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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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views갑자스런 박해가 임했지만 그 계기로 하나님은 전도, 복음의 부흥을 이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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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파, 부흥
복음 전파, 부흥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오히려 교회가 더욱 성장하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극심한 시련에 직면했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순교 이후, 교회는 혹독한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은혜를 본문을 통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전개 1
1절.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의 불법 재판으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을 철저히 색출하여 투옥시키는 박해의 주동자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일부터, 신자들은 “큰 박해”에 직면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글들은 가족과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인근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져 갔습니다. 갑작스런 박해를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4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놀랍게도, 예루살렘에 일어난 큰 박해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 전파”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루살렘 성도들이 겪은 “큰 박해”는 역설적이게도 “복음전파”라는 더 큰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뜻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해석 및 적용>
성도 여러분! 박해가 왜 일어납니까? 힘과 권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함입니다. 사울의 박해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잔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박해 이유는 전혀 다릅니다. 역설적이게도이는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더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우신 일>입니다. 달리 말하면 <연단,훈련>입니다. 성도가 겪는 신앙의 <연단>은 하나님께서 미워서, 싫어서, 괴롭게 하려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요, 간섭이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 대해 제자들이 “이는 부모의 죄입니까? 누구의 죄입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 대답하셨습니다. (요9:3)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출4:11) 하나님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그리고 (출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날 때부터 맹인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성공과 실패, 풍요와 결핍, 높음과 낮음, 크고 작음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박해는 더이상 박해가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는 기회입니다.
2. 전개 2
예루살렘에 닥친 큰 박해로 인해 신자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처럼 보였던 신자들의 흩어짐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는 흩어진 성도들 중에 특별히 “빌립”에게 주목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다른 믿음의 행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은 유대인들이 원수로 여기고, 멸시했던 사마리아인들에게로 갔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곳이었습니다. 상종할 수 없는 이들이 가득한 곳이며, 적대감이 팽배한 곳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빌립은 사마리아로 향했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유대인의 우월성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빌립은 “그리스도”만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은혜와 그 사랑을 전했습니다. 왜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빌립은 알았습니다. 자신도 분명 죽었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성령 안에서 새 사람되어 기쁨과 감사, 찬양과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빌립은 자신이 만난 바로 그 “그리스도”를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과 그 열정에 성령님 함께하셨습니다.
<해석 및 적용>
* 빌립이 사마리아에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것은 사실 빌립의 영적 상태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편견없이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성숙한 신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한 성령충만한 성도였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빌립은 자신의 안위을 위해 복음 앞에 침묵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마리아 성의 부흥은 성령님께서 친히 이루신 역사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편견없이, 신실하고, 성숙하고, 성령충만한 빌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는 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 온전히 주목하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저는 “사도행전적 삶”으로 봅니다.
3. 전개 3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을 때, 사마리아인들의 반응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행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사마리아인들은 빌립이 행하는 다양한 표적과 함께 빌립이 전한 말씀에 깊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마음으로 빌립의 전하는 말씀을 전심으로 경청하고 따랐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행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빌립은 예수님과 같이 사마리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웠습니다. 말씀과 표적을 통해 사마리아를 지배하던 어둠의 권세는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졌습니다. 사마리아는 빌립이 전한 말씀과 표적을 통해 기쁨과 자유로 가득 찾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중풍병자가 치유되는 것을,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이 기쁨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해방의 기쁨! 회복의 기쁨! 구원의 기쁨이 넘쳤습니다.
