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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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새벽설교
침륜(가라앉다, 침몰하다)
히브리서 5:11-14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이해력,판단력)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신앙이 점점 쇠퇴해가는 것을 경계하여 우리로 하여금 다시 신앙을 회복하라는 바울의 촉구입니다.
영적인 침체기에서 벗어나고 침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첫번째로
1. 게으름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11절을 보면 “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둔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노드로이’는 ‘게으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12절에는 ‘게으르다’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1절에서 말하고 있는 ‘게으르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에는 게으른 자에 대한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잠언 6:9-11, 26:13-15에서 게으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아 좀더 누워있자”라는 말씀과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하는지라” 라는 말씀입니다.
게으른 자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매사에 의욕이 없고, 심지어 음식을 앞에 놓고도 입에 떠넣기 조차 싫어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게으르다는 것”은 자기 만족에 빠져 더 이상 수고를 하기 싫어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다면 당연히 먹을 것이고, 사자가 나타나 목숨이 위태롭고, 목숨이 귀하다 여기면 당연히 도망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게으름은 지금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신앙의 정진이 없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신앙의 위치에 만족하므로, 더 이상 말씀에 대한 의욕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을 더 이상 배우거나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11절에는 “듣는것에 둔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이러한 상태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1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2절에는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앙의 높은 차원을 이해할 수 없는 미성숙한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몸이 자라는 것은 당연한것입니다. 그런데 몸이 멈추고 자라진 않는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히브리서의 독자들도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며 수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서 자라진 않는 것, 오늘 본문이 말하는 “말씀을 듣는 것에 둔하고 게을러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들었던 말씀으로 말씀에 신선한 도전이 없어진 것이며, 오래 전부터 들었기에 모두 다 아는 말씀이라고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어린학생이 선생님이 앞에서 알려주는 내용을 알고있다고, 이미 다아는 내용이네, 시시하네 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선생님에게 배울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는 내용이 설교중에 나왔다고해서 “오늘 설교는 내가 아는 내용이네.”라고 생각하고 팔짱을 껴버린다면, 그 뒤에 나올 은혜들을 맛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적지않은 신앙인들이 내가 아는 설교말씀이라고, 신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영적인 게으름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을 오히려 놓치고 실수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에 이런 영적 게으름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침에 새벽예배를 했으니, 오늘 수요예배는 안가도되.
또는 오늘 저녁예배가 있으니깐 낮예배는 안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하루에 한번 예배하면 더 이상 예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금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이내 배부르고 교만해져 더 이상의 말씀을 배우는 데 둔하고 게을러져서는 안되겠습니다.
연륜이 오래될수록, 받은 직분과 위치가 중할수록 더욱 큰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신앙성장에 앞장 서야 하겠습니다.
2. 자기 신앙 건강은 남이 지켜줄 수 없습니다.
12절을 보면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아직도 신앙 미성숙한 자로 머물러 있게 된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하반절을 보면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연륜과 시간적 흐름에 따라 타성에 빠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상태가 된 것은 스스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지 아니한 결과 다시 신앙의 초보로 낮아진 것입니다. 이 상황에 근본적인 책임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약함이 있다면, 예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예수님께 부탁할 때,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돌보지 않는 이상 성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TV에서는 많은 건강 먹거리와 건강 관리법을 알려줍니다. 인터넷에는 좋은 운동방법도 알려줍니다. 그러나 건강한 먹거리와 운동법이 있으나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에게 꼭 맞는 운동법과 건강법을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없습니다.
신앙 건강 역시 이와 똑같습니다. 단단한 음식을 씹을 수 있는 영적 치아와 단단한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는 영적인 소화 능력을 지닌 신앙 건강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건강을 위한 비법만큼이나 우리 주변에는 신앙의 건강을 위한 매우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 되어 있습니다.
좋은 교회를 다닌다고, 좋은 세미나를 들었다고 그것들로 인해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한 신앙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신앙 건강을 지키겠다는 의지도 필요합니다.
항상 점검하고, 지켜봐야 합니다.
신앙의 멘토를 세워, 자신의 신앙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앞서 말한 신앙을 지키는 모든 내용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보내신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있음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재직이여, 깨어 일어나 기도하라”라는 기도운동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내일 진행되는 7시간 마가다락방 기도회도 우리의 신앙을 자라나게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많이 나오셔서 기도하시고, 나만 기도하지말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권면해 주시길 바랍니다.
3. 말씀을 늘 실천하고 적용할 때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13,14절에는 어린아이와, 성인을 얘기하면서 성숙한자란 과연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야 성숙한 자가 될 것인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신앙의 미성숙한자를 젖을 먹는 어린 아이로 표현하여,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경험하지 못한’ 이라는 말은 아직 검증조차 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씀에 대해서 분명하고 깊게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적용해보고, 실천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경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14절을 보면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자들이니라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 라고 하였습니다.
장성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제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훈련을 통해 그 진리를 몸에 체득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체험적인 신앙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을 이루어 젖먹이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려면 늘 배운 진리를,
실제로 부딪히며 여러 문제 속에서 적용해 봄으로써 선악에 대한 살아있는 판단력을 체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사에 가장 영향력 있고 힘있는 설교자가운데 한사람인 무디 목사의 성경 여백에는 항상 'T.P'라는 표시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표시는 ‘시험하고, 증명되었다(tested and Proved).'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적용과 증명의 체험이 많았던 무디 목사는 그토록 힘있고 생명이 넘치는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삶에 적용을 하지 않음으로써 언제까지나 초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영적 젖먹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배움과 동시에 이를 늘 실천하고 적용함으로써 살아있는 분별력과 생명력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는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서머나의 폴리캅이라는 속사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는 말씀을 위한 수고와 희생을 치루어야 한다.”
그 수고와 희생이 무엇이겠습니까?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을 포함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보고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귀로 들은 그 말씀을 기도를 통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앙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17절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귀로 듣고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서 영적 분별력, 곧 영적 성숙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영적 성숙을 위하여 성령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들마다 영적인 분별력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면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나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더이상 뒤로물러나거나 침륜에 빠진자들이 되지말고
영적으로 장성한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