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의 땅에서
0 ratings
· 17 views함의 땅에서 성장하는 이스라엘을 통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난다
Notes
Transcript
언약
언약
들어가기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받드시 성취하신다.
구약에는 많은 언약이 나타나고 있다.
태초에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으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언약이 있다.
언약의 독특한 점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셨다는 것이다.
언약은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가 있다.
서로가 합의되어야 계약이 체결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셨다.
만약 계약을 어긴다면, 그 계약 체결의 방법대로 당사자는 해를 입는
다.
쪼갠 고기 사이로 통과하며 계약을 체결하는 고대근동지역의 계약체
결 방식이 그렇다.
어느 쪽이 계약을 파기할 경우 쪼갠 고기와 같이 상응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언약을 파기하신다면 그렇게 하시겠다는 맹세의 증표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언약을 먼저 파기하신적이 없으시다.
오히려 인간이 언약을 파기했고, 그 파기의 댓가를 치루어야 했던 것이
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하겠다.
2. 민족, 땅, 복의 언약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언약하셨다.
큰 민족을 이룰 것이고, 땅을 줄 것이며, 복이 될 것을 언약하셨다.
이 언약은 당장에 성취되지 않는다.
이삭이라는 혈통을 통해 야곱의 12아들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고,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며 430년이나 지나서야 성취되는 대장정을 거처야만 했다.
사람은 조급함이 있다.
당장에 무엇인가를 손에 쥐어야 마음이 놓인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 민족을 약속하셨지만, 당장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씨도 주지 않으셨다.
아들이 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100살이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지 25년이나 지나서의 일이다.
웃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브라함도 웃고 사라는 숨어서 웃었다.
그들이 웃자 천사는 마치 경고하듯이 예언하며, 이름을 ‘웃음’이라는 ‘이삭’이라고 지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물론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잊을 수도 없었다.
웃음을 주셨지만, 그 웃음은 하나님을 향한 비웃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으면서도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다시는 하나님을 향해 웃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아니라고 그럴 수 없다고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셨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라고 하신다.
잠시 생각해보라.
100살에 얻은 아들이다.
하나님이 주셨지만, 하나밖에 없는 독자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지만, 이 명령은 큰 마음을 먹지 못하면 결코 따를 수 없는 명령이다.
아브라함은 짐을 챙긴다.
종들을 데리고, 이삭에게는 나뭇짐을 지우고 길을 나섰다.
사흘 길이다.
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 믿었다라고 한다.
나와 비교해본다.
나는 흔들렸을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라고 하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라고 속으로 마구 화를 냈을 것이다.
성경은 침묵한다.
아무말 없이 모리아 산으로 향한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는다.
“아버지 번제 드릴 땔감은 있는데 제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실 것이다.”라며 이삭을 침묵시키고 결박한다.
이삭의 반항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왜 이러세요?
왜 저를 묶으십니까?
이러시면 안됩니다.
전혀 반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거저 자신들이 할 일을 하고, 그 하는 일에 그냥 맡겨두고 있다.
어떤 장면인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납득할 수가 없어서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그냥 행동에 따르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이삭의 질문에 답변처럼 이삭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칼을 치켜 들었다.
이삭은 여전히 반항하지 않는다.
놀랍다.
이처럼 조용하게 처리하다니...
성경은 놀랍도록 고요하게 이 장면을 처리한다.
이윽고 높이 치켜든 아브라함의 손이 이삭의 심장에 닿을 즘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린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긴박감과 떨림이 느껴진다.
아브라함은 힘을 주었던 손에 힘을 풀고 하늘에서 들리는 강하면서도 빠르면서도 떨리는 음성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이 말씀 후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숫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며,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으로 그 땅을 불렀다.
이런 극적인 상황이 있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고, 아브라함은 어떤 결점도 없이 통과해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삭에서 야곱으로 야곱에서 12아들로 이처럼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순조롭게 이어져 가는 듯이 보입니다.
민족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땅이 없었다.
땅은 언제 주어지는가?
먼저 아직 민족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면 민족이 완성되는 그 때로 돌아가야만 한다.
여기는 이집트다.
고대 가장 강력한 나라다.
그런데 이 곳에 낯선 이방인이 한 사람 보인다.
바로의 바로 아래 둘째 치리자다.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누구인가?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라헬의 소생이다.
야곱은 유난히 라헬을 사랑했다.
그리고 라헬은 12번째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만다.
요셉과 베냐민은 엄마없이 자란 것이다.
배다른 형제들은 이미 성인이었다.
아직 어린 요셉과 베냐민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런 요셉은 형들은 시기했고, 결국 요셉은 형들에 의해 미디안 장사꾼들에게 팔려갔다.
우연이었을까?
하나님의 예비하셨음일까?
요셉은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고, 그 곳에서 가정총무가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였다라고 보고한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간 것이 형통이었을까?
형통으로 볼 수 없다.
또, 가정총무가 되었다고는 하나, 이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 누명을 쓰고, 친위대장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형통은 막힘이 없이 쭉쭉 뻗어나간다는 의미이다.
과연 형통한가?
그렇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왜 성경은 형통하였다라고 보고하는가?
