사 시대에 하나님을 향한 경건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보아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룻에게 예비하신 고엘, 구속자는 오로지 보아스였습니다. 보아스 외에 다른 구속자는 룻에게는 없었습니다. 이 보아스 덕분에 룻은 구원받았고, 그녀는 다윗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 또는 “유능한 남자와 현숙한 여인이 만나야 한다”라고 가르칠까요? 이런 것들도 가르치긴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둘의 결혼 약속이 다윗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겁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곧 보아스와 룻의 자손이 되시기도 합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 약속은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조상이 되는 귀한 발걸음을 뗀 역사적인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익을 지금 우리 교회가 누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신부인 교회의 남편이 되심으로 고엘, 즉 구속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죄에 빠진 우리를 자신의 핏값으로 사심으로 우리의 구속자가 되셨습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분의 호의이며 자발성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자가 되실 의무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시면서 말씀하셨듯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우리가 죄에 빠져있기 때문에 죄에 대한 마땅한 지불을 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바치심으로 우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고엘이시며 구속자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유일한 구속자이십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속자이시며 그리스도만이 구속자가 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겁니다. 사도행전 4:12 에서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4:12 NKRV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처럼 그리스도 외에 구속자가 되는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교회는 룻과 같이 이방 여인이며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고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예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왕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예전에 몸을 파는 창녀와 같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죄를 사랑하여 죄라는 더러운 웅덩이 빠져 몸을 더럽히던 그 삶을 우리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러한 삶을 산다면 어찌 왕의 아내, 왕의 신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신분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정체성, 삶,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고엘의 아내입니다. 구속자의 아내입니다. 하등 별볼일 없던 우리는 그리스도의 호의와 배려, 그리고 사랑으로 신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어찌 우리가 죄를 범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이 남편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되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죄에서 우리를 구속해주신 그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던 그 시절의 자아를 버려야 합니다. 죄의 더러움에서 여전히 논다면 어찌 구속받은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동시에 만일 다시 범죄하였다고 하더라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고엘이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며 회개하면서 기도하고, 다시 그분께로 돌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엘입니다. 우리의 구속자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며 우리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사시는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룻기 3장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고엘, 구속자가 되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셨습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 아내답게 살아가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내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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