등촌 가족 여러분! 온 사마리아가 신실한 믿음의 사람, 빌립 한 사람에게 주목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무런 변화도, 아무런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왔을 때, 놀라움과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행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사마리아의 놀라운 변화는 어떤 권력이나, 부, 또는 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빌립이 전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밝히 드러나면서 일어난 경이로운 부흥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믿고, 확신ㅇ함으로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해석 및 적용>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한 도시를 복음으로 뒤집어 놓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믿에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알지 못한 예수님을 한 사람, 빌립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한 사람, 빌립이 보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몰랐지만 한 사람, 빌립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용서를 받았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빌립이 사마리아에 들어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때, 사마리아 전체가 복음으로 뒤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는 복음에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이 능력입니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되심”을 선포할 때, 개인과 공동체가, 조직과 도시가, 나라가, 그리고 내가 변화됩니다. 그러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계속 “그냥 사마리아”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빌립은 박해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결국 예수님으로 인해 또 다른 예루살렘, 곧 “사마리아”로 들어갔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계신 곳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으로 가득 찬 “예루살렘”입니까? 아니면 혼미한 세상 것들로 가득 찬 “그냥 사마리아”입니까? 주저하지 말고 복음을 말하십시오. 반드시 기이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4. 전개 4
누가는 온 사마리아의 주목을 받은 빌립에 이어 또 다른 인물, 마술사 시몬을 소개합니다. 시몬은 사마리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모세오경과 함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를 대표하는 특징은 “혼합주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로 인해 거짓과 위선과 탐욕이 뒤셖인 종교와 사상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혼합주의의 중심에 <마술사 시몬>이 있었습니다(9-13).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몬에 항상 주목했습니다. 시몬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마술로 흥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시몬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칭하며 추종하고 존경했습니다. 시몬 자신도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큰 자(메간)”라 칭하며, 마치 “신적 권위를 가진 자”인냥 행동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시몬은 종교전문가이자 모두가 따르는 최고 권위자였습니다. 사마리아의 사회와 문화를 좌우했습니다. 한마디로 시몬은 사마리아의 주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마리아는 “시몬 종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을 따르면서 동시에 세상의 것을 좇는 혼란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빌립이 나타나 진짜 기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과 구원의 기쁨을 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마술이 단순한 거짓과 속임수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술은 오랫동안 사마리아 사람들을 현혹시킨 가짜 치유와 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신적 존재로 여겨졌던 시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빌립을 통해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보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행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술사 시몬을 떠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거짓과 위선과 탐욕이 뒤섞인 사마리아의 혼합종교를 버리고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돌아와 복종했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혼합종교의 중심이었던 시몬도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1) 시몬의 “매력과 마력의 허상”보다 빌립이 전한 기쁨과 치유와 회복이 완전했습니다. 2) 시몬이 가르쳐준 “거짓 주문”보다 빌립이 전해 준 복음이 완전했습니다.
<해석 및 적용>
(행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무슨 뜻입니까? 사마리아의 시대정신, 사마리아의 혼합종교의 중심이었던 시몬이 복음 앞에 항복했습니다. 자신의 거짓과 속임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시몬은 참된 진리를 만나자 항복했습니다. 시몬은 “하나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을 향해 모두가 주목하게 만들고 놀라게 하던 자(엑시스타논,9)였지만, 이제는 성령의 권능과 참된 능력을 보고 하나님께 놀라는 자(엑시스타토,13)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마술로 거짓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하던 자가 이제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권능과 표적으로 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 변화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뜻입니까? 복음이 능력이며 복음이 승리임을 보여주십니다. 앞으로 흩어진 신자들이 여러 이방 도시들을 만나고, 복음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만날지라도 복음이 능력이며, 승리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세상의 사마리아는 반드시 복음 앞에 항복한다는 성령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돈이 아니라 권력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강력한 권세자나 절대자가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통해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잘 갖추어진 어떤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복음으로부터 임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5. 결론 및 정리
(행8:12, 다함께)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알고 깨닫고 확신하고 증거할 때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행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핍박이나 고통, 혹는 좌절처럼 보이는 예기치 않은 변화에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주권자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핍박을 통해 복음전파의 기회로 사용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 삶의 어려움을 사용하셔서 주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빌립처럼 복음에 진심인 신자로서 주님의 뜻에 깊이 쓰임받는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주님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드리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