여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여기 이 감옥은 애굽의 바로 앞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였던 것이다.
감옥에서 요셉은 두 사람을 만난다.
바로에게 죄를 짓고 갇힌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떡 맡은 관원장이고, 다른 사람은 술 맡은 관원장이었다.
이들의 죄는 어떤 죄인지 다루지 않고 있어서 모르지만, 친위대장의 집에 갇힌 것으로 보아 국가 내란죄에 해당되지 않는가라고 짐작한다.
친위대장의 감옥은 반역죄를 지은 자들을 가두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술 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 두 사람은 꿈을 꾸었고, 그 꿈을 해석해주게 되면서 요셉은 대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떡 맡은 관원장은 그 꿈이 죽음의 꿈이었고,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은 복권의 꿈이었다.
그리고 요셉의 꿈대로 3일만에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의 곁으로 복권되었지만, 떡 맡은 관원장은 죽음을 맞이했다.
요셉의 해석되로 된 것이다.
그러나 당장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지는 않는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권되면 요셉을 기억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다음 잊어버린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로가 꿈을 꾸었다.
살찐 소 7마리가 앙상한 소 7마리에게 잡혀 먹는 꿈이었다.
아무도 그 꿈을 알 수도 없었고, 꿈을 해석할 수도 없었는데, 그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떠올리게 되었고, 요셉이 불려왔다.
요셉은 꿈은 하나님께서 해석하시며 지혜는 하나님께 있다는 하나님이 주관자이심을 고백하며,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바로는 요셉의 놀라운 지혜를 칭찬하며 그를 둘째 치리자로 세워 그의 지혜를 배우도록 자리를 곤고히 해주었다.
이렇게 셈 족의 통치자 아래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게 되었고, 형들에게도 이점을 알려주며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다.
드디어 야곱의 가족 70인의 함의 땅에 이르게 되었다.
고센 땅이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반기지 않았기에 풀이 좋은 고센 땅에서 목축을 하며 살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민족을 약속하셨고, 드디어 이방땅 애굽에서 한 민족으로 성장하는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함 족속의 통치자가 등장하면서 또 한 번 이스라엘은 위기를 맞는다.
이미 이스라엘은 200만명으로 성장하여 큰 민족을 이루었던 것이다.
바로는 겁이 났다.
만약 다른 민족이 쳐들어 왔을 때, 이스라엘이 반역을 꾀하면 골치가 아파진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아들이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이 지혜롭게 처신하면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살아남게 되었다.
하지만, 모세는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으로 떠내려 간다.
누나 미리암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바로의 공주가 강에 나왔다가 갈대상자 안의 모세를 건져내게 되었다.
모세의 이름이 이때 지어졌다.
모세, 건져내었다는 뜻이다.
모세의 이름은 중의적이다.
자신이 강에서 건짐을 받았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40세가 되어 민족을 지키려다 애굽병사를 쳐죽이고 모래에 묻었다가 들통이 나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다.
그렇게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40년을 지나다 하나님의 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시고,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신다.
바로는 애굽을 떠나려는 이스라엘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사람들과 바로를 굴복시키셨고, 이 재앙은 그들의 신을 심판하는 재앙이었다.
드디어 약속의 땅으로 향해가는 이스라엘이다.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장면도 너무 극적이다.
먼저 홍해가 가로막았다.
모두 죽게 된 것이다.
바로의 전차가 추격해오고, 앞은 홍해가 가로막혔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곳에서 죽게하는가?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을 펼쳐 홍해를 갈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누가 바다를 갈라 길을 낸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기 위해 비상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초자연적인 힘으로 바다를 갈라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은 건넜다.
추격하는 바로의 군사들은 하나로 합쳐지는 바다에 모조리 수장당하고 말았다.
광야는 말 그대로 거칠고 척박한 땅이다.
물도 없고, 식량도 없다.
비록 애굽에서 나올 때 은금 보물들로 전리품을 챙겨나왔다고는 하지만, 광야에서는 물이 더 필요하다.
물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자, 마라의 쓴 물을 나무가지를 던져 단물로 바꾸어 주셨고, 하나님께서 여호와라파 치료의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정탐을 하게 된다.
12이 정탐했지만, 10과 2의 보고 내용이 달랐다.
갈 수 없다와 가야만 한다는 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결국 10명의 의견이 백성들을 설득시켰고, 반란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노여워하셨고, 40일의 정탐을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해서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게 만드셨다.
1세대는 다 죽고, 드디어 모압평지에 2세대가 도착했을 때, 모세는 고별설교를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다.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졌고, 드디어 가나안 정복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여리고성을 13바퀴를 도는 것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12지파로 땅을 분배하고, 레위지파는 48개의 성읍으로 흩어져서 각 지역에서 섬기도록 했다.
보라, 민족과 땅이 생겼고, 드디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국민과 땅, 하나님의 법이 있는 번듯한 한 나라가 된 것이다.
3. 언약의 성취와 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민족과 땅과 복의 언약은 성취되었다.
이 언약은 또 다른 언약으로 이어질 때 더욱 곤고히 되고, 지속된다.
하지만, 계약이 파기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야 만다.
하나님께서 법을 주셨을 때는 언약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깨뜨리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